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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전략과 실천

 

“나는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인가?”

이미숙 (반월시화공단 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

 

 

얼마 전 회사로부터 부당한 업무배치를 받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는 상담이 있었다.

상담을 청한 노동자는 품질관리를 5년 정도 해왔고, 그 분야에서 나름 전문성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상사로부터 오전 오후 2시간씩 생산부서에 가서 제품을 생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물량 때문에 인력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이미 인원은 충분히 충원된 상태였고 납기일도 급하지 않았다. 갑자기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묻자 상사는 “시키면 할 것이지, 회사 생활에 대한 태도가 잘못됐다”, “당신의 업무 효율이 너무 낮고, 하루 종일 뭘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면박을 줬다. 그러면서 “분 단위로 업무일지를 써서 매일 내라”고도 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는 다른 동료들도 함께였고,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들도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이 느껴졌고, 이튿날은 출근도 못하고 끙끙 앓았다고 했다. 생각할수록 자존감이 바닥을 쳐서 당장이라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찍퇴’라는 말이 있다. 찍어서 퇴사하게 만든다는 뜻인데, 마음에 안 드는 직원을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혀서 스스로 퇴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2016년 월담은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인권침해 실태를 살펴본 적이 있다. 인권침해를 당한 경험이 있었던 열 명의 노동자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들었던 괴롭힘의 유형들은 아직도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심각했다.

대부분 경영방침이나 노무관리라는 허울을 쓰고, 고압적인 방식을 통해 노동자들의 자존감을 하락시키고 있었다. 작업장은 물론이고 화장실 가는 입구까지 CCTV를 설치해 감시하거나, 화장실 가는 횟수를 제한하기도 했고, 불량품을 찾는다는 이유로 가방이나 사물함을 검사하고, 머리 색깔 등 외모를 지적하기도 했다. 동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모욕적 발언으로 면박을 주기도 하고, 신체를 향해 물건을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어이”, “아줌마” 등 부당한 호칭으로 부르는 것은 흔한 일이고, 반말이나 욕설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차휴가를 쓰지 못하게 하거나 산재 신청을 막는 등 기본적인 권리를 통제하기도 했고, 의도적으로 잔업 특근을 배제하거나 업무를 주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회사에 문제 제기한 사람에 대해 집단 따돌림을 유도하기도 하고, 작업 중 사고로 산재 신청을 하려고 한 노동자에게 “회사에 피해를 입혔다”다며 은근슬쩍 퇴사를 강요하기도 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는 이유는 성격이 이상한 상사나 동료들 때문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괴롭힘은 이를 방치하거나 심지어 노동자 통제 방식의 하나로 괴롭힘을 권장하는 조직문화가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법률적 규제를 넘어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 이를 심화시키는 기제는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2016년 조사에서는 주로 불평등한 권력관계, 노동자의 자기결정권 부재, 부당한 지시를 거절할 수 없는 노동자의 현실을 바탕으로 발생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불평등한 권력관계는 단순히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뿐만 아니라 고용형태가 다른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발생했다. 특히나 작업장에서 파견노동자나 이주노동자, 나이가 많거나 적은 여성 등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로 인식되기 쉽다. 몇 년 전에 만났던 파견노동자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공장에 정규직, 계약직, 파견직 등 여러 고용형태가 위계를 이루며 일을 하고 있는데, 층층시하 눈치 볼 노동자들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 했다. 정규직 반장에게 수시로 무시당하고 괴롭힘을 당했는데 자신은 나이도 어리고, 여성이고, 파견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불평등한 권력관계는 괴롭힘의 기제가 되기도 하지만 노동자 스스로를 위축되게 만들기도 했다.

 

물량이 밀리면 쉬는 시간도 없이 원하지 않는 잔업특근을 해야 할 때가 많다. 특히나 하청업체의 경우 원청의 무리한 물량 압박은 고스란히 노동자의 노동 강도 강화와 통제로 이어진다. 화장실 가는 시간과 물 먹는 시간 등을 체크하고, 생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닦달해 댄다. 노동자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지시를 거부하면 곧바로 찍힌다.

“공장 안에 들어오면 다른 세상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전히 공단에서는 전근대적이고,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질서와 문화가 통용되고 있다. 사용자가 해대는 닦달질은 물량을 맞추고 회사 운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입에 걸레를 물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심하게 욕을 해도 그들은 ‘욕해도 되는 사람’이고 나는 ‘욕먹어도 되는 사람’이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노동자들은 일종의 무기력과 자포자기 상태에 놓였다.

   

다가오는 7월이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본격 시행된다. 월담은 이에 맞춰 공단노동자들과 함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무엇이고, 현장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며, 우리는 어떻게 활용해 볼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려고 한다. 상담을 통해서는 사업장 대응도 함께해 볼 참이다.

그러나 이 법이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쓰일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행위자의 대부분은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상사인 경우가 많은데 실제 신고로까지 이어질 수나 있을까. 행위자가 사용자일 경우에는 특히나 더 그렇다. 결국, 알게 모르게 당할 불이익을 감수하거나 퇴사를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너무도 허술하다. 취업규칙 필수 기재사항 이외에도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보다 강제적인 의무조치들이 부과되어야 한다. 괴롭힘을 당했을 때 신원이 드러날 게 뻔한 사업장 내 신고보다 외부의 공신력 있는 기관을 만들어 해결을 모색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로 인식하고, 통제하고 찍어 누르면서 말 잘 듣는 노동자로 길들이려는 사용자들의 노무관리 방식과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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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 카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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