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705] 죽음을 부르는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가 답이다! / 이수정

by 철폐연대 posted May 0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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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부르는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가 답이다!

이수정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1 2017.4.3. 무권리의 특성화고 현장실습 규탄 기자회견 [출처 대책회의].jpg2017.4.3. 무권리의 특성화고 현장실습 규탄 기자회견 [출처: 대책회의]

 

‘헤드셋 내려 놓고 편히 쉬소서’

반복되는 죽음 앞에 이렇게 추모시를 읊다가 아무 변화 없는 현실로 돌아온 게 벌써 몇 번인가 생각했다.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고인의 사망 사건을 접한 건 설 연휴 며칠 전. 희망연대노조와 전북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등을 통해 사건 파악에 힘썼지만 교육청, 학교, 경찰서 어느 곳 하나 책임 있는 답변을 해 준 곳이 없었다. 다시 어쩔 수 없는 현실인가 낙담할 즈음 LG유플러스실습생사망사건공동대책위(이하 전주공대위)와 서울 중심의 LG유플러스고객센터현장실습생사망사건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가 꾸려졌다.

대책회의에 모인 활동가들은 여러 문제를 마주했을 터다.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고객센터 노동자의 감정노동과 실적압박 시달림, 위험의 외주화와 사용자책임 회피, 나이 어린 여성/현장실습생의 일터 취약성, 2주마다 노동자를 ‘바꿔 쓰며’ 일회용품 취급하는 비정규노동 현실, 실습/교육/인턴 등의 이름으로 열정페이를 강요하며 혹사시키는 것도 모자라 죽음으로 내모는 기업, 그 기업의 이윤 추구에 공범이 된 공교육 현장 등. 어느 것 하나 쉽사리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만 이번 대책회의에서는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만큼은 중단시켜 보자는 마음을 모으고 있다.

 

‘조기 취업’ 권하는 학교

“현장실습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을 경험하고 적용함으로써 다양한 직업적 체험과 현장 적응력 제고 등을 위해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운영하여야 한다. 또한 학생은 현장실습에 참여함으로써 현장 실무를 경험하고 직장 적응력 향상 및 노동과 직업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다.” 교육부가 배포한 특성화고 현장실습 매뉴얼은 이렇게 시작한다. 매뉴얼에서 밝히고 있는 현장실습 본래 취지대로라면 애완동물 관련 학과를 다닌 고 홍수연님은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욕받이 부서’에서 현장실습이 불가능하다.

전문 교과와 다른 분야 산업체 현장실습은, 취업률로 포장한 현장실습생의 비율로 시도교육청과 특성화고․마이스터고를 줄 세우는 교육부의 정책에서 비롯한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를 포함한 단체와 개인 들은 취업률과 연계하는 정책의 문제점을 얘기해 왔다. 학교지원금을 취업률에 따라 차등지급하고, 학과나 학교 통폐합 대상을 취업률에 따라 선정하고, 교장 승진을 위한 점수 등 각종 평가항목에 학교 취업률을 반영하는 행태는 마구잡이 조기취업의 구실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을 의식했는지 몇 년 사이 교육부와 교육청은 이구동성으로 그런 일은 이제 없으며, 학교에도 취업률로 ‘쪼는’ 일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전공과 무관한 현장실습 중 사고와 사망 사건이 매년 반복되는 현실을 보면 여전히 취업률은 불문율임을 부인할 수 없다. 더 빨리 산업체에 내보내지 않으면 취업률 경쟁에서 밀린다는 생각에 학교는 실습이 불가능한 산업체로 더 일찍, 더 많이 학생을 보내기 바쁘다. 어떤 노동조건인지, 졸업 후 취업이 유지되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취업률만 챙기면 그만이다. 교육부 직업교육정책 담당자도 버젓이 얘기한다, “일반고는 뭘로 자랑하죠? 대학진학률이에요. 그럼 특성화고는 뭘로 자랑하죠? 취업률 아니겠어요?” 공교육의 책무 따위는 잊은 듯하다. 특성화고․마이스터고의 지상과제는 취업이고, 현장실습은 교육이기보다는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도구쯤으로 여기는 현실을 고스란히 마주하게 한다. 저렇게 대놓고 얘기해버리니 늘 그렇듯 부끄러움은 우리 몫이다.

 

우리는 기간제 노동자를 채용했을 뿐

교육부가 현장실습을 조기취업으로 인식하듯이 산업체 입장에서 현장실습생은 막 부리다 학교로 돌려보내도 되는 존재쯤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 현장실습제도임을 주지시키고 표준협약서를 쓰자 하면 기업은 기간제 노동자로 채용했을 뿐 실습을 시키려는 것이 아니라는 말로 작성을 꺼린다. 마지못해 표준협약서를 작성한 경우 따로 근로계약서를 쓰는 꼼수를 부린다. 고 홍수연님도 표준협약서에 정한 노동조건에 한참 미달한 근로계약서를 이중으로 작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규모 작은 회사가 인력난에 시달리는 현실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유로 계속고용책임 없이 몇 달씩 인력을 공급받는 제도쯤으로 인식하는 것은 문제다. 기업의 모자란 인력을 상반기에는 전문대학교가 채워 주고, 하반기엔 특성화고․마이스터고에서 채워 준다. 현장실습생을 받는 대가로 가끔 지원금도 챙긴다. 현장실습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길 리 없다. 현장실습제도가 모호하게 유지되는 동안 기업은 학교를 통해 매년 ‘싼 인력’을 공급받아 이윤을 추구해왔다. 학교가 거대한 불법파견업체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이런 일터를 ‘실습’한 학생들은 졸업 후 그 일터로 취업하는 것을 꺼리게 되고 중소기업 인력난의 악순환은 계속된다. 산업체 역시 당장의 이익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현장실습 환경을 갖추는데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

 

너무 오래 방치된 제도, 법체계 정비부터

교육과 실습의 본래 취지가 무색한 현장실습은 길을 잃은 지 오래다. 노동도 교육도 아닌 회색지대는 1963년부터 시작되었다. 1963년 당시 교육법(현 교육기본법)은 일반고와 직업고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 해 산업교육진흥법이 제정되어 직업교육을 담당하는 학교를 실업계고(직업계교→특성화고․마이스터고로 변화)라고 정의했을 뿐이다. 실업계고의 구체적인 교과 과정이나 현장실습제도에 대한 규정은 산업교육진흥법에 없었다. 학교마다 산업교육을 하려면 각종 실습 기자재가 필요한데 이를 갖추지 못하니까 산업체로 실습을 보내기 시작했다. 현재의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후에도 오랫동안 현장실습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었다. 1997년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서 학교를 ‘직업교육훈련기관’으로 정의하면서 특성화고․마이스터고의 현장실습은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 따라 시행되고 있다. 학교 기본 교육과정은 초중등교육법에서 정하기 마련인데 유독 특성화고․마이스터고의 현장실습만 따로 떼어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서 규율하고 있다. 법체계부터 현장실습은 교육과정이 아니라고 방치한 셈이다.

현장실습생이 희생될 때마다 되풀이되는 변명이 있다. ‘산업체 노동조건은 교육부가 어떻게 강제할 권한이 없어요.’, ‘문제가 생기면 학생들을 학교로 돌려보내는 거 말고 고용노동부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책임질 수 없는 제도를 이토록 오랫동안 방치해 놓고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학생인 동시에 현장실습생이라면 이중의 보호와 권리 보장이 이뤄져야 마땅할 텐데 어느 곳에서도 책임이 없다는 발뺌뿐이다.

차고 넘치는 문제가 있음에도 오랫동안 방치해 온 제도를 중단하는 방법 중 하나는 현행 법체계를 정비하고 교육과정을 회복하는 일이다. 교육부가 담당하는 직업교육과 고용노동부가 담당하는 직업훈련을 분리하여 규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졸업 이후로 고통을 유예하지 않으려면

학교는 교무실 벽 한 쪽에 상황판을 설치해 취업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나눠 게시하고 수시로 점검한다고 한다. 매일 매일 점검해야 할 것은 교육 본래의 목적대로 직업교육이 이뤄지고 있는지,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다양한 방식의 실습을 위해 갖춰야 할 환경은 무엇인지,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나약함 운운하며 채근당할까 꾹꾹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없이 학교와 사회에 기대며 힘을 낼 조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등이어야 한다.

‘3학년 2학기가 지나도록 교실에 남아 있는 너희는 예쁘지 않다.’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는 아니다.’로 바꿔 모욕을 주는 학교에서는 어떤 교육도 불가능하다. 취업률의 덫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안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존엄은 내팽개쳐졌다. 희생만 강요당하고 있다.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는 학교 졸업 이후로 고통을 유예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직업교육과 인간의 존엄이 훼손당하지 않는 일터를 상상하며 대안을 찾아나서는 시작이어야 한다. 권리를 지연당한 존재들에게 더 이상 ‘나중은 없다.’

 

 

산업체파견현장실습폐지_이수정-질라라비201705.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