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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전략과 실천

 

‘혁신’에 속지 말아야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6월부터 주말마다 배달대행 일을 시작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맥도날드에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로, 저녁 6시부터 밤 11시까지는 사장님 신분으로 배달대행에서 일을 한다. 신분이 바뀌니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노동자 신분의 맥도날드에서는 좀더 마음 편히 일을 한다. 시간당 최저임금을 보장받고, 배달 1건당 400원이 추가 되니, 400원 벌자고 목숨 걸지는 않는다. 배달구역도 2km 이내인데다가 3년째 배달을 하니 주소만 보면 대충 어딘지 알고, 단골의 경우에는 누가 시켰는지도 다 안다. 무엇보다도 배달하고 돌아올 곳이 있다는 편안함이 있다. 3년차이니 매장에서도 최고참이고, 배달이 얼마나 걸릴지 예상도 되니 느긋하게 일을 한다.

 

반면, 배달대행은 거리도 먼 곳은 4km까지도 간다. 다른 업체에서 일을 하는 동료는 영등포에서 마포까지 다리도 그냥 건넌다. 배달 한 건당 수수료를 받으니 느긋하게 일을 할 수도 없다. 자칫 잘못하면 시간은 시간대로 쓰고, 돈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속도를 낼 수밖에 없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신호를 지키면서 일을 해도 괜찮은 수입이 난다는 걸 보여주자는 호기로운 결심을 가지고 일을 해봤다.

결과는 참혹했다. 4시간 일을 하는 동안 배달건수는 8건에서 9건. 돈은 평균 3만 2천 원이었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8천 원이었다. 주휴수당을 합친 시급이 10,030원이라 한다면, 길을 잘 모르는 배달초보가 신호를 지키면서 벌 수 있는 돈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 길을 완벽히 익히고 배달대행일이 익숙해진다 하더라도 신호를 지키면서 벌 수 있는 돈은 최저임금 정도다.

게다가 노동자에게 보장된 사고에 대한 처리, 오토바이 비용, 오토바이 기름값과 관리비, 보험료, 퇴직금, 연차 등을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배달대행일이 노동자보다 좋은 일인지는 알 수 없다. 배달대행의 평균소득은 하루 12시간 주 6일 일을 했을 때 250에서 300만 원 정도다. 게다가 신호를 어겨가며 배달해야 겨우 올릴 수 있는 소득이다. 우리는 반문할 수밖에 없다. 이게 혁신인가?

 

 

열면 안 되는 시장을 열었다

 

신호 위반은 사고에 대한 위험도 위험이지만 라이더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편견을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더 해악적이다. 신호 위반을 하지 않으면 최저임금도 못 버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소위 혁신가들은 왜 비난의 대상에서 벗어나야 하는가?

배달대행은 사실 음식점 사장님들의 필요에서 시작됐다. 오토바이를 소유하면, 일단 오토바이 비용은 물론 보험비가 많이 나간다. 가게용 오토바이 보험은 1년에 약 100에서 150만 원 수준. 여기에 라이더를 직접 고용했을 때 인건비가 고정적으로 나가는데, 배달은 특정시간대에 주문이 몰린다. 그래서 배달이 없는 경우에는 청소 등 온갖 잡일을 시키게 된다. 이게 아깝게 느껴질 수 있다. 게다가 사고가 나면, 골치가 아프다.

 

이 문제를 해결해드리기 위해 배달대행사가 나타났다. “사고가 나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토바이가 없어도, 라이더가 없어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필요할 때만 불러다 쓰시면 됩니다.” 이게 배달대행사가 등장한 배경이다. 소비자주문중개앱인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 등이 등장하고 배달전단지가 핸드폰앱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배달주문 비중도 늘어나면서, 과거 전화로 하던 배달방식이 디지털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늘어난 배달수요에 맞추기 위해서 음식점 사장님들은 ‘배달의 민족’으로 들어온 주문을 배달시키기 위해 배달대행사에 일일이 전화를 하는 게 아니라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으로 배달주문을 띄우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 플랫폼이 ‘부릉’, ‘바로고’, ‘생각대로’ 같은 배달대행 플랫폼사다.

과거 배달대행업의 문제가 동네의 배달대행사 사장이었다면, 이제 플랫폼사가 등장하면서 체계화하고 프랜차이즈화하고 있다. 재밌는 것은 일부 플랫폼사들은 기존 동네의 배달대행업체들이 적폐라며 새로운 기술과 혁신으로 좋은 시장질서를 만들겠다고 주장하고 다닌다는 거다.

 

여기서 많은 이들이 세련된 플랫폼사가 훨씬 양심적인 자본일 거라고 착각하거나 속기 쉽다. 스티브 잡스나 주커버그처럼 자유로운 영혼과 창발적인 사람들이 이끄는 새로운 스타트업들은 진보적일 거라는 환상이다. 스스로를 스타트업 기업이라고 부르는 이들 새로운 자본가들은 대부분 기술을 개발하고 금융투자를 받아 소비자에 대한 교차보조금을 뿌려서 독점적 지위를 가지는 게 꿈이다.

플랫폼시장은 소비자시장이든 공급자시장이든 한 시장에 대한 독점을 통해 네트워크 효과를 발휘하면 네트워크 외부효과를 통해서 다른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플랫폼자본주의의 목적은 독점이다. 카톡을 전국민이 쓰면, 카톡 안 쓰는 1명이 괴짜가 되고 그 역시 자연스럽게 카톡을 쓸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독점적 지위를 가지면 새로운 기업이 진입하기도 어려운데, 메신저 어플을 하나 더 까는 것만큼 귀찮은 일도 없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전국민이 쓰는 카톡을 이용하고자 하는 다른 공급자들이 카톡에 몰리면서 공급자시장과 소비자시장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것을 바로 양면시장이라고 한다. 이렇게 정거장에 사람들이 몰리면 카카오뱅크 같은 은행이 만들어진다. 역전엔 장사꾼들이 많이 모이는 법이다.

 

이들 플랫폼사는 기업간 거래(B2B)를 뚫었는데, 맥도날드‧버거킹‧롯데리아‧KFC 등의 패스트푸드 배달물량을 가져왔다. 그 결과는? 패스트푸드 라이더가 해고되고 배달대행 시장으로 몰려갔다. 배달물량시장을 독점하니, 배달을 수행하는 노동력시장도 몰리게 된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비용 부담을 배달대행플랫폼을 이용해 전가해 버린 것이다. 다시 묻고 싶다. 이런 게 혁신과 창조경제일까? 이들은 기존의 고용시장을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열어버렸다.

 

이렇게 새롭게 탄생한 사장님의 명찰을 단 노동자들은 이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가 되는데, 음식점 사장님도, 플랫폼사도, 배달대행업체도, 배달주문중개앱도, 손님도 사용하거나 간접적으로 이용한다. 게다가 아무도 책임을 안 지니 생산수단에 필요한 도구들도 직접 장만해야 한다. 이들 배달라이더는 오토바이는 물론 보험도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데, 영업용 오토바이 보험비는 연간 300만 원으로 새 오토바이비랑 비슷하다. 이것은 대물보상한도가 2천에서 3천만 원으로 제한되어 있고, 대인보상도 제한되어 있어서 한도가 넘는 사고를 냈을 경우에는 무보험으로 형사처벌을 받고 초과된 금액에 대해서는 민사소송을 때려 맞는다. 그래서 대인 대물 제한이 없는 종합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이게 연간 1천만 원 정도다. 한 20대 조합원이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는데, 1,700만 원이 나와서 창을 닫아 버렸다.

 

흔히들 묻는다. 대안이 뭐냐고? 그러나 대안 없이 일을 벌이는 건 자본이 먼저였다. 영업용 오토바이 문제들은 해결하지도 않고 일단 사업을 벌이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 무대책이 플랫폼사업자들의 모습이다.

모두가 사용은 하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공유지의 비극은 공산주의자들이 만든 게 아니라 새로운 혁신가들이 만들고 있다.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도 철폐해버렸다. 이들은 단지 데이터만을 소유한다.

 

 

규제가 필요하다

 

물론, 라이더유니온의 입장에서는 욕설과 출퇴근 지휘를 엄격하게 하는 배달대행사와 이들 배달대행사와 계약을 맺은 세련된 플랫폼 회사 중에 어느 게 더 낫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 둘은 협력하기도 하고 서로 적대하기도 하면서, 시장에서 피 터지는 경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몇몇 중소 배달대행업체들은 연합하여 새로운 프로그램사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장의 노동운동만으로는 대응하기 힘들다(현장이라는 것 자체를 만들기도 어렵다). 산업에 대한 직접적인 재편과 규칙이 정해져야 하는데, 이것은 국가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흔히 국가는 혁신가들을 죽이는 무능한 관료무리로 여겨지는데, 여기에 속으면 안 된다. 대한민국처럼 국가 시스템이 촘촘하게 잘 짜인 곳도 드물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규제할 수 있다. 유럽의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네덜란드 등은 우버서비스를 불법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들 나라는 혁신을 가로막는 후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것일까?

 

물론, 국가의 한계도 있다. 날로 다양해지는 다양한 수법에 맞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조 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결사의 자유는 물론, 앱을 막아버리거나 앱의 푸시알림을 노조 게시판처럼 활용할 수 있는 단체행동권의 보장들도 있어야 한다. 우리가 데모하는 동안 플랫폼 어플은 언제든지 앱을 통해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는 여선웅 쏘카 전 본부장을 청년소통정책관에 앉히고 이재웅을 해외순방에 데려가는 등 새로운 산업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다. 아마도 산업분야를 열어주는 새로운 법안과 정책들이 나올 것 같다. 노동운동은 이후에나 대응해야 할까? 그땐 이미 늦다. 자본에 대한 개입, 플랫폼자본주의에 대한 분석 없는 노동운동의 대응은, 한계가 분명하고 수단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24시간 모든 인간들을 활용해서 사업을 영위하면서 노동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시장의 문을 닫아버려야 했다. 하지만 이미 열어버렸다. 오히려 너무 열어서 생긴 각종 사건사고 때문에 뒤늦게 문을 보수하려고 하는 중이다. 각종 대책들이 쏟아지고 있고 정부부처에서도 움직이고 있다. 라이더유니온도 몇몇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당연히도 라이더유니온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마지막 기회다. 법과 제도가 한 번 만들어지면 그 법을 다시 바꾸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만든 비정규직과 파견이 10년 뒤에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냈던가. 그리고 20년이 지난 오늘도 비정규직 문제로 싸우고 있다. 이제는 비정규직도 부족하다고 한다. 우리의 노동과 삶을 바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라이더유니온이 아니라 노동운동 전체의 개입이 필요하다.

 

기존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개념, 노조에게만 보장됐던 노동3권도 모두 버리자. 근로자든 아니든 사장이 있든 없든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보호받을 수 있고, 결사를 이룰 수 있으며 집단행동을 통해 자기이익을 관철시킬 수 있다는 좀 더 넓은 개념이 필요하다.

욕설이 아니라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지시하는 시대가 이미 펼쳐지고 있다. 진짜 사장이 아니라, 이윤과 이득을 얻는 자를 찾아서 책임을 물리자. 그렇다면 우리는 개별기업이 아니라 노동을 통해 유지되는 우리 공동체 모두의 변화를 요구해야 하고 요구할 수밖에 없다. 몰계급적인가? 이것이야말로 체제변혁적인 노동운동의 목표 아니었던가.

 

지난 5월 1일 출범한 라이더유니온은 법내노조가 아니다. ILO 핵심협약도 비준하지 않은 정부가 법내노조로 인정해줄 것 같지는 않다. 노조 인정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니 법내노조인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활발히 활동할 계획이다. 현재 조합원 숫자는 100명 정도이다. 유상운송보험료 문제, 안전배달료 도입, 산재‧사고 상담활동, 플랫폼회사와 배달대행업체와의 단체교섭 등의 활동을 해나갈 계획이다. 후원회원도 가능하니 많은 분들의 가입을 부탁드리며, 주변에 라이더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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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대행 라이더도 산재가 가능하다. 사고가 난 경우, 라이더유니온으로 연락하면 상담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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