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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손배가압류’란 무엇인가?

 

 

윤지선 • 손잡고1) 활동가

 

 

 

최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두고 ‘손해배상 소송’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회사가 주장하는 수천억 원의 손해가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 한편, 수천억 원의 손해배상이 어떻게 산정되었는지, 실제 노동자들에게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대체 손배가압류 제도는 무엇이고 노동권을 행사한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까요.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 어떻게 손배 청구 대상이 되었을까?

 

노동자 손해배상가압류 제도는 별도의 제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민법을 노동자들에게 적용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입니다. 민법 750조에 따르면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민법 760조는 “수인이 공동의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연대하여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파업은 민법의 시각으로만 봤을 때는 배상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고의’로 노무제공을 거부해 회사에 타격을 주기 때문에 파업을 하면 당연히 회사는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단체행동이기 때문에 연대책임을 지게 됩니다. 이렇게 ‘민법’만 있다면 노동자들의 파업은 불법이 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법보다 상위법인 ‘헌법’이 있습니다. 헌법 제33조에 따르면 노동자는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집니다. 사용자에 비해 노동자 개인은 열악한 지위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노동자가 단결해서 단체로 사용자와 대등하게 교섭하고,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할 수 있도록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본권이 헌법보다 하위에 있는 민법에 가로막히면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조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손해를 입은 경우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에 대하여 손해를 청구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노동권을 행사한 노동자들에게 ‘민사면책’권을 주어 기본권이 잘 보장될 수 있도록 돕는 보호장치를 해 둔 셈입니다.

 

이렇게 법이 잘 보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는 번번이 불법이 되는 것일까요? 바로 노조법 제3조의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에 대한 법원의 해석 때문입니다. 단체교섭, 쟁의행위가 가능한데, 노조법 제3조의 조문에서는 “이 법에 의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은 노조법 제2조 5항의 “노동쟁의”에 나와 있습니다.

 

제2조 5항 “노동쟁의”라 함은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 간에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를 말한다. 이 경우 주장의 불일치라 함은 당사자 간에 합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여도 더 이상 자주적 교섭에 의한 합의의 여지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노동자들은 이 조항이 노동현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노동권을 ‘근로조건에 관한 결정’ 사항에만 행사할 수 있도록 묶어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민사면책’으로 헌법이 보장한 노동권의 보호장치가 될 줄 알았던 노조법이 노동권을 협소하게 해석해 쟁의행위를 ‘불법’으로 만들고 민사면책을 받지 않아도 되는 근거처럼 사용되는 것입니다.

 

실제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어떤 이유로 노동권행사를 하는지, 그리고 노동권행사에 대해 회사와 법원이 어디까지 인정하고 있는지 노동자들의 노동권행사에 대해 제기된 손배가압류 소송기록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손잡고는 지난 6월 30일, ‘33.3’이라는 이름의 ‘손배가압류 소송기록 아카이브(http://savelaborrights.org/)’를 공개했습니다. 아카이브는 손배가압류 소송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1989년부터 가장 최근인 2022년까지 33년간 발생한 손해배상가압류 사건에 대해 추적하고 소송기록을 모아 놓은 아카이브입니다.2) 6월 30일 기준으로 197개 사건의 소장, 판결문 등 342개의 소송기록이 수집되어 있습니다. 33.3 아카이브에 수집된 손해배상가압류 소송기록에 드러난 소송의 특징을 소개하며 헌법상 권리가 어떻게 부정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5. 본문사진1.jpg

2022.06.30. “헌법, 노동권과 손해배상가압류-소송기록을 통해 본 손배가압류제도” 국회토론회. [출처: 손잡고]

 

 

노동자들은 왜 쟁의행위를 했을까?

 

33.3 아카이브에 수집된 197개의 손배가압류 사건에서 노동자들은 왜 쟁의행위를 했을까요?

 

<쟁의행위 원인(중복)>

구분

건수

단체교섭, 단체협약 관련

82

불법파견

36

노조파괴, 부당노동행위

26

해고(정리해고 포함)

43

집회(주최, 참여) 등

41

근로기준법 위반

8

 

소송문건에 기록된 쟁의행위의 원인을 보면 △ 단체교섭, 단체협약 관련 사안(82), △ 회사의 불법시도(불법파견, 노조파괴, 부당노동행위, 근로기준법 위반)(70건), △ 해고(징계해고, 정리해고 등)(43건), △ 집회참가(41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현실에서는 쟁의행위 원인이 노조법에서 규정한 임금 및 복지 등 ‘근로조건 결정’의 범주를 넘어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대다수가 기본권인 ‘노동권 행사’가 부정되는 것이 쟁의행위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 현실에 가깝습니다. 결국 회사의 불법시도도 ‘노동권’을 부정하는 회사의 인식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노동자들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 소송은 노동자들의 ‘불법’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권을 부정하는 회사의 일방적인 주장’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도가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소송은 회사의 ‘불법’이라는 주장만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소송 내용이 노동권을 부정하는 내용임에도 손배 소송이 제기되면 재판은 그대로 진행됩니다. 심지어 소송 과정에서 회사의 불법이 드러나도 회사가 취하하지 않는 한 소송은 계속됩니다.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드러나도, 불법파견이 인정돼도, 경영 실패로 회사의 주인이 바뀌어도, 오너리스크가 발생해도 어떤 경우에도 회사의 불법 또는 위법을 근거로 손배 소송이 멈춘 적은 없었습니다. 결국 소송이 제기되면 노동자들은 법원의 판결이 나오기까지 소송을 견디는 수밖에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그렇다면 소송을 통해 이기면 되지 않느냐고 질문합니다. 2019년 고려대학교 보건과학과 김승섭 교수팀과 손잡고, 와락이 공동으로 조사한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 236명 첫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손배 소송을 경험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30%가 자살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일반적인 직장인 남녀와 비교해 각각 19.6배, 14.3배가 높은 수치라고 합니다. 이런 정신적 고통을 견디며 재판을 해야 하는데, 재판 기간 또한 짧지만은 않습니다. 197개 사건에서 1심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길게는 84개월, 평균 26개월이 걸렸습니다. 1심에서 패소할 경우, 재판 기간은 더욱 길어집니다.

 

심지어 항소나 상고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항소나 상고를 하기 위해서는 인지대 등 법률 비용이 들어가는데, 특히 인지대는 청구금액(소가)이 높을수록 금액이 커지게 됩니다. 당연히 돈이 많은 회사는 인지대가 없어서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없지만, 노동자들의 경우 인지대가 없어서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이 90억 원을 선고받고도 1억 원이 넘는 인지대를 기한 내에(14일) 마련하기 어려워 상고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다 견뎌야 판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법부는 어떻게 판결하고 있을까?

 

견뎌서 승소하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법부는 노동자들의 노동권행사에 대해 어떻게 판결하고 있을까요?

 

<33.3 아카이브 소송기록 각심급별 선고결과>

구분 / 건수

1심선고결과

2심선고결과

3심선고결과

비고

원고승

11

3

_

 

원고일부승

93

59

31

파기환송8

원고패

37

10

7

 

화해권고

7

5

_

 

조정결정

2

10

_

 

진행중

9

1

12

 

소취하

24

18

7

 

 

원고패소는 말 그대로 사법부가 원고의 청구를 인정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그런데 살펴보면 회사의 청구를 인정하지 않은 이유가 쟁의행위가 정당해서만은 아닙니다. 1심에서 원고가 진 37건의 사건 판결문을 살펴보면 회사가 ‘근거 없이’, ‘손해를 입증하지 않아’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기록이 각각 11건, 25건의 판결문에 등장합니다. 막상 손배 소송을 걸어 놓고도 회사가 적극적으로 입증하지 않은 것입니다. ‘손해를 보전받으려고 제기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를 재판 과정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된 경우에서도 손배 소송의 모순이 드러납니다. 먼저 ‘원고 승’은 11건입니다. 쟁의행위에 대해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하면서 회사가 제기한 청구금액까지 모두 인정한 경우입니다.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이유는 ‘원고일부승’ 판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원고일부승은 말 그대로 일부만 원고가 승소한 경우인데, 청구금액이 과다한 경우 다시 산정해서 금액을 조정하거나, 회사의 책임도 있다고 보고 피고들의 책임을 제한한 경우입니다. 원고일부승의 51건이 회사의 책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원인제공을 회사가 한 것을 사법부가 인정하면서도 노동자들에게 배상하라고 판결을 하는 것입니다.

 

<1심 원고일부승(93건)-책임제한>

 

판결

건수

최대치

최소치

책임제한

51

80%

10%

언급없음

42

_

_

 

사법부의 판결에서도 ‘노동권’이 중심이 아닌 ‘손해배상’인 회사의 재산을 보전하려는 시각이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근로조건 결정 외 노동권은 인정하지 않는 판결들

 

<1심 원고일부승-주요사유(중복)>

구분/ 중복체크

건수

불법쟁의행위

65

점거

29

절차

11

불법집회

8

위자료

27

고정비

29

 

노동자의 책임을 인정한 이유는 근로조건 결정에서 벗어난 목적을 가졌다고 판단한 경우가 가장 많았습니다. 사실상 정리해고나 원청을 상대로 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행사는 이 단계에서 모두 부정됩니다. 총파업 등 집회 참가도 노동권행사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절차나 수단이 정당하지 않다고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회사의 결정에 따라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노동자들은 절차를 다 지켜서 쟁의행위를 해야 합니다. 절차를 다 지켜도 시설물 파손이나 고정비 등 손해가 있었다면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합니다. 일례로 사법부는 스티커에 매우 민감했습니다. 노조가 권리를 담아 제작한 스티커를 붙이면 스티커 제거비에 대해 대부분 배상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일진다이아몬드지회, KTX 승무지부, 철도노조 투쟁에서 스티커 제거비 등 청소비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났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노동자들의 쟁의행위가 ‘노동권행사’가 아니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즉, 노동권행사라고 하더라도 법원이 인정한 ‘정당한 행위’에 대해서만 인정하겠다는 셈입니다. 헌법의 권리는 기본권으로 주어진 것이지 판사의 판결에 따라 주어지는 게 아닌데도 말입니다.

 

조건부 소취하, 손배가압류를 활용한 노동권 포기 강요

 

우리나라 손해배상청구 사건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개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단결권의 출발은 노동조합 결성이고, 노동자가 단독으로 노동권을 행사하기 어려움에도 노조의 결정에 대해서는 노조가 아닌 개인에게 책임을 씌우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개인을 대상으로 회유와 협박이 용이합니다. 197개의 사건 가운데 10건만이 노동조합을 단독으로 제기가 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187건은 개인을 포함해 소송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온 경우, 조건부 소취하가 된 사례는 아래 표와 같습니다. 희망퇴직을 요구하거나 노조탈퇴, 근로지위확인소송을 포기하게 하거나, 심각한 경우 반성문이나 대자보를 쓰도록 요구하기까지 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조건부 소취하>

요구조건

건수

희망퇴직

11

노조탈퇴

5

근로자지위확인소송포기

17

기타(반성문 등)

2

 

 

다시, ‘노란봉투법’

 

노동권이 부정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의미에 맞게 제도를 다시 세우는 것이 최선입니다. 기존의 법으로도 충분히 노동권을 보장하는 판결을 할 수 있지만, 지난 노동자 손해배상 소송기록 사례를 보았듯이 사법부의 판단에 기대기에 노동자들의 고통의 역사가 이미 33년을 넘어서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시민들이 제안한 법안이 바로 ‘노란봉투법’입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권행사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노조법 개정안입니다. 특히 제2조 5항의 쟁의행위 범위를 근로조건에만 묶어 두지 않도록 범위를 확대하고, 제3조의 “이 법에 의한”과 같이 모호한 구문을 “단체교섭, 쟁의행위, 노동조합활동”으로 구체화해 명시하고 있습니다.

 

노란봉투법은 2014년 노란봉투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이 제안해 2015년 4월 6일 19대 국회에서 발의됐습니다. 단 한 차례만 논의되고 폐기된 뒤, 20대 국회에서도 발의했지만 단 한 번도 논의되지 못한 채 폐기되었습니다. 21대 국회에도 민주당, 정의당에서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권행사가 가로막히지 않도록 국회에서 조속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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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2) 33.3 아카이브는 손배가압류 소송에 대한 기록 전체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사건번호가 남겨지지 않아 사건이 있었음에도 소송기록을 찾을 수 없는 사건들은 제외되어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의 손해배상 사건은 사건번호를 찾지 못해 기록하지 못한 대표적인 손해배상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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