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현장에서 지역에서 철폐연대 동지들은

 

바르게 걸어온 공무원 해직자의 원직복직, 우리도 바르게 걷자!

남선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영암군지부, 철폐연대 후원회원)

 

 

오랜만에 쉬는 일요일이다. 작년 8월부터 시작한 단체교섭과 12월에 8기 선거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매일이 바빴다. 솔직히 바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처럼 늘 일을 만들며 살았다. 마음이 왜 그러는지, 왜 그렇게 사는지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단체교섭, 바르게 걷기

 

3월 5일, 우리 지부 본교섭을 마치고 잠정합의안을 이끌어냈다. 물론 실무교섭위원들이 다 만들어 놓은 밥상이었다. 나는 본교섭에서 숟가락만 얹었다. 같이 밥을 먹을 것인지, 아니면 밥상을 물리고 자리에서 일어설 것인지는 미합의 5개안 수용 여부에 달렸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3가지 중 예상대로 마지막 안이 수용되었다. 교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잠정합의안을 받을 것인지, 최종적으로는 조합원의 찬반투표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섭을 하며 세 가지를 약속했다. 하나, 서두르지 않는다. 둘, 원칙과 절차를 지키며 바르게 걷는다. 셋,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조합원이 결정한다.

3월 20일 대의원대회를 거쳐 3월 25·26일 2일간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찬성이 많으면 체결식을 갖고 교섭이 잘 이행되도록 계획해야 하고, 반대가 많으면 재교섭을 해야 한다. 어떻게 결정되더라도 끝이라 할 것 없는 시작이 다시 연결된다. 바르게 걸어야 하는 이유다.

 

 

정기총회, 바르게 걷기

 

3월 7일은 정기총회를 하였다. 위임장 없는 정기총회는 15년간 우리 지부가 지켜온 전통이다. 선배들께서 만들어 놓은 자랑스러운 기풍이다. 대체휴무, 관외출장, 당직 등의 사유만 위임이 가능하며 개인사유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번 8기 출범식과 정기총회는 조합원 총 358명이 참석(직접참여 266명, 위임 92명)했다. 250개 제작한 도시락이 다 나가서 운영위원들은 밥을 못 먹었지만 배부르고 힘을 받는 총회였다. 선배님들 덕분에 바르게 걸었다. 정성을 많이 들이고 시간이 좀 걸리지만 바르게 걷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1 2019.3.7. 전국공무원노조 영암군지부 8기 출범식 및 총회 [출처 필자].JPG

2019.3.7. 전국공무원노조 영암군지부 8기 출범식 및 총회 [출처: 필자]

 

 

정신을 연결하는 것이 바르게 걷기의 시작

 

출범식의 시작은 2012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의 연설을 담은 동영상 상영이었다. 7년 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조합원 총회에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5만 명이 모인 우리 앞에서 약속했다. “해직자 원직복직과 징계취소와 명예회복을 하겠다”고.

굳이 이 영상을 출범식에서 보여준 이유가 있다. 한 해 40여 명의 신규직이 들어오는데 최근 6년간 들어온 직원들은 대통령께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얼굴도 모르는 해직자 선배들께서 파면·해임을 감수하며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덕분에 우리가 부당한 것을 개선하라고 요구하며 현장을 바꿀 수 있었음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가끔 얼굴도 모르는 해직자를 계속 지원해야 하느냐는 조합원이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조합원과 현장의 뜻이라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중앙 회의에서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질문 속에 답이 있다. 나는 그 답을, 정신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중앙대의원대회에서 머리가 하얀 조합원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위안부 할머님이 돌아가신다고 해도 그 뜻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해직자의 정신은 우리가 계속 상기하고 지켜야 한다.

 

 

해직 선배들이 남긴 정신, “공무원노동자여, 바르게 걷자!”

 

1998년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한 민주노총은 정리해고법 도입을 받아들이고 공무원의 노동3권을 보장받기로 하였다. 정리해고법은 빠르게 도입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해고되었던 반면, 공무원노동조합법은 2006년에 시행되었다.

선배들은 요구했다. “공무원도 일해야 먹고 사는 노동자다, 그러니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를 보장하라, 그리고 노동3권도 보장 안 된, ‘1.2권’짜리 공무원노조법은 필요 없다! 일반 노동조합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이다. 다른 나라에도 없는 공무원노동조합법은 특별법이 아니라 악법이라고 외쳤다.

8년간 일을 해태한 정부는 사과 대신 2,969명을 징계하였다. 그리고 현재 136명의 해직자가 남았다. 15년 이상의 해직 기간이다. 단위노조 중 최대 기간이다. 이게 뭐 자랑일까 싶지만, 노동조합 사무실을 뺐기고 한겨울 추위를 견뎌내며 탄압에도 굴하지 않았던 우리의 단일한 구호 “해직자 원직복직”은 분명 자랑이다.

제헌헌법에도 보장된 공무원의 노동3권이 왜 사라졌는지, 왜 다시 만들어지는데 시간이 걸렸는지, 어렵게 만들었다면서 왜 ‘1.2권’만 보장하는지는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다. 각종 부정선거와 부정행위에 공무원의 눈과 입을 막고, 머릿속까지 정부의 하수인으로 길들이기 위해 노동조합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개별화된 인간은 힘이 없다. 노동자인지 모르고 노동조합이 필요한지도 모르는 존재로 길들여진 우리에게, 노동자임을 알게 하고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선배들의 행보는 아팠지만 빛나는 역사였다. 권력이 원하는 것이, 시대를 거스른 것이 죄라며 내린 징계는 분명 부당한 것이고, 이 부당함에 대항한 행위는 정당했다.

그래서 공무원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부당한 권력에 순응하도록 만든 공무원노동조합법의 철회를 위해 싸워 온 해직 선배들의 활동을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해직자원직복직 특별법안 vs 해직자복직 특별법안, 그 아득한 사이

 

2월 23일, 31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홍익표 의원이 제안한 해직자복직특별법 중재안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보고 사항에 대한 질문과 의견 들이 혼동되었고, 실제 논의사항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며 참 힘들었다. 이 날은 해직 선배들이 청와대 앞에서 15일간 집단단식 중이었고, 대의원대회 중에도 두 분이 쓰러져 응급차에 실려 갔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대였으나 정신은 아득해져갔다.

국회의원 177명이 동의‧서명한 진선미 의원의 해직자원직복직특별법안이 폐기된 것이 아닌데 왜 원직복직도 아닌 복직에, 징계취소와 경력인정도 되지 않는 홍익표 의원의 발의안을 받아들이자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조합비 부담을 거론하며 현장 조합원을 위해 해직자가 양보하라는 말을 들을 때는 지부에서 정신 계승 못한 것을 반성해야지 중앙대의원대회에서 요구하는구나 싶어, 해직 선배들의 바른 길을 우리 지부에서 더 많이 알려야 되겠다고 되새겼다.

3월 14일, 우리 지부는 7차 운영위원회의를 하였다. 해직자 원직복직 진행 과정을 보고하고 진선미 의원안과 홍익표 의원안을 비교하며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31차 전국대의원대회를 다녀온 운영위원 2분은 이 날 소회도 밝혔다.

“내가 듣기에도 무안했다. 3만 원 없어서 못사는 것 아닌데, 해직자 선배들도 계시는데 조합비 얘기하며 홍익표안 받지 않으면 000 하겠다고 할 때는 창피해서 어디 숨고 싶었다.”

“의견이 다양한 것은 이해하지만 그 정도로 말할 줄은 몰랐다.”

우리 운영위원이 중앙대의원대회에 다녀와 실망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운영위를 마무리하며 당부를 드렸다. “우리, 늦더라도 바르게 갑시다. 해직 선배들의 정신을 계승하고 현장에 더 집중하며 노동조합 활동합시다”라고.

 

 

얼마만큼 왔을까, 그래도 서두르지 않기

 

간만에 아무 일정이 없는 일요일이다. 아침부터 미룬 청소를 하고 마당을 정리한다. 정신없이 잡초를 뽑다 보니 점심을 건너뛰었다. 배가 고팠다. 고작 한 끼 굶고 나는 배가 고팠다. 그리고 면목이 없었다. 아! 내가 바쁜 이유를 알았다. 역사에 면목이 없어서였다.

대의원대회의 힘겨운 소식을 들은 선배들은 그래도 단식 투쟁을 놓지 않았다. 나는 2월 24일 서울로 갔다. 청와대 앞에 비닐로 덮여진 노숙농성장으로 들어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마음이 힘든 날을 넘어 선배들 곁에서 잠을 자고 싶었다. 선배들 곁은 따뜻했다. 나에게 감기 걸리지 말라며 좋은 자리도 내주셨다. 밤새 켜진 환한 가로등 때문인지 새벽녘 찻소리가 시끄러웠는지 잠을 설쳤다. 7시에 일어나 선배들과 출근 선전전을 하고 차마 아침을 먹지 못했다. 대의원대회에서 한 마디도 못한 미안함에 계속 젖어 있었다.

오후에 지부사무실에서 해결해야 할 상사갑질 건이 있어 기차를 타야했다. 선배들의 손을 잡고 인사드리고 또 안아보고 나서 농성장을 나왔다. 기차 안에서 정기총회 참석 순회에 사용할 피켓 시안을 넘기고 포스터를 제작하고 업체를 찾아가 피켓을 찾아 지부사무실로 갔다. 약속한 사람 만남을 두 차례 갖고 나니 퇴근시간이다. 오늘도 하루가 바빴다.

 

해직 선배들의 원직복직은 얼마나 왔을까,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중앙교섭 교육 때 서두르면 진다고 했는데, 기한을 정해놓은 투쟁은 이길 수 있을까? 20%도 안 되는 경력 기간을 인정해주는 것이 명예회복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일까? 다양한 생각과 의문이 드는 요즘이다.

그래서 또 다짐한다. 서두르지 말자고, 바르게 걷자고, 그리고 원직복직 쟁취하자고!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