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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에 맞서는 조직화,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출범

이김춘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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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의 목소리

 

2017년 2월 5일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아래 ‘거통고조선하청지회’)가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공식 출범했다. 2월 8일에는 지역의 노동조합, 정당,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함께 한 지회 창립기념 토론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이제 울산과 목포에 이어 거제․통영․고성 지역에도 조선소 하청노동자가 가입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 생긴 것이다. 1년 동안의 준비과정은 거통고조선하청지회가 발 딛고 선 ‘현실’을 재차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또 거통고조선하청지회가 나아갈 ‘지향’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 넓고 깊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비록 아직은 조합원 36명의 작은 노동조합이지만, 거통고조선하청지회 창립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2016년부터 시작된 조선하청노동자의 대량해고가 2017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

 

박근혜 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과 조선소 자본의 대량해고로 하청노동자가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누구도 하청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고 하청노동자도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각자의 이해득실 속에서 많은 정치인과 정부 관료가 거제를 다녀갔지만 그들 대부분은 하청노동자를 찾지 않았다. 언론 역시 그때그때 취재에 열을 올렸지만 언론이 필요로 하는 것은 어려움에 빠진 하청노동자 개인의 비명소리였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창립으로 이제 하청노동자도 스스로의 존재를 집단화해서 드러낼 수 있게 되었고, 집단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작년 5월부터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아래 ‘지역대책위’)가 꾸려져 활동하면서 하청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거통고조선하청대책위도 준비위원회 단계에서 지역대책위에 함께해왔다. 그러나 지역대책위 안에 조선하청노동조합이 명확히 존재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다르다. 이제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창립으로 지역대책위도 좀 더 명확하게 하청노동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당사자의 목소리는 그 만큼 중요하다.

 

조선업 구조조정에 정규직이라고 예외는 아니지만, 구조조정의 고통이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하청노동자는 이렇다 할 저항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조선소 생산의 다수를 차지하는 하청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이 속수무책으로 진행된다면 구조조정에 맞선 정규직 노동조합의 저항 역시 고립되고 포위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하청노동자가 집단화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정부와 자본의 일방적 구조조정에 맞선 저항의 필수적 요건이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출범은 지금 벌어지는 구조조정이라는 폭력에 고통 받는 주체들이 그것에 맞서 저항의 작은 거점을 마련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물론 어려운 상황이다. 점심 선전을 나가면 만나는 고성의 하청노동자는 항상 같은 말을 한다. “조선소 잘 나갈 때 오지, 지금은 조선소가 어려워서 노동조합이 되겠나?” 노동조합의 조직화와 투쟁은 공황기가 아니라 호황기 때 더 잘 된다는 것은 노동조합운동의 일반적 상식이다. 그렇게 보면 대량해고의 한 복판에서 출범한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어쩌면 불행한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시절 탓’을 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절박함이 있다. 그 절박함이, 그리고 새로운 실천이 ‘구조조정에 맞서는 조직화’라는 한 바가지 희망을 길어 올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사업장 울타리를 넘어 ‘지역’에서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명칭이 그렇듯, 흔히 노동조합 하면 생각하는 사업장 울타리를 갖지 않는다. 또는 가질 수 없다. 이는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현실’이자 ‘지향’이다.

조선하청노동자의 고용구조 때문에 사업장 단위의 조직화는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더라도 불완전하다. 짧은 기간을 주기로 수시로 사업장을 옮겨 다니는 물량팀 노동자가 전체 하청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한다. 아니 ‘빅쓰리’로 불리는 대형 조선소를 빼면 하청노동자의 절대 다수가 물량팀이다. 대형조선소 사내하청업체와 근로계약을 하는 ‘본공’ 역시 수시로 옮겨 다니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현실은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활동기반을 사업장이 아닌 지역에 두게 한다.

노동조합 형식의 차이는 내용의 차이로 연결되어, 노동조합 활동에 있어서도 기업별 노동조합과는 다른 방식의 활동이 요구된다. 노동조합이라면 누구나 가장 먼저 단체교섭을 통한 단체협약 체결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당장 단체교섭을 통해 조합원의 임금을 인상시켜 줄 수 없다. 이 같은 현실적 한계가 아니더라도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지역에 바탕을 두고 활동하므로 조합원의 이익만을 위한 활동이 아닌 모든 하청노동자를 위한 활동을 요구받는다. 일부 하청노동자의 투쟁이 전체 하청노동자의 권리 향상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 거기에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역할과 능력이 있다. 이 같은 활동이 방향을 제대로 정립했을 때, 원청 조선소와 단체교섭을 강제할 힘을 갖게 될 미래에도 전체 하청노동자를 위한 활동과 투쟁은 그대로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사업장이 아닌 지역에 바탕한 노동조합 활동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비정상의 정상화’일 수 있다. 노동조합이 사업장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지역을 바탕으로 활동할 때 계급성과 운동성은 구현될 수 있다. 나의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지역의 모든 민주노조와 함께, 조합원뿐만이 아닌 모든 노동자들을 위해……. 이것이 노동조합, 특히 산별노조의 정신이자 지향일 것이다.

애초에 지역적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는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활동과 역할이 커질수록, 사업장 울타리를 가진 다른 민주노조의 활동에도 영향을 끼쳐 다른 민주노조들도 점점 그 활동이 지역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민주노조 운동의 지역연대, 지역투쟁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꿈꾼다.

 

 

문턱과 대문 없는 노동조합, ‘지역’의 구성원들과 함께

 

이제 막 태어난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다양한 지역 구성원들의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또한 지역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노동조합에게 지역 구성원들의 협력과 연대는 필수적인 요건이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창립총회를 준비하는 중심 사업 중 하나로 지역의 노동단체, 정당, 시민사회단체와 간담회를 진행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진행할 것이다.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이러한 과정을 진행한 예는 드물다. 물론 당장 도움이 필요해서이지만 그뿐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노동조합의 울타리 안으로 지역 구성원들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 명확히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크게 세 가지 수준에서 노동조합의 문턱을 없애고 대문을 지역으로 활짝 열려고 한다. 첫째는 지역의 정규직 노동자나 정당,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 지역 구성원을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조합원 가입은 아니더라도 노동조합의 의사결정구조인 ‘운영위원회’에 지역 구성원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노동조합에 ‘연대위원회’를 두어 노동조합의 활동을 지역 구성원과 함께 정기적으로 공유하고 토론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다.

이제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라 우선은 가장 낮은 단계인 세 번째부터 시작해보려고 한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 활동에 적극 연대하려고 하는 정규직 노동자와 정당,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로 연대위원회를 구성하고, 매월 정기적 회의를 개최하여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활동을 공유하고 활동 방향을 토론하고 노동조합 활동에 적극 반영할 것이다. 지역 구성원이 단지 후원과 연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당사자가 되어 좀 더 적극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방법을 더 많이 열어놓을 것이다.

 

한편 지역과 함께 하는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양대 조선소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모색해 볼 필요도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양대 조선소가 거제 지역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산술적으로만 보아도 거제시 인구 25만 명 중에 양대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7만 명 이상이고 그 가족까지 합하면 거제시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양대 조선소가 거제시 전체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 역시 마찬가지다. 조선업이 고용보험 피보험자수 기준으로는 68.5%, 수출액 기준으로는 76.4%, 지역내총생산(GRDP) 기준으로는 73.3%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거대 조선소의 경영은 철저히 자본의 논리, 이윤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이 같은 자본의 논리에 따른 경영을 견제하는 가장 큰 힘은 전통적으로 보면 노동조합일 것이다. 그러나 삼성중공업에는 노동조합이 없고, 대우조선해양에는 정규직 노동조합이 있지만 조선소 생산의 다수를 하청노동자가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규직 노동조합만으로는 자본을 감시하고 견제하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정규직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하청노동조합은 물론이고 지역의 노동단체, 정당,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힘을 합쳐 양대 조선소 자본을 사회적으로 감시하고 견제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통제라고 하면 좀 거창하지만, 소박하게 말하면 양대 조선소 자본이 경영을 하는데 있어 “이렇게 했다가는 지역사회에서 비판을 받지 않을까.” 고려하고 눈치를 보게 만드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가 원대한 꿈과 새로운 실천, 참신한 계획을 아무리 늘어놓는다고 해도 그것을 조금이라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 조직 확대!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창립총회에서 2017년 9월 30일까지 조합원을 100명으로 확대한다는 사업계획을 세웠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거제․통영․고성 지역의 조선하청노동자가 6만~7만 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설사 조합원이 100명, 200명, 300명이 된다고 해도 어림없다. 조합원 1,000명이라고 해봤자 조직률 1~2%에 불과하다. 그래도 조합원 1,000명이 넘어가면 뭔가 해볼 수 있을 것도 같다. 최소한의 지역적 영향력을 갖고 원청 조선소, 지방자치단체, 고용노동부 등과 맞서 힘 있게 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는 조합원 1,000명을 넘기면 2,000명, 3,000명이 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그러므로 거통고조선하청지회 앞에 놓인 핵심 과제는 조직 확대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지난 5월부터 해온 지역 대책위 활동과 거통고조선하청지회 준비위원회 활동 속에서 거듭 확인한 것은 하청노동자들이 가진 두려움이다. 물론 그 두려움의 대상은 자신의 밥줄을 하루아침에 그리고 영영 끊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원청 조선소이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나에게 어떤 이익이 있을 것인가.’ 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동조합에 가입해도 나에게 불이익은 없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하청노동자들은 좀처럼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일정 규모 이상의 조직 확대가 하청노동자의 두려움을 없애는 가장 현실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결국 대답과 질문은 다시 꼬리를 물고 되돌아온다. 조직 확대!

다른 노동조합의 조직 확대 사례를 보면 분명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순간은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다. 그 계기를 만들기 위해, 혹은 그 순간과 만나기 위해 하청노동자를 만나고 하청노동자와 이야기하고 작은 투쟁이라도 만들어내기 위한 지난한 노력은 줄기차게 계속되어야 한다.

 

한 가지, 광장을 밝힌 천만 촛불과 대통령 탄핵 그리고 다가올 대통령 선거와 정권 교체……. 한국 사회의 이 커다란 소용돌이가 조선하청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지금부터라도 지역의 힘을 한 데 모으고 준비해 대통령 선거 이후 대대적인 ‘하청노동자 노동조합 가입운동’을 벌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얼마 전부터 머릿속을 떠돈다. 정치 사회의 변화가 내 삶 지척에 놓인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에는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서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

거통고조선하청지회 출범으로 울산과 목포를 아우르는 조선하청노동조합의 실천과 연대는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세 지역의 조선하청노동조합 활동가들은 꽃피는 봄에 함께 만나 서로의 조직화 경험을 나누고 조직화의 활로를 찾기 위한 자리를 갖기로 했다.

지역마다 조직화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거제․통영․고성에서 조선하청노동자 조직화의 돌파구를 만든다면 그것은 곧 울산과 목포로 옮겨갈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게 조선소 하청노동자가 대규모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투쟁에 나서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은 결코 몽상이 아니다.

 

 

구조조정에 맞서는 조직화, 거통고조선하청지회 출범_이김춘택-질라라비20170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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