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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

 

 

나는 왜 가고 왜 왔나?

 

 

조승화 • 철폐연대 회원, 의료연대본부

 

 

 

왜 서울을 떠난 거야?

 

서울 상경은 사회단체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서울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도시,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부딪치며 하고 싶은 ‘활동’이라는 것을 서른 살에 처음 시작했다. 그렇게 서울에서 사회단체 활동을 했었고, 시간이 지나 우여곡절 끝에 활동도 정리하게 되었고, 이리저리 일을 구해 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활동을 할 것도 아닌데) 더 서울에 있는 게 답답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지역을 다시 떠나는 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탈서울’을 맘먹더라도 여기 서울에는 지인도 있고 일을 구하는 것도 그렇고 이제 익숙해진 곳인데 다시 떠나는 건 부담되는 일이다.

 

그 당시 나는 ‘활동 후유증(?)’ 같은 게 내 안에서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었다. 활동 후유증. 사회단체 활동을 그만두고는 ‘나는 이제 활동할 마음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다’, ‘안 힘들다’라고 생각했었다. 쿨하게. 그렇게 넘겨 버렸던 마음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후폭풍처럼 밀려오는 공허감, 우울감 등으로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활동이라는 게 어찌 되었든 마음을 쓰는 일인데 딱 끊어 낸다고 끊어지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마음을 쓴 만큼 어느 정도의 빈 공간이 내 맘속에 남아 버린 것 같다. 

 

그래서 서울을 떠난 거야? 

 

아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그냥 멈춰 있었던 것 같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모든 게 무의미하게 여겨졌다. 그렇게 지내다가 우연히 친구들과 놀러 간 제주도 여행 그리고 제주도에서 걸었던 올레길. 올레길을 걷다가 생각보다 걷는 게 좋다는 생각에 내친김에 떠난 일본 도보여행. 도보여행은 무척 힘들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배낭, 하루하루 아파 오는 다리와 어깨 통증, 계속 발에 잡히는 물집들, 더위와 폭우, 텐트 칠 곳을 찾아 헤매는 시간들, 잠이 오지 않는 밤과 다시 배낭을 메는 새벽. 하지만 오랜 시간 걷는 행위는 나를 단순하게 만들어 주었다. 걷는 동안에는 오로지 오늘 내가 걸어야 할 길, 날씨, 매 끼니, 잠자리만 고민하면 된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 내가 맘 쓴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지도 않게 되었다. 단순한 생활, 단순한 생각이라는 ‘도보여행자의 일상’은 나에게 선물 같았다. 그리고 또 내친김에 떠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여행. 이렇게 오로지 걷기에만 집중했던 시간들이 집으로 돌아온 후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나서야 오히려 떠나고픈 맘도 힘도 생기게 되었다. 이후 틈틈이 탈서울, 농촌 이주를 위해 지역들도 돌아다니고 정보도 알아보았다. 하지만 탈서울을 결심했지만 쉽사리 어디로 갈지도 난감했다. 이리저리 지역들을 알아보다가 같이 사는 동거인의 지인의 지인의 지인(생판 모르는 사람)이 전남 곡성 지역에 사는데 빈집을 알아봐 준다고 해서 무작정 전남 곡성으로 내려갔다. 내려가 빈집들을 알아보고 2~3주가 되지 않아 곡성으로 집을 구해 시골 이주를 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뭐 하고 살았어? 

 

시골 농가주택을 빌렸다. 집은 동거인과 둘이 살기에 꽤 넓었고 마당과 집 앞뒤로 작은 텃밭도 있어 시골 삶을 시작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2주간 간단한 집수리를 하고 이사를 했다. 대부분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만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시골 마을. 마을 주변은 산과 논밭들밖에 없어 온통 녹색으로 가득했다. 가끔 찾아오시는 마을 어르신들 외에는 누구도 찾아오지 않고 너무나도 조용한 분위기. 도시의 소음 속에 갇혀 있다가 이렇게 찾아온 적막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도시에서는 생각조차 못 하던 넓은 집, 마당에 햇볕 받는 빨래들, 비가 오면 지붕과 마당에 떨어지는 빗소리들, 밤하늘 가득 펼쳐진 별들. 모든 것이 좋았다.

 

하지만 당시 나는 시골살이 무식자였다. 탈서울만 생각하고 무작정 시골로 내려왔다. 시골에서는 어떻게 논밭을 구하고 농사를 짓고 일을 구하고 이웃들과 어떻게 살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어떻게 그런 상태로 내려가려 했을까 신기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지방선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역 사람들도 알게 되고 시골살이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특히 지역에 있는 농민회와 근처 마을의 협동조합 사람들을 통해 시골 생활에 대한 전반적 도움을 받았다. 논농사, 밭농사도 배우고, 밭과 논을 빌리는 일도 이분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만나 놀면서 시골에서 사는 법도 조금씩 터득해 나갔던 것 같다.

 

나는 애초에 농사를 통해 돈을 벌 생각이 없었기에 처음부터 내 먹거리와 나눠 줄 것들을 중심으로 농사를 지었다. 농약도 안 치고 다른 농사꾼들에 비해 게으르게 지었기에 수확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실력에 비해 많은 수확이라는 생각이 들어 항상 자연(?)에 고마웠다. 그래도 여름에는 밭에서 거두는 작물이 많아 고기 사는 일 외에는 읍내 마트에 갈 일도 적었다는 게 행복이었다. 그리고 배추든 무든 내가 지은 것들로 김장을 하고 내가 수확한 쌀로 밥을 먹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8. 본문사진.jpg

곡성에서 맞은 첫 번째 가을, 감을 한가득 상자에 담고 기뻐서 사진을 찍다. [출처: 조승화]

 

 

그런데 왜 다시 서울에 왔어? 

 

하지만 농촌에 내려간 지 3년이 넘어서면서 농촌 생활을 돌아보며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농사는 즐겁지만 농사는 나에게 직업이 될 수 없겠다’, ‘더 늙으면 어디서 (사회운동단체) 활동도 못 할 건데… 늦기 전에 다시 활동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 다시 내가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니 나 스스로도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 후로 전남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곳을 몇 군데 알아봤지만 잘되지 않았다. 활동이라는 게 하고 싶다고 또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즈음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전장연은 지하철 타기 투쟁을 시작했다. 같이 사는 동거인(빈곤과 장애운동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일을 함)은 이 두 사건을 접하면서 의외로(?) 크게 분노하고 답답해했다. 동거인은 뭔가 시골에서만 가만히 있는 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에 더 답답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날 동거인은 나에게 ‘안 되겠어. 나 서울 가야 될 것 같아’라는 말을 하였고 ‘전장연 지하철 타기’에 결합하면서 서울로 상경했다. 나만 시골에 덩그러니 남기고. 동거인은 처음엔 한 달 살기로 서울에서 지냈는데 지하철 타기 투쟁이 점점 길어지면서 돈도 많이 들어 결국 서울에 집을 구했다.

 

그 이후로 나에게는 고심의 시간들이었다. 어떻게 하지? 여기 혼자 있을 수도 없고, 농사를 정리하고 싶지도 않고, 활동도 하고 싶고. 아, 어렵다. 복잡한 생각에 나는 제법 오래 고민을 했다. 그리고 농사를 일단 정리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고 다시 서울로 왔다. 5년 만에 다시 찾은 서울. 걱정만 한가득이었지만 다시 활동할 수 있는 단체(의료연대본부)를 찾았고, 그래서 지금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뭐? 

 

어느 날 나에게 활동을 쉬어야 되는 순간, 더 이상 활동을 하고 싶지 않은 순간,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점점 ‘나쁜 활동가’가 되어가는 것 같다는 순간이 있었다. 그런 순간이 잘 지나가면 좋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만두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한동안 활동 후유증으로 힘들었고,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시간들도 버텨내야 했다. 그 시간 동안에 도보여행과 농촌살이가 내 삶에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다시 활동을 하고 싶어지는 순간에 운이 좋게도 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지만 이렇게 나는 서울을 떠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있다. 여기에 대해 그 순간/시간들이 ‘잘되었다’, ‘안 되었다’는 평가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그럭저럭 해냈다는 생각에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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