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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투쟁과 추모의 김용균 1주기

권미정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사무처장)

 

 

지난 10월 26일,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은 창립총회를 하고 출범식을 했다. 고 김용균노동자의 1주기가 오기 전에 그 뜻을 이어갈 수 있는 조직을 결성하려고 노력한 결과였다. 지금, 문재인 정부와 발전소 사측은 김용균의 죽음 앞에 했던 약속 중 어떤 것도 지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용균이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김용균재단을 만들었다.

김용균이라는 빛. 그 빛을 본 이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아 김용균재단은 세워졌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하는 세상을 목표로 내걸었다.

 

 

모두의 김용균을 담고 출발

 

김용균재단을 만들겠다고 민주노총 중집회의와 노안담당자 수련회,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소속 사업장, 노동안전활동단체, 정치조직, 청년단체 등 여러 단위를 다니면서 간담회를 하고 설명회를 했다. 왜 만드는지 뭘 하려고 하는지 어떻게 함께해줬으면 좋겠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다니는 곳마다 관심이 없는 건 아닌데 별다른 질문이 없다. 너무 당연하다 싶어서일까 아니면 아직은 사업이 눈에 보이지 않고 상상되지 않아서일까? 좀 고민됐지만 다들 응원하는 분위기인 것만은 확실했다.

그간 산재사망사고에 대응하는 투쟁들은 많았지만 유가족이 피해자로서, 운동의 주체로서 서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측면에서 김용균재단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언론들도 관심을 보이고 함께 힘을 보태주는 분들도 있고, 지역시민모임·청소년모임·대학생모임·종교모임·노동자모임 등 두루 이야기를 할 기회도 있었다.

특별한 24살 김용균이 아니라 비정규직인 모두의 김용균, 청년인 모두의 김용균으로 가슴에 박혀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두의 이야기를 담는 김용균의 이야기를, 모두들 듣고 싶어 했다. 그 관심과 뭔가 해야 한다는 열망을 뿌리로 삼아 김용균재단은 출발했다.

출범하기 전에도, 출범한 이후에도 가장 많이 보는 경우가 조직명이다.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이라고 말하지만 다들 ‘김용균 재단’으로 명시하는 경우가 많다. ‘김용균재단’은 하나의 단어라고 우리는 규정했다. 재정을 잘 쓰이게 하는 것을 중심 활동으로 하는 ‘재단’이 아니라 보통의 김용균들이 많이 모인 모임이라는 뜻으로 ‘김용균재단’을 쓰기로 했다.

그래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의 로고는 용균이의 글씨체를 그대로 따서 생명의 붉은색, 그리움의 노란색, 추모의 보라색을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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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려고?

 

김용균의 죽음을 보며 우리는 언제까지 노동자들의 목숨으로 기업의 이윤을 남길 거냐는 질문을 던졌다. 하청과 재하청, 청년과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 들에게 먼저 주어진 불안한 매일의 삶과 가까이 온 죽음을 거둬내야 한다.

2020년에는 사단법인을 튼튼하게 뿌리내리기 위해 3천 명의 후원회원을 모집하고, 지금 운영하는 페이스북, 홈페이지 외에도 소통을 더 확대할 방안도 찾으려 한다. 자본과 정부의 지원 없이 튼튼하게, 노동자‧시민의 힘으로 키워가는 단체로 만들어갈 예정이다.

산재사고 발생 후 당황할 노동자와 가족 들을 위한 권리매뉴얼도 만들고 함께 나누는 자리도 고민하고 있고, 산재피해 가족들이 주체로 나서는 활동을 지원하고 함께하고자 한다.

반복되는 노동안전사고에 대해 진짜 사장이 제대로 책임지게 하는 투쟁에도 힘을 보태며 가려 한다. 산업체파견 현장실습이나 도제학교 같은 잘못된 제도는 폐지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제도 개선 투쟁은 지속해야 한다.

당장은 김용균특조위 권고를 이행하게 하고 민간부문으로 확대하게 하는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청년‧청소년들의 노동권리가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단위들의 활동에도 힘을 보탤 생각이다. 김용균들의 삶을 추모하고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활동은 계속될 것이다. 보통명사 김용균들을 기억하는 공간과 계기를 만들려 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투쟁에 결합하고 지원하며 사회에서의 공감대를 넓히는 역할을 하는 김용균재단이 되고자 한다.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운 현장의 현실과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사회적 힘을 실어주는 노동자들의 조직이 되려 한다. 연대하고, 연계하는 중심축이 되어 더 많은 힘을 모아내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12월 2일에서 10일, 추모를 담아 투쟁한다

 

김용균재단의 희망찬 계획을 말하기엔 현실은 참 힘겹다. 안전 때문에 눈물짓는 국민이 없도록 하겠다던 문재인 정부는 이미 수없이 많은 노동자들을 울리고 죽이고 있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 업무상 과실치사와 산안법 위반으로 노동자가 죽은 사업장이 157곳이다. 노동자를 죽고 다치게 한 사업주 중 금고형 이상 처벌을 받은 경우는 1천 명 중 5.7명이다. 떠들썩했던 산안법 개정은 시행규칙과 시행령을 손대면서 누더기가 되었고 국무총리 산하로 구성되어 진상조사를 했던 김용균특조위의 조사 결과는 보고서로만 남았다. 실질노동시간을 줄이겠다며 연장노동시간을 단축한다고 생색을 내던 정부는 결국 탄력근로제 기간을 확대하고 특별연장노동시간을 맘대로 늘릴 수 있다고 말한다. 주 52시간은 노동법 책 속의 숫자에 불과해졌다.

12월 10일, 김용균이 혼자 일하다가 생을 마감한 1주기가 돌아오지만 현장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뿌연 발암물질 유리규산 먼지 속에 일하고 있다. 2급 마스크가 남았다고 그걸 다 소진하면 특급마스크를 지급하겠다는 이상한 논리를 말하는 발전소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고 하는 안을 내면 전문가위원 개인에게 법적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공문을 보내는 업체다. 이 와중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정부다. 노동자들의 월급 절반을 떼먹고 있는 업체에 대해 시정하라고만 할 뿐,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고 있다.

기억하고 떠올리며 조용히 추모하기엔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너무나 많다. 하루라도 일하던 노동자가 죽었다 다쳤다 사고났다는 기사를 안 보는 날이 없다. 비정규직이 투쟁하지 않는 날이 없다. 청년 노동자들이 경쟁 속에서 서로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는 기사를 매일 본다.

그래서 추모와 함께 투쟁하는 김용균 1주기를 만들기로 했다. 이미 11월 11일부터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는 광화문광장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용균이와의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12월 2일부터 10일까지, 고 김용균 1주기 추모주간을 선포하고 매일 작품 전시, 저녁 문화제와 기도회를 할 예정이다. 그리고 시민 추모위원을 모아서 모두의 요구를 서울과 태안 곳곳에 현수막으로 게시하려고 한다.

12월 2일, 추모주간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중대재해사업장 조사권고안들이 휴지조각이 된 상황과 이유에 대한 토론회, 조사위원들과 현장노동자들과 유관단위들이 공동행동도 할 예정이다. 8일에는 김용균노동자를 모신 마석모란공원에서 추도식을, 10일에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현장추도식집회를 기획하고 있다.

   

 

12월 7일,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촛불행진

 

중요하게는 12월 7일이다. 그날에는 김용균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하는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촛불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함께 외치고 걷는 날이다. 분노가 힘이 되는 날을 만들려고 한다. 12월 7일 하루 행사를 잘해보자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힘으로, 2019년 연말과 2020년 투쟁을 열어갈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한다. 우리의 요구를 모아내고 문재인 정권을 향해 외치고 김용균들의 촛불의 힘을 더 넓히고 키워가려고 한다.

함께하는 만큼 한 명이라도 덜 죽고, 한 명이라도 덜 다치고, 한 명이라도 덜 차별받게 된다. “내가 김용균이다! 우리가 김용균이다!”는 아직 우리가 외쳐야 할 구호이다.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투쟁의 촛불을 들고 같이 걷자. 서울 곳곳을 우리의 목소리로 가득 채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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