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910] 산업현장 일학습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의 제정, 도제교육은 현장실습과 다른가 / 최은실

by 철폐연대 posted Oct 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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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 포커스

 

산업현장 일학습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의 제정, 도제교육은 현장실습과 다른가

최은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장)

 

 

1. 현장실습의 새로운 이름, 도제교육에 대한 놀라움

 

8월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산업현장의 일학습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일학습병행지원법)’의 문제점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직업계고 고등학생들의 도제교육을 중심으로, 해당 법률의 문제점을 점검해보는 자리였다. 도제교육이라는 말을 2019년 봄에 처음 들었는데, 몇 가지 점에서 매우 놀랐다.

 

 

1 2019.8.20. 토론회 현장 [출처 현장실습대응회의(허은)].jpg

2019.8.20. 토론회 현장 [출처: 현장실습대응회의(허은)]

 

 

첫째, 3학년 2학기에 현장실습을 나갔던 직업계고 학생들의 사망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사회적으로 폐지 요구가 계속되자 현장실습이 축소되는 동안 직업계고의 한편에서는 ‘도제’라는 이름으로 이미 2학년 1학기에 학생들이 산업현장에 나가고 있었다.

둘째, 2018년을 기준으로 전국적으로 도제교육이 얼마나 시행되고 있고, 어디에서 해당 사업을 주관하고 있으며, 해당 사업의 실태가 어떠한지를 확인할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셋째, 해당 제도가 2014년에 이미 시작되었는데, 근거 법률은 2016년도에 발의되었으나 2019년 여름까지 통과가 되지 못해, 직업훈련기본법에 근거한 도제학습 매뉴얼을 바탕으로 시행되고 있었다.

넷째, 2016년 정부에서 해당 제도의 근거가 될 법률안을 상정했다가 거친 비판에 묻혀버렸는데, 2018년 더불어민주당의 한정애 의원이 똑같은 내용의 법률안을 발의했다는 점에 대하여는 기가 찼다.

다섯째, 2019년 국회가 공전되고 있던 중 7월 임시국회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8월 2일 도제교육의 근거법이라고 할 수 있는 일학습병행지원법이 통과되어 버렸다.

 

아마도 이 글을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동안 들어온 현장실습 외에 도제교육이 직업계고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것이다. 도제라고 함은 통상 스위스나 독일의 장인교육을 말한다. 장기간의 기술 전수가 필수불가결한 산업에 대하여 학습과 현장교육를 통해, 고숙련 노동을 익힐 수 있도록 하여 직업능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현행의 도제교육, 일학습병행지원법에 따른 도제교육 역시 이러한 독일식 장인교육을 언급한다. 그러나 이상은 높으나 그 실현은 불가능하기만 하다. 아무리 법률을 구석구석 뜯어보아도 직업능력을 높여 노동자를 숙련기능인으로 만들기보다는 저임금 일자리에 인력 대주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2. 산업수요 반영과 장인이 필요한 산업의 간극

 

도제 제도를 운영하려면 마땅히 도제식 양성이 불가피한 산업의 발굴과 해당 산업의 특성이나 기술의 양상에 따라 적당한 교육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해당 법률은 기술의 보전이 필요한 산업 또는 장기간 교육이 불가피한 산업을 확보하고 육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일학습병행지원법 제2조(기본이념) 제1항에서는 “일학습병행은 산업수요를 적극 반영하고, 학습근로자의 적성·능력에 맞게 체계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단순히 교육방식을 ‘도제식’으로 운영하도록 하고 있는데, 해당 법률에서의 도제란 산업현장에서 교육(또는 노동)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도제교육을 신청하는 기업(산업수요)에 따라 도제교육에 지원한 직업계고 학생들은 산업현장에서 교육을, 즉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제교육에 따라 직업계고 학생을 받으려는 기업은 어떠한 기업일까? 안전한 산업현장을 갖추고 운영하면서 자신의 산업을 유지·발전시키고자 하는 기업인가? 아니면 국가의 지원금을 받으며 미숙련 노동자라도 받아서 일을 시키려고 하는 기업일까? 물론 전자의 목적을 가진 기업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을 받아서 일을 시키는 대부분의 기업은 후자에 가깝다. 특히 도제교육이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산업현장이 20인 미만이거나 20인 정도의 소규모 영세업체라는 점은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2018년 12월 전라남도교육청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운영 전면 실태조사 TF에서 발간한 ‘전라남도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운영을 전면 조사한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20인 이하 기업이 34.4%에 달했으며(미용은 100%), 교육 중 도산 또는 폐업하는 기업도 있었다. 교육을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규모 회사, 교육 중 도산/폐업하는 환경에서 도제라는 이름으로 직업교육 또는 기술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3. 노동자로 산업현장에 나가다

 

현장실습의 경우, 현장실습생의 대부분이 산업현장에서 성인 노동자와 마찬가지의 노동을 수행하면서도, 현장실습이라는 명목 때문에 노동자성 인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때문에 현장실습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현장실습생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실습생이라는 명목 때문에 사고 등의 산재발생 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없었던 점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런데 일학습병행지원법은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직업계고 학생들의 노동자성 문제를 해결하여, 정의규정에서 애초에 학습근로자(도제교육을 받는 학생)의 신분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명시하였다. 그리고 이 점을 엄청난 성과이며, 안전장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현장에서 노동자로서 정식으로 노동을 시키겠다는 것이기도 하고, 더 이상 눈 가리고 아웅하지 않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단지 솔직해진 것뿐이다.

위의 전남 지역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하다가 다칠 수도 있겠다고 느낀 비율이 65.2%였고, 실제 일하다가 본인 또는 친구가 다친 경우도 33.7%였다. 이에 대하여 국회 토론회 당시 고용노동부 일학습병행정책과장에게 어떠한 안전대책이 있는지를 묻자, 이제 학습근로자인 도제교육 참여자는 근로자이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아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산재사고율 세계 1위에 빛나는 한국에서 근로자이기만 하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안전하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현장실습생은 그럼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가? 더 이상 토론할 가치도 없는 대답이었다.

 

 

4. 도제교육, 전문기술을 배울 수 있을까?

 

도제교육은 시행 5년차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실태조사 결과를 확인하기 어렵다. 때문에 전남 지역 실태조사 결과는 커다란 반향을 가져왔다. 해당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업에서 학습근로자들인 직업계고 학생들이 주로 하는 일은 ‘기타 > 청소 > 허드렛일’ 순이었다. 기타란 박스 옮기기, 창고 정리, 지게차 운전 등이었으며, 전체 응답자의 43.9%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다음은 청소 20.4%, 허드렛일이 12.1%였다. 그 외 조립 5%, 포장 4.2%였다. 즉, 실제 도제교육을 통해 기술을 향상하거나 업무능력을 배양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재 도제교육의 실태가 드러난 경우가 전라남도뿐이기 때문에 이것이 전체 도제교육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실태를 조사하고 점검한 전라남도가 이 정도인데, 조사나 점검도 하지 않은 다른 지역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좋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도 있다.

또한 학교 수업과 기업의 업무 연관성도 그나마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는 응답은 41%, 전혀 관련이 없다는 답변도 38%에 달했다. 근로조건의 수준도 법정근로시간 준수가 70% 정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이 89%로,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도제교육 참여 학생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제교육은 기업의 숙련업무에 대하여 필요한 학교 내 교육은 학교에서, 실제 기술의 숙련을 위한 교육은 기업에서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와 기업에서 실시하는 교육의 연관성이 조금밖에 없거나 거의 없다고 할 때, 도제교육의 존치근거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으며, 결국 학생들은 도제라는 이름으로 산업현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될 뿐이라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다.

 

 

5. 왜 우리 사회에서 도제교육이 불가능할까

 

현장실습을 비롯해 도제교육이 동일하게 직업계고 학생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첫째, 직업계고 학생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생각하는 기업의 인식과 제도의 탓이 크다. 최저임금만 주어도 되고, 제대로 근로감독도 안 되는데 지원금이 나오고 각종 혜택이 주어진다면, 사업주는 기꺼이 값싼 노동력으로 학생들을 데려다 썼다가 기간이 끝나면 해고하면 끝이다. 정부나 담당기관은 취업률이라는 수치만 나오면 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이 되고 있는지, 끝나고 취업이 되는지, 학생들의 노동환경은 괜찮은지를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 결국 정부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제도일 뿐이다.

진짜로 직업계고 학생들의 도제교육을 목적으로 하며, 제대로 된 산업환경에서 제대로 된 기술을 익히도록 하고 싶다면, 최저임금 이상의 적정한 임금을 주도록 하고 정규직으로 채용을 시킨 후에 안정적인 조건에서 기술을 익힐 수 있는 환경을 전제해야 한다. 기간제 등의 불안정한 노동환경에서는 사업주는 기술 유출을 우려하여 기술을 제대로 전수하지 않을 것이며, 노동자 입장에서는 고용을 유지할 수도 없고 안전하지도 않은 환경에서 기술을 배우며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즉, 현행의 제도는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둘째, 교육체계가 전혀 잡혀있지 않다. 전남 지역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습과정을 직접 개발한 산업현장의 비율은 24%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학교에서 마련한 학습안을 가지고 운영했다. 현장에서 필요에 따라 개발한 교안도 아니고, 현장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학교의 교사가 마련해준 교안을 가지고 교육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또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기업현장교사(기업 내 숙련노동자)의 업무가 교육을 위해 독립되어 있는 비율은 0%였다. 즉, 교육을 수행하다가도 언제든지 자신의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업무가 많거나 밀려있을 때, 교육을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도제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기업의 대부분은 도제교육을 진행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기업의 규모도 문제다. 전남 지역 실태조사 결과 20인 이하 기업의 비율이 34.4%였는데, 실제 교육 도중 도산하거나 폐업한 업체도 존재했다. 물론 기업의 규모가 기술 수준의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규모가 작은 경우, 한 명의 노동자가 여러 가지 업무를 겸하여 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기술이 높은 노동자의 경우에는 그 기술을 가지고 수행하는 본연의 업무 중요도가 높기 때문에 다른 노동자를 가르칠 여유가 있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학습병행지원법에는 도제교육의 원활한 지원을 위한 기업 규모에 대한 기준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도제교육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기업은 20~30인 규모의 영세한 업체가 주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고, 직업계고 학생들은 도제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영세기업에 내몰리고 있다.

 

 

6. 학습노동자의 권리는 여전히 실종상태

 

일학습병행지원법에 따르면, 해당 제도의 핵심주체는 학습노동자이다. 학습노동자가 없다면 제도 운영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도제교육에 참여해보면, 실제 기대했던 바와 다르거나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학습노동자는 언제든지 도제교육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 일반 회사에 다니고 있는 노동자가 일학습병행을 한다면, 학습에서 빠져나와 일로 복귀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교육을 위해 근로시간 도중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임금상당액을 반환하도록 하는 등의 불이익이 발생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특히 학습을 하고 있는 직업계고 고등학생 또는 전문대 학생의 경우 산업체로 나가 교육을 받던 도중 복귀하였을 때 기존의 학과나 교육과정으로 편입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 이미 도제교육을 지원하지 않은 학생들과 진도상의 차이가 날 때 어떻게 할 것인지, A회사의 a기술은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었지만, B회사의 b기술을 배우고 싶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등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하여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의 일학습병행지원법은 교육의 수료·완료에 집중하고 있으며, 중간 이탈에 대한 별도의 규정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전남 지역 실태조사에 따르더라도 도제교육 도중 비도제반으로 옮길 수 있다는 안내를 받은 비율이 65%에 그치고 있으며, 실제로 도제교육의 중단을 학교에 요청했으나 학교에서 별도의 조치를 취해주지 않거나 참으라고 한 경우도 다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기존 현장실습과 판박이다. 즉, 도제교육 역시 현장실습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하겠다.

 

 

7. 도제교육의 현실 = 조기 현장실습

 

일학습병행지원법의 제정으로 현재 도제교육을 급속히 확장시키고자 하는 교육부의 지시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도제교육을 위한 일학습병행지원법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전남 지역 실태조사를 통해 드러난 현실을 살펴보았을 때, 도제교육의 목표는 이상적이나 그 실현이 불가능함은 자명하고, 구체적인 운영실태는 현장실습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결국 도제교육 역시 현장실습과 마찬가지로 직업계고 학생들을 값싼 인력으로 영세한 작업현장으로 조기에 내보내기 위한 것일 뿐이다. 조기 현장실습에 불과한 도제교육은 하루빨리 없어져야 하는 잘못된 제도인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도제교육을 통한 사망사고라는 잘못된 결과가 나타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일학습병행지원법을 폐기하고 직업계고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책 마련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