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법률 포커스

 

고용허가제에 따른 사업장변경제한과 강제노동의 문제

 

박영아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들어가며

 

“태생적으로” 비정규직인 노동자들이 있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보통 계약기간이 3년인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한국에 입국한다. 계약기간이 3년이라도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무기계약으로 간주될 여지가 없다. 고용허가제 하에서 최장 9년 8개월 동안 한국에서 일할 수 있지만 한 번에 부여되는 체류기간이 최장 3년이고, 9년 8개월 후에는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주노동자에게는 한국에서 체류하고 취업할 수 있는지 여부가 다른 권리의 전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의 한국에서의 체류와 취업에 관한 허가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는가에 따라 노동자의 다른 권리, 특히 노동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영향이 대부분 “불가피”하거나, 한국에서 일하려는 외국인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는 점에 있다. 그간 이주노동자 관련 제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쳐온 이해관계자가 국내 사용자들이었다는 점이 적지 않게 작용한 결과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고용허가제의 도입 배경

 

한국정부가 저숙련 이주노동자들을 공식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이른바 3D업종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1991년 해외투자업체 연수제를 거쳐 1993년 외국인산업연수생제도를 실시하면서부터이다. 외국인산업연수제의 운영, 즉 연수생이라고 지칭된 이주노동자들의 도입 및 사업체 배치에 관한 업무의 수행은 사용자단체인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맡았다. 이처럼 민간 사용자단체에 이주노동자의 모집과 알선을 독점 위탁한 것은 중소기업 사업주들의 이익과 송출비리(모집 및 알선 비용의 노동자 전가와 과도한 부담, 이탈방지 담보제공 강요) 등 이주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극대화시키는 방식이었다. 나아가 산업연수생제도는 연수생을 노무에 종사하게 하면서도 그 신분을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으로 규정함으로써 임금체불, 강제노동, 산업재해 등의 인권침해에 무방비로 노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1995년 정부는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지침」을 제정하여 근로기준법 중 일부 규정(강제근로금지, 근로시간준수, 폭행금지, 금품청산 등)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을 적용받게 하였다. 열악한 일자리에서 만연한 인권침해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탈과 대규모의 미등록체류자 발생으로 이어졌다.

 

중소기업 인력난이 지속되자 이를 해소하고 외국인력 고용관리체계의 기틀을 확립하기 위한 방안으로써 고용허가제의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어 2003. 8. 16.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고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고용허가제의 특징 중 하나는 이주노동자의 모집과 사업체 배치 즉 알선을 공공기관(산업인력공단과 고용센터)에 맡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이주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한 점과 더불어 산업연수생제도에 비해 진일보한 측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주노동자의 사용자에 대한 종속성은 지난 15년간 오히려 강화되어 왔다.

 

2 법률 포커스_01.jpg

2019.12.15.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투쟁문화제 [출처: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이주노동자가 9년 8개월 간 한 사용자를 위해 복무하도록 설계된 고용허가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는 통상 계약기간이 3년인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한국에 입국한다.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 한국어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한국어시험 통과 후에는 순서를 기다리고 사용자의 선택을 받기 전까지 대기해야 하기 때문에 입국 전 한국어공부 등 준비에만 상당기간이 소요된다. 이주노동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용자의 초청에 의해 비로소 E-9 비자를 받고 입국할 수 있기 때문에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사항 외에는 앞으로 3년간 일할 직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일하게 된 사업장은 근로계약 기간 동안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동의 없이 떠나지 못한다. 고용노동부가 제정한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변경 사유」(“고용노동부 고시”)에 제한적으로 나열된 사유에 해당함을 입증하는 경우에만 사용자의 동의가 없더라도 고용센터의 허가를 받아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임금체불의 경우에도 “월 임금의 30 퍼센트 이상의 금액을 2개월 이상 지급하지 않거나 지연하여 지급한 경우”(고용노동부 고시 제4조 제1호 가목)에 해당함을 입증해야 하는 식이다. 위 요건에 해당함을 입증하려면 이주노동자는 실제로 근로한 시간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연장근무를 시키면서도 출퇴근시간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는 사업장이 많다. 이주노동자가 허가를 받지 않고 기존의 사업장을 떠날 경우 재취업을 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입증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은 사실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이주노동자에게 공공기관을 찾아가서 어떤 신청을 하는 것 자체가 매우 큰 결심을 요한다. 농축산어업 등 사업장이 대중교통수단이 없는 외진 곳에 있어서 근무처를 이탈하지 않고서 외부기관과 접촉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은 고용관계를 종료하려는 경우에도 “근로조건, 근로계약 위반이나 인권침해를 당하였음”을 입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용자의 성희롱, 폭행이나 욕설에 대해 가해자의 처벌을 구하는 것이 아닌 사직을 하려는 것뿐인 데도 영상 등의 증거가 없으면 사업장변경허가를 받을 수 없다. 일부 사용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악용하여 근로조건을 위반하거나 폭행 등의 불법행위를 저지르고도 사업장변경을 원하는 노동자에게 사직에 동의를 해주는 대가로 금품을 요구하거나 미지급 임금을 포기하라고까지 한다.

 

그나마 2010. 4. 10. 이전에는 외고법에 따른 근로계약기간은 1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은 1년에 한 번은 사업장 변경이 가능했고, 해당 조문에 힘입어 부당한 대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2009. 10. 9. 위 조문이 삭제되면서 근로계약기간에 대한 제한이 사라졌고, 사용자들은 근로계약기간을 이주노동자의 체류기간에 맞추어 최대한으로 늘리게 되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부당해고를 다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이 기간 사용자는 해고가 사실상 자유로운 반면, 노동자는 근로계약을 자유롭게 해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외고법 최초 제정 당시에는 이주노동자의 체류기간은 최대 3년이었다. 단기순환정책에 따라 외국인근로자의 정주화를 방지한다는 명목이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장기 고용을 바라는 사용자들의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인 결과 외고법은 2009년에 개정되어 현재 사용자가 재고용 허가를 신청하면 최초 3년간의 체류기간 후에 다시 1년 10개월의 기간 연장이 가능해졌다. 2012년 외고법은 다시 개정되어 총 4년 10개월의 체류기간이 만료되어 출국해야 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해 사용자가 기간 만료 전 ‘재입국 후 고용허가’를 신청하면 출국 3개월 후부터 재입국하여 취업할 수 있는 “성실 외국인근로자 재입국 취업 특례제도”가 도입되었다. 여기서 “성실근로자”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4년 10개월 동안 사업장을 변경하지 않고 한 사업장에서만 일한 노동자를 말한다.

 

체류기간 연장과 재입국 취업특례는 모두 이주노동자를 현재 고용하고 있는 사용자의 재고용 또는 재입국 고용허가 신청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사용자의 필요를 반영한 제도이며, 사용자에 대한 노동자의 예속성을 강화하는 제도이다. 특히 재입국 취업특례의 경우 (ㄱ) 재입국 전 4년 10개월의 취업기간 중에 사업 또는 사업장 변경을 하지 아니하였을 것, (ㄴ) 재입국하여 근로를 시작하는 날부터 효력이 발생하는 1년 이상의 근로계약을 해당 사용자와 체결하고 있을 것 등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 이렇듯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9년 8개월 동안 (해당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한) 같은 사용자를 위해 복무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2 법률 포커스_02.jpg

2020.3.18. 고용허가제 헌법소원 관련 기자회견 모습 [출처: 이주노동희망센터]

 

다시 헌법소송

 

2020. 3. 15. 5명의 이주노동자들이 헌법재판소에 외고법 제25조 제1항과 제4항, 그리고 고용노동부고시 제4조, 제5조 및 제5조의 2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헌법재판소가 2011년 고용허가제의 사업장변경 제한의 위헌성에 대한 판단을 내린 지 9년만이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사업장변경 제한을 ‘직장선택의 자유’의 문제로 보고 외국인의 직장선택의 자유는 ‘외국인력 도입에 관한 제도’에 의해 비로소 구체화되기 때문에 폭넓은 입법재량이 적용되는 영역이라 하여 합헌결정을 내렸다[2011. 9. 29. 2007헌마1083, 2009헌마230·352(병합)]. 그러나 사업장변경 제한은 일차적으로 직장을 떠날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에 직장선택의 자유의 문제로 축소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국제노동기구가 1930년 채택한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 제2조 제1항에 따르면 “어떤 제재의 위협으로 강요된 것이며 스스로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은 모든 작업과 복무”는 강제노동에 해당한다. 재취업이 허용되지 않고 강제퇴거되는 것은 임금노동을 하는 노동자에게 제재에 해당함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주노동자에게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업장변경사유에 대한 입증책임을 부담시키고 입증을 하지 못하는 경우 종전 사업장에서의 계속근무와 강제퇴거 사이에 양자택일하도록 강요하는 고용허가제는 노동자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노동을 강제함으로써 강제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근로계약관계는 본디 사적 영역에 속한다. 부당해고, 중간착취 등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의 보호가 필요한 사안이 아닌 이상 국가는 근로자와 사용자 간의 계약관계에 개입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고용허가제의 경우 국가는 “사용자의 의사에 반하는” 사업장 변경의 원칙적 금지와 예외적 허가의 방식으로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근로계약관계에 직접적으로, 그것도 상대적으로 열악한 노동자의 지위가 더욱 열악해지는 방식으로 개입하고 있다. 이러한 개입에 대해 정부는 그동안 “내국인 고용기회 보장”이라는 공익적 목적을 내세워 왔다. 그러나 최장 9년 8개월 동안 사용자에 매이는 노동자를 도입하는 제도가 실제로 내국인 고용기회 보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일부 노동자에 대한 권리 제한은 전체 노동자의 협상력을 떨어뜨리고, 양질의 일자리 확대를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오면서, 내국인보다 손쉽게 부릴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고용 선호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내국인 고용기회 보호’의 목적에 오히려 역행한다고 볼 것이다. 일각에서 외국인노동자는 처음부터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을 30년 전으로 되돌리지 못하는 이상 외국인을 노동자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 그만이라는 것은 실제로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원래 이 땅에 설 자리가 없는 존재로 치부하여 오히려 권리제한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이주노동자를 언제까지 인력으로만 취급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