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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 포커스

 

 

손배가압류 제도 개선을 위한

노동조합법 개정의 필요성과 방향*

 

 

하태승 •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 손잡고 법제도개선위원회 위원

 

 

 

1. 들어가며 : 투쟁은 끝나도 소송은 끝나지 않는 가혹한 현실

 

법률원에 처음 들어와서 신입 변호사 교육을 받을 때,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표현이 있습니다. “투쟁은 끝나도 소송은 끝나지 않는다.” 어쩌면 오늘날 손배가압류 제도의 문제점을 가장 잘 보여 주는 표현 같습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51일간의 파업 투쟁이 임금 인상과 고용승계 원칙을 합의하며 마무리되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측은 조합원들의 파업 당시 천문학적 피해(8,000억)와 손해배상 소송을 운운하며 파업 중단을 겁박하고, 정부 역시 이와 같은 대우조선해양 측의 겁박을 부추기며 조합원들의 파업 중단을 압박했습니다. 파업이 마무리된 지 약 한 달여가 지난 시점, 이 글을 쓰는 오늘, 언론 보도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이 위 파업에 대해 50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방침을 확정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투쟁은 끝나도 소송은 계속되는 현실. 쟁의행위의 끝은 노동자들에게 그야말로 가혹합니다.

 

2003년 1월 9일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의 분신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쟁의행위에 참가한 노동조합 혹은 조합원들에 대한 정부의 공식화된 통계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민간 영역에서 일부 통계 조사가 이뤄졌었는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시민단체 손잡고는 양대 노총 사업장을 중심으로 실태조사를 해 발표했습니다. 예컨대 2017년 6월 기준으로 24개 사업장에서 64건의 손해배상 소송이 계속된바 총 청구금액은 도합 1,867억 원에 이르는 수준이었습니다. 위와 같은 소송의 상당수는 단순히 노동조합만을 피고로 하는 것뿐만 아니라, 간부 및 조합원 개인까지를 피고로 한 소송입니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채무는 민법상 부진정 연대채무로 해석됩니다. 즉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에 피고로 지정된 조합원(간부) 개인은 대외적으로는 사측에 대해 천문학적인 소가(訴價) 전액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론상으로는 인용된(혹은 인용될) 채무 전액을 전제로 한 보전처분(가압류)과 집행(압류·추심 등)이 이뤄질 수도 있는데, 그야말로 개인이 파업 한번 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듣도 보도 못한 금액의 채무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개인의 삶과 가정을 어떻게 파탄 낼 수 있는지는 굳이 필자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사측이 손해배상 제도를 남용하는 경우는 부지기수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상신브레이크 사업장의 사례입니다. 상신브레이크 역시 노조파괴로 악명 높은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은 대표적인 사업장 중 하나인데, 당시 회사는 쟁의행위에 참가한 노동조합과 조합원에 대해 약 10억 원에 달하는 손해를 주장하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하였고, 약 4억 원에 해당하는 조합원 개인 재산에 대해 가압류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상신브레이크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법원은 최종적으로 상신브레이크가 입은 재산상의 손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으며, 인용된 금액은 비재산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500만 원뿐이었습니다. 청구 금액의 0.5%만이 인용된 것이었습니다. 상신브레이크의 손해배상 소송이 확정될 때까지 약 4년여간의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그동안 약 4억에 달하는 조합원들의 개인 재산은 가압류되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상신브레이크는 무분별한 손해의 규모를 주장하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남용한 것입니다. 소송은 최종적으로 사실상 조합원들의 승리로 끝났지만, 4년간 10억짜리 소송의 피고가 되고, 가압류 결정의 채무자가 되었던 개인 조합원들이 짊어진 무게는 제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많은 사용자가 손해배상 제도를 통해 정말로 의욕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쟁의행위와 조합 활동에 대한 공포감 조성입니다. 2010년대에는 완성차 공장에서 불법파견을 주장하며 쟁의행위를 단행한 협력업체 노동조합(지회 등)에 대해 상당수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제기되었는데, 당시 사측은 소 취하 조건으로 불법파견 소송 취하, 노동조합 탈퇴 등을 제시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손해배상 제도는 단순히 사용자의 재산권 행사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닌, 노동조합을 통제하고, 길들이고,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파업 이후 우리 사회에서 손해배상 제도의 문제점이 다시 한번 뜨거운 이슈가 되었습니다.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인 관련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4건입니다[강병원 의원안(2020. 6. 19. 2100702), 강은미 의원안(2020. 9. 29. 2104376), 임종성 의원안(2021. 3. 1. 2108518), 이수진 의원안(2022. 8. 12. 16847)]. 위 의안 중 강병원 의원안, 임종성 의원안, 이수진 의원안의 경우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책임 제한과 관련된 내용이며, 강은미 의원안은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책임 제한을 포함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및 사용자 범위 확대, 노동청의 노동조합 규약 등에 대한 시정명령제도 삭제, 산업별 단체교섭 등 노동조합법 전반 쟁점에 대한 내용입니다. 또한 시민단체 손잡고는 최근 이은주 의원실에 새로운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전달했는데, 이은주 의원이 이를 기초로 곧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었던 쟁의행위에 대한 책임 제한을 실현하기 위해 이번에는 정말로 법 개정이 이뤄지길 소망합니다. 이하 항을 나누어 노동조합법을 어떻게 개정하고, 무엇을 주장해야 할지, 손잡고가 작성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기준으로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2. 손배가압류 제도 개선을 위한 노동조합법 개정의 방향

 

가. 서설 : 쟁의행위의 범위는 확대하고, 손해배상 책임의 범위는 축소해야 함

 

법률가들은 우스갯소리로 “적법한 쟁의행위를 하는 것은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라는 표현을 합니다. 현행 노동조합법 제3조는 ‘이 법에 따른’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함으로써 이른바 적법한 쟁의행위에 대해서만 면책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특정 노동조합이 적법한 파업을 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① 현행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이 불분명한 특수고용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이 쟁의행위를 할 경우, ②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의해 교섭대표노동조합이 되지 못한 소수노동조합이 단독으로 쟁의행위를 할 경우, ③ 하청업체 노동조합이 원청 사업주를 상대로 쟁의행위를 할 경우, ④ 정리해고에 대항해 쟁의행위를 할 경우, 현재까지의 법원 판례 경향상 ‘불법쟁의행위’로 판단되기가 십상이고, 이들은 또다시 수십억, 수백억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쟁의행위는 결국 교섭절차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인데, 위에서 언급한 사례의 경우 현행 노동조합법은 원만한 교섭 과정조차 보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손배가압류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층위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①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사용자, 교섭 및 쟁의의 대상 범위를 넓혀 적법한 쟁의권의 행사 범위를 확대하고, ② 쟁의행위에 대한 면책의 범위를 확대하며, 손해배상 책임의 상한액을 규정하는 등 손해배상 청구를 규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노동자들은 ① 적법한 파업을 하기는 어렵고, ② 위법한 파업을 할 경우 수십억, 수백억의 손해배상 소송에 직면해야 하는 이중고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헌법이 규정한 노동 3권을 실효적으로 보장하고, 행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민사책임의 면책만을 논할 것이 아닙니다. 이를 전제로, 구체적인 법 개정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 노동자, 사용자 개념 규정

 

현행

개정안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

<후단 신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근로자로 본다.

.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업무를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

. 그 밖에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으로서 이 법에 따른 보호의 필요성이 있다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

2. “사용자”라 함은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를 말한다.

<후단 신설>

2.-----------------------------------------------. 이 경우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사용자로 본다.

. 근로자의 근로조건이나 수행업무에 대하여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

. 그 사업의 노동조합에 대하여 상대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 자

 

현행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은 모두 제정 당시의 전통적인 고용형태,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1:1의 고전적인 고용관계를 상정하여 제정된 법입니다. 오늘날 고용형태가 다변화되며, 중층적인 고용관계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헌법이 규정한 노동 3권의 취지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와 사용자의 개념 자체가 확대되어야 합니다.

 

형식상 독립된 사업자이나 실질적으로는 특정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노무를 제공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근로자성 인정은 이미 오랫동안 화두가 된 이슈입니다.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의 개념을 ‘타인에 대한 노무제공성’을 중심으로 규율하여 단체교섭과 쟁의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근로자성의 범위를 확대해야 합니다. 최근 하이트진로 소속 화물기사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사측은 독립사업주의 파업이라며 불법성을 운운하고 28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바, 이와 같은 논란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교섭권과 쟁의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교섭권 보장, 쟁의권 보장 역시 오래된 노동조합법의 화두입니다. 대법원은 이미 2010년 현대중공업 부당노동행위 판결(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7두8881 판결)을 통해 이른바 ‘실질적 지배력’설을 제기하고, 사용자의 범위에 대한 확대 해석을 제시했으나 아직까지도 수많은 사용자는 위 실질적 지배력설은 지배·개입 유형의 부당노동행위에만 적용될 수 있는 한정적인 기준이며, 원청 사업주는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부재한 하청업체 노동자들과 교섭의무가 부재하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임금이나 복리후생, 노동안전 등 기본적인 근로조건은 결국 하청업체와 원청업체 사이의 계약을 통해 원청업체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노동조합으로 하여금 하청업체와만 교섭을 허용할 경우, 해당 하청업체는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인 결정권이 부재해 무의미한 교섭만이 이뤄지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이번 대우조선해양 파업 사태에서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대우조선해양의 책임을 주장한 것이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제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의 범위를 과거 대법원 판례가 제시한 실질적 지배력설을 기준으로 명문으로 확대해 원청 사용자와의 교섭과 쟁의를 적극적으로 허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 노동쟁의 정의 규정

 

현행

개정안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5. “노동쟁의”라 함은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이하 “노동관계 당사자”라 한다)간에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를 말한다. 이 경우 주장의 불일치라 함은 당사자간에 합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여도 더이상 자주적 교섭에 의한 합의의 여지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5. “노동쟁의”라 함은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이하 “노동관계 당사자”라 한다)간에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근로기준법24조에 따른 해고를 포함한다) 기타 대우등 근로조건 및 근로관계 당사자 사이의 관계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를 말한다.

<후단 삭제>

 

 

 

노동조합법은 쟁의행위의 전제가 되는 분쟁상태, 노동쟁의의 범위 역시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하였습니다. 가령 현행법에 따르면, 해고자 복직 등 권리분쟁에 관한 사항이나 근로조건 이외에 타임오프 및 산별교섭 등 단결권, 단체교섭권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적법한 쟁의행위의 목적 범위로 판단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에 사용자는 평화로운 쟁의행위에 대해서도 그 목적의 부당성을 다투며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대법원은 정리해고에 대해서는 쟁의행위와 단체교섭의 목적성을 부인해 왔는데, 이로 인해 근로자의 생존권과 직결된 정리해고 사안에 대해서는 적법한 쟁의행위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노동쟁의의 범위 자체를 확대해야 합니다. 특히 정리해고(근로기준법 제24조에 따른 경영상 해고)에 대한 분쟁 가능성을 명문으로 선언해야 하며, 그 밖에 근로조건 및 근로관계 당사자(노동조합과 사용자 사이)의 주장 불일치 일체를 노동쟁의로 선언함으로써 권리분쟁 및 집단적 노사관계에 관한 분쟁 역시 노동쟁의의 대상이 됨을 명문으로 선언해야 합니다.

 

라. 손해배상 면책 규정

 

현행

개정안

제3조(손해배상 청구의 제한)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신 설>

 

 

 

<신 설>

 

 

 

<신 설>

 

 

 

제3조(손해배상 청구의 제한) ① 사용자는 단체교섭, 쟁의행위, 그 밖의 제1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근로자 또는 노동조합의 행위(이하 쟁의행위 등이라 한다)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다만, 폭력이나 파괴로 인하여 발생한 직접 손해에 대해서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사용자는 제1항 단서에 따른 행위가 노동조합에 의하여 계획된 경우에는 노동조합 이외에 노동조합의 임원이나 조합원, 그 밖에 근로자에 대하여 그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③ 「신원보증법6조에도 불구하고 신원보증인은 쟁의행위 등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할 책임이 없다.

사용자의 영업손실, 사용자의 제3자에 대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는 또는 그 밖의 근로자 또는 노동조합의 위법행위로 인하여 직접 발생한 것이 아닌 손해는 제1항 단서에 따라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손해의 범위에 포함되지 아니한다.

 

쟁의행위란 헌법 제33조가 보장한 단체행동권이라는 기본권의 발현입니다. 특히 대법원은 단체행동권을 포함한 노동 3권은 법률이 없더라도 헌법의 규정만으로 직접 법규범으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인 권리라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20. 9. 3. 선고 2016두32992 전원합의체 판결). 이처럼 단체행동권이 그 자체로 헌법이 보장한 구체적 권리성을 지닌 이상,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은 제한될 필요가 있으며, 손해배상의 제한은 단순히 하위 법률인 노동조합법이 정한 쟁의행위로만 한정될 필요가 없습니다. 현행 노동조합법에서는 ‘이 법에 따른’ 쟁의행위에 대해서, 즉 노동조합법에 따른 적법한 쟁의행위에 대해서만 면책을 선언했지만, 이제 헌법상 단체행동권이 구체적으로 발현된 쟁의행위 일반에 대해 면책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권리 남용 혹은 폭력 파괴를 통한 구체적인 법익 침해의 형태로 이뤄지는 쟁의행위에 대해서만 손해배상 청구권 행사가 이뤄질 수 있어야 할 뿐입니다(개정안 내용 중 제1항).

 

또한 사용자는 노동조합 이외에도 실질적인 변제 자력이 없는 자연인 조합원 혹은 간부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조합 자산이 아닌 조합원 개인의 자산에 대해 가압류 등 보전처분과 집행을 했습니다. 이는 실질적인 손해의 전보를 위한 목적이라기보다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공포감을 조성하는 등 조합 활동을 제약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이에 자연인 조합원에 대한 책임 제한 규정을 신설해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신용보증인에 대한 책임 역시 제한될 필요가 있습니다(개정안 내용 중 제2 내지 3항).

 

나아가 사용자가 노동조합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 경우에도 손해배상의 범위에는 쟁의행위로 직접 발생한 손해로 국한되어야 할 뿐, 영업 손실이나 제3자에 대한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 등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의 범위에 포함되어서는 안 됩니다.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범위를 획정할 때, 가장 중요한 관점은 ① 파업이 존재했을 때와 파업이 부재했을 때를 비교한 것이 아닌, ② 불법파업이 존재했을 때와 적법 파업이 존재했을 때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쟁의행위는 기본적으로 업무저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와 같은 업무저해성은 단체행동권을 행사한 필연적 결과이며, 사용자가 본질적으로 수인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이 직접 폭력, 파괴 등으로 유발한 재산상 손해 이외에 영업 손실과 같이 단체행동권에 따라 고유하게 수인의무가 발생하는 손해까지 책임의 범위로 규정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개정안 내용 중 4항).

 

마. 손해배상의 한도 및 감면 청구 규정

 

현행

개정안

<신 설>

 

 

 

 

 

 

 

<신 설>

 

 

 

 

 

 

 

 

 

 

 

 

3조의2(손해배상액의 제한) 3조제1항 단서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손해배상으로 인하여 노동조합의 존립이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에는 손해배상 청구가 허용되지 아니한다.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액의 상한은 사업 또는 사업장별 조합원 수, 조합비, 그 밖에 노동조합의 재정규모 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3조의3(손해배상액의 감면청구) 3조에 따른 손해배상 의무자(이하 배상의무자라 한다)는 법원에 손해배상액의 감면을 청구할 수 있다.

법원은 제1항의 청구가 있는 경우 다음 각 호의 사정을 고려하여 그 손해배상액을 감면할 수 있다.

1. 쟁의행위등의 원인과 경위

2. 사용자의 영업 규모, 시장의 상황 등 사용자 피해 확대의 원인

3. 피해 확대를 방지하기 위한 사용자의 노력 정도

4. 배상의무자의 재정 상태

5. 손해의 발생 및 확대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친 정도

6. 그 밖에 손해의 공평한 분담을 위하여 고려하여야 할 사정

 

손해배상이 허용되는 경우에도 그 정도는 제한될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조합 역시 존립을 위해 최소한의 물질적 기반이 필요한바, 손해배상 청구로 인해 노동조합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해지거나 와해될 경우에는 이를 일정 정도로 감액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근로기준법 제46조 제1항은 휴업수당과 관련해 사용자에 대해 평균임금의 70% 이상 지급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면서도, 근로기준법 제46조 제2항은 사업의 존속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는 노동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위 지급률에 미치지 못하는 휴업수당을 지급할 수 있도록 감액 규정을 마련했습니다. 반대 논리로 노동조합의 손해배상 책임에 대해서도 금액 자체의 제한이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의 상한을 마련하는 개정안(위 개정안 제3조의 2 제2항)은 영국의 입법례를 참조하였습니다. 영국은 다음과 같이 조합원 수에 따른 손해배상의 상한을 마련한바, 이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인해 노동조합의 존립 기반이 흔들렸던 역사적인 경험을 반영한 입법입니다. 우리 노동조합법에도 이와 유사한 상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영국 TULRCA 1992 제2장 노동조합의 지위와 재산

제22조 불법행위 소송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불법행위 손해배상액의 상한

(1) 본 조는 다음의 경우를 제외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불법행위 소송에 적용된다.

(a) 고의(nuisance), 과실(negligence) 또는 의무 위반으로 인한 개인적 상해에 관한 소송

(b) 재산의 점유, 소유 및 사용에 관련된 의무 위반에 대한 소송

(c) (제조물책임에 관한) 1987년 소비자 보호법 제1장을 근거로 제기된 소송

(2) 불법행위 소송에서 손해배상이라는 방식에 의하여 노동조합에 배상되어야 하는 금액은 다음 표의 최고액을 넘지 못한다.

조합원 수

최대 손해배상금

5,000명 미만

£10,000 (약 1,740만 원)

5,000명 이상 25,000명 미만

£50,000 (약 8,700만 원)

25,000명 이상 100,000명 미만

£125,000 (약 2억 1,730만 원)

100,000명 이상

£250,000 (약 4억 3,050만 원)

 

 

나아가 민법과 실화책임법 등 여타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손해배상액의 감경 청구권 제도도 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민법은 경과실로 인한 손해배상 채무의 경우 손해배상액이 채무자의 생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때 경감 청구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실화책임법 역시 경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의 경우 화재의 원인과 규모, 피해의 대상, 배상의무자의 경제상태 등을 감안해 경감 청구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행 법제가 마련한 경감 청구권은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인데 쟁의행위의 원인과 경위, 손해배상 의무자의 재정 상태 등을 감안해 손해배상액의 경감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위 개정안 제3조의 3).

 

3. 결론 : 이제는 입법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노동조합법 개정안이나, 이번 글에서 다룬 노동조합법 개정안이나 사실 그 내용은 큰 틀에서는 모두 유사합니다. 그리고 과거 국회에서도 요즘 논의되고 있는 노동조합법 개정안과 동일한 입법안은 수차례 발의된 바 있습니다.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은 지나치게 가혹하고, 이를 규제하기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논의는 수년간 지속되어 왔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입법은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가끔 자문을 하거나 손해배상 청구 사건을 다루다 보면, 헌법이 규정한 노동 3권은 그야말로 화석화된 문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헌법은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규정하고 있지만, 오늘날 변화된 고용환경 속에서 많은 노동자, 노동조합에 위와 같은 노동 3권은 화중지병과도 같을 때가 빈번합니다. 파업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힘찬 투쟁을 마친 뒤 일상을 돌아온 조합원이 맞이하는 것은 수십억 원의 소가가 담긴 소장 문서인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손배가압류 제도의 개선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및 사용자의 범위 확대, 노동쟁의의 범위 확대 등 노동조합법의 여타 다른 주요 쟁점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노동자들이 행사할 수 있는 교섭권과 쟁의권의 범위는 실질적으로 확대될 것이며, 헌법과 노동조합법의 이상인 집단적 노사자치의 원칙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야말로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통과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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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서 특히 노동조합법 개정안에 관한 내용은 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손잡고 법제도개선위원)의 토론회 발제문 “현행 손배가압류 제도 개선을 위한 법률 개정의 필요성”을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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