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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2%

 

서울지역 작은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와 투쟁

주얼리, 봉제, 제화, 출판 업종을 중심으로

 

안명희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 작은사업장 노동자들

 

코로나19는 불안정한 노동자들을 휩쓸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이 누구인지가 확인되었다.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등으로 분류되는, 노동자임에도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 그리하여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조차 기대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코로나19 시기에 사회적으로 호명되며 그 불안한 존재를 드러내었다.

 

또한 코로나19는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2020년 민주노총 <30인 미만 작은사업장 노동자 코로나19 피해실태 및 정부정책 평가>를 보면, 작은사업장 노동자가 코로나19 장기화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해고, 임금 삭감 등 고용 및 생계에 대한 불안이었다. 그러나 사업장 규모가 작아질수록 사회보험 가입 비율이 낮으며, 노동복지(육아휴직, 퇴직금 등) 적용률이 떨어졌으며, 10명 중 7명은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지역 작은사업장 노동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 노동자에게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노동 문제가 집약되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창신동·동대문 지역 등에 밀집해 있는 봉제 노동자들과 성수동·봉천동 등에 밀집해 있는 제화 노동자들은 ‘객공(客工)’으로 일하고 있다. 객공은 “제품 하나에 일정액의 삯을 받거나, 일하는 시간·능력 따위에 따라 삯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풀어쓰면 특정 사업장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보수는 만든 제품의 수만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봉제·제화 노동자들은 일정한 사업장에 종속되어 일하고 있다. 노동자인데도 노동자임을 부정당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대법원은 “제화공이 사업자 등록을 하고 사업소득세를 납부하였으나 노무제공 형태나 방식에 큰 차이가 없었고,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되어 있기에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했다. 2021년 서울중앙지방법원도 의료제조업체를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소송에서 객공으로 일한 미싱사·미싱보조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을 인정,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렇듯 봉제·제화 노동자들은 퇴직금을 받기 위해 소송을 통해서 자신이 노동자임을 증명해 내야만 한다.

 

한편, 2020년 <도심제조업 노동조건 실태 및 지원정책 개선방향 토론회>에서 제화 노동자는 “코로나로 특고 지원금이 나왔을 때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동안 퇴직금 투쟁을 하면서 대법원까지 가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것이 8건이 넘는데도 제도권 내로 편입이 안 되어 노동자인지 아닌지 어정쩡한 상태로 있었는데, 특고 지원금을 받는 순간 괜히 특고로 확정되는 것 같아 우려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전 국민이 다 받는 정부 재난지원금을 받으면서도 이런 걱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참 서글펐습니다”라고 했다.

 

봉제·제화 노동자 모두가 노동자로 인정되고, 노동 이력을 증빙할 수 있다면 안 해도 됐을 고민이다. 이 때문에 서울지역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의 권리찾기에 있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바로 노동자성이 부정당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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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8. ‘도심제조업 노동조건 실태 및 지원정책 개선방향 토론회’ 장면. 사양 산업으로 취급당하며 개발정책에 휘둘리는 도심제조업! 정부 및 지자체의 정책, 지원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도심제조업 활성화와 종사자들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정책 및 지원 방안 모색하는 자리였다. [출처: 금속노동자]

 

근로기준법 완전 적용과 사용자 책임을 묻는 문제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 문제에 있어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 바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것이다. 서울지역 작은사업장 중 특히 출판업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전체 출판사의 70~80%가 5인 미만 사업장이라서 대다수 출판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을 온전히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순전히 ‘영세성’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될 것이, 출판업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 이렇게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바로 외주 노동자들의 존재에 있다. 매년 발표하는 <출판산업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외주비가 인건비의 절반에 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결국 출판사는 외주 노동자들을 활용해 5인 미만, 1~2인으로 출판사를 운영하며 책 생산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프리랜서 외주출판 노동자들이 5인 미만 출판사를 운영 가능케 한다는 말이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문제에 있어 작동하는 이데올로기 중 ‘영세성’에 덧붙여 ‘동료의식’도 언급해야 한다.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의 경우 고용이 불안정한 탓에 조기 퇴직하여 그 업종에서 창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니 사용자가 ‘선배’일 경우가 흔하다. 출판, 봉제, 제화 노동자들이 사용자에게 갖는 동료의식은 여기서 비롯한다. 사장과 직원이 고용관계에 있다기보다 함께 작은 사업체를 꾸려가는 선후배 동료관계로 인식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5인 미만 사업장에까지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하고, 4대 보험에 가입하는 데 있어 의도치는 않았으나 결과적으로는 노동자가 사용자의 사정을 고려하여 그 책임을 묻지 못하는/않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출판 노동자들이 조직될 때도 같은 이데올로기가 작동했다. 책의 가치를 운운했고, 선배/선생님을 불러들였다. 이에 대해 출판 노동자들은 전태일에 관한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현실을 고발했고, 제아무리 가치 있는 책이라 할지라도 출판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만들어진 책은 결코 좋은 책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여기서 ‘행복한 노동이 좋은 책을 만든다’라는 노조 슬로건이 나왔다. 그리고 외주 작업비를 떼먹는 출판사라면 망하는 게 맞다고까지 했다. 그 어떠한 사정이 있든 사용자는 노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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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5.1. 노동절 깃발 “행복한 노동이 좋은 책을 만든다” [출처: 출판노동자협의회]

 

물론 사용자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울 만큼 그 업종의 영세성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지불능력의 문제가 어디서 비롯한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봉제나 제화 업종에는 분명히 다단계 하청구조에서 비롯한 착취가 있고, 실제 업종의 존폐를 논할 만큼 위기에 처해 있기도 하다. 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데, 그렇기에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시급하다.

 

다시 돌아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완전 적용에 있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점이 있다면, 현장을 강제하고 있는 힘이 노동자에게 있느냐 하는 것이다. 모든 난관을 뚫고 근로기준법이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현실에 강제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권리는 쪼개서 보장되지 않는다. 5인 미만 사업장에까지 근로기준법을 온전히 적용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바꿔내는 힘도,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현장에 적용하는 힘도 결국엔 조직된 노동자에게서 나온다는 말이다.

 

조직 확대의 지름길은 교섭과 투쟁이다

 

2019년 노동조합 조직률은 12.5%이다. 사업장 규모별 조직률은 300명 이상이 54.8%, 100~299명 8.9%, 30~99명 1.7%, 30명 미만 0.1%로 나타났다. 이러한 조직률을 보아서도 알 수 있지만, 경험적으로도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은 조직하기도 어렵지만 조직을 유지하는 것 역시 어렵다는 건 정설에 가깝다.

 

주얼리, 봉제, 제화 노동자들은 업종 노조에 모두 개별 가입한 형태라면, 출판 노동자들은 사업장 노조에 가입하거나 업종 노조에 개별 가입한 형태로 구분되어 있다. 한때 출판 업종에서 여러 사업장 노조가 만들어졌으나 얼마 안 가 해산한 노조가 서너 개이고, 더는 사업장 노조는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개별 가입이 가능한 초기업 단위 노조는 꾸준하게 조합원 수가 늘고는 있다.

 

봉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과 공제회를 같이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데, 특이점은 10인 미만 사업체의 사업주까지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언론노조는 봉제인지회-봉제인공제회를 참고하여 미디어산업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 전략조직사업으로 출판/방송작가를 우선으로 (가칭)미디어노동공제회 설립을 계획하였다.

 

이렇듯 조직 확대를 위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여전히 빈 지점은 초기업 단위 교섭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노동환경 변화를 위해서라도 노동조합의 활동 범위가 개별 사업장 단위를 넘어서야만 하며, 그 의제는 다양해져만 한다. 노동조합은 마땅히 단위 사업장의 이해를 넘어 전체를 대변하여야 하며, 교섭 또한 사업장 단위를 넘어서야만 한다.

 

서울지역 작은사업장 중 주얼리노조는 2020년과 2021년에 걸쳐 집단교섭을 진행했다. 집단교섭을 가능하게 한 힘은 투쟁의 강도를 높여 사업장을 강제한 데서 비롯한 것으로 4개 사업장과의 집단교섭 성과는 코로나19 백신 유급휴가 도입이었다. 노조는 이후 사용자단체에 백신 유급휴가 전면 도입을 요구하였다.

 

출판노조도 2018년에는 사용자단체를 대상으로 단체교섭을 시도하고자 했다. 요구의 수위가 낮더라도 단협 체결의 경험을 갖는 것에 의의를 두고 조합원을 대상으로 현장 요구들을 정리해나간 바 있다. 그 요구들은 당연히 개별 사업장을 넘어 전체 출판 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요구들이었다. 출판의 경우 사용자단체와의 교섭까지 이뤄내진 못했지만, 노조의 계속된 문제제기를 통해 근로계약서 작성(2014년 41.2%, 2019년 72.6%), 퇴직금 지급(2014년 42.0%, 2019년 80.5%), 4대 보험 가입(2014년 43.3%, 2019년 95.0%)을 확대해나갈 수 있었다.

 

이제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은 노동권 보장을 위해 교섭의 대상을 사업주를 넘어 지자체와 정부로도 확대하여야 한다. 주얼리, 봉제, 제화, 인쇄 노동자들은 서울도심제조노조연석회의에 함께하며 노사정 교섭을 통해 서울도심제조업에 대한 대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서울시에 요구하고 있다. 출판노조는 프리랜서인 외주출판 노동자들에 대한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을 위해 문체부에 요구하여 마침내 합의를 이끌어 냈다.

 

조직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 많이 조직되어야 더 큰 투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투쟁을 통해 조직이 확대되기도 한다.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아직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조직과 교섭/투쟁을 분리하지 않고, 조직 이후에 교섭/투쟁을 단계적으로 배치할 것이 아니라, 교섭/투쟁을 통해 조직 확대를 꾀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작은사업장 노동자 조직화가 어려운 건 부인할 수 없지만, 그러함에도 투쟁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신뢰와 지지로 현장은 조직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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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다. ​​​​​​​주얼리 노조는 업종 교섭이 작은사업장 노동조건 개선의 지름길이라고 본다. 주얼리 제조업체 주변 거리에서 선전하고 있는 주얼리 노동자들. [출처: 금속노조 주얼리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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