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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강사법 개선 법령 합의안과 비정규교수 노동권

임순광 (민주노총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

 

 

2018년 9월 3일 교육부에서, 우리나라 고등교육역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합의문 발표가 있었다. 지난 7년간 국회가 해결하지 못했던 강사법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대학강사제도개선협의회(이하 협의회)가 합의로 도출한 것이다. 강사법만이 아니라 그에 부수된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의 주요 쟁점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합의하였다. 이제 우리는 2011년 정부가 입법 발의하고 여야가 합의하여 통과시킨 강사법을, 그 문제의 심각성으로 인해 다시 여야가 합의하여 시행을 유예하는 법안을 통과키는 일을 4차례나 했던 헌정 사상 유래 없는 ‘블랙 코미디’를 끝낼 수 있게 되었다.

 

​2011년 강사 등 비정규교수 당사자들의 절대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정부가 법안을 만들고 국회의원 다수가 동조하여 통과시킨 강사법은 처음부터 설계가 잘못된 악법이었다. 그렇기에 법안의 방향이 나왔던 2010년 11월부터 반대 의견이 들끓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법 강행을 하였다가 2012년 말과 2013년 말 및 2015년 말에 각각 시행 유예 법안이 통과되었다. 2016년에는 교육부가 정책협의회를 만들어 대안을 마련하던 중 1년 후 당연퇴직 등 대학 측의 입장이 전면적으로 반영되는 개악안이 제출되어 또 한 번 홍역을 치렀다. 이후 정부가 이 개악안을 입법 발의하였으나 비정규교수들과 각계각층의 반대에 부딪쳐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를 거부할 수밖에 없어 결국 2017년 말에 시행이 한 번 더 유예되는 사태를 맞았다. ​

 

이런 과오를 딛고 대학 측과 강사 측 그리고 국회의원 추천 전문위원 측이 동수(각각 4명씩 총 12명)로 구성된 협의회가 2018년 3월 새롭게 결성되고 명칭도 대학강사제도 ‘개선’ 협의회로 개칭되어 일종의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협의회는 2018년 3월 14일부터 정식 운영되었고 매주 2시간에서 10시간씩 치열한 고민과 논쟁이 전개되었다. 그러다 6개월 동안 18차례의 공식 회의 끝에 마침내 합의에 이르러 9월 3일 협의체 합의안을 국민들에게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극적 합의였다.

 

1 2018.9.6. 합동 기자회견 [출처 한국비정규교수노조].jpg

 2018.9.6. 합동 기자회견 [출처: 한국비정규교수노조]

 

협의회의 강사법 개선 법령 합의안은 교육부가 회의 준비 실무를 맡으며 여러 의견도 내었고, 교육부 장관이 직접 협의회 위원들을 만나 노고를 치하하였으며, 9월 3일 합의안 보도자료 작성과 기자회견 역시 교육부에서 담당하였으므로 (본인들은 아니라고 우길지 몰라도) 교육부의 입장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강사 관련 양대 노조가 각각 2명씩 위원으로 참석하여 함께 18차례나 회의하며 합의한 것이니만큼 강사단체들의 공동 입장임도 분명하다. 9월 6일 이들은 대학원생노조와 함께 합동 기자회견도 열었다. 대학교육협의회를 비롯한 각종 대학 관련 대표 단체들이 위원들을 파견하여 6개월 간의 활동 끝에 합의한 것이므로 (대학들이 내심 반발한다 하더라도 공식적으로는) 대학 측의 입장임을 부정할 수도 없다. 국회 상임위에서 추천한 전문가위원 4명이 함께 회의하고 주요한 결정에도 같이 관여하여 만든 대안이기에 국회도 협의체 합의안의 무게감을 중시하는 게 상식이다. 그렇기에 사실상 노사와 국회 그리고 정부 모두가 합의한 강사법 개선 합의안은 지체 없이 국회 입법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우리는 9월 말~10월 초 입법 발의를 기대하고 있다.

 

강사법 개선 합의안에 대해 우리는 ‘많이 미흡하지만 개선의 방향성이 분명’하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즉각 입법하여 시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협의체가 도출한 이번 합의안은 강사 등 비정규교수들에게 두 가지의 큰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첫째, 이번 개선 강사법령안은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정권에 의해 1962년 대학시간강사제도가 만들어진 이래 55년간 퇴행하던 대학교원법령과 정책을 멈춰 세우고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하기 위한 일종의 교두보이다. 시간강사제도의 폐지를 지향하고 있으며 애매한 교원제도들에 대한 재정립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강사법을 넘어 우리가 그동안 주장해 온 일종의 비전임교원법(: 연구강의교수제)과 같은 성격을 일부 띠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아직 보완해야 할 지점은 곳곳에 남아 있다. 비전임교원제도의 통합 또는 동등한 대우와 권리 보장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협의회에서 협상의 상대방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관철시키지 못한 한계는 이후 투쟁으로 계속 극복해내야 할 것이다.

둘째, 이번 합의안은 강사와 여타 비전임교원들에게 교원으로서의 구체적 지위와 권리 보장, 실질적 처우 개선, 고용 안정의 측면에서 볼 때 상당히 미흡한 미완의 법령안이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흘려 온 피와 눈물과 땀방울을 생각하면 아쉬움 가득한 성적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합의안은 분명히 개선안이다. 기존의 야만적 시간강사제도, 2011년 유예강사법(정부가 입법 발의하고 국회에서 통과시켰으나 설계가 잘못되어 시행이 4차례나 유예된 강사법), 2017년 개악강사법안(정부가 위원회를 구성했으나 법을 개악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어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켜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안 됨으로써 사실상 폐기된 강사법안)에 비해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으며 강사만이 아니라 다른 비전임교원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확대 개선안이다.

 

대부분의 시간강사들은 6개월 이하로 계약하고, 저임금 시간급이라는 포괄임금을 받으며, 계약서도 제대로 없이 학교 측으로부터 연락이 안 오면 해고당한 것으로 생각해야 하고, 방학 중 급여나 연구공간 및 각종 참정권과 의사결정권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대학 안의 유령 같은 존재이다. 이를 감안하여 이번 합의안을 평가해야 한다. 우리의 요구안에는 훨씬 미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진전을 이룬 합의안의 주요 개선 지점 몇 가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강사의 재임용절차 보장 기간 구체화(3)와 소청심사권 명시(재임용절차 거부 시 소청심사 가능)로 고용안정성을 높이고 교원지위향상에관한특별법적용을 좀 더 명확하게 했다. 이는 고등교육의 질 제고와 학문 성숙 기반 강화 및 학문후속세대의 미래 개척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둘째, 강사 외 겸임·초빙교수 등의 비전임교원에게도 1년 이상의 계약기간과 신분 보장을 법률로 명시하여 풍선효과를 대폭 줄였다. 이는 전반적인 상향평준화이다.

셋째, 강사와 겸임·초빙교수 등의 비전임교원들에게 모두 책임시수 대신 최대강의시수 기준을 적용(강사와 기타 비전임교원 6시간 이하 원칙·최대 9시간, 겸임교수와 초빙교수 9시간 이하 원칙·최대 12시간)하여 한 대학 내에서의 강의 몰아주기로 인한 대량해고 위협을 상당 부분 줄였다. 이는 일자리 안정뿐만 아니라 고등교육의 질 제고 및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강의 기회 확대로 이어진다.

넷째, 강사 외 겸임·초빙교수 등 비전임교원들의 자격요건을 강화하고 사용사유를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검증되지 않은 교원이나 무늬만 교원이 양산되는 것을 상당 부분 제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역시 고등교육의 질 제고와 학문후속세대를 비롯한 강사의 기회 확대로 이어진다.

다섯째, 강사에 대한 방학 중 임금 지급을 법률로 명시하여 처우 개선 노력을 분명히 하였다.

여섯째, 교육부는 이번 합의안 마련 과정에서 교육부(안)으로 국립대 강사 강의료 인상 예산 확대, 사립대 강사 강의역량 강화 사업 예산 신설, 공익형 평생고등교육 사업 예산 신설, 한국연구재단 시간강사 연구지원 사업 예산 확대 등을 결정하고 정부예산안에 포함시키려 노력했다. 비록 아직은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국립대 강사 강의료 인상만 조금 되는 수준에서 그 한계를 드러내었으나, 국회의 2019년 예산 확정 과정에서 그 의미를 살리는 조치(예산 확보)를 해야 할 것이다.

일곱째, 협의체는 주요 요청 또는 권고사항으로 강사가 강의시수에 상관없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 정부와 대학과 강사가 재원을 대어 퇴직공제제도 신설·운영, 직장건강보험 시행령 개정으로 강사에게 직장건강보험 제공, 연구공간 제공 및 학내 권리 신장,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재정 투자 확대 등도 제시하였다.

 

비록 이번 합의안에서 미흡하거나 아쉬운 지점도 많이 발견되지만 지금은 그것을 강조하기보다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대학 건설과 고등교육의 질 제고 및 학문 성숙을 위해 추가 개선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안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협의체가 합의한 강사법 개선 법령안이 연착륙하면서 시행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대학 공공성 강화 재정 투자와 대학들에 대한 개선 유도 정책이 필수적이다. 방학 중 임금, 퇴직공제기금, 연구비, 강의료 인상 등 모든 것을 대학에만 떠넘기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다. 대학시간강사제도 자체가 국가가 만든 것이고 대학의 편법적 교원제도 운영을 방조해 온 것도 국가이다. 헌법상의 교육권 수호와 교원의 자주성 확립과 함께 대학의 정상화와 제대로 된 교원정책을 펴기 위해 소요되는 경비 상당 부분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점은 자명하다. 국회가 관련 예산을 전혀 편성하지 않을 경우 대학자본 대부분이 극심한 교원 구조조정을 통해 지금처럼 교수직의 비정규직화와 강사 대량해고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제는 말과 문구로만 선언할 것이 아니라 실제 예산과 정책 집행을 통해 변화를 직접 꾀할 때이다.

둘째, 강사 등 비전임교원의 학내 교원으로서의 지위와 권리가 대단히 제한적이다. 총장선출권을 비롯하여 평의회 및 주요 의사결정기구에 대한 참정권 보장 및 연구공간과 연구비 지원에 대한 논의가 개선 강사법 시행과 동시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셋째, 이제 전임교원들에게도 책임시수가 아니라 최대강의시수 9시간 이하 기준을 적용하는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다. 정부와 대학자본의 비용절감 정책과 학령인구 감소 및 대학서열화 구조조정 정책으로 인하여 전임교원들의 강의시수가 과도하게 책정되어 있는 현실을 하루빨리 바꾸지 못한다면 고등교육의 질 제고나 학문기반 강화는 공염불에 불과하게 된다. 현재 전임교원의 과도한 강의 담당은 강사에게는 강의할 수 있는 기회 박탈을, 학생들에게는 양질의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 박탈을, 대학원생들에게는 성숙한 학문 탐구를 위한 기회 박탈을 가져오고 있다.

넷째,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제도를 폐지하고 원래대로 전임교원제도를 단일화해야 한다. 전임교원 중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제도의 폐해가 극에 달해 있다. 대학판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확대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제도 완전 폐지 이전에라도 시급하게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여 계약기간이 남은 동안 이들의 권리와 처우 수준을 대폭 향상시키는 동시에 최대강의시수 9시간 이하로의 제한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대학에서 ‘강의기계’를 양산해서는 학문 성숙을 이룰 수 없으며 고등교육의 질 제고에도 도움이 안 된다. 아울러 비정년트랙 전임교원 당사자 역시 소외된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제도로 인한 피해자는 교원과 학생 모두이다.

다섯째, 모든 비전임교원들에게 처우 개선과 연동한 총합 최대강의시수제 도입을 준비해야 한다. 워낙 임금이 적고 처우 수준이 낮다보니 많은 비전임교원들이 연구해야 할 시간에 길거리에 돈을 뿌려가며 여기저기에서 많은 강의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꾸어야 한다. 핀란드처럼 한 대학에서 6시간 정도 강의하면서도 도시노동자 평균임금 정도의 생활임금은 받을 수 있어야 고등교육과 학문탐구에 전념할 수 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처우 개선 수준을 높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비전임교원이 과도하게 여러 대학에서 많은 강의를 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적절한 기준은 차후 시행령 마련 과정에서 단계적 적용의 형태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선의의 피해자가 나와서도 안 되고 실현가능한 방법을 모색해야 하기에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밀도 있는 논의가 상당히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여섯째,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공영형 사립대학 확대, 정년트랙 전임교원 100% 확보, 대학의 민주화, 대학의 자본으로부터의 종속 탈피 등 좀 더 근본적이면서 구조적인 해법 실현을 위해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합의안은 법률만이 아니라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구체적 사항들도 상당 부분 규정하고 있는 종합적 개선안으로, 단순히 고등교육법 일부개정에만 그 영향력을 제한해서는 안 되고 예산 마련과 추후 세부규칙 제정에서도 합의 정신이 구현될 수 있도록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강사법만으로 비전임교원 문제와 그와 연관된 여러 사안을 다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합의안만으로 학문후속세대 문제 해결, 고등교육의 질 제고와 학문 성숙, 민주적이고 평등한 대학 건설 및 대학 자율성 확보 등을 이룰 순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합의안 발표 다음날인 9월 4일부터 국회 정문 앞 무기한 철야 노숙농성에 돌입해 올바른 입법, 정부 예산 확보, 시행령과 시행규칙 및 강사준칙 제정 활동에도 최선을 다해 임하고 있다. 그 투쟁의 과정에서 향후 과제들 역시 부각시키며 더 나은 대학과 더 나은 나라 건설을 위한 지식노동자의 책무를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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