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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사회적 대화와 비정규직

장귀연 (비정규직 권리연구소(준))

 

 

1. 사회적 대화의 성격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홈페이지를 보면, ILO의 정의를 빌려서 “사회적 대화”를 “사회 경제 정책에 이해를 공유하는 정부, 사용자, 노동자 대표가 참여하는 모든 형태의 교섭, 자문, 정보 교환”으로 “공공 정책결정 과정에 노사의 참여를 의미하는 사회적 협의(social concertation)보다 넓은 개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정책 결정 참여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얘기나 해 보자” 하는 것처럼 들린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 얘기해서 나쁠 게 있겠나” 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단지 얘기만 하려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현재 힘을 관철할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 자본과 정부보다 훨씬 미약한 노동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 가는 것인데,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값을 치러야 하는 법이다. 결국 얘기를 한다는 것은 협상을 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협상되는 내용은 그때그때 상황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노사정 협상의 근본적인 구조는 존재하므로, 일단 그것을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노사정 협상의 제도화는 서구 코포라티즘에서 이루어졌다. 사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세력화에 대한 반응이었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인 한에서는 자본이 지배자이고 국가는 자본의 원활한 축적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국가란 자본의 집행위원회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발전하고 노동자 힘이 세력화되면서 노동자를 마냥 무시하고 자본의 자의대로 할 수는 없게 되었다. 또 노동자들이 투표권을 갖게 되면서 정치권은 더 부담을 갖게 되는데, 자본 축적을 돕는다는 기본적인 자본주의 국가의 기능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를 무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대표를 협의의 공간으로 끌어들인 것이다(그래서 노동측의 노사정 삼자협상 참여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도출된다. 하나는 사민주의자들의 견해로 노사정 협상의 제도화는 노동자 투쟁의 승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인데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통제하고자 하는 국가와 자본에 포섭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 삼자협상 제도화의 기원이 노동자들의 투쟁과 세력화에 있다는 점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기본적인 구조에서 보면, 노동의 입장에서는 파업과 투쟁을 포기하는 대신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얻은 것이다. 자본과 국가의 입장에서는 노동의 정책 결정 참여를 보장하는 대신 노동자들의 과격한 투쟁으로 인한 불안정성을 제거할 수 있었다. 이것이 노사정 협상의 구조를 성립하게 하는 교환(trade-off)이다.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크게 보아 두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서구의 케인즈주의 시대에는 주로 임금인상 자제와 사회복지 및 노동시장 정책이 교환되었다. 즉 인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해 노동측은 노동조합을 통해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사회보장의 확대와 완전고용을 추구하는 노동시장 정책을 실행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유효수요를 증진시키고자 하는 케인즈주의 정책에 부합한 것으로, 유효수요의 증진은 자본에게도 이익이 되었기 때문에 교환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자본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이 이익교환의 전제가 무너지게 되었다. 자본의 입장에서 노사정 합의를 지키기보다는 다른 나라로 탈출하는 대안이 생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만큼 국내 수요의 중요성도 줄어들어 자본이 케인즈주의 정책을 지지할 유인도 없어졌다.

이에 따라 노사정 협의의 내용도 변하였다. 이제 주요하게 논의되는 의제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관련된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서구의 이른바 사회적 협약의 내용은 대개 노동시장의 규제를 풀어 유연화하는 것이었으며 완전고용이 포기된 대신 실직한 노동자들을 위한 재교육이 제공되었다(이를 공급주의 코포라티즘이라고도 하는데, (상품 및 노동) 시장의 수요에 초점을 맞춘 케인즈주의 시대의 협약 내용과 대비하여 (상품 및 노동) 시장의 공급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교환 내용에서 노동은 거의 얻을 것이 없다. 그런데도 왜 노동은 이른바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또 심지어 사회적 협약까지 맺는가?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우선, 얻을 것은 없더라도 더욱 나빠지는 것을 조금이나마 방어할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본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본 쪽으로 힘의 균형이 급격하게 쏠린 상황에서 노동시장 유연화는 이미 관철되고 있는 대세인 이상, 가능한 한 노동자의 생활이 덜 악화되도록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 보려는 것이다. 실제로 서구 사례에서 많은 경우 노동이 사회적 협약을 맺었던 것은 자본-정부 측이 더 급진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위협에 직면해서였다. 역사적으로 노사정 협의가 제도화되던 초기에는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혁명적 상황으로 나아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본측을 압박하였던 것과 정확히 반대의 상황이다. 특히 투쟁을 동원하여 방어할 자신이 없는 경우 그나마 삼자협의 제도가 영향력을 발휘할 유일한 통로로 간주되게 된다.

또한, 자본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중재자로서)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노사정 협의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글의 시작 부분에 말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인 한 국가는 자본 쪽으로 기울어 있을 수밖에 없다. 자본 축적을 원활히 하는 것 자체가 정부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회적 갈등을 억제하고 통합을 이루는 것 역시 국가의 기능인 데다가 특히 노동자를 지지층으로 하는 정권일 때는, 자본보다는 ‘상대적으로’ 정부가 더 노동측의 요구에 수용적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사실 서유럽의 전통적인 사회적 합의주의에서도 그것이 잘 진행되고 사회적 협약에 성공한 것은 거의 사민당이나 노동당 등 노동자층을 기반으로 한 정권 때였다. 자본의 공세가 심해진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자본의 공격을 조금 더 무디게 하는 데에 정부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노사정 삼자의 이른바 사회적 협의란 처음에는 노동의 공세에 대한 자본-국가의 반응으로 시작되었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자본의 공세를 누그러뜨리려는 노동의 방어적 태도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이다. 케인즈주의적 타협과 이해교환이 가능했던 지난 시대와는 달리, 노동유연화가 의제가 된 지금 그 대가로 노동이 얻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 공세를 완화하거나 늦추고자 하는 기대에서 참여한다.

 

 

2. 한국의 사회적 대화

 

그렇다면 한국의 사회적 대화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한국에서 사실상 노사정 협의가 시작된 것은 1996년 김영삼 정부의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이하 노개위)라고 할 수 있고 1998년 노사정위원회(이하 노사정위)와 사회협약으로 이어졌다(그 이전 노태우 정부 시절 국민경제사회위원회를 한국에서 사회적 대화의 시초로 보는 경우도 있으나, 이것은 당시 ‘어용노조’였던 한국노총만이 참여했으며, 실제로 노동운동을 주도하고 있던 전노협을 배제하였을 뿐 아니라 목적 자체가 전노협을 억압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므로 사회적 협의를 진정으로 추구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이 당시는 이미 신자유주의 물결이 세계적으로 몰아치고 있을 때였고, 한국도 그 영향권에 들어와 있었다. 1998년 IMF 구제금융 직후의 노사정위와 사회협약에서는 물론이고 1996년 노개위에서도 주요 의제는 노동시장 유연화였다.

그러나 노동측(민주노총)을 혼동하게 만든 요인이 있었다. 이 때의 노사정 협의체는 노동의 투쟁으로 얻어낸 성과였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래 노동운동의 발전은 전노협을 거쳐 1995년 민주노총을 건설하는 데 이르렀다. 그동안 정부와 자본의 일차적인 반응은 배제와 탄압이었다. 물론 협상과 교섭에 나올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노동자들이 격렬한 투쟁을 벌인 끝에서야 마지못해 나오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런 탄압 하에서도 노동운동은 성장하였고, 결국 더 이상 자본과 국가도 무시할 수가 없게 되었다. 즉 노동측에 사회적 대화와 협의를 제안한 것은 어떤 제도적 보증이나 국가-자본의 선의 때문이 아니라 노동자의 투쟁과 세력화를 통해서였던 것이다. 김영삼 정부의 노개위에 민주노총이 참여한 것이 이를 잘 예증하는데, 당시 민주노총은 여전히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불법(법외)단체였음에도 참여를 제안받았다. 결국 노개위에서는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일방적인 노동유연화 법제화가 진행되자 노동측은 총파업을 통해 그것을 철회시킬 수 있었다(96-97년 총파업). 바로 이처럼 강력한 노동의 투쟁력이 존재했고 그로써 정부와 자본에 노사정 협의를 강제한 것이었기 때문에, 노동측은 (당시 이미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전 시대 서구 코포라티즘 형성기처럼 노동이 힘을 갖고 사회적 대화와 협의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세계적 자본 축적의 시간대와 한국의 노동운동 발전의 시간대가 달랐던 것이다. 이것이 전략적 판단을 흐리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96-97년 총파업의 성과는 채 1년도 되지 않아 무화되었다. 그러나 순수히 내부적인 노사정 힘의 균형 문제라기보다는 경제위기와 IMF 구제금융이라는 외적인 요인 때문이었다. IMF는 구제금융 조건으로 노동의 총파업으로 유보된 노동시장 유연화 조항들을 실행할 것을 요구했다. 정리해고를 비롯한 노동시장 유연화는 노동자들의 삶에 직접적이고 강한 충격을 주는 것으로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할 노동측에서는 승인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었으며 그래서 1996년 노개위에서도 결렬된 것이었지만, 1997년 말에 발생한 경제위기로 인해 정리해고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이미 기업 도산 등으로 노동자들의 삶이 크게 타격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 민주노총은 ‘어쩔 수 없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받아들이되 노사정위 참여를 보장받음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렸다. 사실 1998년 당시는 최초의 정권교체로 상대적으로 노동에 친화적인 정권이 탄생했다고 기대할 수 있었고 경제위기로 인해 자본도 궁지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노동이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당시 경제위기와 IMF 구제금융은 불행한 사건이지만 이 기회에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를 할 수 있다고 보는 흐름들이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98년 2월의 사회적 합의는 기층의 반발을 샀고 이를 승인한 민주노총 지도부는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되자 총사퇴를 해야 했다. 그 후 구성된 민주노총 지도부는 일단 노사정위를 탈퇴하고 총력투쟁을 선언했으나, 이후에도 여러 번 노사정위를 들락날락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투쟁도 성공을 거둔 것이 드물었지만 노사정 협의에서도 거의 얻을 것이 없었던 딜레마를 보여준다. 결국 1999년 12월을 마지막으로 민주노총은 공식적으로 노사정위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노사정 협의체에 참여해야 한다는 흐름은 계속 있었다. 이 흐름은 특히 ‘상대적으로’ 친노동을 표방한 정권이 출현할 때 두드러지게 나타나곤 한다. 즉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그리고 현재의 문재인 정부다. 앞에서 말했듯이, 자본주의인 한에서 정부는 기본적으로 자본을 위해 기능할 수밖에 없지만 자본보다는 그나마 (노동자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정부가 노동측에 수용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노동의 투쟁력을 통해 배제와 탄압으로 일관하던 자본과 정부가 노사정 협의체를 만들도록 하였기 때문에 초기 서구 역사에서와 같은 노동의 이익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김대중 정권 이후 정부는 계속 신자유주의 정책을 거리낌 없이 추구해왔다. 구조조정이 지속되면서 자본에 대한 노동의 힘은 더 약해졌고, 이에 따라 사회적 대화 참여 문제에서도 방어적인 성격이 강해졌다.

사실 이미 의제 자체가 노동시장 유연화에 관한 것인 한, 적극적인 의미에서 노동이 여기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얼마나 방어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 셈이다. 김영삼 정부의 노개위, 김대중 정부의 노사정위 및 사회적 합의도 그러했고, 현재 문재인 정부가 경사노위에 제시한 주요 의제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이다. 김영삼 및 김대중 정부가 그러했듯이 문재인 정부도 이미 그것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고 그 이전에 경사노위를 통해서 합의를 도출할 수 있으면 하겠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후 사회적 협약은, 한국의 1998년 합의뿐 아니라 외국의 사례들에서도, 정부가 노동자들의 생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입법·정책안을 내놓고 노동측은 수세적인 상황에서 협의에 참여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를 하는 방식이었다. 즉 대화에 참여하지 않으면 더 악화된 입법·정책이 강행될 것이라는 협박에 의해서이다.

노동운동의 투쟁력에 대한 판단은 이 과정에서 딜레마를 낳는다. 근본적으로 노동측의 무기는 단결하여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힘이다. 무기 없이 대화를 해봤자 굴욕만 당할 뿐이다. 그런데 혹자는 반대로 투쟁을 통해 노동시장 유연화를 저지할 수 있다면 왜 사회적 대화를 하겠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어차피 투쟁의 힘으로 노동악법을 저지할 수 없으므로, 대화에 참여하여 협상을 해보는 것이 그나마 덜 나쁜 결과를 나오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이다. 이해계산의 측면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지만, 집합행동의 측면에서는 다르다. 대화와 협상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투쟁 동원의 명분과 가능성을 위축시킬 수 있고, 나아가 합의를 한다면 유연화 정책을 승인한 것이 되어 버려서 그 이후에도 반대투쟁의 정당성과 가능성의 여지를 매우 좁혀 버린다. 노동측의 근본적인 힘이 집단행동에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변수까지 고려하여 사회적 대화 참여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고 투쟁과 대화를 가장 적절하게 조합할 수 있는 전술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한 쪽에 매몰되면 1998년 사회적 합의의 재판(再版)이 될 우려가 있다(1998년 상황에서 어차피 합의를 하든 안 하든 정리해고 등을 피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그럴 바에야 합의를 하면서 파트너로 인정받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통로를 확보하자는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의 판단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결과, 기층 노동자들의 심각한 피해를 노조 지도부가 승인한 셈이 되어서 심각한 반발을 사고 지도부 총사퇴라는 사건을 불러일으켰다. 즉 결과적으로 노동운동 내의 분열과 불신을 강화하고 만 것이다.).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라는 의제에 관한 한 방어가 최선이고 얻을 것이 없다면, 논리적으로는 그 대신 다른 것을 얻어낼 수 있다. 말하자면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한 고용과 임금의 불안정성을 보상할 수 있는 사회정책들을 협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노사정 협의체에서 노동에 주는 대가로 제시된 것은 ‘노조의 권리’였다. 1996년 노개위 논의의 주요 의제는 이른바 3제(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탄력근무제)와 3금(복수노조 금지, 제3자 개입 금지, 노조의 정치개입 금지)이었다. 즉 노동시장 유연화의 법제화와 그동안 민주노조의 발목을 잡아왔던 노조법 개정이 교환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노개위에서는 결렬되었으나 1998년 노사정위 합의에서 이 교환이 실현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현재 경사노위에서 제시하는 것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ILO 핵심협약 비준을 교환하자는 것이다. 물론 두 개는 서로 다른 의제이고 각각 논의되는 것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경영계가 원하고 있고 ILO 핵심협약 비준은 노동계가 원하고 있는 만큼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내부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아시아경제, 2019.1.11 기사). ILO 핵심협약 비준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결사의 자유와 교섭의 권리 등 기본적인 노조의 권리를 제약하는 법들을 개정하는 것이다. 헌법에도 나와 있는 이른바 노동3권에 해당하고, OECD 국가들 중 미국과 일본, 한국을 제외하고 모두 비준한 내용들이다. 물론 공무원노조나 전교조처럼 이런 악법들로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절실한 내용일 터이고, 사실 1998년 노동법 개정 이전의 악법도 1990년대 민주노조운동에 엄청난 걸림돌로 작용했었다.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정상적인 국가라면 어디나 보장하고 있는 당연한 노조의 권리가 노동자들의 삶을 심각히 악화시키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과 교환될 대상일 수도 없다. 이것을 사회적 대화에 노동측을 끌어들이는 미끼로 사용하는 저의가 오히려 불순한 것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이 이른바 ‘빅딜’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3. 사회적 대화에서 비정규직은 어떤 위치인가

 

비정규직은 노동시장 유연화의 산물이자 가장 큰 피해자이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적 협의기구 참여에 대한 구실이 되어왔다. 즉 비정규직은 조직화 정도도 낮고, 설사 노조로 조직되어도 사업장별 노사관계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에서 기인한 문제들이 많으므로 전체적인 법‧제도를 바꿔내어야 한다, 그러므로 민주노총이 사회적 협의기구에 들어가 정치적 차원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분명히 비정규직 문제는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 투쟁하거나 교섭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이 민주노총이 사회적 협의기구에 들어가 논의하는 것일 이유는 없다. 2004년 노사정위 참여 문제를 놓고 충돌이 벌어졌던 대의원대회에서 한 대의원은 이렇게 발언하였다. “솔직히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파업하자면 (정규직) 조합원들이 안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사정위에 들어가 정부-사측과 협상하여 풀어야 할 문제”라고. 이 발언은 주로 정규직으로 구성된 노조들이 비정규직과의 연대와 조직화 노력을 방기하고 조직 상층부의 ‘대리’ 협상으로 떠넘기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 노사정 협의기구에서 협상하는 방법 뿐 아니라 아래로부터 조직하고 투쟁하면서 사회적 힘을 얻는 방법도 있다. 실은 이 두 가지가 양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후자가 되어야 전자를 받쳐줄 수 있는 것이다. 후자는 하기 어렵고 전자를 하자는 것은, 실제로는 회피하고 방기하겠다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이론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일종의 이중주의(dualism)가 노사정 협의에서도 나타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어 왔다. 자본의 공세가 강화되는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비조합원인 비정규직 등 주변부 노동자를 보호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기존 조합원을 방어하는 협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국에서 1998년 사회적 합의 이후 (민주노총까지 포함한) 노사정 협약이 이루어진 적이 없으므로 이런 방식이 나타났을지 어떨지는 알 수 없으며 일어나지 않은 일로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약 위 대의원 발언처럼 기층에서 비정규직과의 연대와 조직화 노력을 방기하는 구실로 사회적 대화를 하는 것이라면, 그에 의해 이루어진 사회적 협약이란 이중주의를 강화하는 방식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사실 탄력근로제를 포함하여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이다. 강한 노조가 있는 곳은 현장에서의 교섭으로 피해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은 무방비하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산물인 비정규직 노동자가 다시 유연화 정책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노사정 협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집단행동으로 인한 압박과 대표성 높은 조직이 선행조건이다(전통적인 코포라티즘 이론에서는 독점적이고 중앙집권적인 노조 조직을 조건으로 들고 있지만, 반드시 그것이 필수조건인 것은 아니다. 노동자의 이해를 충분히 아울러 대표할 수 있다면 조직률이 낮거나 중앙집권적이 아니더라도 등가물로 기능할 수 있다.). 이것은 노사정 협상의 구체적 내용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성립되기 위한 구조적 조건에 해당한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조직화 정도가 여전히 낮을 뿐 아니라 기조직된 비정규직 노조들도 고용형태의 다양성에 따라 문제시되는 지점이 서로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간접고용 비정규직에서 구조적으로 가장 중요한 원청 사용자성 문제는 기간제 비정규직에게는 해당하지 않으며, 노동자성 인정 문제는 특수고용 비정규직에서 핵심적인 쟁점이지만 다른 형태의 고용된 비정규직들에게는 관심 밖의 사안일 수 있다.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이 조직되고 민주노총 가맹 비정규직 노조들도 늘었지만, 사업장의 당면 사안을 넘어 이런 구조적 문제들을 아울러 대표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대표체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노총도 그것을 못하고 있고 아직까지는 비정규직 고용형태별로 느슨한 연대체 정도가 있을 뿐이다. 사회적 협의, 특히 노사정 협상은 각각의 대표자가 참여하는 구조인데, 대표가 없는 비정규직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경사노위에 비정규직 대표를 참여시킨다고 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경사노위에 참여하는 비정규직 대표가 어떤 대표성도 가질 수가 없다. 그냥 얘기라도 해보자는 것이면 모르되 협의를 할 대표성도 가지고 있지 못하고 합의를 할 정당성도 없다. 결국 경사노위에서 비정규직 대표 참여라는 것은 아주 얄팍한 허울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집단행동에 의한 압박에 관해서 말하자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것 없이 협상에 참여한다는 것은 무기 없이 전장에 나가는 바와 다름이 없다. 물론 반드시 격렬한 투쟁이 협상 전에 선행되어야 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당장 목전의 이익을 따내지 못하더라도 상대방의 선의를 신뢰하여 합의를 할 수도 있다. 서구 코포라티즘 이론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일반화된 신뢰’라고 규정한다. 노동의 입장에서 자본은 기본적으로 대립자이므로 여기서는 정부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신뢰받을 만한 선의를 보여주었는가? 취임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 비정규직을 찾아간 것 등으로 제스처를 보였다. 그러나 그렇게 선언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프로젝트 결국 대부분 무기계약직과 자회사 고용이라는 기존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비정규직 유지 프로젝트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사실 기간제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은 이전부터 계속 이루어지고 있던 것인데, 주로 간접고용으로 이루어진 인천공항을 찾아가면서 간접고용의 원청 책임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그러나 정부가 사용자인 공공부문에서조차 여전히 자회사라는 방식의 간접고용을 유지함으로써 이러한 기대는 수포로 돌아갔다. 서울교통공사 등 몇몇 곳에서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대개 문재인 정부 이전부터 이미 사업장 수준에서 논의가 되고 있던 곳들이다.). 심지어 가장 상징적이었고 노사합의를 이루어냈던 인천공항공사에서도 사측의 합의 위반으로 아직도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고 야심차게 실행했던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문제에서도 후퇴를 거듭하고 있으며 이 후퇴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계층은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문재인 정부가 선의를 가지고 있지만 자본측의 반격으로 인해 후퇴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바로 현실을 가리킨다. ‘일반화된 신뢰’는 정부의 거시경제정책이 장기적으로 노동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돌아온다는 전제에 기반한 것으로 케인즈주의 시대에 적용되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는 설사 정부가 선의를 가지고 있어도 그런 장기적인 신뢰가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지금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대화가 아니라 사회적 힘이다. 투쟁력과 조직력이 미비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더욱 그렇다. 말이나 해보자는 대화가 아닌 진지한 협의를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노동측의 대안과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힘을 축적하는 것이 선행조건이다. 그렇지 않은 어설픈 합의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강화시켜 다시 한 번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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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포라티즘의 노동정치” <산업노동연구> 21권, 2006

“민주노총의 과거·현재·미래: 노동조합운동의 전략>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노동운동」, 2009

“노동운동에서 1987년의 유산과 새로운 도전들: 계급구성과 계급형성” <경제와 사회> 201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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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7. '사회적 대화와 노동' 토론회 현장 [출처: 철폐연대]

 

[편집자주] 이 글은 2019년 1월 17일, 민주주의법학연구회‧비정규직권리연구소(준)‧참세상연구소‧학술단체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사회적 대화와 노동’ 토론회의 발제문 중 하나입니다. 토론회 자료집은 철폐연대 홈페이지 자료실(http://workright.jinbo.net/xe/pds/62837)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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