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반월시화공단 비정규직 노동자의 등대지기, 현대위아안산지회 깃발 올리다

박민주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위아안산지회 교육선전부장)

 

안녕하십니까? 현대위아안산지회 교육선전부장을 맡고 있는 박민주라고 합니다.

노동조합,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정말 꿈과 같고 붙잡을 수 없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처럼 들리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해냈습니다. 지금부터 저희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동료를 떠나보내며, 노동조합을 결심하다

때는 2012년, 자동차 샷시모듈을 생산하고 있는 저희 공장에 신차종 개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입사했습니다. 주‧야간 2교대 근무를 하던 터라 라인에 배치된 사람은 15명, 주‧야를 합치면 30명이었습니다. 거기에 서브라인까지 더하면 40여 명에 육박했죠. 첫 양산과 동시에 쏟아지는 물량, 하루 12시간의 고된 노동에도 하나같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 무렵, 신차의 판매 부진으로 인해 생산량은 점점 줄기 시작했고, 처음의 30% 수준으로 생산량이 줄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양쪽 중 한 조는 하루 8시간 근무 중 4~6시간을 청소나 페인트칠 등 환경작업을 해야만 했습니다. 줄어드는 일거리, 고정된 인건비, 회사의 결정은 하나였습니다.

인원감축. 30여 명에 달하던 사람들 중 7명의 사람들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회사는 제가 속한 조의 근무자들을 불러놓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희들 중 7명이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자원자는 이야기해라” 아무래도 해고라는 단어는 꺼낼 수 없었던 걸까요. 대기발령이라는 명목으로 15명 중 7명이 자기의지 혹은 반강제적으로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일이란 바로 청소, 심부름, 결원충원, 한마디로 잡부였습니다. 결국 몇 달 못가 이들은 모두 그만두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만두는 동료들과의 술자리, 그간 힘들게 고생하며 동고동락했던 동료를 떠나보내야 하는 서러움에 현 지회장님께서는 결국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노조를 만들자! 다시는 이런 억울한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

 

‘아! 역시 우리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현대위아 평택‧광주 공장의 비정규직노조 창립

그때부터 저희는 노조를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고, 노조를 고민해도 도저히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지회장 동지께서 반월시화공단 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을 알게 되시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눈앞이 캄캄했던 저희들에게 월담은 그야말로 한 줄기의 빛이었습니다. 그 후로 한 달에 1~2번씩 모임도 하고 교육도 받으며 4명이었던 결의자는 점점 그 수가 늘어났고, 10~20명에 달하는 동지들이 저희와 같은 생각,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노조 만들기에 전념했습니다. 회사에서 아무리 억울하고 분한 일이 있어도 이 악물고 참으며 그렇게 준비하며 나아갔습니다.

그러던 중 현대위아 평택공장에서 첫 비정규직노조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아! 역시 우리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저희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평택동지들이 안산공장 정문에서 선전전을 시작하면서 회사의 압박과 감시가 시작됐습니다. 사람들이 셋 이상만 모여서 이야기하고 있으면 관리자들이 와서 흩어지라고 하고, 혹시 정문 밖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는 평택동지들과 이야기라도 할까 출‧퇴근 시간 정문 앞에서 지키고 있고, CCTV로 감시하고……. 그도 여의치 않자 정규직사원들의 차량 블랙박스까지 동원해서 감시하더군요.

하지만 저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더욱 굳세게 다짐하고 언젠간 우리 공장에도 노조가 생길 거라 확신하며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또 한 번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현대위아 광주공장에서 또 한 번 비정규직노조의 탄생을 알리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저희는 한 번 더 확신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고, 하면 된다고.

   

위기를 기회로, 현장에서 일군 반전

하지만 그 후 회사의 압박은 더욱더 심해졌습니다. 결국 2016년 회사는 몇몇 동지들을 회유하여 기업노조를 만들었습니다.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세 군데 사내하청업체에서 어용노조 가입률이 최소 70%, 95%를 상회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모두 반강제적으로, 아무런 설명 없이 관리자들의 회유와 협박식의 가입이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그간 수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거란 걸 알았기에 발 빠르게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준비모임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동지들은 지금 노조를 만들자는 의견과 기업노조에 가입해서 기업노조를 민주화 하자는 의견으로 팽팽하게 나뉘어 대립했습니다.

결국 기업노조에 가입하자는 결론이 났지만 의견에 따라주지 않는 동지들, 몇 년 간 준비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준비모임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 동지들 몇몇이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나중에 꼭 힘이 되어주겠다며 준비모임을 멀리했습니다.

저희는 처음으로 절망했고, 좌절했습니다. 준비모임에 참가하는 인원은 줄어들어만 갔고, 회의나 교육도 차차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지회장 동지께서 결단하셨습니다. “올해 안에 노조를 만들자, 올해를 넘기면 이제 끝이다”, 준비모임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고자 금속노조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노조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같은 회사, 다른 동지들을 만났습니다.

비밀리에 준비하느라 3개 업체 중 한 곳밖에 발이 미치지 못했던 저희 모임은, 다른 동지들의 모임을 만나 곧 3개 업체에서 과반 이상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꼈습니다. 빠르게 준비위를 꾸리고 11월 15일을 D-day로 지정했습니다. 하지만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에 자꾸만 위축되고 긴장되었지만, 지난날을 또다시 반복할 수 없기에 저희는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그리고 결전의 그날 저희는 힘찬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용노조 탈퇴하고 우리들의 진짜 노조, 금속노조에 가입해주십시오!” 지회장 동지의 목소리에는 떨림이나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우린 할 수 있습니다! 힘을 모아주십시오!” 다른 준비위원들도 목청을 높여 소리쳤습니다. 그 목소리가 하늘에 닿았던 걸까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단 10분 만에 180여 동지들 중 과반 이상이 기업노조 탈퇴서를 제출하고 금속노조 가입서를 작성해주셨습니다. ‘할 수 있을까?’ 불안했던 처음의 생각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바뀌었고, 그렇게 3일 뒤 180여 동지들 중 160명 이상의 동지들이 노조에 가입을 했습니다.

 

photo_2018-01-10_14-02-53.jpg

[출처: 월담]

 

저희는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동지들의 등대지기가 되겠습니다!

이후 당차게 11월 18일 공개창립총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3주 뒤, 저희 공장에서 가입률 99%를 실현했고, 소하리공장 파견동지 17분들 중 16분을 더 동지로 받아들였습니다. 앞으로 총 가입률 100%를 위해 저희는 전진할 것입니다.

하나된 우리의 힘을 바로 다음 날부터 느꼈습니다. 그전에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라인을 드나들며 업무지시와 관리를 했던 원청사 직원은 마치 단체로 연차를 쓴 양 현장에 얼씬도 안 하고, 갑자기 사장님이 친한 척을 하고, 저희 눈치를 봅니다. 동지들 중에는 “이 회사 다니면서 사장 목소리 처음 들어봤다” 하는 분들도 계셨고, “추운데 손 시렵죠?” 난생 처음 듣는 소장의 안부 인사에 황당하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예… 예….” 라고 대답하는 동지도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던 원청 부장‧과장의 물량 압박에 항상 살얼음판 같았던 라인에도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지금 현재 조합원들은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현장에서 웃으며 일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준비위 설립 당시 이야기했던 것, 바로 우리 주변의 노동자들입니다. 우리 공장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일하고 있는, 아직 힘들어하는, 고통 받는 수많은 반월시화공단의 노동자 동지 여러분께 저희가 밝은 빛이자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지회 소식지 이름인 <등대지기>도 저희가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동지들의 등대가 되어 다른 동지들을 노조의 길로 이끌겠다는 굳은 의지를 담아 붙였습니다. 단체협약부터 시작해서 아직 바꾸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많습니다. 저희는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며, 어떠한 힘든 역경에도 파도를 헤쳐 나아가는 범선처럼 앞만을 보고 전진할 것입니다.

   

동지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동지들도 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잘 나서, 저희 공장이 특별해서 노동조합을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있다’는 의지! 그저 평범하지만 소박하게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그 목표만 있으면 동지 여러분도 충분히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 믿습니다. 동지 여러분들도 하실 수 있다는 걸요. 저희가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