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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속으로

 

 

배인정ㆍ박정미 노동자뉴스제작단 영상활동가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노동자의 목소리로 세상을 말하라!”

 

인터뷰 ‧ 정리 임용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노동자뉴스제작단이 설립된 건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지난 1989년의 일이다. 전국 현장에서 어용노조의 민주화 투쟁, 민주노조 결성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게 된 ’87 노동자대투쟁의 여진이 아직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었던 때였다. 대중투쟁이 용솟음치고 있었고 정권과 자본의 탄압도 그만큼 극심했다. 더구나 보수언론의 편파보도까지 난무했으니, 노동자들의 투쟁을 곡해하지 않고 제대로 전파하는 활동의 필요성에 많은 사람들이 목말라할 만했다. 그에 공감한 일군의 영상활동가들이 ‘노동자뉴스제작단’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 투쟁에 포커스를 맞춘 영상물 제작에 나섰다. 어느덧 강산이 세 번 넘게 변했지만 노동자뉴스제작단은 여전히 “노동자계급의 관점에 선 영상물을 신속하고 지속적으로 제작, 보급”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좌절과 기쁨이 있었을까? 영상매체를 통해 노동운동의 가능성을 현실로 개척한 노동자뉴스제작단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면상에 재현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다만 몇 가지 상징적인 장면을 통해서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어 볼 뿐이다. 지난 8월 10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노동자뉴스제작단 사무실에서 배인정, 박정미 두 동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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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8.10. 노뉴단 사무실에서 박정미, 배인정 동지의 다정한 연출샷^^. [출처: 철폐연대]

 

새롭게 분출하는 대중투쟁과 신기술의 접목

 

노동자뉴스제작단(이하 ‘노뉴단’)의 첫 작품은 <노동자뉴스 1호>(1989년 3월/63분/노동자뉴스제작단)였다. 당시만 해도 영화 제작은 주로 필름 작업으로 이루어졌는데, 때마침 등장한 VHS(video home system)라는 새로운 매체기술 덕분에 노뉴단 활동가들은 날개를 단 듯 한결 사뿐하게 현장을 누빌 수 있게 되었다. 필름에 비해 촬영장비 휴대도 간편할 뿐 아니라 제작 시간과 비용도 절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운때가 잘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어요. 그때 상황이 노동자 투쟁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는데, 기존 매체에서는 이런 소식을 전혀 다루질 않았거든요. 어쨌든 이걸 찍어서 빠르게 내보내자는 게 당시 우리 생각이었고…. 필름 작업이었다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죠. 필름 가격도 비싸지만 촬영본을 편집할 때 현상소에 맡겨야 하는데 그것도 다 돈이잖아요. 또 시간 자체도 말이 안 되게 길어지고…. 다행히 비디오라는 매체가 있어서 뉴스 형식에 걸맞는 신속성, 현장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거예요.”

 

노뉴단의 첫 작품 <노동자뉴스 1호>는 16mm 비디오카메라와 VHS라는 당시엔 아직 낯설고 익숙치 않은 기술에 힘입어 탄생했다. 그때부터 8월까지 반년 동안 6~70분 분량의 노동자뉴스 네 편이 연달아 만들어졌다. 새로운 매체기술의 등장은 노동자 투쟁 관련 속보물 제작에 뛰어든 노뉴단에게 ‘신의 한 수’였다.

 

뉴스의 문법을 다큐멘터리에 가져 온 <노동자뉴스>의 시도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현장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한복판에서 맞닥뜨렸던 권력의 폭압을 노뉴단의 카메라는 주저 없이 비추었고 생생하게 전달했다. 그렇다고 <노동자뉴스> 시리즈가 뉴스의 형식만 차용했던 것은 아니었다. 너무 딱딱하거나 단조롭지는 않을까, 첫 작업을 구상하는 단계부터 고심을 거듭했다. 그 결과 <노동자뉴스 1호>에서는 뉴스(보도),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형식을 입힌 6개 단편을 엮어 옴니버스 작품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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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뉴스 1호> 영상의 한 장면. [출처: 변혁정치]

 

노동자의 목소리를 충실히 전달하기

 

노동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알려내는 활동은 지난 30여 년간 노뉴단이 일관되게 추구해 온 것이기도 하다. 시절이 변할수록 기술도 진화하고 형식도 조금씩 달라졌지만, 노동자의 관점, 노동자의 목소리라는 본체(本體)만큼은 오염을 피해 잘 지켜내려 노력한다.

하지만, 노뉴단 활동 초기 비디오 카메라와 카세트가 필름을 대체했던 것처럼, 십수 년 전에는 디지털 카메라가 이를 대체했고, 지금은 어지간한 스마트폰으로도 고해상도 영상 촬영이 가능해졌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그 말이 정말 맞구나 싶다. 유튜브 같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이 큰 인기를 끌면서 영상 활동의 저변도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다. <노동자뉴스 1호>의 파격을 노뉴단의 이후 영상 활동에서도 기대할 수 있을까?

 

“지금 노뉴단 활동가들이 구사하는 영상 편집기술만 보더라도 상당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요. CG를 다루는 능력도 탁월하고요. 그런 전문 작업자들 못지않게 요새 트렌드나 기법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죠. 문제는 촬영을 잘 하는 것, 편집을 기막히게 해 내는 것이 아니에요. 각각의 요소들을 잘 결합하고 요약해낼 수 있는 힘은 결국 대본에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이 만들어 내는 영상들이 하루에도 수백 편이 쏟아져 나오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얼마나 잘 풀어내느냐에서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평소 우리가 늘 신경 쓰는 건 작업 의뢰자의 주문이에요. 의뢰한 사람의 요구에 부합하는 결과물이 아니라면 그 작업은 실패한 거나 다름없죠. 다만 노뉴단에 의뢰한 사람들의 애초 목표가 좀 더 확장되는 경험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다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의뢰자가 요구한 것은 아닐지라도 내용을 더 풍성하고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해외 사례를 넣는다든지, 과거 역사를 한 폭의 장면으로 담을 수 있잖아요. 그렇게 해서 의뢰자의 목표에 구체성과 설득력을 더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이건 작업이 매우 잘 됐을 때의 이야기이지만요.”

 

때로는 세련된 영상미가 작품을 빛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구성하고 호소력 있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노뉴단은 촬영이나 편집을 외부에 맡길 때는 있어도 대본만큼은 반드시 내부에서 작성한다. 대본 작업은 작업 의뢰자가 맡긴 내용을 구체적으로 현실화하는 설계도를 그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지닌 힘을 신뢰하며, 영상 활동을 통해 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대변하기 위한 노뉴단의 노력을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노뉴단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그동안 노뉴단은 불평등과 착취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꾸준히 영상으로 기록해 왔다. 해마다 적게는 여덟 편, 많게는 열다섯 편의 작업들을 세 명의 상근자(배인정, 박정미, 이지영)와 그때그때 촬영이나 편집 작업을 맡는 너댓 명의 노뉴단 동료들도 함께하고 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작업 목록은 짧은 클립까지 포함하면 거의 삼백 편에 이른다고 한다.

 

노뉴단 이름으로 무수히 많은 영상 작업을 해 왔고 그중 당사자의 절박함, 영상활동가의 수고와 헌신이 묻어나지 않는 작품이 어디 있겠냐마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을 두 동지에게 손꼽아 달라고 부탁했다.

 

“저야 당연히 <노동자뉴스 1호>가 가장 기억에 남죠. 비디오 매체로 만든 노뉴단의 첫 작품이라는 의미도 크지만, 당시 이 작업을 통해서 우리가 하고 싶은 거의 모든 형식을 구현해 봤으니까요.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한 가지 안내서>(2011년 8월/27분/금속노조-노동자뉴스제작단)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에요. 어느 순간부터 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이 ‘동전 넣으면 음료가 툭툭 떨어지는 자판기’처럼 인식돼 버린 현실을 냉정하게 되짚어 보고 노동조합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는 교양ㆍ교육 영상이었죠. 요 근래까지도 노조 각급 단위에서 아주 쓸모 있게 활용했다고 들었어요.” (배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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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빅브라더가 있었다> 영상의 한 장면. [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저는 개인 작업으로 했던 <우리에게는 빅브라더가 있었다>(2006년/80분/박정미-노동자뉴스제작단)가 제일 인상적이었어요. 당시 휴대폰 불법복제로 위치추적을 당했던 삼성 전현직 노동자들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는데요. 어느 날 촬영 마치고 이 분들과 같이 뒷풀이를 갔는데 정말로 몇 사람 휴대폰이 먹통이 돼서 다들 기겁을 했었거든요!” (박정미)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통해서 이야기의 힘을 발산하려고 할까.

 

“이번에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의뢰를 받아서 노동안전보건 교육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작업중지권’을 통해서 민주노조와 어용노조의 차이점을 드러내는 게 중요한 목표에요. 여기에 중점을 두고 작업하려면 텍스트 자료를 막 뒤적여 가면서 대본을 쓸 수도 있겠죠. 그런데 노뉴단 작업은 절대 이런 식으로 이뤄지지 않아요.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권리에 대해서 말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을 행사해 본 경험이 있다거나, 반대로 작업중지권이 무력화된 경험이 있는 당사자의 목소리일 거예요. 당사자의 증언을 통해서 민주노조의 존재 이유나 어용노조의 폐해가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어떤 대본은 인터뷰가 거의 98%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어요.”

 

노뉴단의 지난 30여 년간 활동은 영상기록을 매개로 노동운동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한편, 계급적 연대와 단결, 투쟁을 촉진하는 데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갖출 수 있게 해 주었다. 앞으로도 우리는 노뉴단이 만든 영상물을 계속 만날 수 있을까.

 

“요새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우리가 이제 기력도 쇠해지고 아이디어도 닳아 없어지면 노동운동에서 더 이상 우리를 찾지 않는 시간이 다가올 수도 있잖아요? 그 시간을 맞이하기 전에 그간 활동을 통해서 축적한 노뉴단의 경험이나 지식들을 잘 나누는 과정이 앞으로 필요할 것 같아요. 지금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사실 우리의 중요한 고민입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영상제작집단의 세대교체를 염두한 말일까? 음… 조금은 알쏭달쏭한 답변이지만,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오랜 기간 노동영상 제작에 전념해 온 이들에게 내가 건네야 할 인사는 과연 무엇이어야 할까. ‘굿바이?’, 아니면 ‘씨유 어게인?’ 다만 지금은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노뉴단 활동가들의 건강과 안녕을 온 마음으로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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