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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해고 700일 맞은 거리의 ‘정규직’, 삼표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의 투쟁

김진영 (동양시멘트지부 선전부장)

 

2015년 8월에 지부장과 총무차장이 수감되어있는 상태에서 2016년 1월 13일 또다시 5명의 조합원들이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법정구속되었다. 같은 혐의의 사건에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취하하고 노동조합을 탈퇴한 다른 5명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들은 이미 강릉법원이 노골적으로 삼표자본만을 편드는 판결을 내릴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측의 협박에 구속이 두려워 노동조합을 포기한 것이다. 자신들의 권리를 버리고 다시 하청업체로 돌아갔다. 만약 그들이 굴하지 않고 함께 맞섰다면 사법부가 총 12명의 조합원을 구속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지들이 구속된 뒤, 우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면회를 했고 강릉법원 앞에서 재판부를 규탄하는 피켓시위를 이어갔다. 힘든 날들이었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구속동지들 면회와 법원 앞 피케팅에 동지들이 함께했다. 전국의 많은 동지들이 cms후원자가 되어주었고. 후원주점을 하면서도 뜨거운 동지애를 느낄 수 있었다. 2016년 4월 14일, 다행히 법원 앞 피케팅은 마지막이 되었다. 집행유예라는 꼬리표를 달긴 했지만 모두 석방되었다. 강릉교도소 앞에서 석방 동지들을 환영하는 집회를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다가 문득, 오래 전 기억이 떠올랐다. 어디선가 똑같은 상황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동지들과 그 속에 있었다. “다들 아주 오래전부터 이렇게 싸우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목이 메어왔다.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이제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동지들이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기쁨은 잠시뿐, 우리는 금방 일상으로 돌아왔다. 삼척에서는 아침 7시 공장정문 출근선전전, 아침 9시 삼척시청 규탄 피케팅, 정오 삼척시내 대시민 선전전, 오후 4시 퇴근선전전을 계속 진행했고, 3개조가 돌아가면서 서울 광화문 삼표본사 이마빌딩 앞 천막농성을 이어갔다. 동양시멘트 투쟁 승리를 위해 연대하는 수많은 단체, 투쟁사업장 동지들, 그리고 활동가 동지들과 함께하는 투쟁 일정이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이 많아서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노동조합을 만든 지 1,000일이 다 되어가고 해고된 지도 700일이 훌쩍 지났다. 삼척에서는 너무 멀다고 느꼈던 서울이었지만 상경투쟁 600일 정도 되다보니 “이 나라가 생각보다 훨씬 더 작은 나라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 각지를 다니며 더 많은 동지들을 만나다 보니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낯설었던 동지들과 마음이 가까워진 만큼, 물리적인 거리도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더위와 싸우고 추위를 버티며 노숙을 하면서도 힘을 잃지 않았던 건 이처럼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같은 세상을 꿈꾸며 투쟁하는 힘일 것이다.

 

85명중 23명이 남은 동양시멘트지부가 앞만 보고 달려가던 사이, 지난 2016년 12월 20일,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 판결이 있었다. 서울중앙법원은 “하청 노동자들은 동양시멘트의 근로자 지위에 있거나 동양시멘트가 고용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2015년 2월 고용노동부 태백지청 판정에 이어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모두 동양시멘트가 하청노동자들의 사용자라고 판결한 바 있고, 이번에 서울중앙법원도 같은 판결을 한 것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이긴 하지만 법원이 자본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첫째, 노동부 태백지청은 두성이나 동일이라는 사내하청 업체가 실체가 없는 유령회사이며, 따라서 하청노동자들은 하청이 아닌 동양시멘트의 정규직임을 판정했다. 동양시멘트는 유령회사를 내세워 ‘도급’ 으로 위장해서 비정규직을 고용했지만 사실은 이름뿐인 하청업체는 동양시멘트의 노무부서에 지나지 않았음이 밝혀졌고 이는 명백한 불법이다. 그런데 서울중앙법원은 하청업체가 미미하지만 실체가 있다는 억지주장을 했다.

둘째, 동양시멘트가 불법을 저질렀다는 것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제조업의 사내하청은 ‘불법’이라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판례이다. 그럼에도 서울중앙법원은 합법파견에나 적용될 파견법을 적용함으로써 기업의 불법행위에 면죄부를 주었다. 그러나 법원이 위장도급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는 비판적이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 지위에 있으며 불법을 저지른 동양시멘트가 원청으로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법원에서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 판결로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은 2016년 12월 30일, 동양시멘트에 대해 파견법 위반으로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동양시멘트는 이러한 법원 판결에도 곧바로 항소하면서 또다시 시간끌기로 일관하고 있다. 동양시멘트는 그동안 “하청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복직시키라.”는 지방노동위원회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3차에 걸쳐 약 12억 원의 이행강제금을 납부했다. 4차가 남아있어 벌금은 추가될 예정이지만.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느니 엄청난 벌금을 내겠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얻는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양시멘트가 시간을 끄는 사이 노동자들은 온갖 고초를 겪고 있다. 이미 16억 원의 손배가압류로 월세 보증금까지 가압류 당한 상태에서 50억 원이 넘는 손배소송이 진행 중이다. 사측은 여전히 노동조합을 상대로 민‧형사상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노동부는 나 몰라라 하며 팔짱끼고 구경꾼 행세를 해왔다. 노동부는 동양시멘트의 불법행위에 대해 처벌하지 않았다. 또한 법원의 명령에도 위장도급의 결정적 물증인 하청업체 담당자들의 진술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국회의원실에서도 수차례 진술서 제출을 요구했음에도 근거 없이 거부했다.

동양시멘트처럼 많은 기업들이 안하무인으로 버티는 것은 이 나라 정부의 봐주기 식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다. 최근 박근혜 정부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기업들은 권력에 부정청탁을 하면서 수백 억 원을 뇌물로 준다. 그 대가로 정부는, 대기업은 배불리고 노동자는 때려잡는 ‘노동개악법’을 추진한다. 기업은 계속해서 노동자들을 착취해 막대한 이익을 남기고, 노동자들은 점점 더 노예와 같은 삶으로 전락한다.

 

노동의 현장에서 차별과 착취, 탄압받는 동양시멘트지부도 이미 이런 현실을 몸으로 느껴왔고 개별적으로는 각 사업장들의 문제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에 ‘정리해고 철회! 비정규직 철폐! 민주노조 사수! 노동탄압 민생파탄 박근혜 정권 퇴진’을 걸고 함께 싸우자는데 동의하고 2015년 10월,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을 함께 시작했다. 2016년 11월 1일부터는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있다. 공동투쟁에도 수많은 동지들이 많은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아니, 함께 하고 있다. 박근혜정권이 퇴진한 이후에도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이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

   

‘비정규직’은 차별을 통해서 말 잘 듣는 노동자들을 만들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과 정권이 만든 차별정책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자들이 나서서 스스로 깨나가야 한다. ‘비정규직 철폐!’ 우리가 지금 꿈꾸고 있는 새로운 세상의 첫 걸음이 아닐까?

 

2 2016.12.20.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시 판결 입장발표 기자회견 [출처 임용현(사회변혁노동자당)].jpg

2016.12.20.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입장발표 기자회견 [출처: 임용현(사회변혁노동자당)]

 

거리의'정규직' 삼표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의 투쟁_김진영-질라라비20170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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