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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마음’ 연대, ‘동행’한다는 것

박현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

 

 

2000년대 초반 철폐연대에서 상근으로 일할 때, 어떤 교육에서 금속사업장의 노동조합 위원장과 함께 모둠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노조에서 단체로 집단프로그램을 했던 모양인데, 그 프로그램에 대해서 위원장은 불편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왜 이런 걸 노조에서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난다. 돌이켜보면 그 노조에서 했던 집단프로그램이 서로 마음을 나누는 형태의 어떤 것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조합원 개인의 감정이 드러나고 개인사가 많이 나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그런 표현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그러한 것들이 노동조합 활동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15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고 노동운동의 분위기도 바뀐 것인지, 이제는 노동조합에서도 감정을 드러내고 개인사가 부각되는 집단프로그램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그런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어난 것 같다. 왜 이런 변화가 생긴 걸까? 아마도 장기투쟁사업장에서 이런저런 갈등과 마찰로 조합원들 간의 상처가 깊어지고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서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렇다면 투쟁하는 노동조합 내부에서 조합원끼리 상처를 덜 주고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은 무엇이어야 할까 고민이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치유 사업에 힘을 보태준 ‘동행’

2016년이 끝나갈 때, 김혜진 상임집행위원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비정규직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마음나눔 혹은 마음치유 사업에 관심을 가지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철폐연대를 통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그런 사업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기획안을 한 번 보내보면 어떻겠냐 하는 것이었다. 제안을 받고 기획서를 보냈고, 그곳에서 이런 사업이라면 후원하겠다고 결정했다. 그곳이 바로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http://www.activistcoop.org)’이다. 공익활동가들의 삶을 보다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시민사회단체‧자활후견기관‧협동조합‧노동조합 간의 연대의식을 높여 시민사회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단체로, 2013년 설립되었으며 송경용 신부가 이사장으로 있다.

 

동행에 보낸 사업계획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비정규직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노동자 수다방’이고, 다른 하나는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을 위한 ‘휴식 캠프’다. 이렇게 사업을 기획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최근 장기투쟁사업장 등 노동자 대상 치유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서 마음나눔 혹은 마음치유가 심리상담 전문가의 몫으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 게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심리상담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역할보다 더 중요한 것은 투쟁 당사자들의 내적 힘의 향상과 관계 회복을 통한 통찰, 치유, 변화일 것이다. 개인 심리상담이나 약물치료라는 것은 해당 내담자/환자가 어떤 증상,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한 전제 없이 나랑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서사를 지지받는 경험은 참여자들에게 치유 경험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 그 경험이 개인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자리가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취지에서 ‘노동자 수다방’을 기획했다. 그리고 바쁜 투쟁 일정을 떠나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정말 그냥 놀다가 오면 좋겠다는 취지로 기획된 것이 ‘휴식 캠프’다. 휴일도 없이 매일같이 열심히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짧지만 1박 2일 정도는 그냥 아무 것도 안하고 놀아도 좋지 아니한가? 하면서 말이다.

 

경상도 남자들도 수다를 좋아해요~

노동자 수다방을 처음으로 진행한 곳은 구미지역의 비정규직 투쟁사업장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이다. 작년 가을부터 이어져온 서울 상경투쟁에 대한 신체적, 심리적 피로감을 풀면서 잠시라도 서로의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구미에서 가까운 칠곡군 왜관읍에 위치한 연화리피정의집에서 3월 2일~3일, 1박 2일 동안 진행되었다. 서울 상경투쟁 일정과 금속노조 대의원대회가 겹쳐서 많은 조합원들이 참가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금속노조 대의원대회를 마치고 새벽에야 도착해 참석한 동지 2명이 있기는 했지만 다행히, 22명의 조합원 중 19명의 조합원이 참석했다.

노동자 수다방은 크게 두 가지 주제로 진행되었다. 하나는 투쟁을 시작하고 나서 변화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수다방이고, 다른 하나는 그간의 투쟁을 돌아보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개인적 소회를 나누는 수다방이었다. 두 개의 수다방으로 참가자를 나누기 위해서 짧은 몸풀기 게임을 했다. 몸풀기 게임을 싫어한다는 조합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참가자를 두 모둠으로 나누기 위해서 짧게 게임을 했다. 다행히 조합원들은 즐겁게 게임에 참가해주었다. 그렇게 나누어진 조합원들 8명은 관계 수다방으로, 9명은 노동조합 수다방으로 들어갔다. 참가자들이 모두 열심히 수다를 떨어서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경상도 남자들이 과묵하다는 이야기는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동지들과는 상관없어 보였다.

관계 수다방에서는 투쟁을 한다는 게 알려지고 나서 주변 사람들의 지지보다는 걱정과 우려가 많았고 그런 걱정과 우려를 안고도 이 투쟁의 끝을 보고 싶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무작위로 모둠을 나눴지만 의도치 않게 관계 수다방에는 싱글들이 많았는데, 투쟁을 하면서 다른 투쟁사업장 동지들과 연애를 시작한 동지들도 있었다. 노동조합 수다방에서는 투쟁을 하고 나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게 자유로워졌다는 이야기, 제대로 몰랐던 세상을 투쟁을 하고 나서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세상을 제대로 보게 해 준 안경 같다는 이야기, 제일 쉬운 듯 하지만 제일 어려운 단결과 조직 그리고 소통에 대한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수다는 저녁식사 후 늦은 뒤풀이 자리까지 이어졌다.

 

즐거움도 불편함도 수다로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관계 수다방, 노동조합 수다방이라고 나누기는 했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두 이야기 주제를 딱 자르긴 어려울 것이다. 두 수다방 모두에서 앞으로의 투쟁이 장기화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 가족관계 등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불편한 이야기들도 많았지만, 수다방에 참가한 조합원들은 대부분 좋은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매일 반복되는 투쟁 일정에서 잠시 떨어져서 짧은 휴식이 주어졌다는 것, 그 휴식 속에서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 내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사람들에게 나의 속마음을 내보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들로 조금은 멀게 느낀 조합원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던 시간이 된 것 등 이런저런 이유들로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1박 2일은 너무 짧은 것 같고 좀 더 길게 이런 시간들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돌이켜보니 첫날은 수다방 진행하고 저녁밥 먹고 수다 떨면서 뒤풀이하고, 둘째 날은 아침밥 먹고 뒹굴거리고 수다 떨고 점심밥 먹고 돌아온 거 같다. 별다른 일 안하고 서로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 조합원들이 더 친해진 것 같아서 좋다. 이번 수다방을 계기로 즐거운 이야기도, 불편한 이야기도 서로 나누고 들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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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3.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동행' 단체사진 [출처: 철폐연대]

 

하루하루 치열한 일정과 싸움으로 생활하는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지만 시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여력을 낼 수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쉼과 휴식, 마음을 나누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쉽지 않은 일이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치유 사업을 후원하는 동행에 고마움을 전한다.

 

 

투쟁하는비정규직노동자들과의'마음'연대,'동행'_박현진-질라라비20170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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