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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길에서 만나다

스타 뒤 유령노동자

이정호 (뉴스타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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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실태조사 보고회 [출처: 여성노조]

 

11월 28일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는 의미 있는 보고회가 열렸다. 이름하여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실태조사 보고회. 전국여성노조가 서울시 아르바이트 청년 권리지킴이들과 지난여름부터 가을까지 벌인 연예인 스타일리스트 보조자들의 노동실태를 조사한 내용을 알리는 발표 자리였다.

이 자리에 나온 스타일리스트 A(24)씨는 대학 마지막 학기에 교수님의 추천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연예인들에게 의상을 협찬하는 회사들이 몰려 있는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있는 사무실에서 근로계약서도 없이 월급 80만 원을 받기로 하고 일을 시작했다. 기획사 실장이 고용하는 형식이었다. 하는 일은 의상을 가져오고 반납하는 게 주였다. 연예인을 따라 다니며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고, 틈이 나면 의상을 서핑하고 광고시간을 찾으며 밤샘도 잦아 근처에 있는 집에도 자주 들어가지 못하기도 했다. 자기가 맡은 스타가 바쁠 땐 2박 3일 동안 잠 한 숨 못자기도 했다. 근처 고시텔에 들어가면 뻗기 일쑤였다. 결국 건강이 나빠져 6개월도 못하고 그만뒀다.

 

꿈 산업이란 이름 뒤의 노동착취

두 번째 일자리는 합정동에 있는 유명 기획사, 실장과 구두로 계약하고 월 30만 원을 받으며 사무실 겸 숙소에서 24시간 대기조로 일했다. 합정역과 압구정 로데오거리를 오가며 무거운 옷가방을 들고 교통비도 없이 지하철을 타야 했다. 시간이 촉박할 땐 개인 돈으로 택시를 탔지만, 교통비는 한 푼도 보전되지 않았다. 실장과 함께 움직일 때 밥값을 내주는 게 고작이었다. 2년을 버티면 유명기획사 정규직이 된다고 했지만 너무 지쳐 포기했다. 결국 A씨는 오랜 꿈이었던 스타일리스트를 어시스턴트 과정에서 접어야 했다.

 

전국여성노조 서울지부는 ‘스타 뒤의 유령 노동자’란 이름으로 이날 보고회를 열었다. 노조는 프리랜서란 이름으로 초저임금과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는 스타일리스트 보조자들의 노동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설문지를 들고 무작정 협찬사가 몰려 있는 압구정 로데오거리로 나섰다. 노조는 의상을 들고 오가는 여성들에게 설문을 부탁했지만, 대부분 시간에 쫓기는 그녀들은 거부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노조는 점심시간대에 로데오거리에서 캠페인을 정기적으로 열면서 온라인 설문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렇게 2017년 3월부터 10월까지 203명의 스타일리스트 보조자들이 온라인 설문에 응했다. 응답자 8명은 직접 만나 심층면담을 하기도 했다.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근로계약서는 203명 중 단 3명만 썼고, 대부분 1인 사업자인 연예기획사 실장 밑에 일대 일로 고용돼 일했다(184명, 94.8%). 이들 실장들은 대부분 사업장 등록조차 안 해 노동자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했다.

 

월 50만 원에 하루 20시간 근무도

조사에 응한 203명 중 20~25살 여성이 159명(78.3%)으로 절대다수였고 현 직장 근속기간은 3달 미만이 79명(38.9%), 1년 미만 일한 노동자가 전체의 70%를 넘었다. 꿈을 좇아 이 직업에 뛰어들지만 대부분 건강을 잃고 중도에 포기했다. 3년 이상 일했다는 이는 단 3명에 불과했다.

무엇보다도 노동시간이 문제였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가 134명(63.5%)이나 돼 이들이 늘 대기상태로 장시간 불규칙 노동에 시달림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심층면접 때 한 노동자는 “가족과 외식을 하다가 일 때문에 불려오기도 했다”고 했다. 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호출 신호를 보내는 핸드폰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임금은 50만 원 이하가 90명(44.5%), 60~100만 원 96명(47.6%), 110만 원 이상 15명(7.5%)으로 거의 모두가 최저임금 미달이었다. 게다가 교통비와 식비도 책정되지 않았다. 연차휴가를 쓸 수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3명에 불과했다.

   

이런 지옥에서 살면서도 이들은 제대로 저항조차 못했다. 산업 자체가 꿈을 좇는 데다가 업계 관행을 내세운 관리자들의 횡포에 해고는 곧 업계 퇴출로 이어졌다.

B씨는 3개월 동안 주연배우의 드라마 촬영장을 쫓아다녔는데 6일 동안 하루 3시간 이상을 자지 못했고, 경력 3년에 월급 50만 원을 받는 C씨는 맡은 배우가 드라마와 잡지 촬영할 때 18일 연속근무하면서 주 3일은 찜질방에 가서 잠시 씻고만 나와야 했다. C씨는 지하철을 타면 온 몸이 저리고, 식은 땀에 현기증과 구토, 난청까지 겹쳐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월급은 통신비와 교통비 내면 끝이었고, 신고하면 이 바닥에서 다시는 일을 못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C씨는 “마치 섬에 팔려간 노예처럼 밤 12시 이전에 일이 끝나면 정말 행복했다”고 했다. 노동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노동부에 신고해도 특수고용직이라며 다 빠져나갔다고 했다. 결국 C씨는 중3때부터 하고 싶었고 고교때부터 준비했는데 스타일리스트가 되는 꿈을 접어야 했다.

 

섬 노예 같은 24시간 대기

교수 소개로 입사한 패션학과 졸업생들도 많은데, 처음 1년은 노동자가 아닌 교육생 대우를 당했다. 그러나 교육이나 수련체계는 아예 없고, 자격증도 없다.

스타일리스트는 연예인의 스타일링을 전담하고 연예인의 이미지 연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직업이라는 게 사전적 의미지만, 장시간 노예노동에 제대로 된 스타일리스트 업무는 배워보지도 못한 채 시들어가는 이들이 태반이다. 전국에 스타일리스트가 되려는 보조자 1천여 명이 일하고 있다.

실태조사 분석을 맡았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모호한 고용관계와 비공식적 채용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며 “도제식 수업이란 이름 뒤엔 편법적 노동관행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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