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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 현장 속으로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의 노예가 아닙니다.

빼앗긴 노동의 권리, 전 세계 노동자가 함께 연대해 쟁취합시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 인터뷰


 

한국에 거주하는 전체 이주민은 대략 240만 명 정도이며 이 가운데 120만 명이 이주노동자이다. 올해 6월 기준, 고용허가제(E-9, 비전문취업)로 입국한 이주노동자 중 3천480명이 미등록 ‘불법체류’ 상태에 처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6배나 폭증한 수치다. 코로나19 여파로 일자리를 잃거나 장기간 무급휴직 상태에 놓인 이주노동자들 상당수가 재취업의 기회도 갖지 못한 채 고용기간이 만료됐기 때문이다.

경제위기의 충격이 밑바닥 노동자에게 가중되는 지금, 이주노동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차별과 혐오의 시기를 경유하고 있다. 반면, 차별을 해소하고 이주노동자의 권리 보장에 앞장 서야 할 정부 역할은 실종된 지 이미 오래다. 심지어는 ‘사업주 마음대로’ 이주노동자를 속박하고 착취하게 만든 고용허가제에 대해 “성공적인 이주 관리 시스템”이라며 자화자찬까지 한다.

올해는 고용허가제 시행 16년째를 맞는 해이다. 여전히 이주노동자를 ‘값싼 노동력’ 취급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국 정부와 기업들에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코로나19 사태 이후 부쩍 늘어난 이주노동자 피해 상담 활동을 비롯해 고용허가제 강제노동 피해 대응 등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Migrants’ Trade Union) 위원장을 지난 10월 24일, 민주노총서울지역본부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 ‧ 정리 임용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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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 [출처: 철폐연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이 많이 위태롭다. 사무실에 이주노동자 상담전화가 많이 걸려 오는데, 최근에는 사업장 임금체불이나 해고, 고용허가제 기간만료 문제 등에 대한 상담이 부쩍 늘었다. 평소에는 사무실에서 전화나 대면 상담을 진행하고, 사업장 현안이 생기면 문제해결을 위해서 출장 가는 일도 더러 있다. 이주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조직하는 일도 중요해서 지역에 교육이나 간담회를 다녀오기도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긴 시간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말에는 동지들과 만나는 시간을 자주 가지려고 한다.

 

주로 어떤 내용의 상담이 들어오나.

 

전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여러 피해를 입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해고나 무급휴직을 겪는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장이 일 그만두라고 한다. 돈은 받을 수 있나.”라든가 “(회사에서) 갑자기 나가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같은 질문을 많이 던진다. 왜냐하면, 해고되는 이주노동자들은 재고용 될 때까지 당장 머물 수 있는 장소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또 이주노동자는 고용보험 의무가입대상이 아니고 임의가입대상이라서 사업주들이 고용보험을 가입해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일자리를 잃은 이주노동자들은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최장 4년10개월(3년 계약+1년10개월 재계약 포함)까지 체류기간을 보장받는다. 그런데, 고용기간 만료가 다가오거나 이미 경과한 이주노동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항공기 운항이 아예 중단됐거나 표값이 크게 치솟아서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 노동자들도 당장 돈이 없고 머물 수 있는 장소도 변변치 않아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많아졌다. 정부는 이들에 대해 취업활동기간 50일 연장을 해주고 있는데, 50일의 기간이 더 주어진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일자리도 현실적으로 부족하다. 50일의 한시적 근로기간마저 끝나면, 또 30일의 출국유예기간을 부여받는데 이 기간 동안에는 취업불가한 상태다. 그래서 “이 기간에 일하다가 단속에 적발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라고 문의하는 상담도 계속 들어오고 있다.

 

고용허가제 기간이 만료된 노동자들의 경우 해결 대책이 있는가.

 

코로나 상황에서 귀국조차 쉽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자유로운 취업활동을 보장하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체류기간이 끝난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에게 농어업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3개월짜리 G1비자(임시체류비자)를 발급해주겠다고 발표했다. G1비자 발급 대상은 전체 1천 명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신청자가 저조하다. 정부는 그동안 제조업에서 일해 온 이주노동자들을 농어업 노동으로 편입시키겠다는 생각이지만, 제조업보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 문제가 훨씬 심각한 사정을 이주노동자들도 이미 알고 있다. 또 농어업 노동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주거시설도 너무 열악하다. 이런 상황에서 제조업에서 농어업 분야로 옮기라고 하면 대부분 꺼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살펴보고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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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2. 서울고용노동청 앞 ‘비정규직 공동행동’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 [출처: 철폐연대]

 

한국 국적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힘들고 위험한 일을 제조업이나 농어업을 막론하고 이주노동자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산업재해 문제도 심각한데.

 

이주노동자 산재사고 사망률은 선주민노동자의 6배에 달한다. 선주민이 취업을 꺼리는 열악한 사업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주노동자 산재사망사고가 일어난 사업장에 대하여는 고용허가를 취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아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요구도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산업재해예방교육을 제대로 실시해야 하고, 안전장비도 당연히 지급해야 한다. 지금처럼 계속 열악한 조건에서 일을 시키면 또다시 사고가 날 게 뻔하다. 적게 투자해서 이윤을 많이 남기려고 하니까 자꾸만 사업주들이 이주노동자들을 헐값에 노예처럼 부리는 것이다.

한국에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을 보면 20대 초반의 건장한 청년들이 많다. 아무리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해도 2~3년은 너끈히 버틸 정도로 체력이 왕성할 때다. 그런데 만약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산재를 입으면 사업주들은 이 사람을 바로 해고해버린다. 물론 운이 좋아 2~3년간 별 탈 없이 일하는 이주노동자도 있다. 사업주들은 위험한 일터에 이렇게 젊은 이주노동자를 투입하고는 운수를 시험하는 듯하다. 정말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주노동자들의 생명도 중요하다!

 

얼마 전 ‘어업이주노동자 90%는 1년 중 하루도 못 쉰다’고 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결과(어업이주노동자 인권실태 모니터링 결과보고서)가 발표되었다. 비단 어업이주노동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 같다.

 

농축산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아시다시피, 1차 산업의 경우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규정(근로기준법 제63조)이란 게 있다. 농업․어업․축산업 등이 전부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근로시간이나 휴일, 휴가, 육아휴직 등에 관한 (근로기준법상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사업주들이 연장근로나 휴일근로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예를 들어 잔업을 하더라도 사업주가 50%의 가산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사업주가) 기숙사 제공이나 식비 지급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동자들이 정당한 처우를 요구하고 싶어도 대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재입국 특례’ 제도 때문이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4년10개월 동안 사업장 변경 없이 일한 이주노동자를 재고용하는 절차인데, 재입국 특례를 적용받으려는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의 부당한 처우에도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다. 설령 고용노동부에 이를 신고하려 해도 사업주의 책임을 입증하기도 쉽지 않고 한국어도 서툴기 때문에 이내 포기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올여름 태풍과 폭우로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거주실태도 재조명됐다.

 

한창 날이 더울 때나 홍수 피해를 겪을 때면 이주노동자들이 거주시설로 사용하는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 숙소가 뉴스에서 보도된다. 그러면 고용노동부도 보도자료를 내서 이렇게 발표한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거주 실태는 ‘일부의 문제’일 뿐이고, 관리감독 철저히 하겠다고. 솔직히 그때 잠깐 뿐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잊혀진다는 걸 그들도 아니까…. 그래서 아직까지 문제해결이 안 되는 것 같다. 이번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업이주노동자 문제를 비롯해서 열악한 노동실태에 대한 지적이 없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지속적으로 근로감독하고 개선하겠다고 답했지만, 얼마나 이행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강제노동, 임금체불, 폭행, 협박 등의 문제는 결국 고용허가제의 폐해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고용허가제는 국가 간 MOU(업무협약) 체결을 통해 한국 정부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초청’하는 제도이다. 이렇게 한국 정부가 나서서 이주노동자를 데려오는 까닭은 여러 업종에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가 제공한 일자리인데, 지금 한국 정부는 뒷짐 지고 물러나 있다.

해마다 임금체불을 겪는 이주노동자들이 넘쳐나고, 제대로 먹고 자고 쉴 권리도 빼앗긴 이주노동자들이 많다. 그나마 있는 법조차 이주노동자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조항도 너무 많다. 그래서 너무 안타깝고 한국 정부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활동 계획과 <질라라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듣고 싶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집회신고도 안 나고 함께 모일 수 없어서 걱정이다. 그래도 지금은 방역조치가 1단계로 완화되어서 피케팅 같은 소규모 실천행동부터 차차 시작해보려고 한다.

지금의 고용허가제 하에서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주의 허가나 동의 없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사업장 변경을 자유롭게 할 수 없으니 열악한 노동조건을 사업주가 알아서 해줄 리 없다. 열악한 노동조건은 이주노동자의 생명․안전을 위협한다. 어업이주노동자들은 섬에 갇혀서 일하고, 농어업 뿐 아니라 많은 곳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노예, 머슴처럼 일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다. 이주노동자들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고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리를 가르고 단결을 가로막는 정부에 맞서 노동자들이 함께 싸워야 한다고 본다.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에 관심 가져주시고, 부당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투쟁에도 많은 연대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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