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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인권을 쌓는 창고’ 인권아카이브를 소개합니다

 

훈창 • 인권아카이브 활동가

 

 

 

수신 : <인권 아카이브>에 관심 있는 활동가

발신 : 인권연구소 ‘창’ 류은숙

제목 : 인권 아카이브에 대한 간담회.

일시 : 2015년 4월 27일

 

2015년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인권운동을 든든하게 지켜온 인권연구소 ‘창’의 류은숙 활동가가 소실되고 있는 인권활동가들의 기록을 아카이빙 해보자는 제안이었다. 첫 번째 간담회, 두 번째 간담회에 참석하고 나니 어느덧 인권아카이브는 내 활동 중의 하나로 들어왔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인권아카이브를 인권운동 공동의 자원을 축적하고 보존하는 하나의 단체로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인권아카이브의 시작은 단 하나의 메일이었지만, 이 메일이 실체화되는 과정은 지난했다. 아카이브가 무엇인지, 기록관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일의 진행과정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사람들이 아카이브를 만들기 위해 주위 도움을 받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실패와 성공을 반복했다. 솔직히 좌절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할 때 시도했던 것들을 다시 고치기도 했고 가지고 있는 재원을 초과하는 꿈을 꾸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아카이브는 6년의 시간 동안 인권운동의 기록들을 수집하고 정리했다. 1990년대 기록부터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기록, 2만 개가 넘는 기록을 하나하나 쌓았다. 다른 시민사회운동 아카이브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조그마한 도움도 줄 수 있게 되었다. 기록관리 전문가들에게 사회운동 아카이브를 소개할 수 있게 되었고 활동가들에게 아카이브의 필요성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6년간의 활동은 인권운동이 만드는 아카이브란 무엇인지 이야기 할 수 있게 하였고 인권아카이브에서 만들고 싶은 기록관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하였다.

 

인권아카이브를 왜 만들었을까?

 

한국에서 인권운동이 시작된 지 30여 년이 흘렀다. 30년은 많은 인권단체가 생기고 없어진 시간이기도 하고 경찰, 집회시위, 양심수 등의 의제에서 차별과 평등, 빈곤과 안전 등 인간의 존엄을 위해 사회와 우리가 만들어야 할 인권의 가치가 무엇인지 확장해 온 시간이기도 하다.

30년의 시간 동안 인권운동이 쌓아온 것들은 고스란히 기록들로 만들어졌다. 물론 이 기록들이 모두 지금까지 남아있진 않다. 안타깝게도 단체들이 생기고 없어지기도 하고 종이 기록들은 없어지기도 하였다. 그렇게 인권운동 역사에 중요한 기록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실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록들은 점점 소실될 수밖에 없다. 또한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기록들, 잘 보존하고 있던 기록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소실될 가능성은 크다. 기록이 사라진다는 건 단지 하나의 자료가 사라지는 문제만은 아니다. 가령 최근 10만인 청원을 통해 한국사회에 부각된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은 중요한 문제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실상 사문화된 과거의 악법으로 보이거나, 이제 중요한 한국사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이는 운동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보안법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고 이 법으로 국가는 우리를 어떻게 옥죄였는지, 한반도의 전시 상태가 우리의 평화를 어떻게 위협하고 있는지, 지금의 운동 사회는 과거에 비해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또한 관심을 갖더라도 운동사회가 해온 고민을 쉽게 찾을 수 없다. 기나긴 투쟁의 시간에 비해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의 기록은 많이 소실되었고 그 기록들에 담겨 있던 담론들 또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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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전원석방을 위한 시민대토론회 자료집」, 인권아카이브 소장 자료. [출처: 전국연합자주통일위원회 등]

 

국가보안법 운동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권운동 기록을 아카이브 하다 보면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문제들을 마주한다. 가령 2004년 3월 ‘다름으로닮은여성연대’에서 발간한 「개인/단체 간 평등한 연대와 소통을 위한 매뉴얼」1)은 지금도 운동사회에서 돌아볼 문제들을 되짚어 준다. “적어도 누군가 함께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그러한 시각과 자세와 노력을 갖추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하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는 말은 여전히 운동사회에 만연한 권위주의와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 중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친절을 가장한 폭력, ‘몰라서 그랬다.’는 말로 무마되는 문제들이 우리의 연대를 어떻게 훼손하는지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이 기록을 운동사회가 연대 활동을 시작하며 함께 읽는다면, 연대 활동을 하며 소수자들이 겪는 차별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인권아카이브가 운동사회 안에서 해야 할 역할이 이런 기록들을 발굴하고 알리며 지속적으로 운동사회의 토대를 구축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1) 다름으로 닮은 연대, 2004, 「개인/단체 간 평등한 연대와 소통을 위한 매뉴얼」, 인권아카이브 소장

인권이 만들어온 길과 아카이브. 인권아카이브에 담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인권아카이브를 만들며 가장 고민했던 점은 기록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 이 기록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줄 것인지가 아니다. 인권의 이름을 단 아카이브에서 가장 먼저 고민한 건 시각장애인 접근성과 기록에 남겨진 피해자들의 보호였다. 시각장애인 접근성은 사회의 기록관, 박물관, 도서관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지만 우리 사회는 비시각장애인을 중심으로 사회의 자본을 구축해 왔다. 인권의 이름을 단 아카이브에서도 만약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구축하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당당하게 이곳이 인권아카이브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이는 인권운동이 지금껏 활동하며 만들어온 역사에서 기인한다. 인권운동은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위해 회의, 토론회, 영화제 등에서 수어통역, 문자통역을 제공하고 이를 당연시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웹포스터에 대한 설명, 카드뉴스에 대한 설명 등 늘어나는 이미지 자료에 대한 접근성 확보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인권아카이브에서도 기록에 대한 설명을 기술하기 위한 매뉴얼을 제작하며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할지 고민했다. 스캔한 자료집의 경우 사진에 있는 활자를 컴퓨터에서 문자로 인식할 수 있는 OCR(광학 문자 인식)을 진행하고 사진, 포스터 등의 콘텐츠에는 설명과 활자를 적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진 않다. 인권아카이브는 2021년 시각장애인 활동가와 함께 인권아카이브가 접근성을 위해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할지 생각하고 지금까지의 방식에 대해 점검하려 한다. 많은 기록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보다 먼저 할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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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게이트 노동자와 인권단체 공동문화제 웹포스터에 대한 기록 정보, 인권아카이브 소장 자료.

 

또 다른 고민은 피해자에 대한 보호이다. 인권운동 기록에는 많은 인권침해 당사자의 정보가 담겨 있다. 인권침해 조사 보고서, 사진, 인터뷰 등 기록을 검토하다 보면, 이 기록을 원본 그대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피해자들에게 잊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또한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지우더라도 그들의 뇌리에는 여전히 남아 있을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건 아닐지, 고민하게 된다.

현재 인권아카이브는 기록에 남겨진 피해자에 대한 개인정보와 피해자가 누구인지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삭제하여 기록을 보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더욱 많은 고민은 필요하다.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모두 삭제하면 사건의 맥락들이 함께 사라지는 경우, 피해자의 정보를 삭제하더라도 주변 사람이라면 누구인지 유추 가능한 기록, 본인에게는 지우고 싶을 수 있는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도 되는지에 대해 해답은 찾지 못했다. 이는 인권아카이브에서 꾸준히 고민하고 많은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토론해야 할 문제이다.

 

인권아카이브가 소장하고 있는 기록

 

현재 인권아카이브는 22,744건의 기록을 소장하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20년까지이며 과거의 기록뿐만 아니라, 오늘도 누군가가 만들고 있는 기록을 동시기에 수집하여 보존하고 있다. 단체들에 기록을 기증받기도 하고 아카이브 활동가가 지속적으로 수집하기도 한다.

인권아카이브가 소장하고 있는 기록이 방대한 건, 인권운동 기록이 인권단체들의 기록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권아카이브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모두 인권운동이라 생각하고 기록을 수집한다. 노동운동 단체의 기록이니 이건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수집하겠지 라고 생각하지 않고 인권과 관련된 기록이라면 우선 수집한다.

인권아카이브의 다음은 이렇게 수집한 인권 기록을 다른 사회운동 아카이브와 공유할 방안이 무엇일지 이다. ‘노동자역사 한내’, ‘한국 퀴어아카이브 퀴어락’, ‘환경운동 아카이브’ 등 사회운동 아카이브들은 각기 다른 곳에서 열심히 기록들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있다. 만약 이 기록관들과 인권아카이브가 수집한 기록들을 공유한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인권 기록에 대해 접근하고 인권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6월 인권아카이브는 하나의 단체로 독립합니다

 

2021년 6월 인권아카이브는 하나의 단체로 독립하려 한다. 당장은 단체의 재정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고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활동, 현장의 급박한 상황에 비해 비교적 느린 속도로 진척되는 활동이라 어떠한 방식으로 재정을 구축하고 안정적으로 활동을 이어갈지 고민이다. 특히 아카이브는 다른 어떤 활동보다 재정이 많이 들어가는 활동이다. 한 명의 활동가가 기록을 수집하고 정리할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다. 인권활동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헌신적으로 활동한다고 하지만, 아카이브는 한 명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물리적으로 필요한 시간이 정해져 있어 한계가 명확하다. 지금은 한 명의 활동가가 아카이브를 하고 있지만, 그 숫자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기록을 정리하고 많은 사람이 기록을 활용할 수 있는 활동을 만들 수 있다.

2021년 인권아카이브는 재정의 확보와 함께, 6년 동안 만든 인권기록 수집의 원칙들을 점검할 계획이다.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록관리 원칙은 무엇일지, 다양한 시민사회운동 아카이브와의 협력은 어떻게 구축할지, 그리고 인권운동 단체들과 어떠한 협업들을 구축할지 하나하나 되짚으려 한다.

인권아카이브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권기록으로 다가가고 싶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인권아카이브 디지털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인권기록을 살펴보면 좋겠다. 그리고 인권아카이브 SNS을 통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란다. 그렇게 인권아카이브, 인권기록과 가까워지며 함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인권아카이브 디지털 홈페이지] http://hrarchiv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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