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 우리 동네 2%

 

노동조합 설립 5년 만에 쟁의권 확보 … 기본급 4대보험 반드시 쟁취한다!

 

김선영 • 전국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 통합지회장

 

 

 

 

대한민국에서 특수고용 노동자로 살아가는 삶은 정말 참담하다. 노동자인데도 노동자로 대우받지 못하고 대부분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 현대, 기아, 르노삼성, 한국GM, 쌍용자동차 대리점에서 근무하는 비정규 판매사원도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차를 포함해서 르노삼성, 한국GM도 예전에는 모두 정규직 판매노동자만 있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자본은 대리점제도를 만들고 정규직 노동자를 구조조정해서 비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를 만들었다. 그래서 현재까지 20년간 대리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자동차대리점 비정규 판매사원의 열악한 환경

 

정규직 노동자와 대리점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는 업무의 구분이 전혀 없이 동일한 노동을 하고 있다. 업무 지휘감독 또한 원청인 현대기아차에서 직접적으로 한다. 즉 ‘진짜 사장’이 정몽구 ‧ 정의선 부자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리점에서 근무하는 비정규 판매사원은 기본급도 없고 4대보험도 안되며 퇴직금 또한 한 푼도 받지 못한다. 현대기아차가 임금을 착취하고 노무관리를 쉽게 하기 위해 대리점제도를 만든 것이다. 사장님으로 둔갑을 시켜놨기 때문에 대리점에 근무하는 비정규 판매사원은 아무런 권리가 없다. 대리점 대표가 마음에 안 든다며 아무 이유 없이 그만 두라면 종이박스에 짐 싸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실적이 저조하면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하고 비인격적인 대우를 하는 대리점 대표가 부지기수였다. 고용관계가 불안하다보니 더더욱 대리점 대표에게 종속적일 수밖에 없고 부당한 대우나 불합리한 처우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원청에서 판매사원들에게 지급하라는 각종 인센티브도 중간에서 착복하는 대리점 대표들도 너무 많았다. 대리점 대표들이 중간에 하도 많이 떼먹으니 원청인 현대기아차는 사내 전산망으로 대리점 사원들이 급여내역을 볼 수 있도록 제공할 정도였다. 또한 중간에서 현대캐피탈에서 나오는 운영자금도 착복하고 원청에서 나오는 각종 판촉물도 공정하게 나눠주지 않았다. 정말 쓰레기 같은 대표들이 사방 천지였다. 심지어 대표들의 소득을 직원들에게 전가시켜 당연히 내야 할 세금을 탈세하는 대리점 대표들도 정말 많았다. 직원들은 받지도 않은 월급을 대표가 허위로 신고하면서 세율이 높아져 많은 소득세를 내야 했고 의료보험료 등도 더 많이 내야 했다. 이렇게 현장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일들이 넘쳐나도 누구 하나 대표에게 말을 하지 못했다. 잘못 보이면 하루아침에 해고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설립 준비에 뛰어들다

 

나는 대리점에 근무할 때 대리점 대표의 부당한 대우에 맞서 직원들을 조직해서 3일간 파업을 한 적이 있다. 파업 3일 만에 대리점 대표는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3일 파업을 조직하는 것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10명 남짓한 직원들에게 “뭉치고 단결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우리 3일만 해보자” 라고 끊임없이 설득했지만 나의 후배들을 제외한 일명 고참 사원이라는 분은 관심이 없었다. “과연 우리가 대리점 대표를 상대할 수 있을까” 라며 모두 두려워 했던 것이다. 모두 모여서 회의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설득 끝에 전체회의를 통해 우리의 요구사항을 결정하고 대리점주에게 투쟁을 선포했다. 우리의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파업을 선언한 것이다. 파업을 조직할 때 직원들한테 “3일만 파업하면 우리의 요구사항을 쟁취할 수 있다. 나는 확신한다” 라고 직원들을 조직했는데 직원들은 믿지를 않았다. 이러다가 모두 해고되는 것이 아닌가 두려움이 더 앞섰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정말 확신했다. 결국 우리는 3일 파업으로 우리의 요구를 모두 쟁취하게 되었다.

 

3일간 파업투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한 대리점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대리점의 문제이고 근본적인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민주노총 안산지부에 찾아가서 노동조합 가입 상담을 했다. 하지만 특수고용 노동자기 때문에 노조 설립신고증을 교부받기 어려워 보인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래서 법을 뛰어 넘어 쪽수로 승부한다는 각오로 내가 소속된 지역본부를 조직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결국 나는 자포자기 상태로 지내야 했다. 그러던 와중 2015년 초 나에게 한 통의 문자가 왔다. 그 내용은 노동조합을 만들자는 ‘밴드’ 초대 문자였다. 문자를 받고 바로 전화를 했다. 그분은 기아자동차 판매지회 소속 정규직 노동자 박주상 동지였다. 그때부터 노동조합 설립 초동모임에 적극적으로 합류하게 되었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노동조합 설립 준비를 함께했다. 전국에서 노동조합 설립에 의지를 보인 초동 주체들이 10여 명이 있었으나 어떻게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하는지 다들 잘 몰랐다. 그래서 내가 금속노조를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고 금속노조는 담당 국장을 배정하고 우리와 함께 전국을 순회하면서 노동조합 설립을 준비했다.

 

2015년 8월 22일 – 노동조합 깃발을 올리다

 

6개월의 준비모임 끝에 드디어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에서 설립총회를 하게 되었다. 당시 50여 명이 참석했고 가입 조합원은 30여 명 되었다.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모두들 고무된 상태로 월요일 출근을 하게 되었는데 현대기아차 각 대리점에서 난리가 났다. 속된 말로 발칵 뒤집힌 것이다. 10여 명의 노동조합 임원은 벌써 신상이 밝혀졌고 대리점 대표들은 당장 탈퇴하지 않으면 모조리 해고하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모든 임원들이 일주일도 못 견디고 탈퇴를 하고 위원장인 나와 사무처장은 즉시 해고통보를 받았다. 나는 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계속 출근투쟁을 하였고 사무처장은 한 달을 못 버티고 결국 해고되었다.

 

나는 해고를 인정할 수 없다며 매일매일 출근을 이어갔는데, 대리점 대표는 전 직원이 보는 아침회의시간에 한 시간 가까이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일삼더니 나중에는 출근할 때마다 나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때리고, 침 뱉고, 발로 차는 폭행을 당하면서 매일 출근길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포기한다면 자동차대리점에서 앞으로 두 번 다시 노동조합은 꿈도 꿀 수 없으리라는 신념으로 끝까지 버텼다. 물론 아무리 마음을 굳게 다잡아도 나 역시 사람인지라 너무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당시 나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출근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원청은 나를 징계해고하기 위해 표적 감사를 진행하면서 나를 압박했으나, 결국 업무지침 위반을 단 한 개도 찾아내지 못했다.

 

당시 폭행사태는 KBS 9시 뉴스에 사흘간 방송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많은 국민이 분노하게 되었다. 폭행사건이 뉴스로 보도되자 노동조합이 결성이 되었다는 사실도 전국의 대리점에게 알려졌고 조합원들이 한두 명씩 가입하기 시작했다. 대리점에서 전체가 결의를 하고 집단가입하는 대리점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대리점 비정규 판매사원들이 속속 노동조합에 가입하였고, 당당히 단체교섭 요청 공문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대리점 대표들은 “노조에 가입하면 모두 해고하겠다”며 협박을 하고 온갖 탄압을 일삼았다. 당시 나는 전국을 돌면서 조직화에 매진했다. 현장에 노동조합 가입 상담이 들어오면 전국 어디라도 단박에 달려갔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곧 해고된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했지만, 그래도 노조에 가입하겠다는 인원들이 꾸준히 늘었다.

 

현대기아차는 위원장인 나를 해고하려고 표적 감사까지 진행했으나 별 소득이 없자 2016년 1월 15일 내가 근무하는 현대자동차 안산중앙대리점을 전격 폐업했다. 결국 나는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5개월 만에 해고자가 되었다. ‘노조 가입은 곧 폐쇄’라는 프레임으로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해 원청은 잇달아 7개 대리점을 폐업시켰다. 그럼에도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조합원들은 꾸준히 늘었다. 그만큼 현장에서는 비인격적인 대우에 불만과 분노가 강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2016년 5월 21일 조직형태변경총회를 하고 금속노조에 가입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누구도 예상치 못할 일이 벌어졌다. 바로 우리의 열악한 환경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현대기아차 정규직 판매노동자들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던 것이다. 판매연대를 금속노조에 가입시키면 정규직의 고용이 위태로워진다는 게 당시 반대의 주된 이유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기가 막힌 말이다.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대로 판매연대는 오랫동안 금속노조에 가입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조합원들은 지치기 시작했고 하나 둘씩 노동조합을 탈퇴하게 되었다. 금속노조 가입 신청 이후 370여 명까지 늘었던 조합원은 다시 200여 명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 현대기아차와 싸워야 하는데 금속노조 가입에 집중하다 보니 투쟁은 완전히 무력화되고 조합원들은 떨어져 나가고 정말 힘든 시기였다. 금속노조 가입 문제로 2년을 넘게 허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금속노조에 가입하다

 

2018년 5월 30일 금속노조 김호규 위원장이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위원장 전결로 금속노조에 가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입 뒤에도 내분이 지속되었다. 우리는 조직형태변경총회를 통한 집단가입을 요구했지만 노조는 개별가입을 주장했다. 조직형태변경총회를 통한 집단가입만이 모든 법적인 것을 승계하게 되고 개별조합원으로 가입하는 것은 2개의 노조에 가입하는 것이다.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일이기에 우리는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서울, 전북, 부양 3개 지부에 편제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고 각 지회설립총회를 준비했다. 지회 설립총회를 하면서도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지-수-사(지회장-수석부지회장-사무장) 임원을 하겠다는 조합원이 없어서 많이 힘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각 지회 지-수-사를 지회 설립총회를 통해서 힘 있게 선출하고 지회가 출범하게 되었다. 당시 조합원은 200여 명가량 되었다.

 

금속노조 가입 후 처음으로 판매연대는 전 조합원 상경투쟁을 결의하고 2018년 11월 24일 청와대 앞에서 결의대회를 진행하게 된다. 전날부터 폭설이 쏟아진다는 일기예보로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당시 광화문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었는데 밤새 잠을 설치다가 아침에 일어나 천막을 나가보니 발목이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내렸었다. 걱정이 되어 확인해 보니 전남 순천에서 출발한 전북지회 버스는 무난히 올라오고 있는 반면 부양지회 버스가 속리산 부근에서 막혀 버린 것이다. 폭설로 인해 고속도로는 완전 주차장이 되었고 교통사고가 사방에서 나고 정신없었다. 현장 책임자가 도저히 상경을 못할 것 같다기에 차를 돌리라고 했는데 조합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결국 시간에 맞춰 청와대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노동조합 만들고 처음으로 150여 명의 조합원들이 모두 얼굴을 드러내면서 청와대 앞 결의대회를 할 때 지회장으로서 정말 가슴이 벅찼고 조합원들 또한 강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3 우리 동네 2%_01.jpg

 

2019.3.26. ‘해고자 복직, 4대 보험 가입, 직접고용 정규직화, 노동3권 보장, 자동차판매연대지회 투쟁 승리 결의대회’에서 투쟁사를 하고 있는 필자 모습. [출처: 금속노동자]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2018년 12월 3일 현대자동차 남안산대리점에서 한 명의 해고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금속노조 가입 후 처음으로 해고자가 발생한 것이다. 지회는 해고 다음날 바로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투쟁을 선포했다. 매일매일 대리점 앞에서 투쟁을 하고 매주 정기적으로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치열하게 싸운 것 같다. 전시장 문 앞에 매번 본드로 스티커를 부착하고 바닥에는 페인트와 락카 스프레이로 글씨를 쓰면서 집회를 진행했다. 그때마다 대리점 대표는 청소업체를 불러서 깨끗이 청소를 했지만, 매주 집회 때 우리는 어김없이 싸웠고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도 정말 많이 싸웠다. 당시 금속노조 가입 후 첫 해고자였기 때문에 여기서 어설프게 싸우면 제2의 해고자가 나온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싸웠던 것 같다.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조합원이 늘었고 자신감이 생긴 때에 해고자가 발생하면서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동요할까봐 걱정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남안산대리점에서 치열하게 싸우면서 우려했던 것과 달리 조합원이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현대자동차 남안산대리점 투쟁을 보면서 두려웠던 게 아니라 반대로 더 큰 자신감을 가졌던 것 같다. 남안산대리점 해고 투쟁이 한 달을 넘기면서 매달 한 달에 100명씩 조합원들이 늘어났다. 조직화는 투쟁과 병행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하게 된 순간이다. 3개월 동안 300여 명의 조합원이 추가 가입하면서 조합원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래서 지회는 2019년 3월 또다시 전 조합원 상경투쟁을 진행했다. 현대자동차 국내판매를 총괄하고 있는 삼성역 현대자동차 국내영업부 앞에서 무려 350여 명의 조합원이 결의대회에 참석하면서 우리는 한층 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단시간 내 가장 많은 조합원이 가입한 시기가 바로 현대자동차 남안산대리점 해고 투쟁을 하던 때였다. 급속도로 조합원이 늘어나고 전국 350여 명이 상경투쟁에 함께하면서 현대기아차는 아마도 긴장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현대자동차 국내영업본부 상경투쟁 이후 총 조합원 수는 500명을 넘게 된다.

 

대리점을 또다시 폐업시키다

 

현대자동차 국내영업본부 상경투쟁 이후 지회 조합원이 급속도로 늘어나자 현대기아차 자본은 조직화를 저지하기 위해 노조에 가입한 현대자동차 신평대리점을 2019년 5월 10일 기획 폐업에 나섰다. 소속 직원들이 폐업하는 사실도 전날 인지할 정도로 급작스러운 폐업 소식이었다. 7명 전원이 조합원인 이곳의 폐업 사실을 지회는 하루 전 보고 받고 곧바로 긴급 집회를 소집했다. 당일 점심 때 공지했음에도 불구하고 50여 명의 조합원들이 집회에 참석했다. 다음날 폐업이 예정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고민이 정말 많았다. 지회는 조합원들과 토론 끝에 전시장을 점거하기로 결의하고 폐업 당일부터 전시장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전시장에는 현대자동차 소유의 전시차가 3대 있었다. 전시차량의 반출을 저지하면서 점거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매일매일 전시장에서 숙식을 하며 투쟁을 진행하는데 일주일 지나서 소속 조합원들이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투쟁을 해야 인근 대리점으로 고용승계가 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를 틈타 조합원 중 ‘어밴저스’라는 반조직 세력이 결성되어 투쟁을 무력화하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 신평대리점 조합원들에게 접근해서 “지회장은 조합원을 이용해서 출세하려는 사람이다. 이용당하지 말라”며 지회장에 대해 온갖 비방을 하고 해답은 사측에 있으니 지점장을 만나보라고 제안했다. 소속 조합원들은 투쟁을 이어가자는 지회장의 말보다는 원청을 찾아가면 해결될 것이라는 반조직 세력의 말에 귀 기울이고 결국 지회 몰래 원청 지점장을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지점장은 소속 조합원들에게 부사장까지 결재를 받았으니 걱정 말고 농성만 중단하면 고용승계를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이에 소속 조합원들은 지회와 아무 상의 없이 농성 중단을 선언하고 노조도 탈퇴한다며 단체소통방까지 나가게 된다. 그 뒤 지회장이 수도 없이 전화를 했으나 집단적으로 모두 전화도 받지 않고 잠적을 해버렸다. 원청을 찾아가서 합의한 반조직 행위는 ‘어밴져스’ 안에서 활동하던 한 조합원의 폭로로 사실관계가 드러났고 결국 신평대리점 조합원은 노조에서 제명 징계를 받게 되었다. 반조직 세력의 이 같은 일을 겪으면서 지회의 모든 투쟁은 무력화되었고 너무 많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

 

3 우리 동네 2%_02.jpg

 

2020.9.2. 자동차판매연대지회가 서울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판매 건당 수수료 폐기, 4대보험·기본급·직접고용 쟁취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출처: 자동차판매연대지회]

 

대법원에서 노동자성이 확정되고 쟁의권을 확보

 

노조는 2015년 노동조합을 만들고 줄곧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대리점주들은 우리가 노동자가 아니라며 단체교섭을 한사코 거부해 왔다. 그런데 2019년 6월 13일 대법원에서 노동조합법상 노동자성이 인정되었다. 이에 그동안 단체교섭을 요구하지 않았던 모든 대리점에 2019년 9월 18일 공문을 일괄 발송하고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대리점 대표들은 아무런 연락도 없이 계속 교섭을 거부했다. 노조는 끈질기게 단체교섭을 요구했고 결국 2020년 1월부터 순차적으로 상견례를 진행하게 되었다. 몇몇 대리점부터 상견례를 진행하는 과정 중 돌연 코로나19 확산 핑계를 대면서 전국의 모든 대리점 대표들이 단체교섭을 잠정 중단한다는 공문을 일방적으로 보내왔고 또다시 단체교섭을 거부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노조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전국 10명 내외로 감소했을 때 거듭 상견례 촉구 공문을 보냈고, 여러 차례 교섭 촉구 공문을 보내면서 다시 단체교섭이 진행되었다.

 

노조는 단체교섭을 집단교섭 형태로 진행하자고 처음부터 요구했다. 전국의 대리점들이 동일하게 운영되고 노조의 단협요구안 또한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리점 대표들은 집단교섭을 거부하고 개별교섭을 고집했다. 어쩔 수 없이 전국 100개가 넘는 대리점들과 일일이 개별교섭을 진행하게 되었다. 100여 개 대리점을 교섭하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노조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지역지부에 판매연대 교섭 담당 임원을 선정하고 각 관할 대리점 교섭에 참여한다” 라고 결정하면서 지역지부 임원들이 대표교섭위원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전국의 100개가 넘는 대리점의 교섭을 진행할 수 있었다.

 

단체교섭에서 한결같이 전국의 모든 대리점 대표들은 단협 요구안 중 한 개도 수용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7차, 8차 단체교섭을 진행하였지만 사측은 무조건 단 한 개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노조는 결국 교섭결렬을 선언했다. 이어 법적인 절차에 따라서 중앙노동위원회에 100개 대리점의 조정신청을 하였다. 동일한 사항으로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조정회의를 진행하자고 하였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지역노동위원회에 모두 내려보냈다. 그래서 전국의 모든 노동위원회에서 조정회의가 진행되었다. 사측은 조정회의에서도 아무 것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결국 조정중지 결정이 되면서 노동조합 설립 5년 만에 쟁의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2015년 8월 22일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2015년 9월 18일 서울고용노동청으로부터 설립신고증을 교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체교섭을 시작하기까지 무려 4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노조설립 5년 만에 쟁의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사용자는 정몽구 ․ 정의선이 분명함에도 원청은 직접적인 근로관계가 아니라면서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이며 간접고용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교섭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지체된다는 것을 우리는 온몸으로 깨달았다. 이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조합원들은 지쳐가고 결국 노조가 와해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조법 2조는 반드시 개정이 돼야 한다. 노동자와 사용자 범위를 확대해서 누구나 온전하게 노동3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도 노동3권이 보장되고 실질적인 원청이 교섭에 나오게 해야 간접고용 노동자도 노동3권이 보장될 것이다. 자동차판매연대지회도 노조법2조 개정에 앞장설 것이다.

 

노동조합 설립하고 5년 만에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법원 판결을 통해 인정받고 쟁의권까지 확보하게 되었다. 사실 원청은 전국 660명의 조합원으로 무슨 파업을 할 수 있겠느냐며 우리를 얕보고 있었다. 그러나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전진할 것이다. 결국 총파업을 반드시 이뤄낼 것이다. 전국의 모든 자동차 전시장이 문을 닫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다. 우리는 반드시 투쟁으로 승리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