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투쟁/이슈

조회 수 7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살아가는 이야기

 

코로나19와 새로운 시작

 

조혜연 •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상임활동가, 철폐연대 회원

 

 

 

#1 치밀한 계획

 

나에게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올해 초까지 활동하고 있던 단체에 3년이 되면 2개월의 안식휴가를 주는 훌륭한 제도가 있었습니다. 바깥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잠시 잊은 채 두 달이 짧다고 투덜(?)거리며, 자칫 어영부영 순식간에 지나가버릴 수 있는 그 2개월을 어떻게 쓸까 고민을 하다가, 엄마의 칠순을 앞두고 그 핑계로 엄마와 유럽여행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머나먼 유럽으로 잡은 건 엄마가 긴 비행시간과 한두 달의 여행을 버틸 수 있는 건 지금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작년 초에 그렇게 마음을 먹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엄마의 의사를 타진하고, 동생과도 일정 협의를 했습니다.

나는 2020년 1월까지 일을 해야 안식휴가가 생기니 그 이후여야 하고, 그래도 맘 편히 휴가를 쓰려면 활동이 여유가 있을 때여야 하고, 한여름은 너무 뜨겁고 비쌀 것 같고, 연말로 갈수록 바빠질 것 같고, 이런저런 것들을 고려하니 3~4월로 날짜가 좁혀졌습니다. 그때는 유럽의 날씨가 쌀쌀할 때라 그나마 덜 추운 남부유럽의 나라들 중에서 고민하다 이탈리아로 여행지를 확정했습니다. 어차피 엄마랑 잦은 이동을 하며 여행을 다니기는 어려울 듯해서 한 달 동안 한 나라를 천천히 여유롭게 즐기기로 했습니다.

 

여행 관련 책을 사고, 짬짬이 검색을 하고, ‘세계테마기행’ 이탈리아편 같은 프로그램과 유튜브를 찾아 봤습니다. 석 달 전에 항공권을 끊고 두 달 전에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한 달 전에는 미리 끊어두는 것이 싸다고 해서 도시 간 이동을 위한 기차표도 예매했습니다. 유럽은 난방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아 들고 다니기 좋은 전기장판도 준비하고, 이탈리아에서 한동안 지내다 온 친구와 최근 이탈리아를 다녀온 지인에게서 온갖 맛집과 이런저런 정보도 수집했습니다. 이제 출발만 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2 즐거운 시간과 불길한 그림자

 

그 사이 조금 바뀐 상황은 이러저러 해서 단체는 휴가를 쓰는 게 아니라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여행을 다녀와서 혼자 조금 더 쉬고 싶었습니다. 딱히 힘들거나 지쳐서는 아니었습니다. 내 사주에는 역마살이 많다고 했으므로 3년쯤 일했으면 적당한 듯 했지요. 그리고 2005년부터 있었던 인천에서의 생활도 이 정도면 됐다 싶었습니다. 마음이 한껏 여유로워졌습니다.

 

여행을 가기 직전 활동공간을 정리하고 짬이 났을 때, 2000년 투쟁 이후 지금도 매년 전국각지에서 모여 하루씩 놀곤 하는 한국통신계약직 언니․형들이 이번에는 부산에서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부산행 차량에 같이 몸을 실었습니다. 무슨 산악회처럼 사당역 몇 번 출구에서 만나 단체버스를 탔습니다. 지금도 한결같이 이 냥반들은 내려가는 차 안에서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비웠습니다. 물론 나는 그 냥반들 같이 한결같지는 못했으므로 술잔을 받지는 않았지만(한 잔 정도는 받았을지도 모릅니다만) 그 실없는 농담들의 틈바구니에서 순식간에 20년 전으로 돌아간 듯 마냥 즐겁기만 했습니다.

 

물론 내가 꼭 가야 하는 모임은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그들이 보고 싶다는 명분뿐 아니라 남아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많은데도 장시간 차를 타고 와서 부산에 하루만 있다 가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부산에는 그러고 보니 아는 인맥(?)이 꽤 있었죠. 그래서 일단 인천에서 잠시 활동하다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간 친구의 집에 비집고 들어가 대엿새 신세를 졌습니다. 부산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재워주고, 먹여주고 미리 야근과 특근을 해가며 시간을 만들어 놀아준 친구의 마음도 따뜻했습니다. 처음에 봤을 때는 나와는 많이 다른 결의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볼수록 뭐가 다르다는 거였지 싶고, 꾸준하고 꼼꼼하게 할 일을 찾아나가는 그 친구와 손발 맞춰 가는 게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불현듯 부산으로 돌아가 버린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들도 만났습니다. 친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간간이 소식이 오가던 한 후배도 최근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고 해서 부산에 간 김에 역시나 지금은 울산에 있는 다른 친구에게 연락해 함께 후배를 만나고, 먹거리 많은 부산에서 굳이 파스타를 먹으며 동해바다를 보고 수다를 떨었습니다. 이렇게 셋은 사실 생소한 조합이었고 각자 다른 시간과 공간을 거쳐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 했지만 알고 보니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네 싶게 같이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았습니다. 나도 이대로 부산에 자리를 잡아보는 것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잠깐 사이에 부산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따뜻한 부산에는 한두 명씩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나도 손세정제를 써가며 조심하고 있었고, 그 정도면 되었지 뭐 싶었습니다. 그리고 뉴스에서는 나날이 확진자가 줄고 있음을 알리며 조금만 더 조심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어요. 대구에서……….

 

8 살아가는 이야기_01.jpg

코로나가 덮치기 전의 부산 앞바다. [출처: 조혜연]

 

#3 코로나가 망쳐버린 계획

 

나에게는 1년여 간 세운 완전 치밀한 계획이 있었으므로 처음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여유감에 취해 놀고 있던 나에게 엄마가 갑자기 병원에 가야 할 상황인데(코로나 증상이 아닌 다른 지병으로) 혼자 가기 어려운 상태라 집에 와서 같이 가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제야 순식간에 현실 감각이 깨어났습니다.

나는 대구와 가까운 부산에서 여기저기 여행지와 맛집을 돌아다녔고, 그 와중에 어떤 누구와 스쳤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그런 상태에서 몸이 약해져 있는, 칠순을 앞둔 엄마를 만나 병원에 갈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그 일은 동생이 맡기로 했고, 한동안 포기를 못하고 고민을 하다가 결국 여행 계획은 폐기되었습니다. 포기한 그 직후, 이탈리아는 우리나라 못지않게 코로나19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사망자 수가 심각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 뉴스들을 보고 있자니 날린 비용들이 아깝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예약을 할 때는 전혀 힘들고 귀찮은 줄 몰랐던 일들이 취소를 하려니 어찌나 어렵고, 힘들고, 번거롭고, 귀찮던지요.

 

뭔가 전국적인 일도 아니고 전 세계적인 일에 휘말리고 나니 나도 뭔가 글로벌한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도 이젠 글로벌한 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고, 질병에 관한 생각을 하다 보니 다시 과거로 좀 돌아가야겠습니다.

 

8 살아가는 이야기_02.jpg

지중해 대신 엄마집에서 바라본 노을 [출처: 조혜연]

 

#4 되새김

 

어쩌다보니 비정규직 철폐라는 시대적 사명감을 둘러업고 비정규직으로 맞교대 노동을 하던 시절,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이건 뭐 비정규직 철폐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많구나!’ 싶은 거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제일은 심야노동 철폐!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밤을 꼴딱 새서 일을 하고 나면 잠이 온다는 감각도 없이 몽롱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머리만 대면 잠이 들던 나는 환한 낮 시간에도 6~7시간씩 자고 다시 저녁 8시에 출근을 했지만, 그런 나도 집에 가서 씻고 나면 정신이 들어 바로 잠이 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는 SNS와 유튜브도 없고 케이블TV 채널도 많지 않던 때라 종종 아침드라마를 봤습니다. 그 시간에 틀면 나오는 게 그거라서였지만, 밤사이 온몸에 눌어붙은 먼지와 땀을 찬물로 확 씻어내고, 비누냄새로 몸을 감싼 뒤 캔맥주 하나를 들고 TV앞에 앉아 전후를 몰라도 금새 몰입할 수 있는 아침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그거야말로 피로가 싹 풀리는 소확행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침 퇴근길에 동료들과 밥을 먹고 소주를 한 잔씩 하기도 하고 (그래야 잠이 온다고도 하고, 그 일군에 나도 종종 끼어 있었던 것도 같고), 어떤 사람들은 그 시간에 퇴근해서 집에 쌓인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은행이나 병원 등을 들리기도 하고, 다시 가족들의 저녁을 준비해 놓고 나면 서너 시간 자고 출근하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나마도 전화가 온다거나,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온다거나 해서 자다깨다 자다깨다 하는 식이었죠.

그렇게 일을 하다 보면 일 때문에도 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쑤시고 하겠지만, 2급 발암물질 급이라는 밤에 잠 못 이루는 불규칙한 교대근무로 몸은 그냥 그렇게 시들어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인생도 같이.

 

내가 일했던 현장은 일하다 크게 다치거나 죽는 일은 그닥 없었던 곳이라 (물론 내가 다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몸이 망가져 가는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건강권이라는 운동적인 방식으로 고민해보지는 못했고, 그냥 그렇게 사람이 시들어가면 안 되지 않나 싶은 감성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여차저차 해서 이전의 활동공간에 있을 때 주로 많이 접했던 것은 근골격계 질환과 관련한 문제였습니다. 역시나 당장 큰 문제가 생기는 질환도 아니고, 죽거나 다치는 일에 비해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지는 않지만 조금씩 몸을 갉아먹으며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문제였습니다.

다시, 함께 일했던 언니들이 생각났습니다. 일터에서의 노동과 가사와 육아와 친정·시집 챙기기와 남편 돌봄에다가 관리자 수발과 동료들 간의 암투와 각종 병원 섭렵까지, 숨 쉴 틈 없이 살아가는 언니들. 그 와중에도 짬짬이 한 잔과 맛집 탐방과 꽃놀이 다니기도 잊지는 않았지만요.

 

그런 언니들에게 나처럼 일을 몇 달씩 쉬고, 혹은 관두고 오롯이 내 한 몸만을 생각하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인생 중에 단 5분이라도 있었을까 싶습니다. 언니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활동가들이,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용균재단>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각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어떻게든 건강권에 대한 고민을 끌어내보려고 했지만 이야기가 산으로 가버린 듯합니다. 어쨌든….

 

 

#5 새로운 시작과 다짐

 

여행 계획을 세우듯이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노동안전보건·건강권 활동을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연히 건강권 단체에서 활동을 잠시 하게 되었고, 관둘 무렵 우연히 사람을 구한다기에 재단으로 활동을 이어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 그간의 비정규직에서 건강권으로 이어진 나의 느슨하지만 소중한 경험들이 <김용균재단>으로 인도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일하다 아프고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행렬이 멈추도록, 일터에 빼앗긴 일상의 삶을 찾아올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찾고 싸우고 바꿔가는 일을 계획적으로 해보겠다고 급 다짐해 봅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