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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전략과 실천 

 

교수 갑질에 대한 권리찾기, ‘대학원생119’

신정욱 (공공운수노조 대학원생노조지부 사무국장)

 

 

‘괴수’가 되어버린 교수들에 대한 반격

 

2019년 1월 초, ‘직장갑질119’의 6번째 업종별 모임인 ‘대학원생119’가 출범했다. 대학원생들이 피해 사례를 제보하면, 무료로 법률상담을 해주고 집단적 대응까지 모색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린 것이다. 대학원생노조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없는 미조직 사업이자 동시에 피해 사례들을 집단화하여 국회ㆍ정부를 압박하는 여론화 사업의 기회라고 판단하여, 출범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대학원생들이 자주 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학원생119’ 첫 출범을 홍보했을 때의 일이다. 한 대학원생이 게시글에 “이제 괴수들이 두려워할 차례다.” 라는 댓글을 남겼다. 교수를 괴수라 표현한 것도 재밌었지만, ‘정말 그들이 두려워할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상에 남았다. 그런데 머지않아 ‘대학원생119’ 밴드에 어떤 교수가 대학원생인 척 신분을 속이고 가입했다가 발각되어 강퇴를 당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어쩌면 교수들도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한 번쯤 되짚어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정말로 교수 갑질이 그렇게 심하냐고 묻는다. 교수 집단 전체를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대학원생119’에 제보되는 피해 사례를 보면 대학가에 교수가 아닌 ‘괴수’들이 득실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특정 갑질 교수라기보다, 평범했을 사람을 괴수로 만들어버린 구조에 있지만, 교수 사회에서는 이를 변화시킬 자정 능력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모아내어 그 구조를 깨트리는 것 외에 어떤 대안이 있을까?

 

그래서 ‘대학원생119’는 사례를 모은다. 사례들이 모이면 그것은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대학원생들의 피해 사례들을 모아, 이것을 ‘집단화된 사실’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왜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건지”,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 건지”에 대한 질문들이 대중들 스스로에게 떠오르게 하고, 정치권을 자극하여 실제로 대학원생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제도적인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피해 사례를 부담 없이 제보할 수 있는 ‘틀’과 법률상담이 가능한 전문가 집단, 그리고 운동주체가 판을 만든 게 바로 ‘대학원생11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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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119’에 제보된 피해 사례들

 

출범 1개월 만에 밴드 가입자 수는 200명을 넘었고, 지금까지 26건의 피해 제보가 있었다. 중복 체크한 경우를 포함하면 △성희롱, 성폭력 3건(11%) △연구비 횡령 2건(7%) △노동력 착취, 사적 동원 11건(42%) △연구저작물 강탈 7건(26%) △금품 요구 1건(4%) △갑질‧괴롭힘 13건(50%) 정도의 분포이다.

 

<대학원생 A씨>

“저희 연구실에서는 저를 포함한 소속 대학원생들의 인건비 입금 통장과 체크카드를 일괄적으로 걷어 지도교수가 보관합니다. 한 달에 통장으로 들어오는 인건비 총액이 150만 원 안팎인데 이 중 1/3 정도만을 따로 인출하여 대학원생들에게 지급합니다. 나머지 금액은 연구 프로젝트 수주 과정에서 필요한 ‘로비’와 실험실 운영비용으로 쓴다고 합니다. 몇 십만 원의 생활비로 사는 게 너무 힘이 듭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말도 없이 연구실에 나가 일을 하는데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여 기본적인 생활조차 안 되는 현실 때문에 하루하루를 우울함 속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더 화가 나는 사실은 대학원생 인건비 통장에 연결된 카드를 지도교수가 들고 다니며 주유비, 식비, 교통비 등 개인 용도로도 쓴다는 점입니다.”

 

<대학원생 B씨>

“대학원 진학 전에 연구실의 운영 방식 등에 대해 교수에게 문의를 했습니다. 당시 교수는 ‘우리 연구실은 국가 장학 프로젝트에 속해 있으니 등록금이나 생활비는 걱정할 일이 없고, 근무 및 연구 환경도 자유롭고 좋은 편’이라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입학을 하고 보니 의무적으로 매일 12시간가량을 연구실에서 보내게끔 되어 있고 학생들의 인건비 지급 통장을 걷어간 후, 월급의 일부를 떼어 지급하더군요. 교수의 사적인 업무를 대학원생에게 지시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교수의 태도도 고압적이었으나 갑질이 ‘문화’가 된 것인지 ‘연구실 분위기 관리’라는 명목 하에 연구실 선배들도 폭언과 모욕을 일삼았습니다. 생활도 어렵고 정신적으로도 많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대학원생 C씨의 사례>

지도교수가 자신의 제자들을 대상으로 공식적인 조교직을 못 맡게 하면서 본인이 소속된 학회나 학부 수업 등에 인력으로 동원함(사적인 조교로 활용). 관련해서 어떠한 보상도 없으며, “지도학생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는 태도로 일관함.

 

<대학원생 D씨의 사례>

A학회와 B학회에서 각각 2년씩, 도합 4년 동안 간사로 일했음. A학회에서는 무급이었고 B학회에서는 4개월마다 30만 원을 받고 일함. 그 상황에 대해서 아무도 문제 제기하지 않음. 학회 초창기부터 그렇게 해왔으니까 여전히 그렇게 운영되는 ‘관례’로 생각함.

 

 

‘학생노동자’들의 노동자 권리찾기 운동

 

나는 대학원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키워드가 ‘학생노동자’ 개념이라 생각한다. 공부하는 학생도 노동하는 순간에는 노동자라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인식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누가 봐도 분명히 노동인 것을 공부의 연장선이라 주장하는 관행, 스승의 가르침이라고 하면서 사적으로 부려먹는 관행이 완전히 뿌리 뽑힐 수 있다.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선언하고, 주체들의 힘을 모아가는 과정에서 대학원생들이, 자기 주변이 조금씩 변화한다는 경험을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다.

 

2018년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에 대한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내용으로, 대학원생은 갑질을 일상적으로 당함에도 불구하고 해당 법안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대학원생119’는 장기적으로 노동자성이 뚜렷한 대학원생들을 근로기준법상으로 포괄하는 작업과 함께 교육부로 하여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준하는 ‘교육분야 갑질 근절 대책 법안’을 마련토록 촉구할 생각이다. 또한, 법적 노동자의 지위를 다투어 볼 만한 사안들을 추려내어 기획 소송 등도 검토해보려 한다. 그리하여 다만 학생이라는 이유로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대학 사회의 지독한 관행이 바뀌도록 시도할 것이다.

 

무엇보다 대학원생노조가 건강하게 운영되고, 조합원들이 늘어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원생119’가 대학원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한다면, 노조를 통해서는 직접 행동하는 주체들을 확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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