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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2%

 

우리가 뉴스다! 다온분회 투쟁기

 

윤미영 • 전국언론노조 대구MBC비정규직 다온분회 분회장

 

 

 

2017년 9월, 회사가 다시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파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실직상태에 놓이게 됐다. ‘이번 파업은 또 얼마나 갈까?’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2012년에도 MBC노동자들은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170여 일간 파업을 했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파업의 대의는 잘 알고 있고, 함께 일하는 동료·선배들이 파업에서 꼭 승리하길 응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음이 좀 더 무거웠다. 암흑 같았던 지난 170여 일이 아직 생생하게 기억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프리랜서일까? 우리가 노조 할 수 있을까?

두 번의 파업은 노동자로서 내가 놓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나는 비정규직이면서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실업급여의 혜택은 고사하고, 회사가 뉴스 제작을 중단하니 제작비를 통해 임금을 줄 수 없단 이유로 다음 날부터 출근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내 통장 수입은 다시 0원이 되었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우리 같은 사례가 또 있을까 싶어 답답한 마음에 찾아본 인터넷에서 방송노동자의 근로자성에 대해 알려주는 홈페이지를 발견했다. 그걸 보고 나니 그동안 마음 한 켠에서 늘 의문을 품어왔던 궁금증이 다시 밀려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진짜 프리랜서가 맞나?’

답을 찾기 위해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노동청을 찾아갔다. 노동청 직원과의 상담에서 우리는 높은 확률로 노동자성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답을 듣고 나서 자신감이 붙은 우리는 씩씩하게 회사와의 임금 협상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나름대로 열심히 자료도 조사하고 양식도 갖춰서 찾아갔는데 아뿔사! 회사와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부터 막혀버릴 줄이야….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리를 도와주던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탁종열 전 소장은 노조를 만드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노조를요? 저희 네 명이서 노조를 어떻게 만드나요?”

노조는 원칙적으로 2명이상이면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이 큰 회사에 우리 넷이서만 노조를 만든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걱정되기도 하면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다른 회사 동료들의 이목이 두려웠다.

 

뭐든지 처음이었던 다온분회의 눈물겨운 시간들

한참을 노조 만드는 걸 망설이다 보니 상황은 변하지 않은 채 시간만 계속 흘러갔다. 그러던 2018년 12월, 낯선 번호로 연락이 왔다. “혹시 노조를 만든다는 말이 있던데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지금의 부분회장인 한혜원 동지의 연락이었다. 이건 정말 노조를 만들라는 하늘의 계시구나 싶어 버선발로 달려 나가 그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는 민주노총 전국언론노조와 함께 노조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그 뒤로는 마치 순풍에 돛 단 듯 모든 것이 착착 진행되어갔다. 회사 내 상시 고용되어 있는 프리랜서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노조를 만들자고 설득해서 총 12명의 조합원이 모였다. 해가 바뀌어 2019년 1월 31일, 드디어 전국언론노조에서 처음이자 방송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최초의 노조인 대구MBC비정규직 다온분회가 출범했다. 눈물이 많은 나는 출범식에서 분회장으로 뽑힌 소감을 말할 때부터 울기 시작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노조 활동하면서 흘릴 눈물이 이렇게 많을 줄 알았다면 그 때 조금 덜 울걸 그랬나 보다(웃음).

그렇게 눈물의 출범식이 끝난 후 눈물자국이 마를 새도 없이 보름 만에 우리 사무국장이 계약해지가 됐다. 경영상의 이유로 더 이상 회사 매거진을 발행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지만 지난 4년간 몸담은 회사를 한 달 만에 나가라는 말은 자본의 논리와는 별개로 인격적인 상처였다. 우리는 또다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노조를 만든 지 일 년도 안돼서 사무국장을 포함한 조합원 3명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가뜩이나 조합원 수도 10명 남짓 밖에 안 남았는데 더 이상 단 한 명의 조합원도 잃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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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24. 다온분회 첫 피켓시위! 윤미영 분회장과 한혜원 부분회장이 함께했다. [출처: 대구MBC비정규직 다온분회]

 

회사의 거듭된 냉대, 어쨌거나 시작된 첫 단체교섭

그러자면 우선 어서 빨리 교섭에 들어가야 했다. 노조를 만들고 나면 교섭은 당연한 수순으로 알았는데, 슬프게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체교섭은 우리에게 있어 꿈같은 일이었다. 회사에 교섭요구 공문을 보내고 난 뒤 두 달이 지나서야 어렵사리 회사 경영국과 첫 상견례를 가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회사가 내놓은 입장은 그간의 기다림이 무색할 만큼 허탈감을 가져다 줬다.

다온분회 조합원들은 ‘프리랜서’이고 ‘프리랜서’는 각 국의 소관이니 각 국과 ‘처우개선을 위한 협의’를 하든 대구MBC지부를 통해서 하든지 하라고 했다. 앞서 교섭 공문의 ‘교섭’ 단어에도 민감하게 군 회사였기에 ‘협의’자리로 낮추어 들어간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우리와의 ‘협의’는커녕 교섭 대상자를 명확하게 하라며 언짢은 내색을 비추었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회사와의 첫 만남이 끝나고 망연자실하던 중 사무국장과 조합원이 고용노동청에 넣은 퇴직금 진정 결과가 나왔다. 그동안 프리랜서로 일했다던 회사 주장과는 반대로 ‘법해석상 노동자성이 인정되니 퇴직금을 포함한 미지급 주휴수당까지 지급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결과는 우리 다온분회 조합원들의 노동자성이 함께 인정받은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우리는 더욱 자신 있게 회사에 교섭을 요구하는 공문을 재차 보냈다. 하지만 회사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인내심을 갖고 회사의 답변을 목 빠지게 기다리던 중 대구MBC지부의 노사협의회가 열렸다. 사내에 붙은 노사협의회 결과문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도 언급되어 있었고 우리는 거기에 기대를 걸고 대구MBC지부를 찾아갔다.

 

처우개선 요구했더니 건당 보수 지급하겠다는 방송국

대구MBC 지부와 만나 다온분회를 비롯한 사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며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하던 찰나, 회사에서 우리 조합원에게 바우처 지급을 통보했다. 그동안 매주 꼬박꼬박 지급되던 주급을 하루아침에 프로그램 건당 보수 지급 방식으로 바꾼다는 거였다. 그렇게 되면 프로그램이 결방될 때마다 지급되는 돈이 줄어드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게다가 바우처 지급을 통보받은 조합원은 우리 노조에서도 연차가 가장 높은 22년차 자막CG였다. 22년을 한결같이 일한 노동자에게 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임금 지급 방식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건 너무나 부당한 일이었다.

조합원 한 명의 문제는 곧 앞으로 닥칠 우리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회사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다. 멀리서도 잘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형광색 조끼를 맞추고 ‘바우처 전환 계획 폐기’와 ‘교섭’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회사 앞에 섰다.

처음 피켓팅을 하러 가는 날, 어찌나 떨리던지 전날 잠도 제대로 못 자서 부은 눈으로 준비된 피켓을 들고 회사 로비로 걸어갔다. 저 멀리 나와 같은 조끼를 입고 있는 조합원이 보이자 방금 전까지 떨리던 마음이 금세 사그라졌다. 함께 투쟁하는 동지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새삼 곁에 있는 조합원의 존재가 너무 고맙고 애틋하게 느껴졌다.

다온분회의 피켓팅 소식은 곧 포털사이트 메인 뉴스에 걸릴 정도로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일까? 피켓팅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사측은 바우처 전환 계획을 취소했다. 우리의 여론전과 피켓팅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듯해서 조합원들끼리도 자신감이 막 붙은 참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교섭에 있어서는 여전히 단단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도 지치지 않고 피켓팅을 이어 나가며 회사와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계속 하던 중 대구MBC지부가 중재에 나섰다. 그리고 사측과 분회가 서로 한 발씩 양보해서 조합원이 소속된 각 국장과 매주 만나 다온분회 조합원의 처우개선을 협의하는 자리를 만들고 협약서를 체결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그날은 우리가 피켓팅에 돌입한 지 73일째, 대구 낮 기온이 30도를 웃돌던 초여름 6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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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6.24. 대구지역 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전국언론노조 대구MBC비정규직 다온분회 조합원들. [출처: 대구MBC비정규직 다온분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각 국장과 다온분회 조합원의 처우개선을 위한 협의자리는 7월에 시작해서 9월 마지막 날 끝이 났다. 다온분회가 방송국 비정규직 노동조합으로서 하는 첫 교섭인 만큼 첫 단추를 잘 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3개월 동안 7번의 만남으로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 소폭이지만 임금 인상을 하고, 심야 출근자에게 교통비를 지급하는 것과 앞으로 매년 이 자리를 정례화하는 것 그리고 올해 시간이 부족해서 하지 못했던 직군별 연차에 차등을 둔 임금테이블을 내년에 완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해야 했다.

분회장인 나도 교섭 결과를 두고 이렇게나 아쉬운데 조합원들은 오죽할까 싶어 걱정스런 마음으로 조합원들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조합원들은 우리가 함께 투쟁해서 이뤄낸 값진 결과이니 그 자체만으로 족한다고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교섭 마무리 기념 축하 파티를 성대하게 열어서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다고 서로 다독이며 우리의 첫 교섭을 축하했다.

노조 출범에서 투쟁, 그리고 교섭까지… 쉼 없이 달려왔지만 방송국 비정규직 노조로서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아직도 많기만 하다. 하지만 이렇게 함께 싸워줄 동지가 있기에 우리는 어떤 두려움도 없이 나아갈 자신감이 있다. 우리가 뉴스다! 우리 뉴스가 방송국에 보도되는 그날까지… ‘방송국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치며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노조 활동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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