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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문화예술인 노동조합의 현재와 과제

오경미 (문화예술노동연대 사무국장)

 

 

2020년 1월 20일. 민주인권기념관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이전에는 남영동 대공분실이라 불렸던 그곳에서 문화예술인들의 노동조합 설립기와 교섭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포럼 <문화예술인들은 왜 노조를 결성했나?>가 개최되었다.

이 포럼을 개최한 문화예술노동연대는 게임개발자연대, 공연예술인노동조합, 무용인희망연대오롯, 뮤지션유니온,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등으로 결성된 문화예술단체의 연대체이다.

   

2010년 뮤지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2014년 연극인 김운하, 2014년 예술강사 최정운 등 문화예술인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알려지면서 문화예술인들의 처우 개선과 경제적인 어려움이 사회적인 문제로 급부상하게 된다. 이에 2017년 문화예술인들은 “예술은 노동”이라는 급진적인 의제 아래 문화예술인들을 고용보험제도에 편입시킬 것을 정부에 요구하기 위해 문화예술노동연대를 결성했다.

연대를 결성하고 있는 단체들의 연혁과 규모는 다양하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과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처럼 결성된 지 10년이 훌쩍 넘어 이미 전문적인 교섭 형식과 내용을 갖추고 구체적인 교섭 대상과 교섭해나가고 있는 단체가 있는가 하면, 결성한 지 5년 미만으로 노동조합 활동의 필요성을 알리고 조합원을 모으고 있는 단체도 있으며, 노동조합 결성을 준비하고 있는 단체도 있다.

문화예술인들에게 노조활동은 사회적 인식을 타파하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문화예술과 노동조합이라는 키워드의 조합은 여전히 낯설며, 문화예술계 내 업무 분야와 직종은 다양하고 방대하다. 이런 이유로 노동조합 설립 과정, 교섭 대상의 설정, 교섭 내용의 구성 등 노동조합 활동 과정에서 부딪치는 실질적인 어려움도 제각각이다. 이번 포럼은 이와 같은 다양한 이야기를 한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된 중요한 자리였다.

 

 

문화예술인들의 노동조합 결성 이유

 

문화예술인들의 특수한 사회적인 지위와 이를 악용한 비합리적인 처우, 그 결과인 경제적인 어려움은 문화예술인들이 노조를 결성한 근본적인 이유다. 문화예술인들은 직업 집단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못하며 대부분 주로 예술인으로 분류되거나 프리랜서로 분류된다. 그런데 예술인이나 (예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프리랜서들은 한국에서 정규직 임금노동자로 살아가는 노동자가 보장받는 사회적인 안전망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직업인으로서 예술인의 사회적 지위는 불분명하거나 없다고 간주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불분명한 사회적 지위로 인해 문화예술인들은 문화예술현장에서 종종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처우를 받는다. 문화예술활동은 노동이나 직업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와 문화예술인력과 거래하는 고용주체들은 둘 사이에 이루어지는 거래를 계약으로 인식하지 않아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왔고 이는 관행으로 굳어졌다.

또한 우리 사회는 예술작품이라는 결과물에 대한 가치는 매겨왔으나(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문화예술인들이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과정은 그간 중요하게 고려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정량화되지 않았다. 그 결과 예술인들은 임금 체불을 당하기도 하고 부당해고를 당하기도 한다. 또한 예술인을 고용하는 주체는 작품 생산에 들어가는 최소한의 연습시간이나 준비시간도 책정하지 않거나, 예산절감을 이유로 준비과정을 축소해 예술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고용은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이에 더해 한국 사회는 문화예술인의 사회적 지위를 개선하기보다 악용해왔고, 그 결과 문화예술인들이 현장에서 경험하는 각종 불공정 처우는 개선되지 않고 증가했으며 고용의 불안정성 역시 비례해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예술인들이 처한 현재의 상황은 문화예술인들이 겪고 있는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문화예술인이라는 정체성과 문화예술계 산업생태계의 특수성은 이 모든 비합리적인 환경과 문화예술인의 경제적 어려움을 ‘합법적으로’ 만드는 조건이 되어왔다. 각 단체의 노조 결성 배경에는 이러한 상황이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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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 포럼 현장 [출처: 철폐연대]

 

 

공연예술인노동조합의 경우 예술인들이 작품을 통해 사회적 의식과 문화를 만드는 공적인 창조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정의롭지 못한 작업환경에서 울분을 삭이며 일하고 법적으로 명시된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며 장시간 연습과 공연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예술활동 외의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밥을 굶지 않으면서 예술하기가 가능한 상황에서 예술인의 보편적 복지와 열악한 제작 환경을 개선하고자 했던 것이 2017년 노동조합 결성의 계기가 되었다.

 

음악인들의 생활 또한 다르지 않은데, 주수입원이 주로 공연이나 음악저작물 판매이지만 규모가 작고 불안정하여 강의나 강습을 통한 부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마저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여기에 음원‧음반의 판매수입과 저작권료 수입이 있는데, 저작권을 통한 수입 역시 음반을 여러 장 발표했다고 하더라도 한 달에 몇 천 원이 안 되는 경우도 있으며, 음악제작과정에 참여해 제작지분을 가지거나 분배 계약을 별도로 맺지 않으면 분배받지 못한다고 한다. 뮤지션유니온은 음악생태계의 이와 같은 암담한 현실을 해결해보려고 2013년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출판산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노동의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계약직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중소형 출판사, 즉 5인 미만의 사업장이 많고 편집‧디자인‧마케팅 인력을 외주로 채용하는 특수고용으로 인해 고용이 전반적으로 불안정하다. 근로계약서와 외주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뿌리 깊은 관행, 낮은 작업 단가와 장시간 노동, 임금 체불, 성폭력 문제, 중간업체(번역회사, 기획사, 에이전시 등)들의 다단계 하도급 문제가 심각하다. 2009년 인터넷을 통해 조직화를 시도했던 출판노동자협의회를 시작으로 긴 과정 거쳐 2012년 개별 노동자들이 가입 가능한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가 설립되기에 이른다.

 

영화제작 현장 스태프들의 경우 오랫동안 턴키계약으로 노동을 착취당해왔다. 영화현장의 스태프는 제작, 연출, 촬영, 조명, 미술, 분장, 의상, 녹음, 소품, 그립 등을 담당하는 부서별로 전문화된 노동자들을 통칭한다. 각 부서는 도제식 시스템으로 작동해왔고, 이 시스템은 각 부서의 감독급 스태프가 전체 스태프를 대신해 계약하는 팀별계약(턴키계약)을 양산했다. 문제는 턴키계약 금액을 제작사가 부서별 필요 인원과 적정 임금을 고려하지 않고 임의로 결정했으며, 감독급 스태프가 재량에 따라 제작사로부터 받은 금액을 임의로 배분해왔다는 것이다.

또 임금이 계약금 잔금의 형태로 지급되어 50%는 촬영 시작 전, 나머지는 촬영 종료 후 지급하는 계약이 일반적이어서 촬영이 종료된 후에도 잔금 지급이 안 돼 임금 체불로 이어지거나 영화제작이 중도에 무산되면 받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영화현장의 스태프들은 영화제작 현장의 착취적인 노동 환경이 비정상적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현장 스태프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2005년 노동조합을 창립하였다.

 

전국예술인강사노동조합의 결성 배경은 문화예술인의 처우 개선에 힘써야 하는 국가와 정부기관의 능력의 한계치를 보여준다. 전국예술인강사제도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문화예술인들이 자신들이 가진 숙련기술을 활용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초‧중‧고등학교와 예술인들을 매칭해주는 제도로 한국문화예술진흥위원회가 담당기관이다. 연극인, 무용인, 음악인, 미술작가, 만화작가 등 대부분의 문화예술인력들이 예술강사제도의 ‘수혜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예술활동을 업으로 인정해 그를 통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부가적인 활동을 통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였다는 취지는 문화예술활동의 가치에 대한 국가와 정부의 인식의 한계를 보여준다.

또한 제도의 설계와 시행 과정에 있어서도 한계를 드러냈다. 예술인강사제도의 수혜대상인 예술인들의 제도상 법적 지위는 애매모호하다. 예술인강사들의 업무 내용은 정규직 교사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지만 그에 상응하는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예술인강사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진흥원은 제도 시행의 절차를 변경하여 오히려 예술인의 권익을 침식하는 아이러니한 행태를 자행하기도 했다.

2008년에 한 예술강사가 예술강사사업을 주관하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주최한 예술강사 연수 때 사고를 당한 후 산재보험료를 진흥원으로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한다. 이 소송에서 대법원은 예술강사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는데,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은 대법원의 판결을 따르지 않고 서둘러 예술강사 지원사업을 지역문화재단으로 이관하며 예술강사들의 수업시수도 제한해버린다.

하루아침에 예술강사들은 최단시간 노동자로 전락했으며, 4대보험과 실업급여 제도 등의 혜택에서도 자연스럽게 제외되어 버리고 말았다. 예술인강사제도가 시행된 지 15년이나 흘렀으나 강사료는 딱 한 번 인상되었다. 물가 인상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강사료가 삭감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학교 강의 시수에 대한 임금만 지급받는다. 임금이 낮을 수밖에 없고, 방학 때 강의료가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필히 병행할 수밖에 없다. 도서산간 지역으로 배정받았을 경우 교통비, 숙박비도 개인 사비로 지출하며 강의를 다녀야하며 실업급여, 퇴직금도 지원되지 않는다.

동등한 지위를 보장하지 않는 근거는 이들이 바로 예술인이기 때문이다. 법적 사회적 지위가 모호한 예술인이라는 정체성은 이처럼 값싸게 이들의 전문성을 착취하려 할 때 흔히 활용된다. 전국예술인강사노동조합은 예술인강사제도에서 나타난 전반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한 예술인강사들이 모여 예술인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고자 2013년에 발족되었다.

 

   

문화예술인들은 누구와 어떤 내용으로 교섭하나?

 

노동조합의 교섭력은 단체의 연혁에 비례한다. 산업화된 정도 역시 단체의 교섭 경험과 교섭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다. 산업화된 정도가 높을수록 문화예술인들과 계약을 맺고자 하는 사용자 집단(교섭대상)이 뚜렷해지며 사용자 집단이 문화예술인을 착취하는 근거 역시 명확해지기 때문에 교섭의 내용 역시 구체화된다.

문화예술노동연대의 연대체 중 연혁이 가장 오래된 단체인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은 연혁만큼 교섭력, 교섭 내용에 있어 매우 전문적이며 교섭대상 역시 꾸준히 확대해나가고 있다. 한국방송연기자노조는 노동위원회와 행정소송 항소심 등을 거치며 2018년 대법원으로부터 방송연기자의 노조법상 근로자 인정 판결을 받아냈다. 또한 한국 주요 방송사와 방송연기자의 출연료, 장면재사용료, 야외·철야수당, 촬영시간, 복리후생, 휴게 및 조합 활동 등 근로조건 전반에 관해 사용자인 방송사와 단체협상을 진행해왔다.

이 중 출연료 협상은 매년 실시하여 출연료 상승을 통해 재방료의 인상 결과까지 꾀하여 연기자들의 수입에 다각적인 변화를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연기자들의 안정적인 생활과 작품 활동을 보장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출연료지급보증제도(제작사가 연기자에게 출연료를 전액 지불했다는 사실을 노조가 확인해야 방송사가 제작비를 제작사에게 지불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를 운용함으로써 외주제작이 만연해지면서 나타난 출연료 미지불 사태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외에도 방송사와의 협상을 통해 촬영 시 소품을 연기자에게 부담시키거나 장시간 촬영을 하거나 안전 대책이 미흡한 촬영 환경을 방송사와 함께 점검하는 등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2018년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은 대법원으로부터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의 적법성, 정당성을 인정받아 교섭대상을 지상파 3사와 더불어 종편 4사 및 케이블 PP사인 CJ ENM, KBS엔, MBC플러스, SBS미디어넷, IHQ 등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역시 노조 설립 당시부터 영화 현장의 근로기준법 적용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단체교섭 요구안은 근로기준법 및 노동관계 법령을 기초로 확정했다. 초기에 교섭요청에 응대한 제작사들이 없어 교섭에 난항을 겪기도 했으나 점차 노동시간에 대한 개념이 자리잡기 시작하고 현장의 분위기가 장시간 노동을 금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진전을 보였다. 오랜 노력의 결과 최근의 현장은 근로계약서 사용이 늘고 근로기준법 준수 의식도 높아져 상당수의 현장이 하루 12시간 내로 촬영을 진행하고 있으며 고용보험 작용으로 실업 시 실업급여 제도도 활용하게 되었고 임금도 상승하였다고 한다.

 

반면 순수예술분야에 가까운 문화예술인의 경우 교섭대상을 특정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순수예술인들은 거대한 산업체와 거래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을 집행하는 지자체나 국가기관에서 운영하는 문화예술사업에 선정되거나 작은 사업장에서 공연을 하는 등으로 예술활동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섭대상이 예산을 배분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인지, 예산을 받아 집행하는 지자체인지 국가기관인지 특정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전국예술인강사노동조합이 얼마 전 받은 판결은 이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겠다. 전국예술인강사노동조합은 2016년 3월 교섭대상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라는 판정을 받았고, 판정을 받은 이후 서울 지역을 대상으로 교섭을 먼저 시작해 현재는 전국으로 범위를 넓혔다. 80여 차례의 교섭 후 임금 인상, 방가와 공가, 실업급여 산입일 명시, 출산과 유산‧사산 및 육아휴직, 인권침해 사항 조치, 업무 관련 사망 위로금 지급, 노사 협의 고충처리위원회 마련, 월 식비 7만 원 지급 등의 안에 합의하는 성과를 이뤘다.

 

 

앞으로의 과제

 

포럼 당일 발표자들 중 다수가 조합원 확대의 문제를 주요 과제로 꼽았다. 조합원의 확대는 노동조합의 존재와 활동이 가져온 긍정적인 측면과 미래적인 가능성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할 것인데, 노조활동과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한국 사회에서 이는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로 여겨진다.

이에 몇몇 발표자들은 해당 분야 노동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사회적인 이슈가 터졌을 때 조직의 확장을 경험했다고 말했으며,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이들의 동참 제안 역시 조합원 확대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건이 터진 뒤 이루어지는 조직의 결성과 확대는 비극을 미리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로 남을 것이다.

따라서 문화예술인들이 스스로의 노동인권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에 동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과 미조직된 채 남아있는 수많은 문화예술 분야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할 수 있도록 노동인권 확보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이 우리 문화예술노동연대의 근본적이면서도 우선적인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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