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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했죠?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윤애숙 (빈곤사회연대)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의 주범 ‘부양의무자기준’

1999년 제정된 기초생활보장법은 빈곤에 처한 누구라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는 선언이었다. 기초생활보장법 제1조에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실시하여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제도 운영은 법의 목적에 한참 미달한다. 생활이 어렵지만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장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100만 명이 넘기 때문이다.

부양의무자기준은 소득․재산과 더불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주요한 선정기준으로 수급권자에게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만 수급자가 될 수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는 수급권자의 1촌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로, 수급권자의 부모와 자녀,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가 포함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장 단위는 ‘가구’이기 때문에 부양의무는 함께 살고 있지 않은 경우 발생한다. 즉, 함께 살지도 않는 가족의 소득과 재산 때문에 수급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 수급자로는 선정되었지만 간주부양비 부과로 인해 수급비가 깎이는 등 제대로 된 수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포함하면 사각지대는 더욱 넓어진다.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사각지대도 있다. 부양의무자에게 소득이나 재산이 충분하지 않아 수급신청 시 수급자가 될 가능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부양의무자에게 연락이 가는 것조차 부담스럽거나 부양의무자로부터 금융정보제공동의서 등 수급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받을 수 없어 신청을 포기하는 이들이다. 이처럼 부양의무자기준은 빈곤으로 인해 가족관계가 이미 해체되거나 복잡한 가족관계를 갖고 있는 이들에겐 수급신청조차 포기하게 하는 높은 장벽이다.

 

빈곤문제 1호 과제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복지제도의 진입장벽으로서 가장 큰 사각지대를 만들어내는 부양의무자기준은 가난한 이들의 가족들마저 가난에 빠뜨린다. 수급가구에서 자란 청년에게 사회에 나오자마자 가족에 대한 부양의무를 씌우고, 중산층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부양을 가난한 이들의 가족들에게 강제한다. 부자들이 권력을 동원해 부를 세습하는 동안 가난한 이들은 부양의무자기준으로 가난을 세습한다. 가난의 세습을 끊기 위해 수많은 수급자와 부양의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서로를 죽이는 일이 이어져왔다.

간디는 “빈곤은 가장 잔인한 형태의 폭력”이라고 말했다. 가난은 이미 그 자체로 가혹하다. 가난을 더욱 혹독한 것으로 만들고, 가난 때문에 사람들이 목숨을 끊게 하는 이 사회의 참혹함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기에 설 연휴의 시작이었던 1월 26일 서울역에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행동’(이하 ‘폐지행동’)의 발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 자리를 통해 가난에 빠진 누구라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부양의무자기준을 함께 폐지하자고 제안했다.

부양의무자기준의 폐지는 현재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 복지제도의 보장을 받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복지의 책임이 국가에 있음을 확인하고 가난한 국민의 삶을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로, 복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변화이다. 부양의무자기준의 폐지를 통해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따져서 시혜적으로 주던 복지가, 국민이라면 누구나 당당하게 권리로 보장받는 복지로 거듭날 것이다. 때문에 부양의무자기준은 빈곤문제 해결의 시작이며, 제1호 과제이다.

 

숨 가쁘게 달려온 4개월의 대장정

1월 26일 발족 기자회견부터 약 4개월 동안 빈곤층 당사자들의 조직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총 42개 단체가 참여해 ‘폐지행동’에 함께했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빈곤층 당사자들이 있는 곳에서, 도심 곳곳에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필요성에 대해 알리고 이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엽서를 대통령 후보자들에게 써달라고 시민들에게 요청했다. 서울지역은 물론 대구, 광주, 부산, 전주 등 ‘폐지행동’ 참가단체들이 활동하는 지역 곳곳에서 선전전을 열심히 진행했다.

시민사회·종교계·사회복지계 등 각계각층에서 기자회견과 연명을 통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요구에 지지를 보태주었고, 온라인에서는 #약속해줘_부양의무제폐지 해시태그를 통해 인증샷도 모였다. 각종 언론에 기고를 한 것은 물론 그동안 언급하던 사례들을 만화로 각색하여 주간지 <한겨레21>에 4주간 연재도 진행했다. 4개월이라는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정말 다양한 방식을 동원하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목소리를 냈다.

대선예비후보 및 최종 후보자들에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요구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의서도 두 차례에 걸쳐 발송했다. 최종적으로 대통령 후보가 된 이들 중에서는 문재인, 홍준표(사실 홍준표 후보로부터 답변이 온 것은 매우 의외였다.),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김선동 후보에게 질의서를 발송하였는데, 이들 모두로부터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찬성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물론 폐지의 수준 및 방향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차이가 있었지만 고무적인 성과였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지난 5월 22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폐지행동’은 청와대에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정책요구안 및 면담요청서를 접수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 마지막 순서에 청와대 연락관 직원이 정책요구안 및 면담요청서를 수령해 갔다. 이 기자회견을 통해 ‘폐지행동’은 해소했다. 그러나 ‘폐지행동’의 해소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요구의 끝이 아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지금껏 대통령 후보자들에게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약속해줘!” 하고 외쳤다면, 이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약속했죠?” 하며 그 약속을 지켜달라고 요구하려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3월 22일 ‘개발국가, 재벌독식을 넘어 돌봄사회, 노동존중, 평등사회로’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며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고 직접 약속했다. 또 ‘폐지행동’이 거리에서 받은 엽서도 직접 수령했다. 문재인 정부는 7월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통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구체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폐지행동’은 해소 기자회견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는 약속의 구체적인 이행 방향에 대해 다시금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정책공약집에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방향으로 급여별 폐지와 인구학적 기준에 따른 취약계층(노인, 장애인, 한부모 가구 등) 우선 폐지를 모두 기재한 바 있다. 그러나 인구학적 기준에 따른 취약계층 우선 폐지는 어떤 빈민의 가난이 더 우선순위인지 경쟁시킬 뿐이다. 이는 계층별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완전폐지가 아닌 부분폐지로 멈출 위험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부양의무자기준의 완전폐지를 통한 빈곤해결과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급여별 폐지의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구체 방안으로는 7월에 열릴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 2017년 연내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시작으로 2018년 의료급여와 생계급여에서 폐지를 통한 부양의무자기준의 완전폐지를 계획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빈곤당사자들과 사회·시민단체들이 함께하는 ‘기초생활보장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과 5년째 진행 중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공동행동’의 광화문농성을 통해 부양의무자기준의 완전폐지를 위한 실천과 이행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요구할 것이다. 부양의무자기준이 ‘진짜로’ ‘완전히’ 폐지될 때까지 끊임없이 목소리를 낼 것이다.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고, 복지가 가난한 이들의 당당한 권리가 되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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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22. 토론회장에서 문재인후보가 엽서와 정책요구안을 직접 수령했다. [출처: 빈곤사회연대]

 

 

약속했죠 부양의무자기준 폐지!_윤애숙-질라라비20170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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