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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의미와 한계

 

권미정 •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사무처장, 철폐연대 집행위원

 

 

 

1.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요구 배경

 

문송면의 죽음과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집단산업재해로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투쟁은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낮고 노동운동의 투쟁 과제는 건강권 문제가 우선순위가 되지 못하는 조건에 놓여 있었다. 사회적으로도 경제 개발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의 재해로 인식되다 보니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제하지 못했다. 산재가 발생하면 조직된 노동자들은 대응이라도 해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산업재해인지도 모른 채 감내하기도 했다. 죽음이 반복되고 사고가 누적되고 질병이 많아지면서, 경제개발 뒤에 감춰진 죽음, 은폐되는 산재는 사회적 문제가 되어 갔다. ‘사회적 타살’인 산재 다발 기업은 살인기업으로 지목되었고 노동조합의 투쟁도 진행되었다. 법과 제도를 개정하자는 움직임도 넓어졌다. ‘노동안전보건’이라는 기본적 권리를 구성하고 제기하기 시작했다. 1988년 문송면의 죽음이 만든 노동자건강권 쟁취 투쟁은 그렇게 확대되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는 ‘비용과 목숨’을 저울질했다. 중대재해의 책임은 당사자와 동료, 하청에게 돌아가고 죽음의 대가로 원청과 경영책임자는 보상을 내놓았다. 노동자들과 피해자·피해가족이 원했던 조치들은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는 노동자들만 짊어지는 게 아니었다. 시민들의 생명도 위협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값싼 소재로 만든 지하철, 충분하지 못한 작업 인력으로 발생한 소통 및 사고 대처의 어려움이라는 조건에서 던져진 불씨가 대구지하철 화재로 이어졌다. 죽지 않아도 될 목숨들이 사라졌다. 재난참사가 이어지면서 정부는, 기업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우리 사회는 노동자와 시민의 목숨이 안전하지 않은 지금이 문제라고 선언하고 재해를 예방하고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자고 했다.

한국에서도 세월호 참사와 비슷한 경우를 겪은 영국에서 만들어진 기업살인법이 이미 소개된 상태였다. 국가와 자본이 다를 뿐 상황은 비슷했다. 노동자들의 재해와 시민재해도 발생하는 장소와 형태가 다를 뿐 이유는 같았다. 처벌받지 않는 사업주, 책임지지 않는 원청, 기업 이익을 위한 기관과 공무원에 대한 조치 없이 재해를 예방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확대됐다.

진정한 사과, 제대로 된 진상조사, 예방책 마련은 또 다른 재해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지만, 경영책임자가 ‘권한만 가질 뿐 책임에서는 벗어나 있는’ 체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윤을 위해 비용을 줄이는 것이 최우선인 기업과 경영책임자들이 재해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법과 제도를 바꿔야 했다. 기업의 편의와 요구를 우선하는 행정권력에도 그만큼의 책임과 처벌을 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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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7.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국회 농성장 기자회견 모습. [출처: 김용균재단]

 

2.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내용

 

1) 법이 보호하는 사람들

노동자들의 일터 안전과 건강을 위해 만들어진 산업안전보건법이 있지만 적용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 노동방식과 고용형태가 다양화되었지만 근로기준법이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지 못해 ‘노동자’ 일부에게만 적용되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고 특수고용 노동자를 일부 포함했지만, 원청에게 직접적 책임을 묻기는 어려웠고 모든 일하는 사람을 포함하지는 못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여 일하는 사람, 용역-도급-하청 등 다단계 구조의 수급인까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사업장 범위를 넘어 시민들도 법의 적용 대상으로 규정했다.

 

2) 재해의 정의

이 법의 중대재해는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를 포괄하고 있다. 중대산업재해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의 정의가 다르다. 정의가 다름은 처벌기준과 처벌대상, 양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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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시민재해를 규정한 별도의 법은 그간 없었다. 이 법의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등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합을 원인으로 사망자 1명 이상, 2개월 이상 치료를 요하는 부상자 10명 이상, 동일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를 요하는 질병자 10명 이상 발생한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3) 원청과 사업주 등의 책임

도급인, 용역, 위탁 등 명칭이나 종류에 상관없이 제3자에게 업무나 일을 맡기는 경우 원청이 안전보건의무를 지게 되었다.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하여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는 처벌을 받게 된다. 꼬리 자르기 식으로 행위자만 처벌하고 책임을 지우던 것에서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책임자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4) 법령 이행 여부 점검

의무 이행자인 사업주, 경영책임자, 법인이나 기관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를 민간위탁으로 점검이 가능하도록 했다. 시행령에서 민간위탁 허용을 삭제하라고 요구했으나, 민간위탁을 허용하되 점검결과를 보고받고 이행조치를 하도록 명시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5) 책임의 영역

사고가 아닌 직업성 질병의 경우 급성중독으로 한정된 24개 목록에만 해당되도록 했고, 지켜야 할 의무의 근거가 되는 안전보건관계 법령이라고 표현만 했을 뿐 법령 목록은 제시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을 포함하도록 요구했음에도 근로기준법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노동부의 발언이 있었다. 근로기준법이 포함되지 않으면서 일터 괴롭힘 등이 배제되는 상황이 되었다.

 

6) 책임의 방식

산안법에서는 규정하지 못한 책임자에 대한 하한형 처벌이 부족하나마 도입되었다. 안전보건의무를 사업주가 위반하여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게 되었다.

범죄의 형이 확정되면 형 확정 사실을 행정기관의 장에게 통보하고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사업장 명칭, 발생 일시와 장소, 재해 내용과 원인 등을 공표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중대산업재해는 공표하는데 중대시민재해는 공표제도가 없고, 공표하는 것을 임의적으로 택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중대산업재해 예방 효과를 위해서라도 공표를 의무로 확정해야 한다.

 

3. 중대재해처벌법이 담지 못한 것

 

결정적으로 5인 미만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2020년 산재사망사고의 35%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는데도 법 적용에서 제외됨으로 인해 기업 규모에 따라 안전과 생명에 차등을 두게 되었다.

같은 사업·사업장에서 같은 재해가 계속 발생한다면 경영책임자와 법인이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라고 유추할 수 있다. 그런 경우 ‘인과관계 추정’을 적용하여 회사 측의 의무 미이행으로 규정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회사 측이 자신들이 의무를 다했음을 밝히고 판단을 받아야 하는데,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과정에서 이 조항이 제출되었으나 삭제되었다.

질병의 범위도, 시민재해에 해당하는 공중이용시설과 공중교통수단의 범위도 협소하게 정리되어 중대재해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일터 괴롭힘에 의한 자살,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로 인한 시민재해, 시내버스나 마을버스, 어린이집 차량 등에 의한 재해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법인과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공무원에 대한 처벌이 명시되지 않음으로, 기업의 이익을 우선하여 오남용한 인허가권으로 발생한 중대시민재해에 대해 책임자들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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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 2주기 사고 현장에 건립된 추모조형물. [출처: 김용균재단]

 

4. 한계는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담은 의미

 

부족하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가 되었다. 노동재해와 시민재해는 막을 수 있는 경우가 다수였다는 것, 그런 의무를 게을리 한 책임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법인이나 기관, 사업주가 운영하는 사업장 등에서 발생한 중대산업재해, 공중이용시설, 공중교통수단을 운영하거나 위험한 원료와 제조물을 취급하면서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다하지 않아 인명사고가 발생하는 중대시민재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및 법인, 원청을 제대로 처벌함으로써 노동자를 포함한 종사자와 일반시민의 생명안전권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기업이 조직문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해 일어나는 중대재해를 사전에 방지하고, 기관은 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노동자-시민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공공의 역할을 하라는 사회적 요구다.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과 기관의 사회적 역할을 강제하기에는 부족한 지점들이 있어서 앞으로 개정이 필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아니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자신의 이름도 정확히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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