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서울대병원 하청·파견노동자 직접고용 합의의 의미와 과제

이향춘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서울지부 부지부장)

 

 

20년 투쟁의 승리였다. 한꺼번에 되찾은 승리였지만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매년의 투쟁이 차곡차곡 쌓여 끝내 우리가 쟁취한 결과물이다.

 

임·단투는 임금 인상과 단체협약 갱신, 노동조합 조직 강화를 목표로 구체적인 계획과 투쟁을 조합원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정세, 조직력, 현장요구 수준에 따라 핵심요구안이 걸러지기도 하고 목표를 낮추어 합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2019년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은 그렇게 합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비용 부담을 내세우며 자회사 전환으로 방향을 잡았고 국립대병원장들도 자회사 전환으로 똘똘 뭉친 상황이라 자회사를 받아들이는 순간 정규직화는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직접고용 말고는 다른 선택지도 해답도 없었다.

 

의료연대서울지부는 2018년 노사전 협의체를 구성, 교섭을 시작했지만 사측은 자회사만 고집했고 제대로 된 교섭은 진행되지 않았다. 국립대병원 대표인 서울대병원의 이런 행태는 다른 국립대병원에게도 직접고용을 회피하는 구실이 되며 공공의 적이 되었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공공기관에서 유일하게 원·하청 공동파업투쟁으로 맞섰지만 2018년에는 정규직화를 합의하지 못했다. 2019년마저 직접고용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2020년 총선, 대선을 거치면서 정규직화 전환은 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또한 저임금과 차별을 구조적으로 고착시키는 문제점으로 작년에 논란이 되었던 ‘표준임금체계’가 호시탐탐 정부안으로 둔갑하여 사측 제시안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모범적인 정규직화 합의안을 만드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병원과의 교섭은 출발부터 간극이 컸다. 사측은 서창석 병원장 집행부보다는 개선안이라며 일부 자회사, 일부 직접고용을 가지고 나왔다. 전원 직접고용은 비용 부담과 파업 시 대체인력 투입이 어렵고, 기존 정규직과는 다른 업무를 하기 때문에 임금과 복리후생도 별도의 규정을 두어 적용하겠다고 했다. 노동조합이 차별이라고 절대로 받을 수 없다고 하면 사측은 차별이 아닌 차이라고 반박했다. 수익 기여도에 따라 대우를 달리 해야 한다는 자본의 논리 그대로다.

 

병원업무는 협업이 생명이다. 의사가 아무리 수술을 잘해도 간호사가 환자 상태를 예민하게 보지 못해 놓치거나 보고가 제때 되지 않는다면 환자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청소노동자는 쓸고 닦아서 감염의 전파경로를 차단하고, 시설노동자는 제때 전기와 난방을 공급하여 혈액과 의약품의 적정 온도를 맞추고 환자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서로 유기적이고 긴밀한 소통이 있어야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 병원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병원도 환자가 치료받고 퇴원하기까지 여러 직종의 협업이 필요한 곳이다. 어느 사업장이든 하는 일은 달라도 각자의 업무에 대해 우열을 나눌 수는 없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기준으로 ‘중요한/부수적 업무’, ‘전문/비전문 업무’로 나누고, 돈과 권리를 서열대로 주는 것이 공정한 사회이고 당연한 것처럼 일반화한다.

 

노동조합은 사측이 하청․파견노동자에 대해 갖고 있는 유령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것부터 시작했다. 2~3차례 교섭으로 끝내자던 사측에 맞서 17차례 축조교섭을 하면서 노동조합은 ‘단 한 명도 자회사를 허용하지 않는, 차별 없는 정규직화’를 요구했다. ‘직업에는 높고 낮음이 없고 누구의 노동이든 소중하다’는 상식조차 통하지 않았고 하나씩 깨트리는 과정이 고통스런 교섭이었다.

 

국립대병원 사용자의 자회사 담합에 맞서 올해 초부터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노조, 민주일반연맹 3개 조직은 강고한 연대투쟁을 했다.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1인 시위, 4월 세종시 교육부 앞 천막농성, 공동파업 및 공동투쟁을 했다.

 

의료연대서울지부는 5월 2일부터 121일 동안 서울대병원 내 천막농성, 5~8월 4차례 7일간의 파업투쟁 등을 펼치며 청와대와 교육부, 병원을 압박했다. 주변의 우려와 걱정, 40도가 넘는 폭염과 태풍도 투쟁을 멈추지는 못했다. 국립대병원을 환자에게 안전한 병원, 노동자에게 차별 없는 병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노동조합의 요구에 교육부는 직접고용 전환 방침을 발표하였고 신임 김연수 병원장을 움직였다. 우리는 ‘서울대병원 전원 직접고용 정규직화’로 철옹성 같은 국립대병원 담벼락을 타고 넘어섰다.

 

소속업체가 달랐던 파견·용역노동자 800여 명 전원이 모두 서울대병원 소속이 된다. 1차적으로 614명의 노동자가 11월 1일자로, 200여 명의 보라매병원 하청노동자들은 위탁기관인 서울시와의 협의를 거쳐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전환되는 노동자들은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과 동일하게 단체협약을 적용받으며, 이에 따른 복리후생도 차별 없이 똑같이 적용받게 된다. 또한 기존 소속업체 정년을 보장받고 경력도 2년 인정을 받는다. 근무형태, 근무시간, 배치전환 등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전환 후 노사합의하고 합의 전에 일방적으로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기존 정규직 직무와 동일 직종에 종사하는 파견 계약 직무는 해당직군으로 전환하고 그 외는 환경유지지원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환경유지지원직은 기존 정규직과 비슷한 임금체계를 준용했지만 별도로 신설한 것은 아쉬움이 남는 합의다.

 

서울대병원 파견․용역 정규직 전환은 하청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의미도 있지만 지난 20여 년간 돈벌이 중심으로 운영되어 온 공공부문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공공기관 구조조정, 선진화 정책 등 이름만 바꿔가면서 인력을 감축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았고 비정규직 노동자로 만들어 노동의 가치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서울대병원도 ‘밥이 곧 치료식’인 어린이환자 급식을 외주로 넘겼고 청소 업무는 정규직이 정년퇴직하면 그 자리를 용역직으로 대체했다. 이외에도 ‘핵심’ 업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누구나 대체 가능한 업무라 폄하하면서 끊임없이 외주화를 시도했고 그때마다 조합원들은 투쟁으로 막아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투쟁은 매년 죽을 힘을 다해 막지 않으면 밀릴 수밖에 없는 버거운 투쟁이었다. 정규직화 합의는 IMF 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 광풍에 의해 하청노동자로 내몰린 노동자들을 20년 전 제자리로 다시 되돌려 놓은 것이다.

 

또한 이번 합의는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투쟁하여 만든 성과물이다. 서울대병원 정규직 노동자는 하청노동자 전원 정규직화에 누구보다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작년 원·하청 공동파업투쟁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했고,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조합원이라서 자랑스럽다고 했다.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의 역사는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투쟁의 역사였다. 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으로 2006년, 2007년, 2008년, 2013년, 2016년, 2017년 직접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합의를 쟁취하였다. 2018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공동파업, 2019년 서울대병원 민들레분회의 파업투쟁과 120일간 함께 천막투쟁을 했고, 청와대와 교육부를 압박하는 투쟁 등을 통해 간접고용 비정규직까지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합의를 쟁취하였다.

 

아는 만큼 보이고, 느끼는 만큼 행동하는 것이 조합원이기에 간부가 어떤 방향을 가지고 움직이는지에 따라 조합원도 여럿이 함께 큰 걸음을 내딛는다. 간부들은 시간을 내어 현장 구석구석을 다니며 꾸준히 비정규직을 조직했고 정규직이 함께할 것을 설득했다. 그 결과 비정규직 직접고용이 공공성을 지키는 투쟁이고 정규직이 나서는 것이 사측에게는 강력한 투쟁임을 조합원들은 깨닫게 되었다. 결국 조합원이 투쟁의 핵심으로 나섰고 원·하청 공동파업도 가능했다.

 

 

3 2019.8.22. 국립대병원 파견용역노동자 총파업대회 [출처 의료연대본부].jpg

2019.8.22. 국립대병원 파견용역노동자 총파업대회 [출처: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의 하청노동자 직접고용은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국립대병원 교섭에 첫 물꼬를 텄다. 하지만 최소한의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값싼 비용으로 하청노동자를 유령취급 했던 국립대병원들은 여전히 자회사를 고집하며 버티고 있다. 서울대병원 노사합의 전에는 서울대병원 핑계를 대며 정규직화를 하지 않더니 합의 후에는 서로 눈치를 보거나 일부 국립대병원들은 자회사 전환을 위해 담합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교육부는 담합행위 진상을 파악하고, 직접고용 방침을 거부하고 있는 국립대병원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해야 한다. 경북대병원 등 아직 정규직화 합의를 하지 못한 국립대병원 노동조합은 다시 총파업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교육부와 서울대병원 핑계만 대던 국립대병원들은 이제 더 이상 핑계 댈 것도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하루빨리 차별 없는 직접고용 합의를 해야 할 것이다.

직접고용 정규직화는 환자 안전, 의료서비스 질 향상, 국립대병원의 공공적 역할을 확대하는 투쟁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