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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전략과 실천

 

원남산업단지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을!

송민영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조직사업부장)

 

 

금속노조에 채용되어 대전지역 중소영세사업장·비정규직 노동자 전략조직화사업의 담당자로 활동한 지 이제 2년이 지났습니다. 어리바리한 상태로 흘려버린 첫해는 아직도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시간이고, 그나마 작년 한 해는 여러 동지들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또 다른 활동의 상을 모색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약 9개월 동안 총 13차례 회의를 거친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미조직노동자 조직사업 기획단(이하 기획단)’ 덕분이었습니다. 작년 12월, 기획단이 활동 마무리 시점에 맞춰 보고서를 내놓은 뒤로 지부 집행위원회가 후속 논의를 이어갔는데, 이 과정이 또 꽤 길고도 깊었습니다. 2019년 전략조직화 사업계획안을 내놓기까지 따지고 보면 1년 여의 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아무튼 작년 한 해 동안 나눠 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직 활동가 개인도, 조직도 질적으로 성장했다고 자부합니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보니 아마도 독자들께서 “그런데, 왜 갑자기 ‘원남’이야? 아니, 그보다 대체 ‘원남’은 어디 있는 거야?”라고 반문하실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질문은 기획단과 지부에서 ‘작년 한 해 동안 나눠 온 이야기’의 핵심과 맞닿아 있습니다.

대전 대덕산업단지를 주요 범위로 한 전략조직화사업은 애초 목표의 어느 지점까지 도달했는지, 만약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일 때 우리는 과연 어떤 대안을 모색해야 할지, 이런 고민의 결과로 충북 음성의 원남일반산업단지를 주목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대전 대덕산업단지의 활동과 별개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대전 대덕산업단지를 사업 범위로 하여 마련했던 전략조직화 3개년 사업계획은 ‘사업기반 마련-지역지회 준비위원회 구성-지역지회 출범’을 각 연차별 계획으로 담고 있습니다. 지역지회는 대중적인 개별가입 운동을 통해 발굴한 주체들을 중심에 세워 구성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서 다양한 선전사업과 온-오프라인 상담, 그 과정에서 발굴한 수 개의 조직화 모임을 이어왔으며, 작년 하반기 접어들 무렵부터는 “혼자라도, 금속노조!”를 캐치프레이즈로 해서 집중적인 개별 가입운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수 개의 조직화 모임을 진행하는 과정은 사업계획을 구상할 당시의 의도대로 지역지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표 하에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모임의 주체들 중에는 사업장지회를 건설하고, 단체협약 체결을 기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노동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화와 온라인 상담, 대면상담까지 사례를 통틀어 볼 때 대개의 노동자들은 사업장에서 겪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렸으나, 지금 또는 앞으로도 사업장지회를 건설할 조건과 여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지역지회라는 새로운 조직 모델을 안내하고, 본인이 겪고 있는 사업장 문제가 알고 보면 지역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일이며, 따라서 이에 대한 해법도 사업장 범위를 넘어 새로이 마련해야 함을 세심하게 안내하지 못했습니다. 지부 역시 ‘작은 사업장’ 전략조직화에 대한 조직적 이해와 결의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기에 이런 상황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각각의 모임은 사업장 별로 진행되었고, 사업장지회 건설을 목표로 한 교육과 조직화 논의가 주요 내용을 이뤘습니다. 모임을 꾸릴 수 없는 형편의 노동자들은 일회성 상담에 그친 채 지금 조직 활동가의 휴대전화에 내담자 그룹 중 한 명으로 각각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왜 다수의 노동자들은 부족하나마 금속노조에 개별 가입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음에도 가입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아니, 우리는 정말로 그들에게 개별 가입의 필요성과 지역지회라는 전망을 충실하게 전달해 왔을까요? 만약 우리가 제대로 안내하고 제안했다면, 그럼에도 그들이 가입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작년 하반기부터 기획단과 지부의 동지들이 그 답을 찾고자 고민했던 질문입니다.

 

2 2019.04.08. 월남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 출범 기자회견 [출처 필자].jpg

 2019.04.08. 월남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 출범 기자회견 [출처: 필자]

 

우리는 이렇게 답을 내렸습니다. ‘금속노조는 아직도 그들에게는 너무 멀리 있는 노동조합이다’, 우리가 아무리 ‘금속노조는 혼자라도 가입할 수 있는 산별노조’라는 것을 선전하더라도 노동자들은 ‘그 실체를 실감하기 어려운, 내게서 너무 멀리 있는 노동조합’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금속노조는 너무 멀리 느껴지고, 개별적으로 가입하면 같이 지역지회를 만들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지역지회라는 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그런 상태. ‘아, 망설이는 이들에게 우리의 실체를 보여줘야겠다! 어떻게? 우리가 금속노조 지역지회 깃발을 들고 나서자!’

 

그래서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는 기획단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년 연말부터 올해 2월까지 집중적으로 논의하여 충북 음성의 원남일반산업단지에서 지역지회를 통한 ‘작은 사업장’ 노동자 전략조직화의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원남산단지회(준)’를 구성하여 원남산업단지 노동자들에게 ‘바로 옆에, 가장 가까이 있는 노동조합’으로서 실체를 드러내기로 했습니다. 3월 말부터 약 3주 간 이어진 집중선전과 실태조사, 노동상담 과정에서 원남산단지회 명의로 다섯 종의 선전물을 제작, 배포하면서 원남산업단지 노동자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원남산업단지에 금속노조가 떴다!’를 알리면서 적극적인 가입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지역에 좀 더 밀착한 사업을 광범위하게 펼쳐내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서 음성노동인권센터, 음성민중연대를 비롯한 충북지역 제 단체들과 ‘원남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을 구성하였습니다. 이 중 음성노동인권센터는 이미 2017년에 원남산업단지 입주 업체인 신세계푸드 하청노동자들의 불법적 파견고용 실태에 맞서 싸운 바 있으며, 이후에도 하청노동자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원남산단지회가 지역 노동자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 큰 역할을 맡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음성군 10여 개 산업단지 중 하나인 원남일반산업단지는 사실 규모가 그리 큰 산업단지는 아닙니다. 입주업체가 65개, 대략 2,330여 명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작은 산업단지입니다. 사업장별 평균 35.8명 규모의 작은 사업장이 모여 있는 곳이죠. 사실 지방 소도시의, 그것도 규모가 작은 산업단지라는 점은 지부가 전략조직화사업의 또 다른 사업 범위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주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였습니다. 그만큼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이 집중되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실제로 음성노동인권센터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음성군은 직업소개소를 통한 불법적 파견고용 행태가 만연한 지역입니다. 실태조사 과정에서 원남산업단지 노동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원남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도 앞으로 지역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고용 형태를 바로잡기 위한 활동을 주요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주 노동자들 역시 매우 많이 일하고 있어 이들의 노동권을 제대로 지켜내기 위한 활동도 필요한 곳이 원남일반산업단지입니다.

 

3 2019.04.11. 원단산단 고용임금 실태조사 [출처 필자].jpg

 2019.04.11. 원단산단 고용임금 실태조사 [출처: 필자]

 

사실 사업의 내용만 본다면 대전 대덕산업단지에서 진행한 그것과 크게 다를 바는 없습니다. 실태조사와 상담, 선전사업과 조직화 모임, 지방정부와 행정기관 대응 등 큰 줄기에서 별반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 다만, 같은 성격의 사업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조직적 이해와 결의를 높여 집중하느냐가 사업의 질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기에 이런 점에서 원남산단지회를 통한 전략조직화 사업은 대덕산업단지에서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원남산업단지에서 펼치는 이 실험이 과연 어떤 성과를 남기게 될지는 아직 확언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지난 시기의 경험이 그러했듯이 여전히 오리무중에 좌충우돌, 매일이 ‘멘붕’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1년 여 시간 동안 머리 맞대고 이야기 나눴던 노력만큼 우리는 이미 예전과는 다른 출발을 했습니다. 1년 후, 2년 후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참여하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우리의 운동은 다시 새로운 단계로 진전할 것입니다.

 

재작년 겨울 대덕산업단지 내 대기업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세 분과 모임을 한 적이 있습니다. 60여 명이 일하는 사업장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사업주의 최저임금 꼼수에 분노한 노동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업장지회를 구성하려던 노력은 중도에 무산되었습니다. 그들은 사측의 농간에 의해 사업장 동료들 사이에서 점점 고립되어 가던 중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사업장지회를 건설하려던 계획을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모임은 그렇게 멈췄고, 저는 그 뒤로 그저 때 되면 카톡 메시지로 선전물 보내고, 간간히 인사말만 남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중 한 분으로부터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라고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실제로는 이후 연락이 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시 연락이 된다면, 다시 만나게 된다면 같이 밥 한 술 뜨며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이렇게 얘기하겠습니다.

“혼자라도 괜찮아요. 같이 금속노조 조합원 합시다. 저희, 그동안 준비 많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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