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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길에서 만나다

비행기 청소노동자 파업 뒤

이정호 (뉴스타파 객원기자)

 

오랜만에 밝은 소식을 전해 마음이 가볍다.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갔던 대한항공 비행기 청소노동자들이 파업 13일 만인 지난 1월 11일 밤 임금협상에 합의했다.

이들 비행기 청소노동자들은 한진그룹 산하의 대한항공 아래 한국공항(주) 아래 청소 용역회사 EK맨파워 소속이다. 도대체 몇 단계 하청인지도 모르겠다.

몇몇 언론을 통해 이들의 근무조건은 이미 알려졌다. 연착하는 비행기 때문에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면서도 한 비행기의 청소를 20~30분에 마쳐야 하는 압박에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일했지만 임금은 늘 최저임금을 따라 올랐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린 노동자들은 1년 전 노조를 만들었다. 공공운수노조 산하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를 구성했다.

이들을 고용한 용역회사 EK맨파워는 이미 지난해 7월에 확정된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 16.4%를 놓고 상여금이나 수당을 줄여 기본급에 넣겠다고 하다가 이 사단을 냈다.

노동자들이 파업 준비에 나서자 회사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파업 D데이를 12월 30일로 잡자 회사는 대체인력 투입을 준비했지만 노조가 12월 29일 야간 근무조부터 인원을 빼기 시작하자 당황했다.

 

13일의 파업과 조합원 총회

230명으로 시작한 파업은 혹한의 추위 속에 연일 인천공항 앞 집회로 이어졌다. 원청을 통한 대체인력 투입으로 파업은 장기화되는 듯 했다. 1월 12일 인천공항 제2터미널 개소식에 맞춰 대통령 방문이 예정됐고, 노조는 바로 그 제2터미널 앞에서 12일 오후 2시부터 파업집회를 잡았다. 회사는 당황했고, 원청사도 바빠졌다. 높으신 곳에서 노조로 전화가 걸려오고 교섭은 급물살을 탔다. 11일 밤 10시쯤 노사가 잠정합의를 끌어냈다.

 

임금협약 합의서

 

EK맨파워(주)와 공공운수노조는 아래와 같이 2018년 임금협약에 합의하며 상호성실하게 이행할 것을 확약한다.

 

1. 기본급 16.4% 인상(2018년 1월 1일 부)

2. 여직원 5만원 인상

5. 교섭타결금 40만원(노조원만 지급)

7. 2018년 1월 16일 09시 전면 업무 복귀

 

임금과 관련한 사항의 적용시기는 모두 2018년 1월 1일 부로 적용한다.

 

2018년 1월 11일

 

임금협약 주요 내용은 위 표와 같다. 우선 ‘기본급 16.4% 인상’은 최저임금 인상율을 그대로 기본급에 반영해 1월 1일부터 소급적용한다는 내용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당연히 해줘야 할 것을 이렇게 임금협약서에 못박는 게 씁쓸하기도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 때마다 최저임금에 산입되지 않는 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기본급화 해서 최저임금 인상효과를 무력화시켜온 관행을 끊어냈다.

여성 청소노동자에게 불리했던 임금 보전을 위해 여직원만 5만 원씩 인상한 것도 성과다. 교섭타결금 40만 원은 비정규직 파업으론 보기 드문 성과다. 13일 간의 파업에 대한 보상인데 비정규직이 이를 합의서에 명시한 건 실로 10여 년 만에 처음 본다.

 

처음 맛보는 꿀 같은 3일 휴식

무엇보다도 큰 성과는 업무복귀 시기를 1월 16일 09시로 명시한 점이다. 11일 잠정합의와 12일 조합원 총회를 거쳐 합의서가 성립됐다. 조합원들은 12일 저녁부터 16일 09시까지 꿀 같은 휴식을 취했다. 조합원들은 평생 한 번도 누리지 못한 휴식에 들떴다.

잠정합의 다음 날인 12일 오후 2시 노조는 파업에 참여한 전 조합원을 인천공항 인근의 강당에 모아 총회를 열었다. 여기서 합의서를 조합원들 스스로 인준했다. 긴 토론이 이어졌다.

 

1 2018.1.12. 인천공항 인근 강당에서 열린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 조합원 총회 [출처 이정호].jpg

2018.1.12. 인천공항 인근 강당에서 열린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 조합원 총회 [출처: 이정호]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 김태일 지부장은 총회 내내 마이크를 잡았다. 총회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교섭타결금 40만 원을 조합원 모두에게 지급하는 것을 놓고 지부 쟁의부장도 반대할 만큼 논란이 있었다. 230명으로 출발한 파업이 10일을 넘기면서 생계가 어려운 몇몇 조합원이 이탈해서다. 13일의 파업을 끝까지 지켜낸 조합원들은 먼저 복귀한 조합원까지 타결금 40만 원을 받는 것에 반대했다. 파업을 이끌었던 쟁의부장도 나서 “그 추위에 파업집회에 나서 고생한 우리를 배신하고 일하러 들어간 사람까지 40만 원을 줘선 안 된다”고 발언했다.

지부장은 차분히 설명하고 호소했다. “우리가 230명이나 한꺼번에 파업에 들어갔기에 대한항공과 한국공항(주)를 상대로 이런 성과를 냈습니다. 마음으로야 복귀한 사람들이 괘씸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분열되면 남은 단체협약과 이후 싸움에서 회사만 유리하게 됩니다. 사정이 있어 복귀한 분들까지 끌어안고 갑시다.”

지부장은 전문MC처럼 능수능란하게 총회를 이끌었다. 황금 같은 사흘의 휴식을 따낸 조합원들은 15일 하루 무박 1일로 서해안에 단합대회를 다녀왔다. 장소와 1박 여부도 조합원 뜻대로 결정했다. 새벽 일찍 버스로 출발해 점심을 편하게 먹고 돌아왔다.

 

장비차에 짐짝처럼 실린 노동자

파업 때 조합원들은 ‘대통령께 보내는 편지’를 한 장씩 자필로 썼다. 이들이 쓴 200여 통의 편지는 청와대로 전달됐다. 한 조합원은 노조가 나눠준 종이가 부족해 포스트잇까지 덧붙여 빼곡하게 써 내려갔다.

한 조합원은 “우리는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개돼지가 아닙니다”라고 썼다. 이 분이 쓴 편지에 적힌 6개의 2018년 새해 소망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① 법이 정한대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싶습니다. ② 연장근무 없는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 ③ 8시간 근무하고 가족과 대화하며 살고 싶습니다. ④ 휴게실에서 쉬고 싶습니다(휴식공간 없음). ⑤ 장비차에 짐짝처럼, 가축처럼 남녀가 섞여 가득 태워지는 거 싫습니다. ⑥ 손바닥만 한 캐비넷에 신발과 도시락을 함께 넣습니다.

 

2 조합원의 편지.jpg

조합원의 편지

 

편지엔 그들의 열악한 작업환경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고용노동부에 대한 분노를 담은 편지도 있었다. “우리는 누구처럼, 한 번도 속이거나 떼어 먹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 편이라 생각했던 노동청으로부터 외면당해야 하나요?”

 

민간항공사 비정규직 조직화 물꼬

비행기 청소노동자들이 파업에서 이겼다는 소식은 금세 인천공항 전체로 퍼졌다. 여기저기서 노조설립 상담이 들어왔다. 사실 인천공항만 놓고 보면 대략 5~6만 명이 일하는데 그동안 관심을 모았던 공기업 인천국제공항공사 계열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2만 명이 채 안 된다. 이들 중 3천여 명이 노조로 조직돼 있다.

이번에 파업한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는 민간영역에 있는 노동자를 대표한다. 김포공항에 공공연대노조 강서지회가 있지만 인천공항은 그만큼 상징성이 크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를 비롯해 수많은 저가항공사 산하의 간접고용 노동자 4만여 명이 인천공항으로 출근해 일한다.

   

파업 이후 복귀한 다음 날인 17일 저녁, 인천공항 인근 한 식당에서 민간항공사의 간접고용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김태일 지부장을 만나 노조설립 등을 논의했다.

김태일 지부장은 “그동안 개돼지 취급받고 일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우리 싸움을 계기로 더 많이 조직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장 사실상 대한항공 자회사인 한국공항(주)에만 용역회사가 20여 개나 붙어 있다. 그들만 합쳐도 3천여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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