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003] 강원대학교, 새로운 가족의 ‘스토브리그’ / 최승기

by 철폐연대 posted Mar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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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전략과 실천

 

강원대학교, 새로운 가족의 ‘스토브리그’

최승기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강원대학교분회장)

 

 

대학에는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정규직이 있고 비정규직이 있습니다. 교원이 있고 직원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비정규교수는 강사, 초빙교수, 겸임교수, 연구교수 등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강원대학교에는 1,300여 명의 비정규교수가 춘천캠퍼스와 삼척캠퍼스, 도계캠퍼스에서 교육노동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강사는 800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선은 니가 넘었어!”

- 이세영 팀장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은 2010년 조선대학교 시간강사 자살사건으로 발의된 법안으로, 시간강사들의 고용 안정성 및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한 법입니다. 강사법에 따르면 △ 강사에게 대학 교원의 지위를 부여하고 △ 대학은 강사를 1년 이상 임용해야 하며 △ 3년 동안 재임용 절차를 보장해야 합니다. 또 △ 방학 기간 임금 지급 △ 재임용 거부 처분 시 강사의 소청심사권 부여 △ 강사에 대한 퇴직금 지급과 4대 보험 가입 의무화 등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지난해 9월 1일부로 이 법이 시행되어 기존의 ‘시간강사’에서 공채를 거친 교원인 ‘강사’로 신분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강사 권익을 보호하는 강사법의 시행으로 되레 많은 강사들이 해고되었습니다. 강사법 시행 전 대학들이 강사 채용을 위한 재정 부담을 피하고자 강사 정원을 줄였기 때문입니다. 강사법의 시행으로 가장 큰 수혜를 받은 것은 역설적으로 대학측이 된 것입니다. 실제로 강사법이 시행된 이후 바뀐 것이라고는 2주치 방학 중 임금밖에 없습니다. 퇴직금과 의료보험은 아직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재임용을 빌미로 강사들에게 과다한 업무를 강제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강사법 자체라기보다는 법적 효과를 무력화시킨 대학의 행태에 있습니다. 이들은 공공재인 대학의 운영을 시장 논리로 대체하고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습니다.

 

 

“말을 잘 들으면 당신들이 다르게 대합니까? 말을 잘 듣는다고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던데요?”

- 백승수 단장

 

 

2 2020.1.17. 강원대분회 출범식 [출처 필자].jpg

2020.1.17. 강원대분회 출범식

 

 

사립대의 해고 강행과 달리 국립대학의 경우에는 그나마 다행인 상황에 있습니다. 부산대와 전남대, 경북대, 경상대 등 국립대학들은 일찌감치 강사법 시행과 관련해 합의안을 도출하는 등 사립대와 달리 강사법 여파로 인한 갈등이나 후유증은 예상보다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는 모습입니다. 국가 지원으로 인해 폐교와 폐강 압박이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에 합의가 수월했습니다. 또한 대학과 노조의 신뢰 축적도 큰 몫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없었던 강원대는 학교측의 일방적인 프로세스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동조합 결성을 위한 초동모임은 비교적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강사법 시행 직전 최승기, 전석환, 국원호, 김대영 등이 주축이 되어 본조 김용섭 위원장과 면담을 갖고 출범을 진행하였습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강사들을 위주로 하여 30여 명의 조합원이 모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삼척에서 강의하는 분들로, 춘천캠퍼스의 조합원들을 조직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그런데 김정호 조합원과 이학주 조합원이 결합하면서 춘천에서도 많은 조합원들이 결합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올해 1월 17일, 춘천 대학본부 앞에서 15명의 조합원과 연대단체들이 참여한 가운데 출범식을 진행하였습니다. 고등교육의 공공성 강화와 학내 민주화에 직접 참여해 교육의 주체이자 대학 구성원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생활임금 보장, 연구공간 제공, 참정권 보장 등을 촉구해 나가겠다고 천명하였습니다. 또한 타 대학 비정규교수노조와 연대해 △ 강사 고용 안정 위한 정부 재정 확대 △ 기타 교원 불법 사용, 법령 위반 대학 처벌 △ 강사 해고 강좌 축소, 수업권 침탈 대학 제재 △ 비정규교수 학술연구 지원사업 확충 △ 방학 중 임금 지급 기준 정상화 △ 경력 단절 강사 지원 대책 확대 △ 정년계열 전임교원 채용 확대 등을 촉구하였습니다.

 

 

“강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서로 도울 거니까요.”

- 엔딩 자막

  

강원대분회는 현재 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단체 분리신청 중에 있습니다. 곧 단체협상이 진행될 것입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조합원들을 조직하는 것입니다. 비정규교수분들에게 노동조합 가입을 권유하다 보면 노조활동을 하게 되면 받게 될 불이익을 많이 걱정합니다. 전임교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대부분 그런 경우입니다. 그리고 학문의 세계에 갇혀 있다 보니 현실적 문제에 대한 실천을 두려워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실천의 필요성을 느끼는 분들이 많기에 조직화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입니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은 교수노조와 달리 쟁의권을 갖고 있습니다. 학교 측에서도 이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강사들의 파업은 주로 성적입력 거부로 진행되기에 단 몇 명이 거부하더라도 학사시스템은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집행부의 조직력과 운동성이 먼저 고민될 필요가 있습니다. 민교협과 교수노조, 대학노조 등과 연대하면서 배우는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제도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가해지는 제약들입니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사회가 발전할 수도 있고 피폐화될 수도 있음을 역사적 교훈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공식적 제도를 작동시키는 이면에는 문화나 전통, 관습, 규범, 공통된 이념, 공통된 가치 등과 같은 비공식적 제약이나 제도 등이 있습니다. 강원대 구성원들과 함께 이러한 비공식적 제약이나 제도를 공론화하는 다양한 노력들을 함께 만들어 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