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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포커스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논의의 본질

엄진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1. 사회 최대 쟁점으로 등장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논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는 지난해 11월 22일 출범 후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를 설치했다. 이 위원회는 12월 20일부터 올해 2월 28일까지를 논의기간으로 두고 있으며, 주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의제로 논의한다. 그에 따라 노동자 건강권과 임금보전 방안, 기타 이에 수반되는 의제들을 논의한다고 적시하고 있지만, 가장 주된 목적은 현행 2주 단위, 3월 단위로 되어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것에 있다. 그리고 이 논의를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서 1월 내에는 마무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2월 국회 내에 처리될 수 있도록 사전에 경사노위에서 합의를 이루겠다는 것이지만, 경사노위에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더라도 2월 국회에서의 처리는 강행될 것으로 예견된다.

 

경영계에서는 나날이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가 필요하고, 근로시간 단축의 부작용을 최소화하여 기업이 경영상 문제를 겪지 않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여론에 호소하고 있다. 자영업자나 중소상공인의 어려움에 대한 호소에는 여론도 동정적이고,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펴면서 경사노위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는 민주노총이 같은 ‘을’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이기적인 요구만 한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그러나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에 반대하는 것은 민주노총만이 아니다. 노동법률가들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논의가 시작되면서부터 국회 앞에서 의제 자체의 폐기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고,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이에 이번 법률포커스에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란 무엇이며, 이의 확대는 어떤 배경에서 제기된 것인지, 그리고 그 문제점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노동법률가들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저지 1인시위 [출처 철폐연대].jpg

노동법률가들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저지 1인시위 [출처: 철폐연대]

 

 

2.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개념과 문제점

 

1) 탄력적 근로시간제란 무엇인가

 

현재 근로기준법은 노동시간에 대해 1주 40시간, 1일 8시간을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이를 법정노동시간이라고 한다(이 노동시간 내에서 사용자와 노동자가 합의한 노동시간을 ‘소정근로시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법정노동시간을 초과한 시간외 근로가 1주에 12시간까지 가능하며, 시간외 근로에 대해서는 통상임금 50%를 가산해서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법정노동시간을 넘어선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가산임금 지급이라는 비용 부담을 사용자에게 지움으로써 지나친 장시간 노동을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준 자체를 유연하게 적용하여 사용자가 특정 주에 주 40시간을 초과해서 일을 시키더라도 가산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제도들이 있다(이 글에서 주로 다루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외에, 선택적 근로시간제(업무의 시작과 종료시각을 노동자의 결정에 맡기는 것으로, 1개월 이내의 정산기간을 평균해서 주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1주 40시간, 1일 8시간을 초과할 수 있음),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법에서 정한 특정 업종에 대해서 1주 12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를 하게 하는 것이 가능한 제도, 2018년 3월 법 개정으로 적용 업종이 축소되었고, 근로일과 다음 근로일 사이에 11시간 이상의 휴식을 주도록 하고 있음.) 등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탄력적 근로시간제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2주 단위, 3개월 이내의 단위로 기간을 정해서 적용할 수 있으며, 적용을 하게 되면 그 기간 내에 평균해서 1주 40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이다.

 

 

<시행 요건 및 내용>

▪ 2주 단위

: 취업규칙으로 그 시행을 정하며, 특정 주 노동시간이 48시간을 초과할 수 없음.

▪ 3개월 이내의 단위기간을 정하는 경우

: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로 시행할 수 있으며, 이때 특정 주 52시간을, 특정 일에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음.

: 서면합의에서는 적용 대상 노동자 범위, 3개월 이내의 단위기간, 단위기간 근로일과 그 근로일별 근로시간, 서면합의의 유효기간을 정해야 함.

 

이러한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1998년에 제도가 도입되었으며, 도입 당시 노동자들의 반대가 상당히 컸다. 1996년 말부터 1997년까지 이어진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으로 막아내고자 했었던 제도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당시 96-97 총파업의 주요 요구는 정리해고제, 파견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3대 악법 폐기였다.). 도입 당시에는 2주 단위와 1개월 이내의 단위로 시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으나, 2003년 주당 근로시간 한도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면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도 가운데 1개월 단위를 3개월까지로 확대하였다.

 

2)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만들어 내는 저임금화와 노동시간의 불안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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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적용될 경우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잦은 변동을 겪게 된다. 그리고 법정노동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도 연장근로로 보지 않기 때문에 가산임금을 지급받을 수 없다. 위 카드뉴스의 2주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보면, 1주차에 32시간, 2주차에 48시간을 노동할 때 두 주를 평균하면 각 주의 노동시간이 40시간을 초과하지 않기 때문에 법 위반으로 보지 않고, 또한 2주차에 40시간을 초과한 8시간에 대해서 가산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3개월 단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일이 없어서 짧게 노동하게 되거나 휴무를 주게 되는 것은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휴업수당이 지급되어야 하는 것이었고,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에 대해서는 시간외 근로수당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을 통해 추가 비용 없이도 사용자의 사정에 따라 마음대로 노동시간을 끼워 맞춰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취업규칙에 규정하거나, 근로자 대표와의 합의를 통해 적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노동조합 조직률이 10% 수준인 한국에서 대부분의 노조 없는 사업장에서는 사실상 사용자 마음대로 도입해 사용할 수 있는 제도인 셈이었다. 그나마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이라야 제도 도입을 견제하거나, 도입을 하더라도 최소한으로 적용하고, 또 임금을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하는 것이 가능했다.

 

3) 노동시간을 더 장시간으로 만드는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

 

그런데 현실에서의 최대 노동시간은 48시간이나 52시간이 아니라 더 늘어난다. 위 그림에서 ‘연장근로 할 경우’라고 표시 되어 있는 부분이다. 48시간 혹은 52시간으로 늘어나는 것은 법정노동시간 한도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고, 이와 별도로 1주 12시간까지의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그래서 특정 주 최대 노동시간은 이를 더한 60시간, 64시간까지 가능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8년 3월 20일에 법이 개정되어 1주일의 노동시간을 계산할 때 휴일을 포함하여 7일에 대한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보지만, 이전에는 고용노동부의 잘못된 행정해석으로 휴일근로를 별도라고 보았다(이 문제되는 행정해석은 2018년 3월의 개정법이 적용되지 않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며, 2018년 3월 법 개정은 오히려 이 기존의 잘못된 행정해석을 굳히기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월~금요일을 일하는 사업장은 토, 일요일 이틀이 휴일이 되므로, 이때 휴일노동 16시간[8*2]이 더 가능해질 수 있어서 최대 노동시간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할 경우 76시간[48+12+8+8] 혹은 80시간[52+12+8+8]까지 늘어난다. 이 내용은 필자가 무리하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6월 ‘유연근로시간제 가이드’를 제출하면서 ‘이렇게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니,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활용하라’는 취지로 설명한 내용이다.

 

 

3.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논의가 불거진 배경

 

1) 휴일근로 중복할증에 대한 판결과 고용노동부 행정해석

 

노동시간에 대한 근로기준법 개정의 배경은 휴일근로 중복할증에 대한 판결이 잇따른 데에 있다. 바로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와 별도로 휴일근로가 더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고용노동부의 해석에 다르면 1주는 5일간을 의미하고 휴일은 별도이기 때문에, 5일간에 대해 12시간 연장이 가능하고, 휴일은 별도로 또 하루 8시간씩을 일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휴일에 또 다시 연장근로가 가능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에 따르면 노동시간은 [40+12+8+8+@]로 무한대로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 이에 대해 법원에서 휴일근로는 그 자체로 연장근로에도 해당되기 때문에 가산임금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연이어 나왔고, 그로 인해 행정해석과 판결이 부딪치는 문제가 생겼다. 당연히 행정해석을 변경하여 바로잡으면 될 일이지만, 이것은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 논란이 벌어지던 당시는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확대하는 경영계의 논리가 주장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근로기준법과 뿌리산업 파견 확대를 골자로 하는 파견법 개악안, 기간제법 개악안 등을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노동개혁’ 법안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2) 박근혜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까지 관련 논의 경과

 

박근혜 정부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하의 ‘노사정 사회적 논의 촉진을 위한 소위원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논의했었지만, 2014년 말까지 결론을 내지 못했었다. 주 52시간을 상한으로 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이다가, 갑자기 경영계에서 그와 별도로 휴일특근을 8시간 더 허용하자는 안을 내면서 논의가 다시 막혔다. 이 당시 정부의 입장은 노동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장기간 유예를 두겠다는 입장이었고,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와 같이 묶여 있었기 때문에 노동계는 당연히 반대 입장이었다. 그런 가운데 박근혜 정부에서 밀어붙이던 노동5법(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상보험법, 기간제법, 파견법. 후에 기간제법을 제외한 노동4법이 추진됨.)은 이후 여소야대 국면이 된 20대 국회에서 사실상 폐기수순을 밟게 되었으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되면서 재벌에 의해 청구된 입법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후 현 정부에서 이 논의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보면, 2018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시간 단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실질적인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고용을 늘리는 것도 가능하다며, 일자리 문제와 연관해서 더욱 강조했던 부분이다. 그리고 드디어 2018년 3월 20일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이 - 탄력적 근로시간제 부분을 제외하고 - 이루어졌다. 그러나 정작 문재인 정부에서 이루어진 3월 20일 법 개정은 일부 개선되었으나 더 심각하게 후퇴한 내용들을 담고 있으며,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에 대한 부분을 예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3) 2018년 3월 20일 개정법의 문제점

 

<2018년 3월 20일 개정법의 주요 내용>

 

▲ 1주가 휴일을 포함한 연속된 7일임을 명시함. 그래서 휴일을 포함한 1주의 연장근로시간이 12시간으로 제한되어, 최장 노동시간 한도는 주 52시간이 됨.

▲ 그런데 이를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장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적용하며, 상시 5인 이상 사업장에 모두 적용되는 시기는 2022년 7월 1일부터임.

▲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2021년 7월부터 노사 합의로 8시간 특별연장근로 허용. 이 조항은 2022년 12월 31일까지만 효력을 가지며, 그때까지 고용노동부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등 제도개선방안을 준비해야 함.

▲ 공휴일을 민간기업에까지 유급휴일로 하도록 하고, 역시 기업 규모별로 단계 적용함.

▲ 휴일근로시 8시간 이내인 경우 1.5배, 8시간을 초과할 경우 2배를 지급

▲ 근로시간 특례 업종을 축소하고, 유지되는 업종에 대해서는 근로일 사이에 11시간의 연속 휴식시간을 부여하도록 함.

▲ 연소자의 1주간 근로시간 한도를 35시간으로 축소함.

 

개선되는 내용들도 있지만, 개선은 느리고 악화는 빠르다. 52시간의 노동시간 상한을 장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적용하게 했기 때문에, 현재 주 52시간의 한도를 적용받는 기업은 공공부문과 300인 이상 사업장 만이다. 그 외 사업장은 여전히 법 개정 이전과 마찬가지로 시간외 근로와 휴일근로가 별도이고, 지금까지와 같은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상태이다. 전임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잘못된 행정해석에 대해 사과를 한 일도 있었지만, 그의 폐기 없이 개정법을 단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현재 개정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사업장 및 법 개정 이전의 상태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의 잘못된 행정해석이 오히려 정당화되는 결과가 된 것이다(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노동시간에 대한 근로기준법 조항이 적용되지 않아, 초장시간 노동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2018년 6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이러한 인식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 전원합의체 판결은 개정법의 입법자의 의사를 개정 전 근로기준법에서는 휴일근로시간을 연장근로시간에 포함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왜곡 해석하고, 또 휴일근로가 1주간의 근로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사회생활규범이라는 무근거한 주장을 남발하기도 한다(그래서 지금 한국은 1주일이 7일인 사람과 5일인 사람이 혼재한, 법적으로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셈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일주일은 7일이지만 말이다.).

 

놀라운 사실은 현재의 정부나 여당이 노동시간 축소 및 이와 연동된 일자리 확대 등과 관련해 별도의 내용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하에서 논의되던 것과 거의 같은 내용으로 법안을 처리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잘못된 행정해석은 그대로 살아 있고, 작은 사업장에 대한 적용 유예, 그에 대해 휴일 특근 8시간의 인정(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경영계가 휴일특근 8시간을 주장하면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그에 반대해, 근로기준법 개정 논의가 깨졌었다.), 게다가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에 대한 의무를 정부에 지우는 것까지 포함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것과 실질적으로 같은 내용이지만, 주당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한다는 것을 내세워 패스시켜 버린 것이다. 애초 68시간 노동이 잘못된 행정해석 때문이었는데, 이를 기준으로 단축이라고 말하는 것은 선전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경영계로서는 휴일특근을 얻어냈고,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에 대한 의무를 정부에 지웠기 때문에 손해 볼 것이 없는 내용이었다.

 

 

4.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과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1)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법 개정 후 정부는 주 52시간 상한제로 인해 평균 노동시간이 7시간 감소하고 최대 18만 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제도의 연착륙을 위한 방안으로 고용을 늘리지 않고도 기존 인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의 도입을 유도했다. 2018년 6월에 제출된 ‘유연근로시간제 가이드’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이 ‘유연근로시간제 가이드’에서는 주 52시간 상한제가 적용되더라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해서 추가 고용 없이, 또 추가 비용 없이 노동력을 최대한으로 가동할 수 있다는 것을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이에 대한 비판은 <질라라비> 2018년 11월호(통권 183호) 정책포커스 http://workright.jinbo.net/xe/index.php?mid=press&listStyle=list&document_srl=61498 참조).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명백하다. 첫째,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이 길어질수록 통산기간이 넓어지기 때문에 사용자로서는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지지만, 그만큼 노동자의 불안정성은 커지게 된다. 심지어 특정기간에 전혀 일을 하지 않도록 하고, 다른 기간에 초장시간 노동을 시켜 커버하는 것조차도 가능해진다. 노동시간은 별도의 시간이 아니라 노동자의 생활의 한 부분이다. 노동시간의 장단은 당연히 노동자의 생활시간이나 생활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탄력적 근로시간의 단위기간이 길어질수록 노동시간이 일정한 패턴을 형성하기 어렵게 되고, 그만큼 생활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며, 건강에 미칠 영향도 커질 수밖에 없다.

 

둘째, 사용자는 노동력을 편리하게 편재하여 사용하는 반면, 노동자가 청구할 수 있는 수당은 없거나, 줄어든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이 없었더라면 청구할 수 있는 시간외 근로에 대한 수당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수당 없이도 어느 정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면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을 야기하는 시간외 근로를 원할 리 없다. 그리고 시간외 근로는 노동자의 동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사용자가 마음대로 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도입은 노동자로 하여금 원치 않는 연장근로를 수당도 없이 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제도 자체는 ‘취업규칙에 규정할 것’이나 ‘근로자 대표와의 합의할 것’을 요건으로 두고 있지만, 노동조합이 없는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이러한 규제는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

 

2) 최근 논의의 방향

 

최근 경총회장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을 만나면서 “기업들이 경쟁력 유지하기 위해서는 탄력적 근무시간 외에 보다 다양하고 유연한 방안들 마련돼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기업들은 이미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시간 규제를 허물어트리는 제도적 개편을 요구하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는 경사노위에서 경영계가 제안한 내용이다.

 

<경영계 제안 의제>

 *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홈페이지, 제2차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 전체회의 결과 참조

 

※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 2주 → 3개월 / 3개월 → 1년

※ 도입요건 완화

- 근로자대표 서면합의 → 개별근로자 동의 + 해당 근로자 대표 협의

- 근로일, 근로일별 근로시간 사전설정 → 기본계획 협의로 완화

- 3개월(현행 2주)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 →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아님을 명시

※ 기타 유연근무제 보완 (위원회에서 다루기 어려울 경우 향후 별도 입법 추진)

-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1개월→1년), 서면합의→개별동의

- 재량 근로시간제: 대상 업무 노사자율 결정, 개별근로자 동의로 도입

- 한시적 인가연장근로: 경영상, 직무특성상 한시적으로 주12시간 초과 연장근로 필요한 경우로 확대

 

경영계는 단위기간을 확대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도 도입의 요건 완화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제도를 유연화해도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도입이 어려우니 우회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노동자의 동의라는 요건을 집단에서 개별로 변경하고, 노동조합의 개입 여지를 없애고, 세부적인 부분에서도 사용자의 노동시간 결정에 대한 권한을 더욱 열어 달라는 내용이다. 이는 결국 노동시간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전면적으로 박탈하는 것에 가깝다. 개별적 동의를 요건으로 하게 되면 사용자를 상대로 개별 노동자가 불이익을 감수하며 거부할 수 있을 리 없고, 노동시간은 사용자의 사정에 따라 자주, 예측할 수 없이 변동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경사노위는 노동시간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에서 노사가 주고받을 것이 있다고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노동자가 더 내어줄 수 있는 것도, 얻을 수 있는 것도 없다.

 

 

5.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안

 

이제라도 주 52시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면 실질적인 근로시간 단축으로서의 의미를 일부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확대 적용되고, 그 사이 법의 틀 밖에서 이루어지는 장시간 노동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은 전혀 없다. 무엇보다 정부가 앞장서서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같은 유연한 노동시간제를 활용하도록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제기한 문재인 대통령의 2018년 신년사는 거짓이었다.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고용을 늘려야 한다고 했지만, 유연한 노동시간제는 고용을 늘리지 않고도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하여 기업으로 하여금 충분한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니 말이다. 결국 노동시간 단축이 아니라 노동시간에 대한 기업측의 결정권과 지배력이 더욱 강화되는 결과로 흘러가고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6개월~1년까지 확대한다는 입장이고(정부, 여당은 6개월을 이야기하고 있고, 보수야당이나 경영계는 1년을 주장하고 있다.), 그에 더해 도입 요건의 완화가 어디까지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서 더 주목해서 보아야 한다. 정부나 경영계는 4차 산업혁명에 맞는 다양한 노동시간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결국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기댄 한국의 기업운영방식은 전혀 변화하고 있지 않다.

 

또한 노동시간의 문제는 당연히 노동자의 소득과도 연계된다. 최저임금 상승이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논의와 무관하지 않은 이유다. 노동시간의 유연화는 최저임금 상승의 효과를 감쇄하는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기에, 지금의 최저임금 제도 개편과 직무급으로의 변화를 압박하는 흐름은 노동시간 유연화와 함께 자본의 저비용 구조를 유지하는 수단이 된다. 지금 경영계의 요구대로라면 노동시간 유연화 다음에는 필연적으로 임금의 유연화가 공론화 될 것이고, 그에는 동일하게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교섭을 통해 결정하는 집단적 임금결정을 파괴하는 방안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미 직무급의 흐름부터가 노동자의 임금 격차를 벌리고, 저임금화하면서 노동조합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결국 집단의 힘을 막고 노동자들로 하여금 개별적으로 권리를 박탈당하게 만들어가는 길이 된다.

 

 

6. 안정적 노동시간의 설정 및 노동시간의 지속적 단축은 노동자의 권리이다

 

노동자는 기업이 정한 시간에 따라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노동자가 노동시간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특히 노동자의 시간이 개별적으로 분절되지 않도록 집단적으로 노동시간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노동조합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노동조합은 사용자를 상대로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수준의 보전 방안을 요구하는 한편, 단축되는 시간만큼 더 많은 안정된 일자리를 만들어 내도록 강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터에서의 시간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별의 생활시간까지도 지켜내는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그것이 아직 노동조합을 갖지 못한 90%에 달하는 노동자의 권리와 함께 가는 길이기도 하다.

 

노동시간의 유연화가 시장 변화 혹은 산업 변화 등에 따라 시대적으로 요구되는 변화라는 프레임에 빠지게 되면 계속해서 노동자의 권리를 내줄 수밖에 없게 된다. 경직된 노동시간 체제가 구시대적인 것이고 유연한 노동시간이 산업의 변화에 부합하는 체계라는 것 역시 만들어진 논리일 뿐이다. 그런 논리 속에서 오히려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경계도 없이 길어지고, 그만큼 더 저임금화 된다. 노동자가 예측할 수 있는 안정적 노동시간의 설정과 단축은 노동자의 권리이며, 그로부터 얻는 임금이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 역시 노동자의 권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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