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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라라비

‘알고도, 모르고도 당하지 말자!’ 월담과 함께하는 현장노동자 모임

이미숙 (반월시화공단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

 

 

반월시화공단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은 지난해 가을부터 최저임금감시단 활동을 진행했다. 2018년 최저임금이 확정되면서 사용자들은 다양한 꼼수들을 만들어냈고, 현장은 혼란스러웠다. 임금과 관련한 비슷한 상담들이 줄을 이었다. 뭔가 움직임이 필요해 보였다. 2018년이 시작되자마자 최저임금 꼼수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사업들을 배치했다. 상담과 선전전부터 시작해서, 최저임금 위반 제보를 받는다는 현수막을 공단 곳곳에 내걸었다. 최저임금 위반이 확실한 사업장은 고용노동부 최저임금신고센터에 신고해서 함께 대응했고, 실태조사를 통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업장들이 최저임금을 위반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러한 활동의 과정을 통해 만난 노동자들과 8월 25일, 현장노동자 모임을 진행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일들은 알고도 당하고, 모르고도 당하는 게 사실이다. 알면 아는 만큼 용기를 내야 하는데, 혼자서는 쉽지가 않다. 모르고 있으면 회사는 온갖 사기를 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빼앗는다. 실제로 공단의 한 사업장은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위반으로 발생한 체불임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니 “연차수당이나 상여금 등 법에서 정한 것보다 더 지급한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은 노동자가 회사에 돌려줘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오히려 당신들이 임금을 토해내야 한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노동자들이 겁을 먹고 체불임금 받는 것을 포기했다. 이처럼 사용자들은 저임금으로 부려먹는 것도 모자라 교묘하게 노동자들을 협박해서 이중으로 착취를 한다. 그래서 이날 모임의 취지는 ‘모르고 당하지 말고, 알고도 당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모임에는 10명이 참석했다. 회사가 최저임금도 안 주려고 온갖 꼼수를 부렸지만 함께 움직일 만한 동료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는 노동자,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주는 사측에 문제를 제기해서 제대로 된 임금을 받아낸 노동자, 현장실습으로 일을 시작해서 계속 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 최근에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조를 만들기 전과 후의 현장 변화에 엄청난 감동을 느끼고 있는 노동자 등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첫 번째 이야기는 ‘모르고 당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노동조건 관련한 법률 규정들과 임금의 4대원칙, 휴업수당, 휴일, 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 연차 유급휴가, 퇴직금, 최저임금 등 임금 관련한 법 조항들을 살펴보았다. 법률 관련 정보들은 인터넷에서도 넘쳐나지만 실제 그것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현장에서 따져 묻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자꾸자꾸 듣고 머릿속에 담아두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최근 확인된 바로는, 기존보다 노동조건을 낮춰 취업규칙을 변경하면서 근로기준법만 어기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동의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회사도 있었다. 근로기준법은 최저기준을 보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조건들을 노동자들의 동의도 없이 변경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처럼 회사가 하는 이야기들은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적이 없다. 그래서 모르고 당하지 않기 위해 늘 의심을 해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두 번째는 이야기는 ‘알고도 당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조직은 노동조합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은 계속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알면서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우선은 웬만한 자료는 평소에 꼼꼼하게 모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근로계약서는 꼭 받아두고, 임금명세서는 모아두어야 한다. 매일 출퇴근 기록을 남기고, 지각이나 조퇴, 결근, 회식 날짜는 기록해둬야 한다. 회사가 설명회를 하거나 따로 불러서 이야기할 때도 꼭 기록을 남기고 공고문이나 의심스러운 물질, 사고가 났을 때는 사진을 찍어두는 게 좋다. 이런 자료들을 통해 문제가 생겼을 경우,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혼자는 힘들다. 동료들과 함께, 아니면 지역의 단체라도 찾아가봐야 한다.

 

상담을 통해 알게 된 M사는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이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상여금을 12개월로 분할 지급하겠다고 했다. 근로계약서는 교부되지 않았고, 취업규칙은 없었다. 다행히 노동자들이 임금명세서를 모두 모아 놓고 있었고, 이를 근거로 임금 계산을 해보니 최저임금 미만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에 신고를 하자마자 회사 관리자의 온갖 협박과 사측이 고용한 노무사의 말도 안 되는 거짓말 등이 이어졌지만, 결국 4개월 만에 체불임금을 모두 받아 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진행 과정에서 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근로계약서를 새로 작성했고, 노동조건도 상승했다. 취업규칙도 만들어졌다. 사측은 틈만 나면 회사를 위장 폐업하고 해고하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이처럼 현장에서 긍정적 변화를 끌어낸 사례가 많지는 않다. 사측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대응한 노동자들, 그리고 이들과 실시간으로 논의하며 함께 대응책을 모색하고 조력한 월담 활동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경우였다.

 
고용노동부의 제대로 된 역할도 필요하다. 그런데 그게 참, 그렇다. 올해 고용노동부가 대대적인 홍보를 하면서 꾸렸던 ‘최저임금신고센터’가 있다. 최근 월담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고용노동부 안산지청 최저임금신고센터의 최저임금 위반 신고건수 등을 질의했다. 그 결과, 월담이 아닌 다른 사람이나 단체가 신고한 건수는 0건이었다. 그만큼 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힘들고, 기대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반월시화공단은 근로기준법 위반 비율이 90%에 이른다. 고용노동부가 조금이라도 노력을 하고 있다면 이런 수치는 나올 수가 없다. 특히나 안산지청은 회사의 불법을 방조하거나 심지어 계획적으로 뒤를 봐주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의 권리는 우리가 지킬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2시간 가까이 이어진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함께한 노동자들은 각자의 현장에서 불만은 많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어 포기할 때가 많았다고 했다. 한 사람이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움직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용기를 내볼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가 많은 힘이 되었고, 같이 고민해줘서 좋았다고 했다. 최근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는 U사 동지들은 노조를 통해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물량이 줄어들면 가위바위보를 해서 잘려나갈 사람을 고를 일이 없어졌고, 틈만 나면 해야 했던 담벼락 페인트칠과 마당 풀 뽑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고 했다. 무엇보다 우리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수 있어서 이제야 사람답게 사는 것 같다고 했다.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고 욕 안 먹고 일하는 당연한 일이 노조를 만들기 전에는 왜 당연한 일이 아니었는지, ‘함께’라는 것이 정말 큰 힘이라는 걸 하루하루 느끼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도 모르고 당하지 말고, 알아도 당하지 말자. 노조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없어도 쫄지 말자.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자. 사실, 생각보다 대단히 어렵지는 않더라.

 

 

1 2018.8.25. 모임 현장 [출처 월담].jpg

 

2 [출처 월담].jpg

[출처: 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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