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9] 기준중위소득, 무기가 된 숫자가 빈곤층의 권리를 박탈하다 / 김윤영

by 철폐연대 posted Sep 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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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기준중위소득, 무기가 된 숫자가 
빈곤층의 권리를 박탈하다

 

김윤영 •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182만 원. 2021년 1인가구 기준중위소득이다. 보건복지부는 매년 여름이면 다음해 기준중위소득을 결정해 발표한다. 기준중위소득은 77개 복지제도의 선정기준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의 수급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기준중위소득의 50%는 국제적으로 상대적 빈곤선으로 통용되고, 한국에서는 차상위계층으로 지정될 수 있는 소득 수준이다. 한부모 복지기준은 기준중위소득의 52%, 기초생활보장제도 중 생계급여 수급자 선정기준은 30%, 의료급여 수급자 선정기준은 40%인 식이다. 복지기준이 아니더라도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법원은 개인회생을 밟는 채무자의 변제 비용 중 생계를 위한 비용을 제외한다. 변제의무 제외 소득은 중위소득의 60%로, 법원은 이 정도를 ‘생존에 꼭 필요한 비용’ 수준으로 본다는 의미다.

 

기준중위소득은 참 다방면에 사용되고, 예기치 않은 곳에서 튀어나온다. 평소 법률이나 복지제도 근처에 갈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기 쉽지만,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기준중위소득은 사람들에게 더 익숙해졌다. 서울시의 긴급 재난지원금을 비롯해 여러 지자체에서 기준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지원금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의아함도 커졌다. 기준중위소득은 우리나라 소득자의 중간값인데, 왜 1인가구 기준중위소득이 최저임금도 안 되는 걸까? 이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우선 기준중위소득 도입의 이유, 기준중위소득의 결정 방식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기준중위소득의 도입 배경

 

기준중위소득이 복지제도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15년이다. 기준중위소득 도입 전 한국의 복지기준선이자 빈곤선으로 기능한 것은 ‘최저생계비’다. 최저생계비는 1999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도입되며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합해 만든 값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르면 누구나 최저생계비를 보장받아야 하고, 최저생계비의 기준은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이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된 이래 최저생계비는 낮은 수준으로 결정되어 왔고, 끊임없이 비판을 받아 왔다. 2001년 명동성당 앞에서 최저생계비 인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던 최옥란 열사를 시작으로, 최저생계비로 한 달 살기 캠페인을 비롯해 최저생계비 인상은 복지운동의 주된 화두였다.

 

실제 최저생계비엔 많은 문제가 있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던 2000년 당시 최저생계비는 도시근로자가구 평균소득의 40.7%, 중위소득의 45.5% 수준이었으나 2013년에는 중위소득의 40%, 현금급여로는 33% 수준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1) 이에 대해 최저생계비 계측방식의 문제가 반복해서 제기되었다. 최저생계비를 계측하는 방식은 전물량방식, 이른바 ‘마켓 바스켓’ 방식으로, 가상의 한 가구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일 년 동안의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값을 더한 뒤 열두 달로 나누는 방식이라 물품의 가격, 수량, 종류를 결정하는 데 자의성이 많이 개입된다는 비판이 있었다. 일례로 최저생계비 결정에 휴대전화 요금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비판이 오랫동안 제기되었으나 정부는 ‘국민 정서’를 사유로 미루다가, 2010년 계측조사에 이르러서야 4인가구 기준 한 달 단 2만 5,670원만 반영했다.

 

이런 비판은 ‘상대적 빈곤선’ 도입 주장으로 이어졌는데, 최저생계비 결정에 있어 전체 국민의 생활수준과 물가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말 ‘송파 세모녀법’ 이라는 이름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2015년 7월부터 기준중위소득을 도입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도입된 기준중위소득은 제도 개선의 취지와 실제 모양이 달랐다. 정부는 기준중위소득 도입 취지에 대해 수급선정기준을 다양화하고 상대적 수준을 반영한다고 하였지만, 기존 최저생계비는 의료급여 선정기준(기준중위소득 40%)으로, 현금급여는 생계급여 선정기준 및 보장수준(기준중위소득 30%)으로 전이됐다. 주거급여가 신설되고, 교육급여 선정기준이 기준중위소득 50%로 높아지는 효과는 있었지만 이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가 되는 사람들의 핵심적인 필요인 생계, 의료급여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준중위소득 도입에도 불구하고 기초생활수급자 숫자는 인구 3% 남짓을 벗어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은 도입 이후 줄곧 최저생계비 인상률의 한참 아래에 고정되어 있다. 기초법 개정 전 최저생계비 평균인상률은 3.9%였지만 기초법 개정 후 평균 인상률은 2.25%에 불과하고, 특히 문재인 정부는 올해 기준중위소득까지 평균 2.06%만 인상시켜 역대 정권 중 가장 낮은 인상률을 갖는다.

 

1 <민생보위 요구안>, 2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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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8. 2022년 기준중위소득 현실화! 생계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 가난한 이들의 민중생활보장위원회 [출처: 빈곤사회연대]

 

현실과 달라도 너무 다른 기준중위소득

 

내년 기준중위소득은 5.02% 인상으로 결정됐다. 언뜻 숫자로는 많이 오른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러 함정이 있다. 기준중위소득 결정을 위해 고려하는 몇 가지 수치가 있다. 핵심적인 것은 1) 통계자료의 중위소득, 2) 내년도 물가인상률을 얼마로 볼 것인가이다. 기준중위소득은 매년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생활보장위원회’(약칭 중생보위)가 결정한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기획재정부 차관과 국토부, 교육부를 비롯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관련된 부처가 참여한다. 전문가위원과 공익위원을 합해 총 16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르면 기준중위소득은 통계청이 공표하는 통계자료를 활용하도록 하고 있고, 이 자료는 현재 가계금융복지조사다. 이에 따르면 2019년 1인가구 중앙값은 254만 원, 4인가구는 636만 원으로 내년에 활용될 2022년 기준중위소득과 비교해보아도 각각 31%, 24% 낮다. 2022년을 살아가는 빈곤층의 삶을 2019년보다 낮은 수준의 지표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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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상식적인 차이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기준중위소득 결정에 사용하는 통계자료가 가계동향조사에서 가계금융복지조사로 지난해 바뀌었다. 둘 다 통계청이 조사하는 소득에 대한 패널 조사이지만 가계동향조사의 경우 패널수가 적고 고소득층이 상당히 제외되어 사용하기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가계동향의 수치를 고집하던 중생보위는 더 이상 통계청이 가계동향 연간 통계를 책정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이를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가계금융복지조사로 이동했다. 기준중위소득과 중위소득이 큰 차이를 갖게 된 이유다. 문제는 이 차이를 다루는 방식이다. 자료 변경이 예정되어 있었던 만큼 두 결과의 폭을 줄이기 위해 선제적으로 노력했어야 했지만 매년 최저의 인상폭을 고집해 차액은 속수무책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차이를 가구구성에 따라 보정한 결과(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약 12%였고, 이 차이를 메우기 위해 지난해 중생보위는 매년 2%의 추가 인상률을 산입하겠다고 결정했다. 물가인상률 등을 고려한 인상분 위에도 2%의 당연인상분을 6년간 더하겠다는 의미다. 올해 결정한 5%의 증가율에는 이 2%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인상률은 3%라고 볼 수 있다.

 

2 “[성명] 중앙생활보장위원회 2022년도 기준중위소득 인상률 5.02% 결정에 부쳐”,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장애인과가난한사람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 2021.7.30.

 

무기가 된 숫자들

 

어떤 예측도 완벽할 수는 없다. 내년 물가가 얼마나 오를 것인지 예측하는 데에는 실패가 따를 수 있다. 그런데 왜 3%인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제는 4%대 상승을 이뤘고, 물가인상률도 1~2%로 전망한다. 실질 경제성장률이 6%에 육박하는 지금, 중생보위는 기준중위소득 기본인상률을 3%로 결정했다.

 

물가인상률 예측에 대한 갑론을박 끝에 수년 전 중생보위가 합의한 사항이 있다. 물가인상률은 최근 3년간의 평균소득 인상률을 근거로 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중생보위는 ‘코로나19로 인해 경제가 어렵다’며 기본인상률을 단 1%로 묶어버렸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훨훨 나는 지금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3년 평균 인상률은 4.3%, 실제 경제성장률은 이를 상회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도 ‘평균 인상률의 70%만 반영하자’며 3%만 인상시켰다. 유례도, 근거도 없는 막무가내식 결정이다.

 

이러한 결정의 결과는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다. 기준중위소득에 의해 한 달 급여가 결정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 수급자들, 기준중위소득에 따라 급여를 받거나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 및 수급권자들, 약간의 소득이 생겼다고 한부모 복지제도마저 박탈당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할인 감면혜택이라도 없을까 동주민센터 문턱을 넘었다가 당신의 가난은 아직 ‘진짜 진짜 가난’이 아니라는 답변을 듣고 돌아서야 하는 사람들이 삶으로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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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7. “2022년 기준중위소득 대폭인상,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요구한다!” 가난한 이들의 복지확대 및 중생보위 면담요구 기자회견 모습. [출처: 빈곤사회연대]

 

내가 알기로 중생보위에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없다. 고위공무원과 교수 등으로 구성된 저 자리에는 아마 수급권자와 친한 사람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언제나 너무 급격한 급여 인상이나 선정기준 인상은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장기적으로’ 계획을 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배고픔이나 아픔을 미뤄뒀다가 한 번에 치를 수는 없지 않은가. 빈곤은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지금 당장의 일이다.

 

기준중위소득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너무 복잡한 산식과 결정 과정에 질려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왜 잘못됐는지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마치 ‘방 탈출 게임’처럼 의미 없는 단서로 이어진 수식의 끝에는 현실과 다른 기준중위소득이 있다. 빈곤층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중생보위는 회의장을 공개하지도, 회의 자료를 공유하지도 않는다. 애초에 복잡한 산식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법률에 의한 수준과 위원회의 합의사항조차 예산에 따라 손바닥처럼 뒤집는 관료와 엘리트들은 기준중위소득을 통해 보장해야 하는 급여가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권리로서 보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듯하다.

 

코로나19 이후 저소득층에게 집중된 경제위기가 회복의 국면에서도 차이를 넓히는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내세웠지만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서조차 의료급여를 제외함으로서 ‘최대한 늦은 변화’만을 고수하고 있으며, 광범위한 복지기준선으로 작동하는 기준중위소득은 가장 낮은 인상률을 채택했다. 누구를, 무엇을 포용하는지 알 수 없는 대목이다. 코로나19의 결과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일 것이다. 바이러스가 아니라 불평등에 압사되는 사람을 못 보는가, 안 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