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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노동자도, 버스 타는 시민도 안전한 버스완전공영제

권미정 (사회변혁노동자당 투쟁연대국장)

 

지난 7월 9일 경기 광역버스 사고로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어 9월 2일에는 천안논산간 도로에서 발생한 광역버스 사고로 1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같은 날 저녁에는 오산IC 진출입도로에서 광역버스가 5중 추돌사고를 냈다. 사고의 원인은 졸음운전으로 확인되었고 반복되는 버스 대형사고의 원인으로 언론에서도 운전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제기하고 있다. 2012년~2016년간 졸음운전 사고는 무려 2,539건이었다.

 

기사들의 이유 있는 졸음

 

잘 쉬지 못하면 졸음이 오는 게 당연하다. 버스노동자들은 승객들의 목숨을 옮기는 일을 하고 있지만 버스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근로기준법 59조는 버스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고 있다. 노동시간 특례조항에 의해 근로기준법 59조에 포함된 운수업은 다른 25개 업종의 노동자들과 함께 무제한노동을 당하고 있다.

하루 16시간, 18시간은 기본이고 일주일에 57시간 이상을 일한다. 시내버스 기사들의 대다수는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 근무를 한다. 시외버스나 광역버스 그리고 고속버스는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복격일제 또는 나흘 일하고 이틀 쉬는 복복격일제로 일한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운전대에 앉아있지만 쉬는 시간이 따로 없다. 운행과 운행시간 사이가 쉬는 시간이자 대기시간이다. 출퇴근시간대는 운행시간이 길어져 대기시간이 없기도 하다. 식사도 대기시간에 알아서 눈치껏 먹어야 해서 5분 만에 먹고 운전석에 앉기도 한다. 화장실을 가지 않기 위해 식사를 자제하는 경우도 있다. 교통체증으로 버스운행시간에 못 맞출까봐 과속운전에 정류장 건너뛰기까지 해야 하고, 늦으면 늦는다고 승객들의 감정받이도 해야 한다.

버스운전노동에 대한 실태조사 보고서에 적힌 버스노동자의 하루를 보면 도대체 언제 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료> “운전노동자의 건강과 노동안전보건운동-버스운전노동 중심”, 노동시간센터‧가톨릭대서울성모병원

사례1. 오전 4:30 집 출발(집이 먼 사람은 더 일찍 출발) → 승용차로 영업소 도착. 동전 챙기기/사인하기/시간표 보기/아침 식사 → 차고지로 감 → 오전 5:30 첫 차 출발 → 저녁 10:30 운행 마침 → 밤 12시나 새 벽 1시에 집에 도착(1회 3시간, 하루 5-6회 운행, 평균 운전시간 18-19시간)

사례2. 오전 3:45 집 출발 → 승용차로 이동 20분 → 오전 4시 넘어 도착 → 식사/양치/돈통 챙기기/전날 버스 운전자가 해당 버스 흠집 냈는지 확인 → 다음날 새벽 1시경 운전 마감 → 새벽 2시 집에 도착 → 새 벽 3시경 취침

 

원래는 격일제 근무지만 2-3일 연속근무를 자주하는 게 현실이다. 기사가 부족하기 때문이고 낮은 임금 때문이다. 장시간 노동에, 휴식시간도 없고, 안정적으로 쉴 곳도 없고, 식사도 제때 하지 못하는 노동조건에 있는 운전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안전한 버스, 친절한 버스를 요구할 수 있을까. 7월 9일 사고를 낸 운전노동자는 전날 18시간을 넘게 일하고, 5시간도 못 쉬고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사고의 책임은 운전노동자가 아니라 인력충원 없이 노동자만 쥐어짜는 버스업체에 물어야 한다.

 

민영제 버스운영체제인 경기도에서는 버스사고 이후 갑작스럽게 광역버스에 대해서만 준공영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버스운영체제는 민영제, 준공영제, (완전)공영제로 나뉘고 대다수 지역은 민영제 버스이다. 준공영제가 되면 버스노동자들의 삶이 달라지고 시민들의 안전이 보장되는 것일까.

 

준공영제, 여전한 한계

준공영제는 매년 표준운송원가라는 금액기준을 정해서 운행으로 벌어들인 업체의 수입이 표준운송원가에 미치지 못할 때 지자체가 나머지 금액을 지원해주는 방식이다.

2004년 서울시에서 버스준공영제를 시행한 이후 2005년 대전, 2006년 대구와 광주, 2007년 부산, 2009년 인천에서 민영제 체제를 준공영제로 전환했다. 가장 최근에는 올 8월말 제주도에서 준공영제로 전환했다. 물론 준공영제로 민영제 문제점을 일부 보완할 수 있다. 버스업체들에게 경영개선을 압박할 수 있고, 민영제에서 지급하던 보조금 지원제도를 좀 더 합리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도 민영제보다는 나아졌다. 준공영제는 버스가 공공성과 보편적 복지기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했다는 점에서 진전했지만 한계는 명확하다.

이미 준공영제는 버스업체들에게 과도한 이윤을 보장해주는 ‘버스판 4대강’이라는 말이 나온다. 표준운송원가 자체를 버스업체들이 참여하여 결정하는 것이 문제다. 지자체마다 표준운송원가가 다 다르다. 인건비, 유류비, 보험료, 감가상각비 등이 큰 차이가 없는 조건에서 버스 한 대당 1일 최대 25만 원 정도 원가가 차이난다.

지자체에서 지원되는 보조금이 전용되는 것도 다반사다. 채용청탁을 하는 노동자들이 업체임원에게 돈을 갖다 바치는 채용비리가 여기저기 터지고 있다. 근무하지도 않는 가족과 친인척을 직원으로 올리고, 가족의 주유소에서 유가보조금을 부풀리는 등 정부지원금을 횡령하고 유용하는 사태가 나타나고 있다. 제주도의 경우 준공영제를 도입하면서 차량구입비까지 업체에 지원해줬다. 회사는 운송수지 적자가 났지만 임원은 5억 원의 고액연봉을 받아가고, 정비직 등 현장안전을 담당하는 노동자는 줄이고 비전문가에게 정비를 맡겨서 보조금을 빼돌리기도 한다. 준공영제 이후 서울시 버스업체 임원들 평균연봉이 123% 증가했음이 감사결과로 밝혀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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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9.4. 버스완전공영제 시행촉구 기자회견 [출처: 필자]

 

시민의 세금으로 버스업체 수익 보전해주는 준공영제

버스업체의 운영경비와 수익을 세금으로 보전해준다. 그런데 버스소유권·회사경영권·직원채용권은 버스자본이 가지고 있다. 이렇게 소유와 권한의 모순이 있는 것이 준공영제다. 지자체는 버스업체가 요구하는 재정보조금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검증할 방법이 별로 없다. 버스업체가 갖게 된 노선권이 버스자본의 재산이 되어 사적소유로 인정받고 있어서, 지자체에서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는 조건이다. 버스가 영구면허이기 때문이다. 한 번 가지면 평생 소유를 보장하는, 말도 안 되는 제도가 버스자본의 비리를 만들고 시민의 안전을 해치고 있다. 준공영제 자체가 버스업체조합과 협약을 맺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버스업체를 규제할 수도 없다.

더 나아가 버스자본은 지자체와 유착관계를 맺기도 한다. 버스자본이 내민 자료가 거짓임을 알면서도 뇌물을 대가로 하는 비리가 발생한다. 게다가 어용노조가 지배하는 버스노동현장은 이 실상을 알면서도 침묵 당한다. 결국 버스준공영제는 버스업체-지자체-어용노조의 유착을 통해 유지된다. 탐욕과 비리의 고리, 완전공영제로만 끊을 수 있다.

시민의 세금인 정부예산으로 버스업체를 유지시키고 있다면 공공성과 보편적 복지기능이 확대되도록 해야 한다. 하루 1,700만 명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대중교통 수송부담률이 지하철과 철도가 15.1%인데 버스는 26.2%이다. 이미 한 해 2조 원에 달하는 지원금이 버스업체에 지급된다. 대중의 것으로 돌아와야 할 재정지원금은 버스자본만 배불리고 있다. 필수공공재인 대중교통을 버스자본이 사유화하고 있는 한, 비리는 끊이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공영화해야 한다.

대중교통의 공영화를 위해 법 개정도 필요하다. 운수사업은 근로기준법 59조의 노동시간 특례조항을 적용받는다. 운전노동자들이 16시간, 18시간씩 일하는 근거가 노동시간 특례조항 때문이다. 장시간 노동을 하게 만드는 것부터 없애야 한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도 전면 개정해야 한다. 자본만 있으면 사업권을 가지게 되고 버스노선권을 평생 소유하게 하는 현재의 면허 제도를 바꿔야 한다.

모든 이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수익이 아니라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노선을 배치하고, 버스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축소되고 휴식시간이 보장되어 안전한 버스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중교통간의 연계를 통해 공공성이 확장될 수 있도록 하려면, 이윤에 따라 운영시간과 노선을 조정하는 민영업체에 맡겨놓을 수는 없다.

운전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인원 충원에 재정 투입을 안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막대한 정부재정을 투입해 버스자본의 이윤을 보장하느니 대중교통을 완전공영제로 전환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완전공영제가 된다고 하여 인원 충원과 노동조건 향상이 그냥 따라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현장의 투쟁도 필요하다.

 

과로 없는 안전한 버스, 교통복지 확대, 완전공영제 시행 경기공동행동

버스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과 민영제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지난 9월 4일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에서는 광역버스들만 준공영제를 시행한다는 협약동의안을 의결했다. 일부 의원들의 반대와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9월 12일 경기도의회 본회의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경기도의회 본회의에서는 협약동의안이 다뤄지지 못했다. 버스노동자들과 사회단체들의 반대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국노총마저 반대했다. 경기도정이 추진하는 광역버스 준공영제는 경기버스의 5%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자 10월 23일, 경기도시장군수협의회에서 ‘4자 협의체(경기도‧도의회‧시장군수협의회‧시군의회의장협의회)’를 구성해서 연말까지 논의해서 합의하자고 의결했다.

남경필 도지사는 어떻게든 자신의 치적으로 준공영제 도입을 남기고자 한다. 경기도가 도입하겠다는 준공영제는 버스업체 운영비 전부를 세금으로 보전하는 방법이다. 운영비 전체를 시민이 부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준공영제가 아닌 완전공영제를 시행할 이유는 충분하다. 완전공영제를 하면 지자체 지원금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현재 준공영제에서 지원하는 금액이면 완전공영제 도입이 충분히 가능하다. 지원금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한 것이고 그것은 완전공영제 체제에서 가능하다.

그래서 경기 지역의 노동·사회·시민·정치조직들이 모여서 지난 10월 17일 ‘과로 없는 안전한 버스, 교통복지 확대, 완전공영제 시행 경기공동행동’(이하 경기공동행동)을 만들었다. 경기공동행동은 완전공영제를 경기도에 시행하고자 한다. 경기도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경기도형 완전공영제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도의회의원, 시민들과 토론할 예정이다. 그러기 위해 준공영제 도입을 막아야 한다. 준공영제가 한 번 도입되면 버스자본은 더 거대해지고, 거대해진 버스업체를 공영화하려면 더 많은 재정이 필요하게 된다. 재정은 지원금과 인수금으로 버스자본에 흘러들어갈 것이며 버스업체들의 저항은 거세질 것이다. 삼대를 먹여 살리는 버스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제대로 된 공공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있다. 경기도는 도농복합지역이고, 지하철이 다니지 않아서 버스가 유일한 대중교통인 곳도 있고, 대중교통 소외지역도 많다. 다른 지역의 100원 택시, 시영버스 사례를 검토하고 경기 지역에 맞는 공영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열악한 버스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저임금을 개선하지 않고는 안전한 버스, 완전한 공영제는 어려울 것이다. 경기공동행동은 대중교통을 대중의 것으로,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59조 폐기 투쟁에도 함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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