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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작은 사업장 노동자 권리 찾기에 나서자

 

임용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올해는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과 함께 산화한 지 50주기 되는 해이다. 전태일 열사는 평화시장에서 함께 일했던 봉제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자신을 불살랐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흘렀지만, 장시간․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현실은 여전하다. 노동조합 가입은 고사하고 근로기준법의 적용조차 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작은 사업장 노동자는 지난해 이미 580만 명(통계청 2017년 자료 기준)을 넘어섰다. 전체 임금노동자 가운데 27%가량이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작은 사업장일수록 노동기본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으로써 노동조합이 절실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2018년 12월을 기준으로 통계를 작성한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노조 조직률은 고작 0.2%에 불과했고 3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조직률은 2.2%에 그쳤다. 작은 사업장에서 기업별 노조의 존속이 쉽지 않은 조건을 감안하더라도 턱없이 낮은 조직률이다. 근래 조합원 100만 시대를 활짝 연 민주노총이 ‘모든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작은 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에 각별히 힘 써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 민주노총은 ‘모든 노동자를 위한 전태일 3법 쟁취’를 금년 하반기 주요 투쟁 과제로 내걸었다. 여기서 전태일 3법이란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11조 개정’, 모든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 보장을 위한 ‘노조법 2조 개정’, 그리고 모든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쟁취를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말한다. 노조법 2조 개정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는 앞서 <질라라비> 201호(2020년 5월호)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필요성에 대해서는 203호(2020년 7월호)에서 한 차례씩 살펴보았으므로, 이번에는 근로기준법 11조 개정이 왜 중요한지 알아보고자 한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근기법도 차등 적용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제도적으로 어떠한 배제를 겪고 있을까.

헌법 제32조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지며,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했다. 이 헌법에 의거해 ‘최저’노동조건을 구체적인 법률로써 정해놓은 것이 바로 근로기준법이다.

그런데 현행 근로기준법은 노동자 전반을 포괄하고 있지 못하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이 법의 일부 규정만을 예외적으로 적용받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근로기준법 제11조(적용 범위) 1항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이 법을 적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2항에서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적용 가능한 규정이 일부 있다고 하였을 뿐이다.

상시근로자 수에 따라 법 적용 범위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면 이는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며 평등권에 위배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1999년에도, 20년이 지난 2019년에도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는 거리가 먼 판결을 되풀이했다. 소규모 사업장의 경제적 능력이 취약하며, 법과 현실의 괴리가 크게 발생할 수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적용하는 현행 근로기준법의 기준이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사실상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비롯한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보다 기업의 경영 사정을 우선시한 판결에 다름 아니었다. 심지어 1999년 판결 당시에는 정부의 행정감독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의 적용 제외를 정당화하기도 했다. 행정력의 한계를 앞세워 법상 최저노동기준에 미달하는 사업장 문제를 국가가 방치해도 되는 것은 아님에도 말이다.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조항

 

이 점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아래 표는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 조항들을 나열한 것이다.

 

◎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 근로기준법 조항

 

- 근로기준법령의 요지 등을 근로자에게 알려야 한다는 조항(제14조)

- 명시된 근로조건이 사실과 다를 경우 노동위원회에 손해배상 신청 등을 규정한 조항(제19조 제2항)

-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등에 대한 제한 조항(제23조 제1항)

- 부당해고 등에 대한 노동위원회 구제신청과 조사, 구제명령 등에 대한 조항(제28조~제33조)

- 근로시간 조항(제50조)

- 연장근로의 제한 조항(제53조)

- 연장, 야간, 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임금 지급 조항(제56조)

- 보상휴가제 조항(제57조), 근로시간 계산의 특례 조항(제58조)

- 연차유급휴가제도 조항(제60조~제62조)

- 18세 이상 여성에 대한 유해 위험 사업 사용 금지와 야간휴일근로제한 조항(제65조 제2항, 제70조 제1항)

- 태아검진시간의 허용 조항(제74조의2)

-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조항(제76조의2)

-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제76조의3)

- 취업규칙 관련 조항(제93조~제97조)

 

위 조항의 적용 배제가 수반하게 될 결과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어떤 피해를 입히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일단 사업주가 근로시간 제한이 없는 점을 악용해 연장근로를 강제하더라도 위법이 아니게 된다. 연장근로에 대한 가산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이 역시 위법이 아니다. 연차휴가를 보장할 의무가 없으므로 이를 제공하지 않은 것도 법상 문제될 것이 하등 없게 된다. 또한 별도의 서면 통지나 정당한 해고사유가 없어도 사업주 마음대로 해고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라 하여도 상시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조차 할 수 없다. 게다가, 지난해 7월16일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및 발생 시 조치’에 있어서도 5인 미만 사업장은 애초부터 논외다.

 

노동기본권을 마음껏 행사할 수 없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일수록 더 많은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제도가 마련돼야 할 텐데, 오히려 현실은 이들의 권리를 억누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근로기준법이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노동환경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노동시간, 임금, 해고 등의 문제에 아무런 보호막이 되지 못하는 형국인 것이다.

 

 

노동조합 울타리 밖 노동자들

 

한국노동연구원의 <4인 이하 사업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4인 사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도소매업(25.2%), 숙박 및 음식점업(20.1%)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었고, 부동산업이나 여가서비스업, 교육서비스업, 협회 및 단체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2016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138만 원으로 1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 월 279만 원의 절반에 불과했다. 이들 가운데 유급휴가 적용률은 23.9%(전체 60.2%)로 나타났으며 퇴직금과 상여금 적용률은 각각 35.1%와 41.8%였다. 초과근로수당을 받는 이는 15.0%(전체 47.3%)이며,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비중은 30%를 밑돌았다. 국민연금을 기준으로 사회보험 가입률을 분석한 결과 역시 5인 미만에서 30.6%에 머물러 앞선 항목들과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전반적으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열악하다는 사실과 함께 5인 미만 사업장들의 상황이 특히나 심각함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한편, 국내 노동조합 조직률이 11.8%이고(임금노동자 10명 중 1명은 노조에 가입했다는 의미다.) 상시 근로자 수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엔 노조 조직률이 50.6%로 치솟는다. 반면 30인 미만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0.2%에 지나지 않는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노조 할 권리를 ‘실질화’ 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기업 규모가 크고 고용 및 임금 면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노동자들보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노조를 가입하거나 만드는 데 걸림돌이 많기 때문이다. 작은 사업장을 관통하는 열악한 노동조건은 근속 년수가 짧고 사업장 이동이 잦아지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사업주의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거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앞장서기보다는 차라리 이직을 선택하게 된다. 노동조합에 참여했다가 혹시 모를 피해나 불이익을 당할까봐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당사자 운동과 만나는 제도개선 투쟁으로

 

일하는 사람 모두의 존엄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헌법 정신은 구체 법률인 근로기준법을 통해 달성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을 위한 법제도 개선 투쟁은 이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제도 개선 투쟁은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당사자 운동과 만나야 한다. 최근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를 자기 과제로 하는 단위들이 펼치고 있는 사업들도 지역과 현장에서 미조직 노동자들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집단행동의 경험을 쌓는 일련의 조직화 과정이다. ‘권유하다’의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공동고발인 참여 운동,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권리찾기 ‘월담’의 ‘코로나19 일자리 영향 실태조사’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함께 목소리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그 안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실험이 다각도로 전개되어야 한다.

특히 코로나19 위기가 단기간 내 종식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현 국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근로기준법을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등 기본권 제약이 생존권 박탈로 이어지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해 사회적 문제제기가 터져 나와야 한다. 아직은 권리찾기에 나서려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움직임이 미약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위기의 피해가 작은 사업장을 비롯한 취약계층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는 이 시기, 피해 상황을 드러내고 공동으로 이 문제를 대응하자는 당사자들의 요구도 점차 가시화될 것이다.

요컨대 ‘작은 사업장 노동자 권리찾기’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요구뿐만 아니라 더 많은 권리를 요구하는 투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김혜진, 2020. “5인 미만 사업장 노동법 적용 제외 문제점”. <노동권 기획토론회 첫 번째 – 권리를 빼앗긴 노동자들>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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