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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떤 꿈을 꿀 것인가?
- 2018년 정세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활동 방향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


문재인 정부 노동·경제 정책의 전제

문재인 정부는 지금은 ‘경제위기’이며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고 평가한다. 물론 ‘양극화’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고용형태와 기업구조에 따른 임금격차가 커지고 있지만 일부 정규직이나 금융소득자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빈곤화’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정책으로 ‘소득주도 성장론’을 내세우는데, 한국 노동자들이 저임금이라서 소비여력이 없는 상태를 반영하면 소득이 올랐을 때 어느 정도의 소비여력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치가 있다. ‘소득주도 성장론’이 현실화될 경우 일정 수준 가시적 성과가 있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아래를 끌어올리는 전략’을 이야기한다. 이를 위해 최저임금을 단계적으로 1만 원으로 인상하며, 공공부문에서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한다는 계획을 제출했다. 문재인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노동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여긴다. 그런데 정부는 노동자와 사용자를 논의 테이블로 부르기는 하지만 두 주체를 인정하기보다는 양보를 받아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는 민주노총이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조직이라고 비판하고, 비정규직을 위해 양보하라고 종용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주체로 여기지는 않는다. 소위 ‘전문가’들로 비정규직을 대리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런 ‘전문가주의’적 정책은 정치이벤트와 결합한다. 거창한 선언은 난무하지만 현실에서 이것을 작동시키기 위한 힘을 고려하지 않고 ‘지지율’에 의지해서 대응하려고 하니 이벤트 중심으로 정책을 만들어나가게 된다. ‘던져놓고 알아서 하라’고 하는 정책 속에서 노동자들은 갈등하거나 고통받는다. 이 정부는 노동자에 기반한 정치를 할 의사도 없고, 의식적으로는 신자유주의를 신봉한다. 물론 불안정노동의 확대 속에서 고통받는 노동자 문제를 어느 정도 수준에서는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관료집단을 통제할 자신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그러면서도 기업과 노동자를 잘 조율하겠다는 환상 속에서 전문가들을 동원하고 여론에 기대는 것이다. 

 

대표적인 노동정책의 허상

추상적인 정책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전환할 때에는 세력관계에 따라 변화가 생긴다. 정부 정책은 고용노동부 등 기존 조직을 통해 실현되는데, 그 공간은 기업의 권한이 막강하고 관련자들의 의식은 경쟁과 효율의 논리가 가득하다. 이 속에서 현실가능성과 여론을 핑계로 정책은 왜곡되고 희석된다.
대표적인 것이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이다. 5월 12일 인천공항을 방문하면서 발표한 이 정책은 ‘빛 좋은 개살구’이다. 학교비정규직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가 단 2%만 정규직 전환대상으로 결정했듯이 제외대상이 늘어나고, 정규직이 아닌 무기계약직 전환이나 자회사 방식이 채택된다. 직무급제 도입을 위해 이런 왜곡된 고용형태를 고집한다. 기획재정부는 예산을 통제하며 정규직 전환을 위협한다. 정부는 기관의 반발이나 기재부의 통제에 눈을 감고 기관별로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는 태도를 취한다. 책임지지 않는 정책의 표본이다. 
최저임금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2018년 최저임금은 시급 7,530원으로 16.4%나 올랐다. 그런데 재계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그것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자, 최저임금 인상의 실효를 없애는 편법에 눈감고 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현실화하는 유일한 대안인데 이것이 무화될 경우 정책방향에 타격을 입게 된다. 하지만 정부는 최저임금에 대한 보수언론과 기업의 공격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채 오히려 최저임금의 산입범위를 조정함으로써 재계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한다. 이 경우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는 줄어들고 ‘소득주도 성장론’은 무화된다. 
노동시간 단축도 결국은 ‘단축’이 아니라 52시간을 법제화하되 할증을 없애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고 있다. 정책은 거창하되 현실에서 기업과 타협하는 지금 정부의 태도로는 모든 정책이 ‘개악’된다. 그래놓고 노동자들에게 ‘1년만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한다. 그 1년이 노동자들의 삶을 어떻게 후퇴시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솜방망이 부당노동행위 처벌, 핑계와 미루기

정부는 ‘노동존중’을 이야기하며,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고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일방변경 지침을 철회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최저임금을 빌미로 한 취업규칙 일방변경이 진행되고 있다. 사측의 심각한 노조탄압 등 부당노동행위를 근절하겠다고 하고 특별근로감독도 강화하겠다고 한다. 기업의 행위를 범죄로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진전된 바이지만,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제재조치가 벌금에 머문다는 점에서 실효는 없다. 사용자들은 벌금을 내고 버티면서 정부의 정책기조가 바뀔 때를 기다리고 있다. 언론은 ‘친노동정부’ 운운하며 문재인 정부를 압박한다. 
문재인 정부는 가시적 효과를 위해서라도 심각한 노조탄압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할 것이다. 하지만 법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는 침묵한다. 쌍용자동차-마힌드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한국GM은 산업은행이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마무리되자마자 철수 협박을 하면서 노동자들을 해고하는데도 침묵한다. 유성기업이나 콜트콜텍, 파인텍 등 심각한 노동 사안에 대해서도 문제 해결 의지가 없다. 효과가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구분해서 생색내기가 가능한 곳에만 대응한다. 
행정조치로 할 수 있는 것도 정치적인 계산을 하면서 하지 않는 것이 많다. 민주노총 한상균 전 위원장 석방 문제나 전교조 합법화는 2018년 지자체 선거에 불리하다는 판단으로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조를 인정하겠다고 해놓고, 택배기사는 인정하고 대리기사들의 노조설립신고 변경은 받아들이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원청사용자 책임 제도화’도 ‘노사정위원회 논의 사항’이라고 후퇴하고 노동시간 개악 문제는 국회 핑계를 대고 있다. 법적인 문제는 국회 핑계를 대고, 행정적 문제는 정치계산을 앞세우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의 탄압 일변도 정책과는 다르지만 절차적 민주성만을 강조할 뿐, 노동자들을 여전히 통제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민주노총을 전체 노동자의 대표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회의소’와 같은 발상을 하고 자신들이 미조직 노동자들을 대표한다고 하면서 전문가들을 내세우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 정부에서 노동자들은 아직 시민권이 없다. 

 

노동운동의 상태와 과제

노동운동은 문재인 정부에 기대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미래전략도 없고, 촛불로 열린 공간의 주체적 활용방안도 없다. ‘노사정위원회 참여’가 민주노총 선거 쟁점이었다는 것은 노동운동의 관심이 ‘노동자대중과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로 쏠려있음을 보여준다. ‘산별노조와 정치세력화’라는 운동과제가 실패로 귀결된 현재, 어떤 과제를 제출할지 깊이 논의된 바가 없다. 한상균 집행부는 민주노총 20주년 정책대의원대회에서 전망을 논의하겠다고 하였으나 정책대대 준비도 충분하지 못했거니와 대대가 무산되면서 이후 방향에 대해 논의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전망 없는 운동이 유지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 커지고, 정규직 조합원들의 문제적 행태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기아자동차지부의 조직분리 결정, 금속노조의 판매연대 가입 불승인, 전교조의 ‘기간제 정규직화에 대해 동의하지 않음’, GM지부의 인소싱 동의, 지하철노조 정규직들의 집단 반발 등 예전의 민주노조운동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진다. 비판의 목소리는 높지만 반성과 방향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작다. 노동운동은 사회 안에서 고립되고,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신뢰를 잃고 있다. 노동조합이 경쟁과 성과주의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조합원 이익’ 중심의 협소한 운동을 해왔던 것의 반영이며, 수세적인 대응만 해왔던 것의 결과이기도 하다. 
‘투쟁’도 추상적이고 선언적이다. 투쟁이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가,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실천이 따르는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조합원들을 투쟁에 함께하도록 하는 ‘전망’은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열심히 싸우지만 이것이 사회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니 제도 개선도 쉽지 않고 다시 정부에 기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노동법은 개악되고 타협이라는 이름 아래 약자들이 희생되는 일이 반복된다. 
지금은 문재인 정부를 통해 제대로 된 제도 개선을 하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독자적인 투쟁으로 현실을 바꾸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은 문재인 정부 아래 ‘합리성’이 조금은 형성되는 공간을 이용하여 비합리적인 자본의 탄압을 어느 정도 제어해야 한다. 또한 ‘조직화’에 최선을 다해 집단적 힘을 키우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노동운동의 의제를 ‘전체 노동자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운동의 방향을 마련하면서 그 방향과 가치에 동의하는 주체들을 모아나가야 한다. 지금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힘을 키워야 할 때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활동 방향

첫째,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에 매진한다. 
노동운동이 힘을 가지려면 더 많은 이들이 집단적으로 모여야 하고 자신의 권리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철폐연대는 그동안 조직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직화 사업도 매우 관성적으로 흘러왔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를 고민했던 문제의식을 다시 살리고, 새로운 조직화의 샘플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다시 기울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 반월시화공단 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의 활동에 더욱 집중하고, ‘직장갑질119’ 등을 통해 조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둘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 대한 대응력을 높인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임금체계 개편, 최저임금 등 비정규직과 관련한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 정책의 의미와 한계를 제대로 분석하여 노동운동이 잘 대응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대응에는 순발력도 필요하지만 산업정책이나 임금정책 등 장기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도 있다. 따라서 철폐연대는 정세대응팀을 통해 정부 정책에 대한 대응력을 높임과 더불어 ‘비정규직 권리연구소(가칭)’를 설립하는데 힘을 다할 것이다. 

셋째,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연대 조직을 만드는데 기여한다. 
비정규직 노동조합들이 공동의 과제를 위해 공동투쟁도 해야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만이 아니라 전체 운동사회의 과제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도록 제안하고 토론해나가야 한다. 민주노총에서는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회의를 진행하기도 하고, 비정규직 단위들의 토론회에서는 비정규직노조협의체 구성도 제안된 바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연대 조직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철폐연대도 협조하고 노력한다. 이를 위해 2018년에는 비정규직 단위들과의 토론을 활성화하고, 비정규직운동의 전망이나 조직화의 방향, 공동투쟁의 과제에 대한 토론을 적극 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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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7.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15차 정기총회 [출처: 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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