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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의 방향성과 쟁점들, 향후 과제

신정욱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사무국장)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은 지난 2월 24일 출범식을 진행했고 곧 조합원 정기 총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총회에서는 공공운수노조 산하 지부로의 ‘조직형태 변경’을 비롯한 굵직한 안건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집행부 전체가 긴장한 채 총회 준비에 골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저 개인적으로는 2018년 사업계획(안) 설계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업 기조와 목표, 세부계획들을 고민하다 보니 ‘대학원생노조’가 어떤 의미이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소급 질문하게 되어 그런 듯합니다. 그 상이 명료해야만 노동조합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은 지면을 빌어 저희가 그리고 있는 노조의 역할 상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대학원생노조는 피교육자와 노동자의 지위가 양립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범하였습니다. 실제 대학원생들이 처한 현실이 그렇기도 하고, 몇 년간의 실태조사에서 드러나듯이 대학원생 상당수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스스로 ‘노동자성’을 부인하는 대학원생들도 존재하며, “대학원생이 노동자이면, 우리는 사용자인가?” 라는 반발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교수들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이에 대해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은 현 제도 하에서는 교수가 사용자처럼 보일 수 있으나, 교수의 권한(인사권, 예산집행권)을 학교로 이행하는 제도적 변화를 거쳐 궁극적으로는 학생노동자와 대학 본부 간의 노사관계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학생이 어떻게 노동자냐?” 라는 물음은 노조가 활동하는 내내 따라다닐 멍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조의 출범으로 인해 이제야 노동자성 논란이 본격화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일 뿐입니다. 현행법 역시 저희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라고도 추측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현행 제도까지 바꾸기 위해서는 부단한 사회여론화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중정체성과 관련하여 ‘대학원생노조’의 고민은 또 있습니다. 우선 노조가 다루어야 할 사안이 굉장히 광범위하다는 것입니다. ‘노동자’ 지위에서 다루어야 할 각종 노동권 쟁취 의제를 비롯하여 ‘학생’ 지위에서 다루어야 할 학습권·교육권 향상을 위한 의제, 나아가 대학민주화를 위한 의제까지 광범위한 사안을 고민하고 그에 대한 대응 방향을 설계해야 합니다. 혹자는 노동조합이 ‘학습권’ 문제를 다루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도 지적합니다. 그러나 주체가 ‘학생노동자’인 만큼 저희 조합원들 피부에 가장 와닿는 사안들 중 하나이므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문제는 노조가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잃게 되면, 조합원(학생)들과 괴리된 ‘전위적’ 노동단체가 되어버리거나, 노동조합이라고 부를 수 없는 ‘대안학생회’에 그쳐버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는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양자 간의 균형을 맞추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학생’과 ‘노동자’가 지금까지 서로 독립된 개념이었기 때문에 두 의제가 충돌하거나 혹은 괴리되는 모순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결국 지난한 토론과 논쟁의 시간을 거친 후에야 저희 노조의 역할 정립이 명확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학생’과 ‘노동자’ 두 지위 간의 공통 정체성을 확립하는 게 관건일 것이며, 그 핵심키워드는 결국 ‘노동자계급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각 대학 대학원 학생회와 노조 간의 역할 분담이 원만해지고, 저희 내부에서도 학내의 여러 주체조직 중에서 유독 ‘대학원생노조’만의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한 상을 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노조의 핵심은 노동3권이니, 결국엔 저희 노조가 ‘교섭단위’를 중심으로 한 임단투를 준비하면서 보다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 같습니다(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대학원생 노동자 중에서 현행법상 ‘노동자성’ 입증이 용이한 직군(행정조교)과 그렇지 않은 직군(그 외 교육조교 등)이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최근 미투 운동의 열기가 뜨겁습니다. 매일같이 새로운 고발이 기사화되고 있습니다. 저희 노조 역시 많은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습니다. 기자들 말로는 ‘교육계’가 미투로 인한 파장이 가장 클 것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권력형 성범죄가 가장 많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곳이 대학원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러합니다. 대학원은 교수-학생 간의 종속관계가 지나친 나머지 온갖 권력형 범죄들이 판치는 곳입니다. 성범죄뿐만이 아닙니다. 교수들이 학생들 인건비를 횡령하거나 연구업적을 가로채는 일이 수시로 발생하는 곳이 바로 대학원 사회입니다. 실제로 저희 노조 출범 이래, 다양한 인권침해 제보가 접수되고 있고 노조 차원에서 조직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사자조직으로서 피해자와 함께 싸우는 것, 이는 저희 노조의 기본적인 역할이기도 합니다. 최근 “직장 #미투 폭로 한계, 노조 통한 조직적 대응 바람직”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실제로 노조가 피해자의 대리인이 아닌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어 함께 대응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희 노조 역시 이러한 방향성에 대해 깊게 공감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민주노조 운동 속에서 대학원생노조의 역할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저희 노조가 노동계에 산적한 각종 현안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투쟁사안에 연대하며 각종 집회에 참석하는 것도 충분히 의의가 있겠지만, 스스로 ‘학생노동자’임을 자처하는 만큼 민주노조 운동에 수동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아닌 우리자신의 문제로 내면화하여 주체적인 운동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상급단체의 도움 하에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수시로 진행해야 하겠지만, 또 한편으로 노동 의제들을 대학 내 ‘우리 문제’와 결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집행부가 갖추어야할 정책·선전 역량일 것입니다. 아래는 일종의 예시입니다.

 

예컨대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경우 상당수가 학위 취득 후에 민간 기업이나 공공기관으로 취업하곤 합니다. 말하자면 졸업과 동시에 ‘취준생’ 신분이 되는 셈입니다. 저는 작년 하반기부터 진행되어온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취준생’들이 공정경쟁 운운하며 비정규직들을 비난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만약 비슷한 상황이 재개된다면 저희 대학원생노조가 ‘취준생’ 당사자 입장을 대변하여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지지하고 함께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상당수 대학원생들은 박사학위 취득 후에 비정규직 대학강사가 됩니다. 강사들의 처우 개선 문제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내일’의 대학원생들이 겪게 될 당사자 문제이기도 합니다. 대학원생들이 강사들과 함께 강사처우 개선을 외친다면 어떨까요? 역으로 강사들이 저희와 함께 대학원생 노동권 보장을 외친다면 어떨까요?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대학원생 노동자들에게 제기되는 노동자성 논란이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그것과 형식적으로 닮아있다는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물론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둔갑시켜서 착취하는 모델은 아니지만, 학생이라는 지위를 빌미로 일을 시키고도 노동권을 일절 보장하지 않는 형태가 유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ILO에서 지난 2006년도에 펴낸 <노동관계에 관한 보고서(employment relationship report V)>를 보니, 특수고용노동의 유형 중에 “모호한 노동 관계들(ambiguous employment relationships)”이 있더군요. 이를 두고 ILO는 프리랜서 작가의 경우처럼 고용종속관계가 (다른 노동자에 비해) 뚜렷하진 않지만 분명 노동을 하고 있는 형태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대학원생들이 하고 있는 노동도 일종의 특수고용노동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저희 노조가 특수고용 단위 동지들과 결합하여 노조법 2조 개정 투쟁을 본격적으로 해야 하는 건지, 저희 역시 노조법 2조 개정을 통해 노동자성 논란을 털어버릴 수 있는 건지 생각이 뻗쳐갑니다.

   

또한 현 시점에서 주체의 한계가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대학원생들은 지도교수의 눈치를 지독하게 봅니다. 교수가 여러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에 반발했을 경우 직접적인 보복을 당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희가 언론을 통해 노조 출범 소식을 알리자마자, SNS 상에 “교수가 대학원생노조에 가입하면 내 제자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저희 노조 집행부 역시 조합원들의 이런 특수성을 잘 알고 있기에 가입 문의가 올 때마다 수시로 “조합원 신상은 절대 공개되지 않는다. 안심하고 가입하시라” 안내를 드리곤 합니다. 그러나 신원을 드러내지 않고 하는 투쟁이 어떤 무게가 있을지 고민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심지어 단체교섭을 하게 되면 (교섭단위) 조합원 명단을 대학 본부에 전달하게 될 텐데 이 역시 걱정입니다. 그러므로 저희 노조의 과제는 대학원생에 대한 교수의 장악력을 제도적·문화적으로 끊임없이 약화시키고 자유롭고 평등한 학생-교수 관계를 확립하는 것과 동시에, 소수의 집행부만이 아닌 대학원생 조합원 스스로가 직접 광장에 나와 맨얼굴로 저항의 목소리를 내며 투쟁할 수 있도록 제도 및 문화적 개선을 선도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과도기 속에서 조합원들이 부담 없이 참가할 수 있는 ‘문턱 낮은 투쟁사업’들을 어떻게 하면 배치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알바노조의 퍼포먼스 방식이나, 마치 축제처럼 진행되는 해외 대학원생 노조들의 파업영상도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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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콜롬비아 대학, 대학원생 노조 파업사진 [출처: 필자]

   

뿐만 아니라 대학원생이란 지위가 최소 2년에서 6년 정도로 한시적이란 점도 저희 노조가 갖는 주체적 한계입니다. 따라서 한시적 시기 속에서 노조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조합원들이 대학원생 이후에 가질 ‘직군’이 무엇인지를 고려하여 해당 직군의 노조들과 어떤 유기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지(예컨대 조합원 지위 승계)도 대·내외적으로 풀어야할 과제입니다.

 

이상의 이야기를 통해서 대학원생 노조의 활동 방향성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를 드렸습니다. 아직은 짧은 단상들에 불과하지만, 정기총회를 전후로 조직 내부의 논의를 거쳐 조금 더 첨예하게 구체적으로 다듬어보려고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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