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나는 누구일까? 집배원일까? 사장님일까?

유아 (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 재택집배지회장)

 

 

아이 셋을 키우려니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은데 그렇다고 종일 직장에 매여 일을 할 수도 없는 처지라, 길지 않은 시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닐 때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채용 공고를 봤다. “시흥우체국 재택집배원 6시간제 구함 - 25일 근로, 편지와 등기배달” 이라고 쓰여 있었다.

오전 시간에만 일하고 아이가 유치원에서 올 때쯤이면 업무는 마감될 테니, 좋은 일자리 하나 생겼다 싶어 기분이 좋았다. 더구나 재택근로라는 게 맘에 들었다. 아이를 돌보면서 일도 하고 경제력도 키우고 경력 단절 없이 일할 수 있다는 게 특히 좋았다.

 

즉시 우체국으로 들어가 계약을 하고는, 애들 저녁밥을 부지런히 먹여놓고 일 할 준비를 시작할 즈음 우체국 집배원이 우편물을 갖고 왔다. 기쁨도 잠시, 지금 생각하면 기절 안 한 게 다행이다. 우편물은 이삿짐 박스로 7박스 분량이었다.

홈쇼핑 책자부터 아주 다양한 우편물을 가득 싣고 온 집배원을 향해 내가 한 말은 “이걸 왜 갖고 왔어요?” 였다. 재택집배원이 뭔지 제대로 파악을 못한 채 마주한 실체였다. 난 ‘재택’이란 두 글자만 봤지, 뒤에 붙은 집배원이란 단어를 잊고 있었다. 우편물만 집에서 받고 배달은 여느 집배원처럼 현장을 돌며 해야 한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밤새 구분한 우편물을 새벽부터 빨간 수레에 실어 내 담당 구역을 돌며 배달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올 때가 됐는데 일은 끝날 기미가 없고, 중간에 잠시 일을 놓고 아이를 데려와 우편물과 아이를 수레에 같이 실어 배달을 다니기 시작했다. 편지 배달이 끝날 때쯤이면 내 아이도 수레 안에서 잠들어 있고 나의 온몸은 땀에 젖어 정신없이 저녁에 또 도착할 우편물을 향해 집으로 갔다.

그런 세월을 버티고 버텨 5살이었던 아이는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세월을 어떻게 버텨왔나 싶다.

 

2013년 4월, 재택집배원은 개인사장님이라며 사업소득세 3.3%를 뗀다고 했을 때 엄청 울었다. 조금만 참고 견디면 남들 다 받는 휴가도, 병가도 우체국에서 알아서 해줄 거라는 생각에 견디고 참은 세월이 7년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과 달리 우체국은 재택집배원을 비정규직보다도 못한, 이름도 생소한 특수고용노동자로 만들었다. 임금은 확 줄고 일은 늘어나고 쉬워진 계약해지로 우체국 눈치를 봐야하는 사장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눈물도 나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호소할 데가 없었다. 그때 시흥우체국 집배원들이 노동조합을 알려줬다. 그땐 말해줘도 노동조합이 뭔지도 몰랐다. 우리를 도와준다고 하니 노동조합 관계자를 만났다.

 

2013년 9월 2일 재택집배원지회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 첫 번째 투쟁사업은 2014년 3월 재택집배원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었다. 서울지방법원 1심, 서울고등법원 2심 모두 이겼지만, 대법원 판결을 앞둔 2년의 기다림은 길었다.

투쟁사업이 오히려 우리 발목을 잡는 형국으로 변한 듯하여 늘 바쁘게 뛰어다녔다. 조합원 조직을 위해 전국팔도를 다 돌아다녔다. 단 한 명의 조합원을 만들기 위해, 부르는 사람 없어도 찾아다니며 노동조합 조직에 열심을 다했다.

 

그리고 2019년 4월 23일, ‘재택집배원은 우정사업본부의 근로자지위에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났다. 승소한 그날 오랫동안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투쟁!” 말을 쉽지만, 투쟁다운 투쟁을 위해 노력하며 맨땅에 재택지회 깃발 하나 꽂고 달렸던 6년의 시간이 쌓인 눈물이었다.

이제 나도 아프면 병가를 쓰고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노동법적 권리가 생겼다는 기쁨에, ‘이 맛에 투쟁하는구나’ 하며 최고의 보람을 느낀 날이다. 투쟁의 결과를 떠나, 투쟁을 위한 그간의 노력에 ‘유아야. 그간 애 많이 썼다!’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도 던진 날이기도 했다.

 

대법원 판결로 바빠진 건 우정사업본부도 마찬가지였다. TFT를 꾸려 재택집배원들의 고용과 처우 관련한 논의를 진행한다고 한다.

하지만 난 안다. 그간 우정사업본부가 재택집배원들에게 행했던 과오들을 하루아침에 바꿀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또 그들만의 계획을 세울 것이다. 결코 순순히 우리에게 우호적 결과를 내놓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에, 우리는 교섭으로 맞설 것이다.

재택집배원은 현재 우정사업본부 내 분리교섭권을 따내 개별교섭을 진행 중에 있다. 재택집배원이 원하는 임금 및 처우개선, 복지 향상 등을 위한 모든 내용은 단체교섭에서 이뤄내고 지켜낼 것이다.

 

 

2 2019.05.09. 재택집배원지회 보고대회 [출처 재택지회].jpeg

2019.05.09. 재택집배원지회 보고대회 [출처: 재택지회]

 

정부는 계약 형식 하나로 노동자의 신분을 변조할 수 있는 악법을 고쳐야 한다. 진짜노동자를 가짜노동자로 위장하는 기업에 대해 엄벌로 대해야 한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현실에서, 재택집배원들의 노동에는 책임 비용과 열악한 현장만 있었을 뿐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그동안 내가 경험한 수십만 개 차별의 가시 중 하나의 가시만을 제거한 것에 불과하다.

 

대법원 승소 판결 이후 우체국을 방문해 앞으로는 도급 갱신계약서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노동절과 휴일근무에 대해 1.5배의 임금을 달라고, 하계휴가를 사용하겠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렇게 우체국을 나선 날은, 더 이상 특수고용노동자가 아닌 온전한 노동자의 모습을 되찾은 첫 날이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전국 재택집배원들의 노동권리 향상과 처우 개선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 단결로 함께 나아갈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