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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동광기연 기습매각과 부당해고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
- 닫힌 문을 열고 현장으로 돌아가자 

이동주 (동광기연 해고노동자)

 

제가 25년 넘게 다니고 있는 동광기연은 동광그룹(회장 유래형) 소속으로 1966년 창업한 동양이화공업(주)를 모태로 자동차부품 제조업을 하면서 성장하였습니다. 2016년에는 국내외 10여 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린 규모 있는 중견그룹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1월 19일 동광그룹과 회사는 안산공장을 비밀리에 매각하고 나서, 1월 23일 월요일 아무 것도 모르고 출근해서 근무하려는 조합원 62명 전원에게 문자로 정리해고를 통보했습니다. 동광그룹으로 성장하기까지 길게는 30년 넘게 근무해 왔던 우리 조합원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회사가 공장 이전을 3번이나 진행하고 회사 법인분리를 강행해도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고 오로지 회사가 하자는 대로 협조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설 명절을 며칠 앞두고 일방적으로 “공장을 매각했으니 집으로 돌아가라. 손해배상 청구하겠다. 위로금 3개월분 줄 테니 받고 떠나라.”며 협박하고 엄동설한에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았습니다. 저는 회사가 무엇이 그리 급해서 그동안 노사가 체결한 ‘고용보장 합의서’ 모두를 위반하면서까지 정리해고를 강행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너무나 억울하기만 했습니다. 
내 나이 마흔 중반이 넘어 귀하게 태어난 딸이 이제 겨우 여섯 살인데, 어떻게 사전 예고도 없이, 문자 하나로 해고를 통보할 수 있는지……. 회사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만 쌓여 갔습니다. 저희는 그동안 회사가 하자는 대로 해왔는데, 결국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가만히 있으라.”고만 했던 세월호 참사처럼, 회사는 저희 조합원과 가족 들의 생존권을 짓밟고 수장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겪고 나서야 저희는 알게 되었습니다. 동광기연㈜이 지난해 4월 멀쩡한 회사를 법인분리하고 둘로 갈라놓더니, 새로운 법인을 설립한 지 1년도 채 안 되어 조합원 전원을 정리해고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동광그룹 총수 일가의 편법‧불법적인 경영세습을 위한 작전세력들,
동광기연 경영악화는 우연이 아닌 필연!

동광그룹은 2010년 이후 동광기연과 동일한 자동차부품 제조업을 하는 자회사들을 설립한 후 사업기회(일감)를 몰아주면서 의도적으로 동광기연의 사업을 축소시키고 경영상태를 악화시켜왔습니다. 또한 동광그룹은 자회사들 사이에 복잡한 순환출자구조를 만들면서 증여세 한 푼 내지 않고 유래형 회장 자녀들(유승훈, 유승찬)에게 경영권과 재산을 이전시켰습니다. 위 승계 과정에서 동광기연 남동공장 매각대금 330억 원으로 그룹 관계사들의 지분을 고가로 매입하고, 은행차입금으로 관계사에 무이자 대여하는 등 재벌그룹들의 불법과 편법의 경영권 승계방식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그 결과 유회장 일가의 자산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여갔습니다. 
반면, 동광기연 회사는 어려워지고, 노동자는 해고당했습니다. 회사는 생산물량을 계열사로 몰아주고 동광기연의 물량은 축소하는 한편, 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 경영 악화 이유를 들며, 임금삭감 등 근로조건 저하를 강하게 요구하였습니다. 동광기연 조합원들은 실제 2014년부터 2016년 사이에 세 차례나 타 지역으로 공장 이전(인천 → 익산 → 인천 → 안산)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2016년 4월에는 회사분할제도를 악용하여 동광기연을 두 개로 쪼갠 뒤 수십 년 동안 일해 온 노동자들은 부채덩어리인 신설기업 동광기연으로 전적시켰습니다. 그러나 반면,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존속기업 동광기연은 1,000억 원의 자산을 가진 우량기업으로 남겼습니다.
결국 회사와 동광그룹은 고용보장 확약서와 노사합의서만 믿고 열심히 일만 해온 순진한 노동자들을 기만하고, 의도된 경영부실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모두 전가시킨 것입니다. 

 

경기지노위 “노사합의서 위반한 공장매각‧정리해고는 부당하다” 판정
지난 4월 27일 고용노동부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동광기연㈜와 관계사가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을 집단해고한 것은 부당해고라고 판정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조합원은 정리해고한 반면 비조합원들은 그룹 계열사로 고용승계하고 심지어 승진까지 시켜준 행위에 대해서도 노동조합법 제81조를 위반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된다고 판정을 내렸습니다. 또한 5월 19일 인천지방법원은 ‘근로자지위보전가처분’에서도 이와 비슷한 취지로 부당해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결국 노동부와 법원은 30여 년 가까이 회사를 위해 일해 온 노동자들을 한겨울에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친 자본의 패륜행위에 대해 묵인하지 않고 저희들의 억울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고 정의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그러나 회사는 이번에도 여전히 경기지노위와 인천지방법원의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판정‧판결을 지키지 않고 불법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회사를 분할과 합병, 양도, 매각 시 70일 전에 통보하고, 노조와 합의 없이 공장폐업, 법인청산, 정리해고를 시행하지 않는다.”라는 노사합의서를 지키지 않았던 회사는 또다시 결정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저희 조합원들은 생존권이 박탈된 채 6개월째 노숙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고, 30~50대 가장이 대부분인 저희들의 생계에 경제적 압박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다리통증이 가중되어 수술을 한 조합원, 암이 발견되어 농성에 합류하지 못하는 조합원 등 해고노동자들의 심신은 날이 갈수록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으며, 정신적 고통마저 가중되어 우리 조합원들의 삶은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러 있습니다. 이에 금속노조는 동광기연을 포함하여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로 심각하게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우선 구제받을 수 있도록 정부에 긴급 요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회사 경영진은 피도 눈물도 없고, 사회적 책임도 없이 저를 포함하여 해고된 조합원 10여 명에게 “주택대출자금을 상환하라.”며 독촉장을 보내고, 법적 절차도 없이 퇴직금까지 압류한 사실도 있었습니다. 동광기연 사용자들의 이러한 악행은 한국사회에서 노조파괴 등 노동관계법 위반과 회사자금을 빼돌려 세금 한 푼 안 내고 경영세습을 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악질 사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억울한 저희들은 금속노조와 함께 동광기연㈜와 관계사 경영진에 대해 노동관계법 위반, 업무상배임 혐의 등에 관해 고소‧고발을 했습니다. 그러나 6개월이 넘도록 동광그룹 총수 일가와 경영진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난 6월 28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부당노동행위 근절방안에 따라 중부고용노동청에 공문을 보내 “동광기연과 그룹사에 대해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등 공세적인 관리감독을 통해 강력하게 처벌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저희 동광기연 해고노동자들은, 동광기연과 관계계열사 최고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과 법 위반으로 인해 생존권이 박탈된 채 6개월째 노숙천막농성을 하며 고용을 보장하라며 외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해고는 살인이다!” 라는 한 맺힌 구호와 이런 가슴 아픈 현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회사는 부당해고를 인정하고 고용을 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동청, 경찰, 검찰은 하루속히 동광기연과 관계계열사 경영진의 법 위반에 대해 처벌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정의가 왜곡되지 않도록, 기업 경영진의 부만 축적하고 노동자는 정리해고 해버리는 잘못된 관행이 더 이상 답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동광기연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소박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당당하게 투쟁하고, 닫힌 공장 문을 열고 현장에 들어가서 노동을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정규직, 길에서 만나다
수없이 고용유지협약 했지만 하루아침에 전원해고
문자해고 6개월 만에 찾아간 자동차 부품사 ‘동광기연’
30년 노동자 박태호(57) 씨가 농성천막을 지키는 이유
 

이정호 (뉴스타파 객원기자)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타고,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찾아간 인천의 동광기연 앞 농성장은 수도권 여느 변두리 공단 풍경이었다. 7층짜리 회사 건물은 일대에서 가장 높았다. 설 명절을 앞두고 전 직원 62명에게 문자로 해고 통보한 지 반년이 다 됐다. 농성천막 안엔 겨울에 사용했던 난로가 그대로였다. 건물 벽엔 ‘동광기연’이란 글자도 없다. 대신 SH GLOBAL(글로벌)이란 영문 이름이 붙어 있다. 
“SH가 뭡니까?” 내가 아는 ‘SH’는 서울도시공사의 약칭밖에 없다. 낼모레 육십을 바라보는 박태호(57) 씨는 “별 뜻 없어. 유래형 회장 큰아들 ‘승훈’의 영문 이름일 뿐이야.” 그랬다. 금속노조 인천지부가 사흘 전 보내온 1천 쪽이 넘는 관련자료에도 SH글로벌, SH I&T, SH BP 같은 ‘SH’로 시작하는 영어 이름의 관계사가 가득했다. 

박태호 조합원은 1987년 6월 27일, 동광기연의 전신인 ‘동양이화공업㈜’에 입사해 30년 동안 이 회사에서 일했다. 전북 장수군에서 1986년 겨울 농한기 때 인천 서운동에 있는 친척집에 놀러 왔다가, 농사짓기 싫고 도시생활 하고 싶어 들어간 곳이 이 회사였다. 당시엔 500명짜리 제법 큰 회사였다. 
농사일이 싫어 20대 후반에 뒤늦게 공장에 들어왔지만 박씨가 맡은 일은 처음부터 녹록지 않았다. 당시 동양이화는 대우자동차 부품사로 차 안쪽 문짝과 천장 내장재를 만들었다. 방음, 방열 효과가 크다는 이유로 유리섬유를 사용하는데 재단하는 과정에 미세먼지가 많았다. 희뿌연 연기 속에서 작업하는 게 영 익숙하지 않았다. 
박씨는 동양이화공업이 동서기연으로, 동광기연으로 바뀌어도 변함없이 30년을 다녔다. 여기서 결혼하고 3녀 1남의 아이 넷을 길렀다. 원청인 대우자동차에 맞춰 A, B조 맞교대로 일했다. A조는 오전 8시에 들어가 저녁 7시반에 나오고, B조는 저녁 7시반에 들어가 꼴딱 밤새워 일하는 주야 맞교대였다. 

 

1 30년을 다닌 공장에서 문자해고 당한 박태호(57)씨 [출처 이정호].jpg

 

30년을 다닌 공장에서 문자해고 당한 박태호(57)씨 [출처: 이정호]

 

박씨가 입사하자마자 7~9월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고, 1988년 노조가 만들어졌다. 처음엔 상급단체 없이 있다가 얼마 뒤 전노협에 가입했다. 박씨도 처음부터 노조에 가입했고, 1990년대에는 조직부장도 맡아 했다. 노조하면 사람들이 ‘빨갱이’라 부르던 시절이었고, 회사도 상집간부들에게 잔업을 안 주거나 월급을 가압류하는 등 교묘하게 이런저런 탄압을 했다. 1998년 IMF가 터졌을 때 후배들이 다시 부탁해 산안부장을 맡았다. 
IMF 직후 회사는 상여금 반납, 학자금 반납, 임금 삭감, 구조조정, 계열사 분리, 통근버스와 식당 운영 중단 등을 휘둘렀다. 결국 노조는 두 달 가까이 파업할 수밖에 없었다. 노조 산안부장이었던 박씨는 회사가 월급 절반을 가압류하는 바람에 새벽에 신문배달하고 출근해 노조일을 했다. 
IMF 이후 회사는 인천 남동공단의 본공장 외에도 김해(SH인피니티), 익산(새한), 부평(새한BP), 인천 송림동(SH CP)에 계열사와 분공장들을 늘려갔다. 이렇게 동양이화공업은 10여 개 계열사와 투자사를 거느린 동광그룹으로 성장했다. 늘어난 계열사가 모두 동광기연과 같은 자동차부품을 생산하고, 생산품목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 2007년 미국서 공부하고 돌아온 30살짜리 회장 아들 유승훈이 입사했다. 입사하자마자 초고속 승진해 지금은 대표이사가 됐고 아버지 유래형 회장은 아들에게 노조 없는 회사를 물려주고 싶었는지 별별 수단을 다 강구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2014년 8월 쌍용차 납품을 늘리겠다며 인천 남동공단에서 전북 익산으로 옮긴다. 멀쩡하게 다니던 직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몇몇은 익산에 집도 샀다. 그러나 회사는 만 1년 만에 다시 인천 남동공단으로 올라왔다. 다섯 달 뒤 2016년 1월 공장에 큰 불이 나자 회사는 이번엔 안산의 반월공단으로 옮기자고 했다. 직원들은 또 따라가야 했다. 직원들이 아침 6시 50분까지 불에 탄 남동공단의 공장 앞에 모이면 회사가 통근버스로 실어 날랐다. 6시 40분쯤 남동공단으로 출근해 버스 타고 1시간 넘게 달려 반월공단 공장에 가서 작업하기를 꼬박 1년을 했다. 회사는 그 사이 남동공단 공장의 설비를 모두 매각한 뒤 지난 설 연휴 직전에 전 직원에게 문자로 해고를 통보했다. 
박씨는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익산과 안산으로 우리를 뺑뺑이 돌린 게 제 풀에 지쳐 퇴사하라는 신호였다.”고 했다. 

 

2 동광그룹 본사 앞 동광기연 해고 노동자들의 천막농성장 [출처 이정호].jpg

동광그룹 본사 앞 동광기연 해고 노동자들의 천막농성장 [출처: 이정호]

 

위로 두 딸은 청년실업의 덫에 걸려 계약직을 전전하고, 셋째 딸이 대학생,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이다. 박씨는 “앞으로 돈 들어갈 일만 남았는데, 이제 와서 해고라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했다. 그동안 회사는 이리저리 공장을 옮길 때마다 노조와 고용유지협약서를 썼지만, 지금 와선 모르겠단다. 정년 4년이 남은 박씨에게 해고란 60년 삶을 송두리째 뺏는 일이다. 박씨는 돌아오는 내게 “싸울 수 있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동광기연투쟁과 조합원인터뷰_이동주+이정호-질라라비20170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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