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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 정책포커스

 

 

사무직 파견노동 실태조사 결과를 통해 살펴보는 파견법 폐기의 필요성

 

엄진령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1. 사무직 파견 실태조사가 기획된 배경

 

철폐연대는 파견법 폐기의 필요성을 사회에 지속적으로 알리겠다는 뜻으로 2016년부터 <파견노동포럼>을 열어왔다. 법률단체 및 비정규투쟁 단위, 공단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략조직화 단위, 인권단체 등이 공동주최로 함께 뜻을 더해 왔다. 파견법이 노동자의 삶에서 어떻게 권리를 빼앗아 갔는지, 파견제도에 맞서 어떤 투쟁이 필요한지, 더 많은 노동자들이 파견법에 맞서 권리행동에 나서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이를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로 듣고자 발언대를 두기도 했고, 활동가들이 모여 조직화와 투쟁의 방향을 토론하고, 법률가들이 사례를 발표하며 악법성을 드러내는 자리도 가졌다. 그리고 2020년에는 불법파견, 간접고용에 대한 그간의 투쟁을 돌아보며 법률 대응의 측면과 투쟁의 전망이라는 큰 두 꼭지에 대해 장시간의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매번의 포럼은 “파견법 폐기, 간접고용 철폐”를 앞에 걸고 진행되었고 당면 시기의 쟁점을 놓치지 않고 다루려 애를 썼다. 많은 동지들이 투쟁의 이야기를 전하고 고민을 함께 했으며, 그런 과정은 파견법의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아쉬움은 파견법에 의한 이른바 ‘합법파견’ 노동자의 목소리를 직접 담아낼 수 없었다는 점이다. 2019년 하반기를 기준으로 파견노동자 수는 약 9만7천 명이다. 이는 전체 임금 노동자의 0.5%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파견법이 직접고용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그로 인해 광범위하게 간접고용이 양산된 것과 달리, 정작 그 파견법에 의해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파견은 매우 작은 규모인 셈이다. 그리고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당사자가 없다는 것은 이 문제제기를 자신의 삶의 문제로 이끌어 가며, 그 속에서 권리를 위해 투쟁할 당사자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파견노동포럼>은 주체의 부재 상태에서도 파견법의 악법성을 사회에 지속적으로 알리고, 폐기의 필요성을 주장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 애초 알고 있었던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포럼 가운데 조직화를 위한 논의가 이루어질 때마다 매번 그 빈 지점은 더욱 큰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스스로 이야기할 노동자, 함께 목소리를 높일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 조금 더 방향을 집중해 보고자 했고, 사무직 파견노동에 대한 실태조사는 그런 고민 속에서 기획되었다.

 

2. 왜 사무직 파견노동을 대상으로 했나

 

실제로 약 9만7천 명 수준에 지나지 않는 합법파견 노동자들의 실태는 우리 사회에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에 대한 연구도 부족하다. 파견법의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많이 다루어진 듯이 보이지만 파견제도를 둘러싼 정부와 노동, 자본과 노동의 투쟁만큼 파견노동문제에 대한 조사나 연구는 대다수가 ‘파견제도’ 자체에 집중되어 있다. 파견이라는 고용형태가 노동자의 노동과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나 분석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형할인점 파견판촉사원이나 비서, 생산직 파견 여성 등 일부 직종에 대한 연구는 있지만, 합법파견 영역에 대한 조사 연구는 그 수 자체가 많지 않다. 조직과 투쟁을 통해 드러나지 못한 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그 제도의 영향에 비해 매우 미약한 실정이다. 그래서 이 실태조사에서 현재 비어 있다고 생각되는 ‘합법파견’ 노동자의 권리 실태를 사회적으로 조망하고자 했다.

 

특히 사무지원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그 대상으로 한 것은 다음 세 가지의 이유 때문이다. 첫째, 합법파견 가운데 사무지원업무 종사 노동자는 약 3만 명(2019년 하반기 기준 28,876명)으로 가장 다수이다. 그런데 사무직 파견노동자들은 대기업에서는 각 부서별로 한두 명, 지점별로 한두 명이 존재하고, 중소기업이나 작은 사업장에 소수가 존재하는 방식으로 분산되어 있다. 이것은 그만큼 다수의 기업에서 사무직 파견노동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사무지원업무 파견노동에 대한 조사를 통해 파견노동이 기업 내에서 어떻게 여겨지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둘째, 사무지원업무 파견노동자의 경우 정규직의 업무를 보조하고 단순 사무업무에 종사하는 이들로, 정규직과 밀접하게 업무적 소통을 하고 직장 내에서 동료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런 점에서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직장 내에서 파견이라는 고용형태가 야기하는 관계적 측면, 차별 실태 등을 보다 잘 살펴볼 수 있는 직종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사무지원업무 파견노동에는 20대의 청년층이 다수 존재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 경우 이들이 파견노동 속에서 가지는 경험 및 생활의 양상 등을 통해 청년 노동자들에게 파견제도가 미치는 구체적 영향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두면서 사무지원업무 파견노동자를 조사의 대상으로 특정하였다.

 

3. 사무직 파견노동 실태조사 결과

 

1) 조사응답자 현황

 

설문조사에는 총 210명이 참가했다. 조사는 주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 혹은 SNS 등을 통한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조사참가자 중 여성이 81.4%, 20대가 57.6%, 일반 민간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66.2%로 다수를 차지했다. 사용업체의 규모별로 보면 100-300인 미만 규모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34.8%, 50-100인 미만 규모가 27.6%로 나타나 사무직 파견노동자가 영세한 소규모 사업장보다 대규모 사업장에 더 많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면접조사는 설문조사 참가자 중 면접 참가 의사를 밝힌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였고, 총 6명에 대해 면접을 진행할 수 있었다. 면접조사에서는 설문조사 내용을 토대로 보다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하고, 파견 및 비정규직 고용에 대한 인식, 이후 직업생활 전망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2) 노동조건 실태

 

계약기간은 2년으로 작성하는 경우가 36.2%로 가장 많았고, 평균 계약기간은 16.8개월로 나타났다. 1년 이상의 계약이 많이 나타나 3+3개월로 기간이 제한되는 일시 간헐적 사유 파견에 비해 사무직의 경우에는 상시업무에 대한 파견노동 활용이 크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최대 2년을 초과하지 않는 파견의 속성상 짧은 계약기간은 파견노동자들의 권리를 누락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건강검진의 경우가 그랬다. 일반건강검진의무는 파견사업주에게 부여되어 있는데 파견업체가 이에 대해 제대로 안내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보였다. 단기간의 계약을 가지는 파견노동자들이기에 2년 1회 실시하는 의무검진도 받은 경험이 없는 이들이 있었다. 다만 파견계약기간이 1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건강검진이 있다는 응답이 없다는 응답보다는 높게 나타나, 단기계약의 형태를 가지는 파견고용 자체가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접근도를 떨어트린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동시간은 평균 약 43시간 수준이었다. 40시간보다 짧은 단시간 노동자도 17명이 있었지만, 일반적으로는 주 40시간 근무로 정하고, 그에 부가해 시간외 근로가 종종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외 근로를 포함해 주 40시간 일한다고 응답한 경우가 가장 많은 41.4%였고, 주 40시간을 초과해 일한다고 응답한 노동자들이 50.5%로 절반을 차지했다. 그러나 시간외 노동에 대한 수당이 정확히 지급되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외 노동에 대한 업무지시는 사용업체를 통해 이루어지고, 수당은 파견업체에서 지급을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파견노동자가 시간외 수당을 명확히 지급받지 못하거나 무료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경우들도 있었다.

 

임금수준은 평균 217.5만 원으로, 이는 전체 파견노동자 임금 평균 207만 원보다 10만 원 가량 높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최저임금 이상 200만 원 이하 구간’의 임금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35.2%로 가장 많았다. 해당 일자리를 통해 버는 소득이 생활 가능한 임금이 되는지를 살피기 위해 노동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월 고정임금 총액을 검토한 것인데, 최저임금 이하의 소득을 벌고 있는 노동자가 11%였으며, 주 40시간 이상을 근무하지만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은 14명(40시간 이상 근무자 193명 중 7.9%)이 존재했다. 상여금, 기타 수당 등 기본임금을 보조하는 급여가 있는 경우는 상여금이 42%, 기타수당이 18%에 그쳤다.

 

휴가 사용 역시 쉽지 않았다.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응답이 그렇지 않다는 응답보다 높게 나타난 것은 경조휴가(60.5%), 여름휴가(51.4%) 외에는 없었으며, 생리휴가나 산전후휴가의 경우에도 사용이 어렵다는 응답이 70%를 넘었다. 무엇보다 휴가사용과 관련한 권리의 누락은 다른 요인보다 파견이라는 고용형태 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였다. 연차휴가와 같은 법정휴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모든 휴가가 없다고 응답했던 한 노동자는 ‘여름휴가’가 없다는 사실만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다른 휴가에 대해서는 애초 어떤 설명도 들은 바가 없기 때문이라고 응답의 이유를 설명했다. 계약체결 시 상세한 노동조건에 대한 고지가 전혀 없기에 노동자는 어떤 휴가가 본인에게 보장되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경로가 없다. 연차휴가는 법으로 보장된다는 사실을 알지만 파견업체 소속으로 되어 있어 연차휴가를 사용하고자 하더라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법정휴가라고 하더라도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더해 휴가 사용 시 해당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노동자나 다른 파견노동자에 대한 업무 과부하 등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휴가 사용이 불가능하기도 했다.

 

3) 차별 실태

 

사무직 파견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의 일에 대한 지원, 보조업무 등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대부분 비교 대상인 동종 유사업무 종사 노동자가 있었다. 노동자들은 비교대상 직접고용 노동자들에 비해 자신의 임금 수준이 60~80%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러나 이는 월 고정급을 기준으로 파견노동자가 인지하고 있는 수준에서의 비교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고용노동부의 임금직무정보시스템을 참고해서 살펴보면, 사무직 파견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전체 사무종사자 임금 평균의 54% 수준으로 정규직과 비교한다면 더 큰 차이가 날 것으로 짐작된다. 조사결과 나타난 임금 수준은 사무 종사자 하위 25%의 임금수준과 유사했다.

 

그 외 일을 하면서 겪은 차별적 경험으로는, 업무능력을 무시하거나(업무 능력에 대해 무시를 당한 적이 있다), 귀찮은 일을 떠맡기는 것(힘들거나 귀찮은 일은 종종 파견직에게 떠맡긴다), 성과에 대한 불인정(일을 잘 해도 성과를 인정받지 못한다), 공식 소통망 배제(회사의 공식적인 소통망에서 파견직은 빠져 있다)에서 절반 이상이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파견노동자의 업무가 정규직 업무의 보조업무이거나 관련해서 수행되는 업무들이기 때문에 업무상의 연계나 지시, 보고 등의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업무상의 관계는 때로 노동자 간 관계로 그대로 이어져 파견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의 관계 자체를 기울게 만든다. 게다가 ‘보조’업무라는 식으로 애매하게 규정된 노동자의 직무범위는 때로 노동자의 노동을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격하시키기도 했다. 동료관계가 아니라 모든 일을 지시하고 보고를 하도록 요구하는 경우,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거나 심지어 마실 물을 떠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4. 파견법이 만들어 낸 일터의 모습

 

파견업체는 노동자를 모집해 사용업체에 보내고, 채용이 결정되면 파견업체와 계약서를 작성한다. 실제 채용의 최종 주체는 법이 구상한 바와 달리 여전히 사용사업주에게 달려 있다. 파견업체는 근로계약의 상대방인 사용자이지만 사전에 노동조건이나 직장의 정보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고, 파견할 노동자가 수행할 직무나 일을 하게 될 직장의 상태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도 않다. 그렇게 파견으로 일을 하게 되는 노동자들이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그 정보의 부족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첫 번째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일을 하면서 겪게 되는 문제, 예를 들어 수당의 체불이나 휴가의 사용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할 때 파견이라는 고용형태는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사용업체는 대부분의 문제를 파견업체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떠밀고, 파견업체에서 하는 관리의 수준이란 임금을 지급하고, 때가 되면 계약서를 쓰는 것 정도에 그친다. 파견법은 고용사업주와 사용사업주에게 노동법상의 책임을 양분하고 있는데, 이 양분은 현실에서는 책임질 사용자의 부재와 다르지 않은 상태를 야기한다. 사용자에 의한 최소한의 노무관리조차 수행되지 않는 것으로, 이렇게 발생하는 노무관리의 공백은 아주 일상적인 부분에서조차 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상태를 만들어 낸다.

 

이 공백을 간혹 대체하는 것이 있다. 함께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의 친절이다. 이것은 주로 젊은 노동자들에 대해 좀 더 경력을 가진 이들이 베푸는 배려이다. 이러한 배려가 일터에서의 생활에 때로 각박함을 덜어주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소속에서 야기되는 이질감은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권리로 구현되지 못하는 배려는 일시적일 뿐이라서 일터에서의 관계는 더 진전되지 못한다. 오히려 업무수행에 있어서는 조력이나 지원보다 지지받지 못하고 배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파견노동자가 고용관계에서나 노동조건과 관련해서 문제를 겪게 되면 이런 구분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관계는 문제를 함께 해결해 주는 관계가 아니기에 파견노동자의 일은 파견업체를 통해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는 경계짓기가 은연중에 발생한다.

 

이러한 일자리에서 20대의 노동자들이 직업생활을 시작한다. 20대 조사참가자 중 43%가 현재 일자리가 첫 취업이었는데, 이처럼 첫 직장생활을 파견노동자라는 신분으로 시작한 노동자들에게 안정된 고용은 권리가 아니라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쟁취해야 하는 성공의 증명이었다. 파견 고용 후 2년을 초과하면 직접고용이라는 법률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미 대다수 기업에서는 정규직, 계약직, 파견 등 고용형태에 따라 입직 경로 자체가 다르게 구성되어 있어, ‘파견근로 2년 후 정규직 전환’이라는 경로 자체는 이미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했다. 그래서 정규직 취업을 위한 노력은 파견으로 일하는 동안에도, 파견기간이 끝난 후에도 노동자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일이 되고 있었다.

 

장래를 위해 가장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활동으로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 채용공고에 계속 응시하고 시험에 대비한 학습을 하는 것 △자기계발과 실력 갖추기 등을 꼽았다. 그러나 파견으로 일하면서 정규직 취업 준비를 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지만 퇴근 후 너무 지쳐서 장래를 준비할 여력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드러나지는 않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절망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파견으로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에 대해 ‘전망 없는 생활이 반복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장 많이 꼽았고(25.2%), 그 다음으로 ‘고용상의 불안감’(24.3%)을 꼽았는데, 20대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전망 없는 생활 반복에 대한 두려움에 더 높은 응답을 보였다.

 

5. 왜 파견법 폐기일 수밖에 없는가.

 

파견법 폐기가 지금에 와서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개정을 통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권리침해를 조금이라도 더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은 혹시 없는지를 묻기도 한다. 그러나 파견노동을 주요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제도의 존재로서 미치는 영향에 있다. 파견제의 합법화가 만들어 낸 직접고용 원칙의 훼손은 간접고용 확대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노동관계법이 노동자 권리 보호의 측면에서 충분히 해석되지 못하는 영역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다양한 양상의 간접고용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 가운데 확대된 자회사 고용이 그렇다. 정부는 자회사와 같은 간접고용을 계속 활용하면서도 원청에 도의적 책임을 지우거나 원청사용자로서의 지배력을 모자회사의 계약책임으로 합리화하는 방식으로 불법파견적 요소를 배제하려 한다. 직접적인 파견법 확대 개악을 추진하지는 않더라도 그를 회피한 간접고용 활용의 양상은 멈추지 않고 있다.

 

물론 이 실태조사를 시작하면서 제도의 개선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설문조사 문항과 면접조사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한 후의 느낌은 너무도 달랐다. 고용이 불안정해서도, 임금이 낮아서도, 다른 노동조건이 너무 열악해서도 아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문제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파견법이 노동자의 일상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삶의 전망 자체를 어떻게 앗아가는지를 보다 자세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권리의 박탈을 야기하는 간접고용을 양산하는 제도적 기반으로서 파견법이 존재한다. 그리고 설사 그 제도적 효과를 차치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전체 노동자의 0.5%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규모의 노동자들이지만, 이들에게 발생하고 있는 삶의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답을 해야 할 의무가 조사의 끝에 다시금 주어졌다. 그리고 그 답은 다시 한 번 파견법 폐기일 수밖에 없었다.

 

8개월의 조사는 이처럼 무권리 상태로 남겨지는 노동자들이 가장 열악한 비정규직으로 뒷자리에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 누구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명확히 하기 위해, 파견법 폐기는 결코 물릴 수 없는 요구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후 이와 같은 고민이 더 많은 이들에게 이어졌으면 한다. 물론 이 조사는 여러 측면에서 한계를 가진다. 온라인 설문조사를 중심으로 진행하였고,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매우 한정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노동조합 등을 통해 당사자를 만날 수 없고 맨 바닥을 뒤져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참고할 수 있는 다른 연구나 통계치는 거의 존재하지 않아 비교해 볼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전무했다. 그런 점에서 이 조사의 한계가 내용의 부족함보다는 이후 보다 많은 연구와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더욱 바라는 마음이다. 더 많은 이들이 합법파견 문제에 시선을 두고, 파견노동자들의 실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면 이 조사는 그 몫을 다한 것으로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사무직 파견노동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사무직 파견노동자의 일과 삶>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홈페이지 자료실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본 연구는 4.9통일평화재단의 2020년 공모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소중한 연구의 기회를 주신 재단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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