메뉴 건너뛰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공공기관 자회사 고용, 무엇이 문제일까?

 

엄진령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들어가며

 

현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정책이 이전 정부와 달랐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전환대상에 포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각 기관에서 직접고용한 것이 아니라, 별도로 세워진 자회사에 고용되는 형태로 전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자회사 고용이 아닌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투쟁했지만, 많은 기관에서 자회사 고용이라는 결과를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립대병원에서 자회사를 거부하고 끝까지 투쟁해서 직접고용을 쟁취했지만, 이러한 사례들은 많지 않다. 공공기관에서는 거의 대부분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전환 고용을 목적으로 자회사를 세웠고, 자회사로 고용된 노동자들은 이 속에서 투쟁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런데 ‘자회사’를 둘러싼 시각은 다양하다. 자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자회사 방식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내고, 자회사 전환 이후 처우의 개선이나 고용 면에서 여전히 비정규직 상태와 다를 바 없다는 증언들을 하고 있다. 반면 자회사 고용이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일부 개선된 고용형태라거나, 개선의 가능성을 보는 입장도 존재한다.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은 해당 기관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해 자회사 전환이 고용개선이기 때문에 직접고용이 아니라 자회사로 고용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자회사도 자회사 나름이라는 의견도 있다. 모든 자회사가 나쁜 것이 아니라 나쁜 자회사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공부문에서 ‘자회사’를 이야기할 때, 그 본질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공공부문 운영의 역사와 구조조정의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5 풀어쓰는 비정규운동_01.JPG

 

2020.6.26. <제4회 파견노동포럼>에서 자회사 방식의 간접고용 전환이 미친 영향에 대해 발표자들이 토론을 이어가는 모습. [출처: 철폐연대]

 

자회사, 구조조정의 수단

 

공공부문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할까. 이에 대해 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공공서비스를 이용하는 모든 사회구성원의 안전을 보장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공공부문의 운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생겨나고 있다. 이처럼 안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기까지 많은 이들의 죽음이 있었고, 그 가운데 많은 수가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럼에도 공공부문이 거대한 규모를 유지하며 해당 서비스 부문에 대한 총괄적인 운영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여전히 물음표를 찍기도 한다. 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국민 세금이고, 파업 등으로 서비스가 멈추기라도 하면 시민 불편이 자꾸 앞세워지고,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안고 있는 것보다 시장의 방식을 도입해 효율성을 도모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공공서비스의 제대로 된 제공이 곧 시민의 안전, 노동자의 안전과 연관된 문제이고, 그를 위해 책임 있는 운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막 형성되고 있지만, 그보다 오랜 시간동안 그런 시장 중심의 경영이 필요하다는 생각들이 지배해 왔다. 정부가 주도해 경제성장을 이끌어오던 시기를 지나면서부터 한국의 공기업들은 시장화되고 그 규모를 줄여오기 시작했다. 공공부문의 적자는 운영의 실패로 인식되었고, 민영화가 곧 공공부문 운영의 방향처럼 오랫동안 정부의 공공부문 정책의 줄기를 잡아왔다. 박정희 정부 시절 이루어졌던 1968년 1차 공기업 민영화부터 김영삼 정부에 이르기까지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자회사를 매각하고 통폐합하는 등의 구조조정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구조조정은 노동조합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김대중 정부 하에서 더 거침없이 이루어졌다.

 

그런 가운데 공공부문에서의 자회사는 구조조정의 수단이었다. 자회사를 만들고 관리하는 방식의 규모 축소에서, 자회사를 정리하고 통폐합하고 민영화하는 과정의 구조조정이 2000년대를 지나면서 추진되어 왔다. 구조조정의 흐름은 2000년대 중반 잠시 멈추는 듯했지만, 다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소위 ‘공공기관 선진화’라는 명목 하에 추진되었고, 물리적 구조조정은 주로 자회사를 정리하는 것에 집중되었다. 2009년 당시 131개 출자회사 중 74개가 정리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자회사에 대한 관리정책을 일정 부분정비하기도 했지만, ‘공공부문 민영화’라는 큰 정책 흐름 속에서 가장 먼저 민간 자본이 들어오고, 완전 민영화의 길을 걷는 최선두에 ‘자회사’가 늘 놓여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정부는 자회사를 비정규직 고용개선의 수단으로 두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공기관에서 자회사를 만들어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을 정규직화의 하나로 보고 있는 것이다. 민영화의 전 단계로 활용되고, 정책에 따라 매각, 통폐합되어 왔던 공공부문 운영의 역사 속에서의 자회사를 생각한다면 결코 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는 부담을 지기보다는 자회사라는 통로를 열어준 것이다. 그로 인해 그간 방만경영이다, 낙하산 인사다, 공공기관 비리다 뭐다 하면서 구조조정 해왔던 자회사가 갑자기 안정된 고용의 수단으로 둔갑해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올해 8월 발행된 한국노동연구원의 ‘공공기관 자회사의 도입 및 운영 쟁점과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현 정부의 정규직 전환정책 추진 과정에서 48개의 자회사가 신규로 설립되었다. 남아 있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그 수는 좀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자회사가 안정된 고용을 제공하고, 전문성과 독립성을 가진 기관으로 바람직하게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편다. 자회사로 전환된 이후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의 효과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운영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하고 원청 모기관에 대해 자회사 운영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 경영평가 사항으로도 도입한다고 한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자회사 운영이 영원하리라는 기대를 할 수가 없다. 자회사 내에서의 처우나 여러 권리 보장이 미비한 실태도 문제이지만, 자회사라는 구조 자체가 공공부문 민영화의 흐름 속에서 가장 먼저 풍파를 맞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5 풀어쓰는 비정규운동_02.jpg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공공기관에 자회사가 우후죽순 들어섰지만, 자회사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은커녕 노동3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2020.9.3. ‘공공기관 자회사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 촉구 기자회견’ 모습.

 

자회사 고용이 가지는 구조적 문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가운데 만들어진 자회사가 정부의 설명처럼 진짜 정규직 고용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면, 오히려 그 가능성을 부정하는 정부 정책의 실체를 보게 된다.

 

첫째, 원청 모기관이 100% 출자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원청의 책임 하에 설립되고 관리된다는 의미에서 공공성이 보장된다는 해석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정부가 자회사 고용도 공공부문이 책임지는 고용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가 된다. 그런데 출자지분의 규모로 공공적 성격이 담보되지는 않는다. 원청이 출자를 하는 만큼 개입하고 관리하며 그 서비스의 제공과 그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용과 처우에 대한 책임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그로부터 100% 출자가 의미 있어질 것이다. 그런데 막상 정부는 출자는 하지만 경영에 있어서는 원청 기관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고용에 대한 전반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수의계약을 통해 안정성을 보장한다고 한다. 원청 모기관과 자회사의 관계 역시 용역이나 사업을 위탁 혹은 도급을 주는 관계이다. 그 계약은 영원하지 않다. 공공부문의 용역 등의 계약에 있어서는 경쟁입찰, 최저가 입찰과 같은 원칙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회사에 대해서는 수의계약을 하도록 고시를 통해 허용하고 있다. 이는 모든 자회사가 아니라 ‘비정규직 전환을 위해 설립한’ 자회사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그러니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것은 자회사라는 구조가 아니라 ‘수의계약 허용’이라는 일시적 규제완화인 셈이다.

 

셋째, 자회사는 독립적이어야 하되, 원청 모기관과 소통을 강화하고, 공동 협의 등의 구조를 통해 원청의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원청이 책임을 지는 방식은 ‘경영협약’과 같은 방식으로, 자회사에 대해 원청이 개입하거나 지배하는 모양새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몇몇 원청 모기관들의 출자회사에 대한 관리규정들을 보면, 자회사의 경영계획 수립에서부터 평가에 이르기까지 전반을 원청 모기관이 권한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요소를 형식적으로는 배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실질에서 가능할까. 자회사는 원청과의 용역계약에 의존하고, 원청 기관에 필요한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한다. 노동조건은 용역비로 결정되고, 그에 따라 고용규모도 결정된다. 원청의 권한을 배제하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다.

 

정부는 자회사가 원청의 하청이나 용역에 지나지 않는 수준을 벗어나도록 하는 정책을 만들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원청 모기관의 자회사에 대한 개입과 운영에 대한 권한 행사는 부당하다기보다는 공공성이라는 기준에서 볼 때 오히려 타당한 측면도 갖는다. 공공의 자본이 투여되는 것에 대해 그만큼의 관리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자회사에서 수행하지만 해당 업무는 원청인 모기관에서 분리된 것으로 최종적인 책임은 원청에 있다. 그러니 또한 엄격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억지로 떼어 독립해야 자회사가 독자적인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자회사 전환도 정규직 전환이다’라는 정부 정책을 강변하기 위한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자회사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덜어내기 위한 방안이다.

 

결국 간접고용, 다음을 위한 질문은 이의 인정에서부터

 

결국 간접고용일 수밖에 없는 자회사 고용을 ‘정규직’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덧붙여지는 형식이 너무 많다. 그런 정부의 ‘노오오오력’ 끝에 자회사는 조금 더 형식적으로는 완전히 독립된 기관과도 같은 모양새를 갖춰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형식을 갖추어 가는 것은 오히려 공공적 운영에서 멀어지는 방향이며, 공공서비스 제공의 책임 주체로서 스스로의 역할을 회피하는 쪽이 된다.

 

여전히 자회사라는 것 자체를 나쁘게 볼 것은 아니고 잘 만들면 된다는 의견도 있다. 몇몇 거대한 규모의 자회사를 예로 들면서 그렇게 나아가는 방향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인력용역도급에 지나지 않는 많은 자회사들이 과연 거대한 규모로 키워질 수 있을 것인가. 인천공항만 하더라도 두 개 자회사 설립을 합의했다가 말을 바꾸어 자회사 수를 늘렸다. 업무별로 쪼개어 만들어지는 자회사를 다시 쪼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고, 그 자회사를 다시 민간 용역업체로 바꾸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공부문 구조조정, 민영화로 나아가는 근본적 정책의 뿌리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원청 모기관의 계속된 책임 회피와 그 회피를 지지하는 정부의 정책이 그를 증명한다.

 

자회사 전환 과정에서 처우가 개선된 부분도 일부 존재하고, 민간 용역업체보다 나아진 측면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당장 당사자들도 다시 용역업체로 간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회사가 옳은 것은 아니다. 자회사 고용은 간접고용의 하나일 뿐이다. 그런 부분에서 정부의 정책은 분명 한계적이었고, 다음 과정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를 인정하는 것이 시작이다. 계속된 구조조정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점은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정부의 정책으로 강제된 자회사, 수십 개가 늘어나버린 자회사의 수는 정부로서도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과정이 그랬던 것처럼, 그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막아내고, 더 나은 고용과 공공부문 고용의 개선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은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그러니 자회사가 용역보다 낫다 하더라도 자회사 구조에 맞서 계속된 싸움이 필요하고, 노동자들이 그 싸움을 예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자회사를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볼 때, 자회사 구조 속에서 원청을 상대로 투쟁을 만들어 가는 노동자들을 볼 때, 자회사를 어떻게 운영하면 바람직한가를 묻기보다 자회사 고용이 아닌 공공부문의 제대로 된 운영을 위해 어떤 방향이어야 하는지를 물었으면 한다. 자회사라는 간접고용 구조 속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조금이라도 더 보장하기 위해, 혹은 제대로 된 공공서비스의 제공으로 시민들의 편의와 안전을 더 보장하기 위해 원청 모기관이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가를 물었으면 한다. 보다 완전하고 안전한 운영을 위해, 공공부문다운 제대로 된 운영을 위해 자회사 방식의 간접고용 구조 자체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를 물었으면 한다. 그렇게 질문이 던져져야 함께 그 다음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