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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

 

“서로의 고민도, 근황도 자주 나눴으면 좋겠어요.”

 

김은환 회원 인터뷰

 

8 살아가는 이야기_01.jpg

 

2021.9.24. 공무원노조 과천시지부 사무실에서 김은환 동지를 만났습니다. [출처: 철폐연대]

 

 

아마 7년 전쯤이었을 거예요. 코오롱 해고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철회 투쟁 연대모임인 ‘코오롱공대위’(‘정리해고 철회, 원직복직 쟁취를 위한 코오롱 투쟁 공동대책위원회’) 회의를 하려고 공무원노조 과천시지부 사무실에 모였던 기억이 문득 납니다. 그때 기억을 더듬어 철폐연대 회원 인터뷰를 하러 노조 사무실을 찾아갔더니 웬걸 그때 그곳이 아니더군요. 알고 보니 2002년 설립 이래 노조 사무실(과천시지부)은 2006년,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강제 폐쇄되는 수모를 겪었고, 졸지에 셋방살이 신세가 되어 사무실을 옮겨 다닌 것만 해도 지난 20년간 5~6회나 되었다는 겁니다. 당시 노조 사무실 폐쇄 조치는 공무원 노동자의 노조 활동을 불법화하고 집요하게 탄압했던 역대 정부의 모습 중 극히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엄혹한 상황에서도 권력의 하수인이길 거부하고 ‘공무원도 노동자’임을 당당히 선언했던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정권의 눈 밖에 나 결국 기나긴 해고 생활로 이어졌지만, 우여곡절 끝에 제정된 ‘해직공무원 복직 등에 관한 특별법’ 시행으로 어렵사리 복직의 길이 열렸습니다. 지난 8월 2일 과천시 공무원으로 복직한 김은환 동지와 회원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Q. 얼마 전 정말 반가운 소식을 들었어요. 무려 17년 만에 과천시 공무원으로 복직하셨다지요? 아직도 얼떨떨하실 것 같아요.

 

A. 맞아요. 어쨌든 복직은 기쁜 일인데, 제대로 된 원직복직은 아니다 보니 사실 많이 속상하죠. 공무원노조가 2002년 법외노조로 출범했을 때부터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했던 게 공직사회 개혁, 부정부패 척결, 노동기본권 보장이었어요. 정부는 ‘권력의 하수인’으로 계속 부리고 싶었으니 공무원을 ‘권리의 주체’로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죠. 이명박, 박근혜 때만 그런 게 아니라, 민주당 정권도 (공무원노조를) 무진장 탄압했어요. 저희가 2004년 총파업에 나섰을 때가 노무현 정권 시기였어요. 당시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대량 해고와 징계가 발생했던 거잖아요. 그걸 되돌리는 싸움을 여태껏 해왔는데, 정부는 과거에 대한 사과와 반성 없이 특별법 형태로 복직만 처리해버렸죠. 당시 노조 활동은 불법이었고 그에 따른 징계 절차는 정당했다는 정부 입장이 사실상 관철된 것이라서 온전한 의미의 원직복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Q. 기나긴 투쟁 끝에 여기까지 오셨는데, 아쉬움이 정말 클 것 같습니다. 이토록 힘겨운 시간을 버텨 낼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일까요?

 

A. 저뿐만 아니라 이번에 복직한 조합원 동지들 모두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거예요. 지나고 보니 17년을 훌쩍 넘겨버렸지만, 이렇게까지 싸움이 길어지리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이루 말할 수 없는 사연들이 많았어요. 가장 힘든 건 공동체로부터 멀어진다는 것, 그러면서 서서히 잊혀 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였어요. 워낙 투쟁이 길어지다 보니까 옛 직장 동료들은 물론이고, 오랜 친구들까지 관계가 단절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게 마련이잖아요. 그러면서 자기 존재가 점점 사그라드는 게 아닐까 두려움도 생기고 고립감도 드는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도 늘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제 곁에 계셔서 참 다행스럽고 고마운 마음을 항상 갖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주변에 계신 분들이 저보다 더 복직을 희망하셨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해요. 특히 현장에 있는 우리 조합원들은 오히려 “이렇게 버텨 주셔서 고맙다”고 제게 말해요. 본인들 잘못으로 해고된 것이 아닌데도 어떤 부채감 같은 게 동료 조합원들을 짓눌러 온 게 아닐까 싶어요. 한편으로는 해고 생활의 그늘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드리울까봐 걱정도 많았어요. 다행히 아이들 주변에서 “네 아버지는 의로운 일을 하는 좋은 분이야”라고 빈 말이라도 해주셔서 참 감사했어요(웃음). 그렇게 이웃 분들이나 연대 동지들이 특별히 마음 써 주신 게 해고 생활에 큰 버팀목이 아니었나 싶어요.

 

Q. 업무 환경에 적응하랴, 부여된 역할을 소화하랴 무척 바쁘실 것 같아요. 보통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A. 제가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게 1994년이었는데 동사무소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했었어요. 이번에 복직하면서 사회복지과로 발령이 났어요. 아직은 뭐, 적응기라고 봐야죠. 매일 아침 8시30분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하는데, 하는 일은 단순해요. 사실 저한테 주어진 업무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정확히 말하면 일이 많은 건지 어떤 건지도 판단을 못 하는 상태죠(웃음). 아직 업무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동료 들이 많이 배려를 해주죠. 업무 방식은 예전에도 컴퓨터로 처리하는 건 똑같은데, 여러 개의 전산입력시스템에 각각 전산보고를 해야 돼서 처리 과정이 약간 복잡해졌더라고요. 그래도 하다 보면 금세 익숙해져야 하는데 아직은 속도가 안 붙어서 허우적대고 있네요. 그런데 희한한 건 업무량 자체도 원래보다 늘어난 거예요. 가만 생각해 보니까 지금 업무량이 평소 제가 했어야 하는 일인데, 그동안 동료들이 저도 모르게 밀린 일을 해주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Q. 복직 전에는 전국공무원노조 희생자 원상회복 투쟁위원회(회복투) 소속으로 활동해 오셨잖아요. 노조 활동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A. 글쎄요. 한곳에 얽매여 지내고 있는 지금보다는 해고자 때가 노조 활동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지금은 노조 과천시지부 대외협력부장 직책을 맡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코로나19 상황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진 느낌이 듭니다. 그동안 현장 간부나 조합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활동 방식은 집회였잖아요. 그런데 최근에는 집회 자체를 거의 못하는 실정이라서 고민이 들어요.

10월 20일 전 조합원이 참여하는 민주노총 총파업을 예정하고 있지만, 이날 공무원노조는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 동안 민원행정업무 일손을 놓는 것 정도로 계획을 잡았어요. 코로나19 시기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는 노동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겠다는 절박함이 어떻게든 행동 의지로 표출돼야 하는데, 그런 현장의 긴장감은 지금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하루 한날 총파업에 참여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정부와 자본에 타격을 입히는 투쟁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Q. 지난 17년간 셀 수 없이 많은 단식 투쟁, 노숙 농성, 기습점거시위 등을 진행해 오셨잖아요. 그래서인지 김은환 동지의 건강을 염려하는 동지들도 많은데요.

 

A. 우리 애가 그러더라고요. “아빠는 단식하고 오면 한 달 정도는 대공원도 한 바퀴 돌고 팔굽혀펴기도 하고 몸무게도 재고 하는데, 한 달 지나고 나면 그걸로 땡이잖아.” 저는 날짜까지 세어 보진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운동을 꾸준히 하지 못했던 건 맞아요. 어쨌든 단식 해제하고 나면 얼마간은 운동을 했거든요. 그때까지는 얼굴도 덜 시커멓고 배도 안 나오죠. (그런데) 끝까지 유지가 안 되더라고요. 제 생각엔 밤에 잠들기 전 야식을 많이 찾기도 했고 운동에 취미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질라라비> 독자들에게 다른 건 드릴 게 없고 건강관리 비결이라도 알려 드려야 하는데, 현실이 이래서 좀 민망하네요(웃음).

 

Q. 철폐연대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A. 아마 코오롱 해고 동지들 복직 투쟁 때였을 거예요. 당시 최일배 위원장이 끝장단식에 돌입했을 때, 코오롱공대위에서 농성장 지킴이를 단체별로 하고 있었거든요. 저야 과천 주민이기도 하니까 매일 농성장에 들러서 간밤에는 누가 다녀갔는지 속속들이 꿰고 있었죠. 그런데 다른 단체들은 지킴이 일정에 늦기도 하고 간혹 빠지는 사람들도 생기는데, 철폐연대는 꼭 제시간에 오는 거예요. 또 농성장에 있을 때도 뭔가 수선스럽지 않다고 해야 하나. 어찌 보면 그게 뚝심 있어 보이고 엄숙해 보이기까지 했죠! 그래서 내심 감탄도 하면서 지켜만 보다가, 누구였는지 그때 회원 가입을 제게 권유해서 선뜻 가입했던 것 같아요.

 

Q. 그런 일화가 있었군요.ㅎㅎ 지금은 철폐연대 회계감사로 계신데요. 마지막으로 회원들과 꼭 공유하고 싶은 문제의식이나 권고사항 등이 있다면 지면을 빌어 말씀 부탁드릴께요.

 

A. 철폐연대 회계감사직을 맡은 지는 이제 2년째인데요. 제가 본 철폐연대는 그래도 지난 20년 동안 비정규직 운동을 꾸준히 해 오면서 기반을 잘 다져 놓은 것 같아요. 함께하는 회원들의 면면이나 활동 영역도 무척 다양한 것 같고요. 철폐연대를 포함해서 많은 사회운동단체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좋은 기운과 감동을 받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도 상임활동가들이 감내해야만 하는 문제로 재정 문제가 전제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장 코로나19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회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슬기롭게 헤쳐 갈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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