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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포커스

 

문화예술 분야의 플랫폼 노동

 

장귀연 • 철폐연대 부설 노동권연구소장

 

 

 

1. 들어가며

플랫폼 노동이란 노동을 하는 사람과 그 노동의 결과나 서비스를 받는 사람 사이에 디지털 플랫폼이 개입하는 것을 지칭한다. 특히 문화예술 부문의 플랫폼이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얘기할 수 있다. 하나는 작품 유통 플랫폼이다. 멜론과 같은 음악 플랫폼, 레진코믹스나 리디북스 같은 웹툰·웹소설 플랫폼, 유튜브나 아프리카 같은 영상 플랫폼을 들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일감 중개 플랫폼이다. 문화예술 노동자들은 많은 경우 프리랜서로 일감을 받아 일해왔는데, 그 프리랜서 일감을 중개해주는 것이다. 흔히 플랫폼 노동을 얘기할 때 일감을 중개해주는 후자를 지칭할 때가 많지만, 문화예술 노동자들은 오히려 전자의 플랫폼들을 주로 떠올릴 것이다. 양자를 모두 포함해서 플랫폼 노동이라 하기도 하지만, 이 두 종류 플랫폼의 성격과 나타나는 문제들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나누어서 보기로 한다.

 

2. 작품 유통 플랫폼

작품 유통 플랫폼은 문화예술 노동자들의 창작품을 게시하여 최종소비자(독자, 청취자, 시청자)가 보고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보통 소비자가 선택하는 횟수에 따라 창작자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구조이다.

이것은 창작품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 음악가는 음반을 내고 소비자는 그 음반을 구매하여 소장하는 방식이었고, 만화나 소설 역시 인쇄물로 된 책을 내서 소비자가 책을 사서 소장하는 방식이었다. 디지털화에 따라서 음반이나 책과 같은 ‘실물’이 사라지고 유료 플랫폼에서 바로 보고 듣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물론 예전에도 실물을 반드시 ‘소장’했던 것은 아니다. 실물 소장과 디지털 플랫폼의 유통이라는 두 시기 사이에, 만화나 소설 등 인쇄된 책의 경우 대여점이라는 형태로 소장하지 않고 빌리는 것이 한때 유행하였으며, 음악의 경우에는 소리바다와 같은 P2P 공유 다운로드 서비스가 존재했다. 대여점이나 P2P 공유서비스는 형태와 과정은 다르지만, 둘 다 창작자들의 수익을 침해한다는 반발이 존재했으며 사실 유료 디지털 플랫폼이 그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창작품을 유통하는 방식만 달라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작품 유통 플랫폼의 등장은 진입장벽을 낮춰서 문화예술 창작을 꿈꾸는 사람들이 훨씬 더 쉽게 자신의 창작물을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얘기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만화나 소설의 경우, 실물 시대에는 기존 작가들과 출판사의 심사를 거쳐 ‘등단’하는 절차가 있었다. 음악의 경우에도 음반을 내기 위해서는 음반제작사에 데모 테이프를 제출해서 심사 과정을 거치고 그것을 통과해야 음반을 내어 음악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제는 그러한 기존 ‘프로’들과 ‘제작사’의 ‘심사’를 거치지 않고도 ‘직접’ ‘대중’에게 창작품을 소개하고 유통시키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만화와 소설 부문에서는 유료 플랫폼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기 작품을 게시할 수 있는 장이 있다(예를 들어, 네이버의 ‘도전 만화가’, 소설 부문에서는 ‘문피아’ 등). 여기에 게시된 작품들은 무료로 볼 수 있지만, 독자들의 반응이 좋으면 유료 플랫폼과 계약하고 옮겨가서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음악의 경우에도 반드시 제작사나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아도 개인이 음원 플랫폼에 등록하는 것이 가능하고 대중의 선택을 받은 만큼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영상 부문에서는 ‘독점’이 더 심했다. 방송사나 (영화 등) 제작사를 통하지 않고는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은 고사하고 작품을 만드는 것 자체도 거의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유튜브나 아프리카 등의 플랫폼을 통해 개인이 기획하고 촬영하고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물론 영상 창작물은 다양한 기술을 보유한 사람들의 팀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개인이나 개인적으로 모인 팀으로서는 방송사나 영화사의 제작 퀄리티를 따라가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창작과 유통이 이런 독점적 기업에 매이지 않고도 플랫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최근 예능 장르에서는 유튜버들이 방송사의 예능인들보다 더 유명해지고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경우들이 나타나고 있다. 공연예술도 반드시 비싼 공연장에서 할 필요 없이 저렴한 방식으로(ex. 집, 길거리, 공공무대 등) 공연하고 영상화하여 플랫폼에 올림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작품 유통 플랫폼의 발달은, 창작자들이 제작사의 심사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직접 대중에게 공개하고 대중의 평가에 따라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진입 장벽을 낮추고 창작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었다는 말이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경쟁이 심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경쟁을 두려워할 것은 아니다. 쉽게 서로 대체 가능한 일반 노동자들과 달리 창작자들은 고유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풀pool이 넓어지면서 더 많은 좋은 작품들이 사장되지 않고 나올 수 있다. 사실 소설, 만화, 음악, 공연, 영상, 방송 모두 기존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 분야의 원로-중견 창작자들과 제작사의 심사를 통과해야 이른바 ‘데뷔’가 가능했고 그 과정에서 연줄 등 부조리가 많았다. 그런 면에서 작품 유통 플랫폼으로 인해 문화예술 부문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평가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대중에게 직접 작품을 유통시키면서 경쟁한다는 것이 창작품의 질을 올리는 것과 반드시 결부되는 것은 아니다. 대중에게 직접 평가를 받기 때문에 대중에 영합해야 한다는 압박의 강도는 훨씬 더 심해진다. 그에 따라 오히려 각 문화예술 부문에서 다양성이 줄어들고 비슷비슷한 대중영합적 작품들만 양산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또한, ‘소장’에서 ‘소비’의 시대로, 즉 작품을 실물 형태로 소장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에서 한 번 보고 듣는 것으로 끝나는 소비 패턴으로 변화하면서, 이에 의해 창작품의 한계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음반 시대에는 한 음반에 여러 곡들이 일종의 흐름을 가지고 배치되지만, 플랫폼을 통한 음원 시대에는 싱글곡이 주가 되면서 이른바 ‘명반’이라는 것도 역사의 뒷길로 사라져 가고 있는 중이다. 만화나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훨씬 호흡이 짧고 한 회 한 회마다 독자의 관심을 놓치지 않아야 하므로 긴 흐름의 작품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리고 개인이 직접 플랫폼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유통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경우(적어도 프로페셔널한 창작자인 경우) 에이전시에 소속되게 되고 에이전시의 홍보와 광고에 따라서 수익이 크게 달라진다. 그리고 그 와중에 여전히 사재기나 유통 플랫폼과의 담합 등 부조리가 생기기도 한다. 작품 유통 플랫폼의 발달로 인한 창작 작업 및 유통과정의 이른바 ‘민주화’ 효과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구조와 부조리 속에서 상당부분 상쇄된다. 결국 작품 유통 플랫폼을 통해 창작자들이 작품 발표의 기회가 넓어지면서 ‘민주화’ 된다는 것은 기술 변화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자 하나의 가능성일 뿐, 실제로는 문화예술 산업의 (부정적인 뜻에서의) 자본주의 성격은 형태를 약간 달리하여 온존하고 있는 것이다.1)

사실 기술은 중립적인 것도 아니고 단선적인 것도 아니다. 기술의 변화 과정은 관련된 행위주체들 간의 투쟁이 벌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며, 그 과정에서 권력 재편이 이루어진다. 문화예술 창작품들의 발표와 유통이 디지털화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가장 큰 승자는 유통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플랫폼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소비자들이 내는 돈에서 플랫폼이 가져가는 몫은 보통 40~60% 정도다.2) 그리고 에이전시가 중간에서 떼어가고 실제 창작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매우 적다. 게다가 실물 시대에는 물론 판매량에 따라 수익이 배분되기는 했지만 그 이전에 기본적인 보장금액(고료 등)이 존재했던 반면, 지금은 점점 더 그런 보장액 없이 작품 소비량에 따른 수익 배분만이 전부가 되는 경향이 생겼다. 따라서 대중에게 인기를 못 얻는 창작자들은 아예 수입이 없게 되며, 웹툰계의 악명 높은 MG 제도는 창작자들이 오히려 플랫폼에 빚을 지게 되는 경우마저 생기게 한다.

더욱 문제는 수익이 발생하는 과정과 수익을 배분하는 과정도 전혀 투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플랫폼은 배치 등을 통해서 특정 작품을 인기 있게 만들 수 있다. 소비자들의 선택을 기준으로 한 알고리즘을 통해 배치가 결정된다고 말하지만 그 알고리즘은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거나 플랫폼에서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하다. 또한 멜론 저작권 금액 횡령 사건에서처럼 무료/유료 서비스 등을 혼합하면서 수익의 기준을 모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창작자들은 자신의 작품으로 얼마나 수익이 났는지도 모르고 ‘주는 대로 받는’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다.

 

요약하자면, 작품 유통 플랫폼의 발달은 단순히 작품이 유통되는 방식만 바꾼 것은 아니다.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제작사에 종속되는 일 없이 직접 대중에게 자신의 창작품을 소개하고 유통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창작자들에게 크게 기회를 확대해 줬다고 간주되기도 하지만, 이것은 사실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적어도 프로페셔널한) 창작자들은 여전히 에이전시에 소속되어야 작품 발표와 유통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직접 대중에게 평가받는다는 것도 작품의 질 향상과 반드시 연관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대중영합적인 작품의 양산으로 문화예술 분야의 침체를 가져올 수도 있다. 작품 발표와 유통 방식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이익을 본 것은 창작가를 꿈꾸는 수많은 지망생들이라기보다 유통 플랫폼이다. 플랫폼이 수익의 가장 많은 부분을 가져갈 뿐 아니라 어떤 작품을 인기 있게 만들 것인지, 또 배분되는 수익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에 대해 기술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물 시대에서 창작자들은 기획사나 제작사에 종속되어 있었고 당시의 부조리도 컸기 때문에 그 시절이 좋았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디지털 플랫폼의 발달이 권력관계를 창작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바꾸지 못했고 부조리는 여전하기 때문에, 디지털 기술에 의한 이른바 ‘민주화’ 효과는 현실적으로 매우 제한적이다.

 

3. 일감 중개 플랫폼

문화예술 노동자가 창작을 하고 발표의 장을 찾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 등의 수주를 받아 일하는 디자이너, 번역가, 출판편집자 등도 있다. 그렇다고 이 작업들이 창의적이 아닌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얘기하듯이 주문에 따라 일한다고 해도 매우 창의성을 요구하는 일들이다. 물론 순수창작자(?)라고 얘기되는 음악가, 작가, 만화가, 공연예술가 등도 다양하게 일감을 받아 주문대로 일하는 경우들이 많다.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어 발표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다수의 예술가들이 생계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일감을 중개하는 플랫폼들이 근래 많이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인 일감 중개 플랫폼인 크몽이나 오투잡에서는 디자인과 번역 등의 카테고리가 따로 있고, 탈잉은 문화예술 노동자들이 실제 생계를 위해서 주로 하는 레슨을 중개해주는 플랫폼이다.

특정 분야를 주업으로 하는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경우 일감 중개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구하는 비율이 아직 높지는 않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수행한 서울시 내 문화예술·콘텐츠 프리랜서 조사에 따르면 일감을 얻는 주된 경로 중 중개 플랫폼을 통하는 경우는 1.2%였다. 하지만 이것은 주된 경로를 하나만 선택하게 한 설문이며 보통 여러 경로를 통해서 일감을 구하기 때문에 실제 중개 플랫폼을 이용하여 일감을 구하는 경우 자체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캡처.JPG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문화예술 부문 노동자들이 주로 일감을 구하는 방식은 이른바 업계의 인맥을 통해서임을 알 수 있다. 지인이나 기존 거래업체, 업계의 온라인 커뮤니티, 소속단체, 에이전시 등에 의해서 일감을 얻는 것이다. 일감 중개 플랫폼은 오히려 이런 업계 인맥이 없는 ‘지망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일감 중개 플랫폼도 작품 유통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진입 장벽을 낮추고 인맥이 없는 지망생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것은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경쟁을 심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작품 유통 플랫폼보다 더 문제인 것은 일감 중개 플랫폼에서는 일감의 가격이 공개된다는 점이다. 일을 주는 쪽이나 일을 하고자 하는 쪽 둘 중 한쪽에서 단가를 공개적으로 제시하고 그에 따라 상대방이 연락을 하는 방식이다. 같은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이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상태에서 단가를 한 눈에 비교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이러한 ‘경쟁의 가시화’는 일의 가격을 끝없이 낮추게 만든다. 아래 일러스터의 말은 이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플랫폼이 왜 문제냐 하면 단가가 계속 낮아지는 거예요. 아마추어들이 낮은 단가에 일을 해주면 그게 ‘프로’들에게도 영향을 안 미칠 수가 없거든요. 플랫폼에서 이 정도에 일을 해주는데 너희들은 왜 그러냐…3)

 

그러므로 앞으로 점점 더 일감 중개 플랫폼의 영향력이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일감을 주는 쪽에서는 플랫폼을 통해서 기존 업계 관행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일을 시킬 수 있다면 그를 선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 문화예술 각 부문 종사자들은 업계 내에서 실력이 검증된 ‘프로’들이고, 진입장벽이 없는 플랫폼에서 주로 일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아마추어’들이기 때문에 결과물의 질 차이가 클 수 있다. 따라서 발주자 측에서는 업계 내에 이미 실력이 검증된 사람을 원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작품의 질이 나쁠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더 적은 비용을 들이고자 할 수도 있다. 일감 중개 플랫폼을 통해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단가 경쟁이 가시화되면서, 위 피면접자의 말대로 결국 업계 종사자 전체적으로 보수가 낮아지게 될 것이다.

또한 저작권이나 기타 분쟁 문제도 있다. 중개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주고받을 때는 거의 계약서를 따로 쓰지 않는다. 물론 플랫폼 내에서 협상하고 일감을 의뢰하고 결과물을 보내는 과정 자체가 계약에 준하는 것이며, 저작권에 대해서도 제시하거나 협상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저작권 분쟁은 발생한다.

 

제 친구가 번역 일을 맡았는데, 의뢰인이 개인적으로 읽고 싶다고 해서 책을 번역을 한 거예요. 그런데 번역을 끝내서 주고 났는데 나중에 그 책이 출판이 되었어요. 번역자 이름은 달리 해서… 친구가 번역한 것하고 크게 다르지도 않아요.

 

글을 써 줬는데 의뢰인이 마음에 안 든다고 거절을 한 거예요. 싸우기도 싫고 해서 그냥 환불을 해줬거든요. 내가 그렇게 글을 못 썼나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해서 나중에 찾아봤더니 제 글을 반 넘게 사용했더라고요. 너무 화가 나서 법률구조공단에도 전화해보고 저작권협회에도 알아보고 했는데 쉽게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포기했어요. 저작권이 그렇게 쉽게 인정받는 게 아니더라고요.

 

당연히 저작권 분쟁과 더불어 의뢰자와 문화예술 노동자와의 분쟁은 중개 플랫폼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감 중개 플랫폼에서 의뢰인과 노동자는 서로 익명으로 플랫폼 내의 통신수단만을 통해서 접촉하기 때문에 신뢰관계 형성이 불가능하고 플랫폼을 통한 일감 의뢰와 결과 주고받기라는 특성을 악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일감 중개 플랫폼은 단지 중개를 해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분쟁에 대해서 해결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작품 유통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배치를 통해서 노동자의 수익을 차이 나게 할 수 있으며 그를 통해 노동자를 통제할 수도 있다. 배치 과정은 서비스 이용자의 선택에 따른 알고리즘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그 알고리즘은 공개되지도 않고 제대로 알 수도 없는 것 역시 작품 유통 플랫폼과 유사하다.

 

결론적으로 일감 중개 플랫폼도 문화예술 분야의 지망생들에게 진입 장벽을 낮추고 일감을 받을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역시 이것은 경쟁 심화를 동반한다. 특히 보수 수준이 모두 공개되어 비교될 수 있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단가가 낮아지는 효과가 매우 크다. 현재로서는 문화예술 부문의 기존 노동자들은 업계 내의 인맥으로 일감을 구하는 비중이 크지만, 발주자들이 일감 중개 플랫폼에서 (비록 결과물의 질에 대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지만) 낮은 금액으로 일을 시키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게 될수록 일감 중개 플랫폼을 통해 일을 구하게 되는 비중은 높아질 것이고 그에 따라 전체적으로 문화예술 부문 노동자의 보수 수준이 내려가게 될 것이다.

 

4. 나가며

플랫폼의 발달이 반드시 부정적인 효과만을 낳는다고 할 수는 없다. 수많은 문화예술 부문 지망생들에게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작품을 발표하거나 일감을 구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노동자들끼리의 경쟁 격화를 수반하고 그 결과 문화예술 창작품의 질이 더욱 대중영합적으로 획일화되거나 문화예술 노동자들의 보수 수준을 전체적으로 낮추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작품 유통 플랫폼이든 일감 중개 플랫폼이든 플랫폼의 수익 분배율에 대한 공식적인 규제는 없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인 한, 모든 부문에서 시장 가격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결국은 다른 부문에서와 마찬가지로 문화예술 부문에서도 노동자들이 집단화하여 자신의 노동 결과물에 대한 권리와 적정한 가격 형성을 위해 투쟁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부문 노동자들과 달리 문화예술 부문 노동자들의 집단화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존재한다. 우선, 문화예술 노동자들은 대개 프리랜서로 규정되어 법적으로 임금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4) 노동3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노조를 만들어도 실제로 교섭권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5) 나아가, ‘프로’ 문화예술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이해대변을 해 줄 수 있는 ‘협회’에 부문별로 소속되어 있지만, 플랫폼을 통해 진입하는 수많은 지망생들은 여기에 포괄되기 어렵기 때문에, 플랫폼의 발달이 문화예술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이해대변을 오히려 어렵게 만드는 경향도 있다. 또한, 문화예술 노동자 스스로도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굳이 집단적으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대박’을 터뜨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걸림돌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 문화예술 부문 노동자의 절대다수는 창작활동을 통해서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렵다. 극소수만 가능한 ‘대박’을 미끼로 하여 ‘열정페이’가 강요되는 것이 이 분야의 관행이었다. 그리고 플랫폼은 경쟁을 격화시키고 가시화함으로써 이런 관행을 오히려 강화하는 데 일조한다. 기술 변화의 과정에서 플랫폼은 문화예술 부문에서도 권력을 쥐게 되었다. 수익의 많은 부분을 배분받을 뿐 아니라 노동자를 통제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부조리한 비리가 발생하기도 한다. 문화예술 분야의 ‘나쁜’ 관행들과 부조리는 기술 변화에 따라 방법이 약간 변화하였을 뿐 플랫폼이라는 방식에도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큰 권력을 쥐게 된 플랫폼을 대상으로 문화예술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대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 2000년대 초반 좌파를 들뜨게 했던 인터넷을 통한 대중민주주의와 공유경제의 가능성이 지금은 거의 자본주의에 포섭된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최초의 공유경제로 불리던 아나바다 운동은 중고나라나 당근마켓으로 상업화되었고 카풀 운동은 우버에 영감을 주었다. 1인 언론이라는 블로그는 상품 광고의 현장이 된 지 오래이며, PC통신 시절의 1세대 작가들은 작품을 무상으로 공유하면서 독자들이 읽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았지만, 지금 플랫폼의 창작자들은 수익 대박을 꿈꾸고 있다.
2) 음악의 경우 음원 서비스사업자가 40%, 음원 유통사가 8.8%를 받는데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음원 서비스사업자가 음원 유통사를 겸하고 있으므로 48.8%를 가져가게 된다. 웹툰·웹소설 플랫폼에서는 플랫폼과 작가에 따라 수익 배분 비율이 다르지만 50~70%까지도 플랫폼이 가져간다. 방송 플랫폼인 아프리카에서는 창작자들의 수익이 시청자의 후원금(별풍선)으로 이루어지는데 그중 40%를 아프리카가 가져가고, 유투브에서는 동영상과 방송에 삽입되는 광고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약 45% 정도가 유투브의 몫이 된다. 실제 창작자들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플랫폼에 이 정도를 지불하고 남는 몫이며, 개인이 아니라 소속사가 있는 경우 이 남는 몫에서 또 분배를 하게 된다.
3) 이하 인용문은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으로 수행한 <플랫폼노동 종사자 인권실태조사> 연구 과정에서 인터뷰한 내용들이다.
4)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고용관계를 맺은 노동자들도 물론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플랫폼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거나 일감을 얻지는 않기 때문에 이 논의에서는 제외한다.
5) 오히려 노동자들이 보수의 기준을 집단적으로 정하면 ‘담합’으로서 공정거래 위반이 된다. 한 일러스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일감 단가를 조사하여 매년 기준 단가를 정하였는데,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금지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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