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투쟁/이슈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죽음까지 차별하는 사회, 결국 비정규직 제도 문제다

- 충북도 도로보수 비정규직 노동자의 순직 인정 촉구 투쟁이 준 교훈

선지현 (비정규직없는 충북만들기운동본부 집행위원)

 

1 충북도 도로보수 비정규노동자 순직인정을 촉구하는 거리 서명운동 [출처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jpg

 

지난 9월 17일 강릉에서 불을 끄다 순직한 소방관들을 애도하는 각계인사들의 조문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할 때, 이유 없는 울분이 치솟았다. 대통령과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순직한 소방노동자들을 애도하며 이 사회의 안전과 구성원들의 생명을 지켰던 그 희생을 기억하자고 하고, 제도도 개선하자고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나아가 위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노동환경과 법제도를 바꿔내는 것은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살아남은 자들의 책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그 애도는, 숭고한 희생에 대한 기억은 죽은 이의 신분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야 하는가! 울분은 여기서 시작됐다.

 

신분이 다르니 적용되는 법도 다르다?

7월 16일 청주에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22년 만에 내린 최대 폭우였다. 폭우는 위협적이었다. 가난한 이들의 집은 수해로 잠겼고, 오래된 아파트들은 폭우에 대비하는 기계들이 멈췄다. 그 빗속에서 삽 한 자루를 들고 거리로 나선 노동자가 있었다. 오전 7시 비상소집 명령을 받고 지하차도로 출동한 이 노동자는 하루 동안 290밀리미터의 폭우가 쏟아지는 거리에서 배수로를 뚫어야 했다. 도로 침수가 반복돼 10시간 만에 겨우 배수로를 뚫었다고 한다. 제대로 된 기계 하나 없이 오직 삽 한 자루로 무려 14시간 동안 폭우 속에서 일했던 노동자. 그는 16년 동안 충북도 도로관리사업소에서 일한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는 국가기관인 충북도가 내린 출동 명령에 따라 거리로 나섰고, 폭우로 인한 피해 최소화에 열을 올렸다.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면서 마지막까지 업무를 수행했다. 그 노동자는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었다는 신분의 차이만 있을 뿐 ‘공공의 업무를 수행한 노동자’였다. 그는 폭우 속에서 14시간에 걸친 장시간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과로사로 사망했다. 그런데, 그 죽음을 두고 논란이 벌여졌다. 공공업무를 수행했음에도 순직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정부 관계기관의 입장발표 때문이다.

이 입장을 발표한 곳은 공무원연금관리공단과 인사혁신처. 이들의 근거는 단순하다. 공무원이 아니라는 것. 순직은 국가가 정규직으로 고용한 노동자에게만 부여되는 것이었다. 어떤 일을 했고, 무엇 때문에 죽음으로까지 이어졌는지는 그 다음 얘기였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자문을 했다. 인권위는 ‘공공 업무를 수행했으니 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권고를 내렸다. 그러나 인권위 권고는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충북도는 중앙정부의 판단과 법을 얘기하며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죽음까지 차별하는 사회에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이하 비정규운동본부)는 이 소식을 접하고 ‘순직인정 촉구 운동’을 벌이자고 결정했다. 거리서명을 시작했다. “폭우 속에서 청주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수해 복구를 하다가 사망한 노동자입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순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죽음까지 차별하는 사회에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시민 여러분,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서명에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간절함이 담긴 호소였다. 시민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예전의 서명보다 두세 배가 넘게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판을 2개로 늘렸다. 3주간의 짧은 서명운동이었지만 거리에서 받은 서명이 온라인 서명이나 노조가 있는 사업장 서명보다 훨씬 많았다.

어느 날은 한참 서명을 받고 있는데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청소년이 다가와 “저…… 돌아가신 분이 작은 아버지예요.” 한다. 서명을 돕겠다며 서명용지를 가져가겠다고 온 것이다. 순간 울컥했다. 유족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순직 인정이 안되니 그런 줄 알았던 모양이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충북도와 도의회, “우리는 건의했다”

비정규운동본부는 8월 24일 12,836명의 서명을 들고 충북도와 도의회, 인사혁신처를 방문했다. 충북도에게는 중앙정부에 핑계만 대지 말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고, 도의회에는 순직 인정을 위한 특별 결의문 채택과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인사혁신처에도 시민 서명을 전달했다.

8월 31일에는 고인이 된 노동자가 소속된 한국노총 공공연맹에서 순직 인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어 9월 11일에는 충북도의회가 순직 인정 촉구 건의안을 채택했다. 며칠 후 비정규운동본부에 충북도, 도의회, 인사혁신처의 답변서가 도착했다.

충북도와 도의회는 중앙정부와 정치권에 건의했다는 답변, 인사혁신처는 ‘안타까운 죽음이나 도리가 없다’는 것과 ‘제도 개선방안을 현재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변한 게 없었다. 건의했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는 충북도나 ‘법’ 운운하며 ‘도리가 없다’는 인사혁신처나 여전히 잣대는 ‘신분’ 뿐이었다. 공공업무를 수행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망은 ‘안타까운 죽음’이기는 해도 ‘순직’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비정규직 제도가 만들어 낸 내재화되는 차별의식

순직 인정을 촉구하는 운동을 벌이는 동안 ‘공무원과 같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은 곤란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공무원 노동자들이 박탈감을 느낀다’는 얘기도, ‘공무원 연금을 내지 않았는데 어떻게 연금을 달라고 하느냐’는 얘기도 들었다. 같은 시기에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대책을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주장이 여론의 힘을 얻고 있었다. 심지어 운동사회에서도, 노동조합운동 안에서도 이 논리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오랜 기간 취업준비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박탈감을 준다는 주장,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특혜라는 주장, ‘공정사회’에 어긋난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주장들이 온라인 소통망을 통해 퍼졌고, 언론보도로 이어졌다.

다양한 주장이었지만, 본질은 같았다. ‘차별을 양산하는 비정규직을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라졌고, 그토록 외쳤던 평등사회는 공정사회로 대체됐다. 20년 전 도입된 비정규직 제도는 우리 내면에 자리 잡았고, 단순히 고용형태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모든 것들에 차별과 위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도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제도가 만들어 낸 우리 안의 차별의식은 강고했다. 어쩌면 법보다도 깨기 어려운 강력한 이데올로기 같다.

 

제도와 의식을 바꾸는 문제

사실 도로보수 업무는 공무원 업무였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유연화 정책이 각종 공공업무를 외주화했고, 비정규직으로 만들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도로관리사업소는 120명이 하던 일을 77명으로 감축하면서 노동자의 노동강도는 높아졌다. 그 결과 1명당 국토훈령의 두 배가 넘는 25km의 거리를 감당해야 했다. 장비는 또 어떤가! 그 폭우 속에서 노동자에게 주어진 것은 삽 한 자루. 충북도는 노동자 사망사고가 있고 나서야 미니포크레인 등의 장비를 지급했다고 한다. 이것이 과로사를 만든 근본 원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순직 인정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넘어 비정규직 제도가 만들어내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위험한 환경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인 것이다.

죽음까지도 차별하는 사회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외침에 공감을 하는 이들은 많다. 충북도의회까지 순직 인정 요구에 동참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정부 관계기관과 충북도의회는 우리가 ‘시혜를 베풀어 예외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그러니 계속 안타깝지만 법제도가 그렇다는 얘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 문제의 본질은 비정규직 제도 그 자체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만 저들과 정면으로 마주보고 싸울 수 있다. 그래야만 공정사회 운운하며 노노갈등을 부추기는 저들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설 수 있다. 그래야만 노동자들 내면까지 자리 잡고 있는 위계와 차별의식을 걷어낼 수 있다. 그래야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험으로 내모는 이 구조를 바꿔낼 수 있다. 도로보수 비정규직 노동자가 남기고 간 것은 20년 전 비정규직 제도에 반대하며 외쳤던 ‘비정규직 철폐’ 그 정신이다.

 

 

죽음까지차별하는사회, 결국비정규직제도문제다_선지현-질라라비201710.pdf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