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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지역에서 철폐연대 동지들은

 

구미 지역 노동자들과 함께하며

이경호 (노무법인 참터 구미지사 공인노무사, 철폐연대 구독회원)

 

 

대구에서 노무사업을 하고 있던 내가 구미 지역 노동자들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게 언제쯤이더라? 잠시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10년 전, 2010년 7월.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조항이 시행될 즈음, 산별노조 파업 지침에 따라 같은 해 6월 파업에 돌입했다가 조합원들이 줄줄이 징계되고 해고되던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로부터 상담요청이 오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대구에서 구미를 오가다, 1년 뒤부터는 구미에 사무실을 오픈했고, 다시 1년 뒤에는 집까지 구미로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구미 노무사 이력이 어느새 10년이다.

 

 

현장통제력을 기반으로 한 투쟁이 뭔지를 보여주는 노동자

 

금속노조 KEC지회는 2010년 6월 파업 당시 회사의 직장폐쇄에 대응해 14일간 공장점거를 했다가 조합원 105명이 해고‧권고사직‧직위해제 처분을 받았고, 조합원 61명에게는 개별적으로 301억 원의 손해배상청구가 들어왔었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조합원은 750명에서 110명으로 줄어들었고 교섭권도 2노조에게 넘어갔다.

 

그런 소수노조가 지난해 7월 조합원 개인에게 청구된 손해배상액을 모두 갚아버렸다. 정작 놀라운 건, 조합원 61명 개인에게 청구된 손해배상액 301억 원을 갚아나가는 방식이다. 회사 요구 사항을 지회가 동의하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회유책도 있었다.

조합원 개인으로서는 회사를 퇴사하고 노조를 탈퇴하면 손해배상 책임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회와 조합원들은 그러질 않았다. 6년간의 재판 끝에 손해배상액을 30억 원으로 낮추고 조합원 개인 급여에서 150만 원을 초과하는 금액을 회사가 매월 압류하여 3년 간 회수해 가는 방식으로 갚아 나가기 시작했다. 손해배상청구 대상이 아닌 조합원들까지 매월 적게는 10만 원에서 많게는 50만 원까지 특별기금을 내면서, 결국 지난해 7월을 끝으로 손해배상액을 모두 갚아버린 것이다.

회사가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경우는 있어도 조합원 개인을 상대로 실제 손해배상금을 청구하고 회수하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근데 그 무지막지한 압박을 회사는 주저하지 않았고 지회와 조합원은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돌이켜 보면 KEC 회사와 지회는 지난 10년간 늘 그러했던 것 같다. 조합원 개인이 현장에서 관리자들의 현장통제에 맞서는 기개는 보고 겪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것들이다. 흡사 개미의 집단성과도 닮아있다. 정리해고를 당하면서도 명퇴 신청을 하지 않고 버텼고 결국 회사로 하여금 정리해고를 철회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지난 기간 동안의 직장폐쇄, 노조탈퇴 회유, 제2노조 설립, 정리해고 등이 회사가 사전에 기획한 ‘노조파괴 시나리오’의 일부라는 사실을 기어이 밝혀냈고, 관련자들이 형사 처벌을 받게 만들었다. 지금은 역으로 지회가 회사를 상대로 부당노동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지난달 전국 장기투쟁 사업장 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어느 특강 시간에 강사가 물었다. “회사가 자기 노조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많지 않은 이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다. 흩어져 앉아 있었지만 모두가 KEC지회 조합원들이었고 다른 노조 조합원은 없었다. 그 대비되는 모습에서 지난 10년간 조합원 개개인들이 어떻게 단련되었는지 지난한 과정이 느껴졌다.

 

 

연대의 힘을 아는 노동자

 

구미 지역 노동조합 소식을 전하면서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2015년 5월 외국인투자기업에서 조합원 138명이 사내하청노동조합을 설립했다가 한 달 만에 조합원 전원이 문자로 해고통보를 받고 개인 소지품조차 챙겨 나오지 못한 채 쫓겨난 지회다. 그날부터 공장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4년 8개월째다.

 

지난해 2월. 드디어 검찰이 파견법 위반으로 원청업체인 아사히글라스를 기소했다. 원청업체를 불법파견으로 고소한 지 3년 7개월 만에, 고용노동부가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고 원청업체에게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는 시정지시를 내린 지 1년 6개월 만에 일이다. 애초 검찰이 무혐의로 불기소한 것을 지회가 항고하여 재수사를 하고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까지 거쳐서 기어이 기소하게 만든 것이다. 지난해 8월에는 원청업체가 조합원 전원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도 받았다. 원청업체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김앤장을 통해 소송 결과에 불복하고 있으니 실제 조합원들이 회사로 복귀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전제는 지회와 조합원들이 그때까지 버티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지회는 명절 때마다 재정사업으로 김을 판매하고 있는데 웹자보 문구가 이렇다.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김앤장을 팝니다(된장을 함께 판매할 때)“, ”아사히 돌돌 말아먹는 김“, ”보약 먹고 이김(한의사로부터 보약을 후원받아 함께 판매할 때)“, 아사히 꼭 이김”, “연대로 힘 생김”, “아사히는 개김, 우리는 이김”. 대단하지 않은가. 투쟁의 발랄함이 그냥 묻어나온다. 긴 투쟁에서 지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은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연대에서 나온다는 걸 조합원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난 웹자보 문구에서 본다.

 

 

고립된 노동자들의 한계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는 2016년 11월 설립된 노조이다. 첫 단체협약을 체결한 후 단체협약 갱신시점이 다가오자 회사는 대대적인 정리해고 방침을 발표했는데 조합원 530명 중 320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하면서 조합원은 210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올해 다시 2020년 3월까지 직원 65% 정리해고 방침이 발표되었다. 지난해 전례에 비추어보면 올해 회사 목표도 무난히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조합원은 50명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매출규모 1조 원을 넘어섰던 외국인투자기업(일본 닛토 그룹)에서 노조 설립 후 2년 만에 직원 80%를 감축하는 구조조정이 강행되고 있는데도 외부에서는 그러한 사실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금속노조 사업장인데도 노조 차원에서의 별다른 대응이 없다. 마치 기업별 노조인 듯이 그 내역을 제대로 알고 있는 지회가 없다.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다.

 

 

3 계양정밀지회 교육(사무실 없어 다른 지회 사무실에서) [출처 필자].jpg

계양정밀지회 교육(사무실 없어 다른 지회 사무실에서) [출처: 필자]

 

 

여전히 노동자의 희망은 노동조합

 

지난해 12월에는 현대모비스 김천공장에서 사내하청 노조인 현대모비스김천지회가 설립되었다. 회사가 설비 해외 이전과 물량 부족을 이유로 인원 감축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2년 미만 계약직을 우선적으로 계약해지 하겠다고 밝히자 위기감에서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교섭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2월부터 4명이 계약해지 되고 있고 매월 순차적으로 2년 미만 계약직 24명이 계약해지 될 예정이고, 내년에도 계약직 18명이 계약해지 대상자로 예정되어 있다. 정규직이라고 해서 구조조정의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니 위기감은 더해질 상황이다.

 

같은 달 계양정밀지회도 설립되었다. 회사가 상여금을 개별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기본급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생산직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노동조합을 설립한 것이다. 그런데 지회가 교섭 요구를 한 직후 1주일 만에 관리직과 연구직이 중심이 된 2노조가 설립되었고, 계양정밀지회는 불과 1주일 만에 유일노조에서 소수노조로 전락해버렸다. 노동조합을 설립했지만 교섭권은 없고 오히려 예전과 달리 연차휴가 신청이나 근무시간 중 개인 활동이 엄격히 통제되는 등 관리자에 의한 현장통제만 더 강화된 상태이다.

 

두 지회는 우리 노동법이 계약직의 고용안정이나 소수노조의 노동권을 위해 마련해 놓은 보호 장치가 생각보다 너무 없다는 사실을 조만간 알게 될 것이다. 특히, 개별 노동조합만으로는 회사를 상대로 요구사항을 따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럴수록 연대의 힘이 더 절실하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10년을 겪어도 이해되지 않는, 그러나 해결해야만 하는

 

지난해 12월. 전국금속노조 본조‧지부‧지회 동시 임원선거가 있었다. 구미지부는 단독후보가 출마했는데 부결되었다. 투표 결과는 재적조합원 90.2% 투표에, 찬성 45.3%, 반대 54.0%. 구미지부는 올 2월 임원재선거(보충선거)를 실시했는데 이번에도 단독후보가 출마했지만 역시 부결되었다. 투표결과는 재적조합원 73.2% 투표에, 찬성 41.1%, 반대 56.9%.

 

일반적으로 단독후보가 출마한 경우에는 조합원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재적조합원의 과반수 투표를 이끌어내지 못해 부결되는 경우가 있다. 구미지부는 단독후보가 출마했는데도 투표율이 90% 이상이고 재선거(보충선거)에서조차 투표율이 73% 이상에서 과반수 찬성 득표를 얻지 못한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예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특히 임원재선거(보충선거)에서는 2개 신설노조의 조합원 수까지 포함되었기 때문에 재적조합원 수가 더 늘어난 상태인데도 단독후보조가 얻은 찬성 득표는 313표와 312표로 변동이 없다는 것도 이례적이다. 당분간 구미 지역 금속노조는 지도부를 선출하지 못한 상태로 유지될 것이다. 산별노조 지회인 신설노조 입장에서는 노조 지도부의 역할과 연대의 힘이 절실할 것인데 안타까운 상황이다.

 

구미 지역에는 지난 10년 동안 사용자를 상대로, 혹은 소수노조로서 다수노조를 상대로, 혹은 하청노동자로서 원청업체를 상대로 지치지 않고 투쟁하는 노조와 조합원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법과 법률전문가의 조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해결해나간 경험이 있다. 노동자들이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연대의 힘으로 어떻게 조직하고 단결해 투쟁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익힌 이들이다.

반면에 노노 갈등도 그 못지않게 골이 깊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고용불안과 열악한 근로조건, 불합리한 노동관행을 혼자 힘으로 극복하지 못해 어렵게 노동조합 문을 두드리고 민주노조의 문턱을 넘었을 때, 그들이 기대하는 노동조합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사용자로 하여금 우리를 상대하려면 적어도 구미지부 조합원 전체와 맞서야 한다는 걸 알게끔 해주고 싶고, 어쩌면 전국금속노조 조합원 전체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심어주고 싶지 않을까. 그게 기업별 노동조합의 틀을 넘어 산별노조를 설립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구미 지역에서도 그 모습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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