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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

 

'무늬만 프리랜서' 쓰는 방송사에 해야 할 질문

 

김예리 • <미디어오늘> 기자, 철폐연대 회원

 

 

 

이른바 ‘출입처’로 MBC를 맡은 지 근 1년이다. 기사를 쓸 때 MBC 동정이나 발표, 발생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마크한다는 뜻이다. 데스크 지시로 박성제 MBC 사장을 만나 신년 인터뷰를 진행했다.

 

방송 비정규직 질문을 어떻게 던질까 생각하며 질문지를 짰다. 보도국 작가에서 지역MBC 아나운서, 오디오맨까지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권 문제가 불거진다. MBC는 지난해 하반기 보도국에서 10년째 데스크 지휘 아래 일한 ‘프리랜서’ 작가들을 일방 ‘계약해지’했다. 박 사장은 2010년 이들 채용면접을 직접 봤다. 두 당사자는 노동자임을 법적으로 확인받는 싸움을 시작했다.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의 고발로 방송사가 20년 넘게 여성 아나운서만 프리랜서·비정규직으로 뽑아온 관행도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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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MBC 보도국 시사프로그램 뉴스외전 해고작가 A씨와 동료 방송작가가 MBC 상암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출처: 미디어오늘]

 

비정규직 노동자성 부정하기 위한 방송사의 말말말

 

박 사장은 두 작가의 노동자성과 MBC 내 비정규직 문제를 묻자 “원치 않는 분을 제외하고 표준계약서를 적용하고, 노동법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특정 프로그램 작가나 프리랜서에게만 달리 적용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노동자성 기준을 묻는 질문엔 “업계 관행이기에 MBC가 선도적으로 정규직화 할 수 없지 않을까? 탈법적이고 불법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최대한이 아닐까”라고 했다. 두 작가들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두 분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채용면접에 참여한 것 같다”고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현재 MBC의 태도를 보여주는 발언이라 생각했다. 기사에 그대로 담았다.

 

보도가 나간 날 밤 피드백이 왔다. 민주노총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쪽 연락을 받았다. 두 작가는 인터뷰에 나온 박 사장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에 분노했다. 박 사장은 2011년 이아무개 작가에겐 2주 간 방송기사 쓰기 1대1 교육도 했다. 2016년 MBC 해직자 천막농성 때 응원과 위로 문자를 주고받기도 했다. 이 작가의 걱정 어린 응원에 박성제 당시 해직 기자는 “고마워. 곧 다시 돌아갈 거야”라고 답했다. 아쉬웠다. 방송작가지부와 두 작가에게 확인했다면 박 사장의 답변을 흘려보내지 않고 되물을 수 있었을 것이다.

 

표준계약서를 적용한다는 답변은 더 문제였다. 사실과 달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7년 방송 비정규직 문제를 개선하고 부당한 계약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표준계약서를 만들었다. 법적 구속력은 없다. MBC는 지난해 보도국 작가 계약서에서 표준계약서의 핵심 내용을 변형했다. 표준계약서는 양자가 상호 합의하고 서면 날인을 거쳐야만 계약 내용을 바꿀 수 있도록 했는데, MBC 계약서는 방송사가 2주 전에만 통보하면 중도 계약해지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부분을 인터뷰 자리나 기사에서 짚지 않았다. 사실상 부당해고를 용인하는 계약서 문제를 한 번 더 언급하고 답변을 끌어낼 기회이자 현장을 놓친 셈이다. 인터뷰 이후라도 직접 방송작가들에게 현황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었다. 부끄러웠다. ‘그렇게 되지 말자’고 다짐했던, 출입처에 안주하는 기자의 모습을 발견해서다.

 

며칠 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2021년 MBC의 보도국 작가 계약서가 공개됐다. 올해도 독소조항이 여전했다. 박 사장은 이에 대해 “완벽히 상황을 모르는 상황에서 대답했다. 의지를 갖고 표준계약서를 준수해 나가겠다”고 했다.

 

MBC는 두 작가의 노동자성에 ‘법 테두리’를 내세운다. 조목조목 살필 부분이 많다. 그간 MBC가 방송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문제를 대하며 반복한 논리 또는 태도와 겹치는 탓이다. MBC는 방송계 비정규직들의 문제제기 국면마다 노동자성을 부인하는 거짓말을 해왔다.

 

MBC는 보도국 작가들에 대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보도국과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위탁업무(원고작성)가 가능한 프리랜서”라고 주장했다. 두 작가는 10년 동안 차장과 부장, 부국장의 세세한 지시와 데스킹을 받고 뉴스 아이템 선정과 배치, 기사 작성을 했다. 매일 같은 시간 출ㆍ퇴근하며 주 5~6일 일했다. 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연말 이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며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각하했다. MBC가 보도국 작가와 표준계약서 작성을 꺼리는 건 오히려 이 같은 업무 지속성과 종속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MBC 측은 “프로젝트성이 강한 드라마나 예능, 시사교양과 달리 보도국 작가는 계약기간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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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MBC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해 6월 상암동 MBC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전MBC에 프리랜서 여성 아나운서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다. [출처: 미디어오늘]

 

대전MBC는 인권위에 진정한 유 아나운서에 대해 인용 6개월 만에 정규직 전환하면서 채용 성차별은 인정하지 않았다. 다른 지역MBC ‘프리랜서’ 아나운서의 고용형태는 그대로다. 2019년 기준 강원영동, 광주, 목포, 안동, 여수MBC 등이 여성 아나운서만 프리랜서나 계약직으로 고용했다. 대전MBC 사측이 채용시험 공정성을 내세워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요구를 거부하기도 했다. 대전MBC 측은 당시 유 아나운서에 대해 “프리랜서와 직원 아나운서의 업무 및 채용과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여성 아나운서들은 필기시험, 국장단, 사장 면접을 보지 않았다. 채용 과정에 차이가 있다”고 했다.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 보도하려면 내부 비정규직 문제 눈감지 말아야

 

방송사의 모순적 태도는 현재 교착 상황인 방송작가 특별협의체에서도 드러난다. 지상파 방송3사와 언론노조가 맺은 산별협약에 따라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언론노조와 방송작가지부 등은 지난해 ‘방송작가 권익보호를 위한 협의체’를 꾸렸다. 그러나 방송사가 노동자성이 명백한 막내작가(취재작가)의 근로계약 필요성을 완강히 부인하면서 논의가 멈췄다. 협의체는 결국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을 대체해 진행한 ‘자율개선사업’ 결과에 따라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정작 방송사들이 여기에서 빠졌다. 방송사는 ‘협의체 기구가 이미 존재한다’는 이유를 댔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지난 2월 21일 쿠팡 노동자 산재 사망 실태를 다뤘다. 스트레이트는 “언제든 일자리를 잃을 수 있기에 쿠팡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부품이나 파리목숨에 비유했다”며 “쿠팡이 법이 허용하는 최대치까지 참 잘도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MBC를 비롯한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회사가 법적 테두리를 내세우는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찍히면 죽는다’는 두려움 속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한다. 보도에서 쿠팡은 “다른 사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정상적인 계약 종료일 뿐”이라고 했다. MBC가 해고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밝힌 입장과 겹친다.

 

MBC는 2월24일 올 상반기 중 보도국 작가에게도 표준계약서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표준계약서의 핵심조항인 계약해지 상호합의·서면절차 조건을 명시할지 미정이라 했다. 익숙한 풍경이다. MBC는 2019년 MBC <뉴스외전> 작가가 일방 계약해지를 통보받아 논란이 됐을 때도 같은 입장을 냈다. “표준계약서에 부응하고 그 과정에서 방송작가노조와 소통하겠다”고 했다. 이후 MBC는 방송작가지부와 소통 없이 독소조항 ‘7일 전 의사표시’를 ‘2주 전 통보’로 바꿨다.

 

박 사장은 ‘MBC 이미지는 저널리즘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안과 밖,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으로는 신뢰를 기대할 수 없다. 방송을 만드는 주체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이 저널리즘이란 구호에 앞선다. 방송사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핵심 주체이면서도 개선을 거부해왔다. 밖을 향하는 저널리즘 잣대로 그 어떤 것보다 방송사 안에 있는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목소리에 주목하길 바란다. 나에게도 다짐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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