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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청소년 노동의 현실

 

최은실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장, 공인노무사

 

 

 

 

1. 청소년 노동=비정규직

 

한국사회에서 노동의 형태는 크게 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과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이 있다. 법률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어 정의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규직은 일정한 노동시간을 보장받으며, 정년까지 또는 원하는 한 계속 일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일을 시키고 임금을 지급하는 사용자와 직접 계약하고 일을 하는 것이다. 반대로 해석하면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짧게 또는 너무 긴 시간 일하며, 기간이 정해져 있는 고용을 하고, 자신에게 일을 시키거나 임금을 주는 사용자와 떨어져서 일하는 경우이다. 즉, 비정규직이란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며 제대로 된 책임자가 없이 일하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 노동자에게 큰 불안감을 가져오지만, 불안감 외에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임금을 적게 받거나 적당한 업무를 부여받지 못하거나 각종 차별을 받는다. 때문에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이 되기를 원하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여기,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이 당연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방법 외에 다른 경우가 거의 없는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바로 청소년 노동자이다.

이들은 단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청소년은 공부가 본업이고 노동은 알바이기 때문에, 부모가 생계를 책임지고 있고 청소년은 소액만 벌어도 되기 때문에… 등의 이유로 주변노동으로 치부된다. 언제나 청소년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며, 여전히 누군가에게 부양되고 책임도 제대로 질 수 없는 반쪽짜리 인간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많은 청소년들은 공부가 하기 싫어서, 용돈만으로 사기 어려운 것을 사기 위해서, 사회경험을 쌓기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 청소년기를 벗어난 성인이 당연히 ‘직업’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청소년 노동자도 ‘일’을 찾아서 한다. 성인이 되어 핸드폰 비용, 식비, 의류비, 교통비를 벌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청소년 노동자도 동일한 이유로 일을 한다. 그러나 수많은 청소년 노동자들은 일을 시작하고 찾는 과정에서 청소년이라는 상황에 놓이고, ‘나이 어린’ 노동자는 당연히 비정규직 노동자가 된다.

 

 

2. 청소년 노동=불법과 열악함

 

1) 일하는 청소년의 상황

 

일하는 청소년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리고, 청소년 노동의 실태를 알리며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2000년대부터 이미 시작되었지만 청소년의 노동실태가 보다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10년경부터이다. 그 촉발점은 바로 어린 노동자의 연이은 사망 때문이었다. 2010년 12월 12일 오토바이를 타고 피자를 배달하던 한 청년이 택시와 충돌해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대한 관심은 잠시 일었다가 금방 사그라졌다. 그러나 사람들의 무관심을 질책하듯 불과 두 달 만인 2011년 2월 8일 동일한 사건이 재차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30분 배달제가 주목되었으며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과속운행을 해야만 했던 두 청년의 노동현실이 드러났다.1) 그리고 배달노동을 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을 넘어 청소년들도 일하고 있다는 현실이 사회에 인식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청소년 노동의 현실에 대한 조사가 존재한다. 2009년 최저임금 4,000원에도 미치지 않는 임금을 받고 있다는 응답이 34%에 달했으며, 통상 짧은 시간-몇 일간만 일한다는 편견과 달리 주 4일 이상 일하는 비율 57%, 하루 6시간 이상 일하는 비율이 44%에 달했다. 또한 휴게시간이 없다는 응답이 62%, 일하고 나서 등/허리, 다리, 어깨, 손/손목 등이 아픈 근골격계 질환 경험자가 59%, 찔리고 베이고, 데이는 산재를 경험한 비율이 24%에 달했다. 이것은 2009년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조사하여 2010년 발표한 청소년 노동의 현실이다.

이후 청소년 노동의 열악함에 사회는 경악했고, 청소년의 노동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기 위해 청소년도 일할 수 있고, 일하고 있다는 점이 사회적으로 인정되어야 했다. 아울러 청소년 노동환경을 순식간에 바꾸긴 어렵기 때문에, 청소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리를 알 수 있도록 학교에서 최소한의 노동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2010년 중반부터 지역별로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뽑히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전문계고, 특성화고를 중심으로 노동인권교육을 의무화하는 조례들이 생겨났고, 최소한 3년에 2시간, 의지가 있는 학교에서는 매년 2~6시간의 노동인권교육이 이루어지는 사례들도 생겨났다. 그렇게 5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청소년의 노동현실은 과연 나아졌다 말할 수 있을까?

몇 가지 지점에서 발전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2011년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조사(고용노동부)에서는 근로계약서 미작성률이 77%였다. 최저임금 미만 지급률은 38%였다. 당시 해당 자료는 고용노동부로서도 상당한 충격이었다. 특히 근로계약서 미작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높아, 2014년부터 고용노동부는 근로계약서 미작성 적발 시 시정조치 없이 바로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으로 직무규정도 개정했다. 그 뒤 2019년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노동실태조사’에 따르면 근로계약서 미작성률은 61.6%로 일부 감소한 것으로 확인된다.2) 그러나 여성가족부의 ‘2018 청소년 매체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 미만 지급률은 여전히 34.9%에 달해,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2) 현장실습과 도제

 

청소년 노동에 관한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현장실습 및 도제학교의 문제이다. 현장실습은 50여년의 역사를 가진 제도이다. 취업을 목표로 하는 실업계고-전문계고-특성화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청소년 중 일부를 졸업 이전에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1년가량 학교 대신 노동현장에서 일하도록 함으로써 다양한 직업경험과 실무경험, 경력을 쌓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재 산업현장에 들어간 청소년들은 제대로 일을 배우기보다는 청소, 정리와 같은 허드렛일을 하거나 커피타기, 잡무 등을 하고 성희롱, 모욕, 욕설 등을 당하기 일쑤였다. 때문에 현장실습을 나갔던 청소년들은 부당한 상황을 학교에 알리고,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학교는 학생을 보호하기 보다는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그것도 다 사회경험이다’, ‘그 정도도 버티지 못하고 어떻게 사회생활 할 거냐’, ‘너 그만두면 내년에 네 후배들은 그 회사 못 간다’ 등등의 협박과 회유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모든 고통을 혼자서 안고 견디다 사고로 사망하거나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경우가 해마다 반복되었다3).

그로 인해 현장실습 폐지 요구가 계속적으로 제기되었지만, 제대로 된 대책이 마련된 적은 없었다. 그나마 2017년 현장실습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연달아 발생하자 교육부는 2018년부터 현장으로 나가 실행하는 취업형 현장실습을 전면 폐지하고, 학습형 현장실습만 3개월에 한해 가능하도록 제도를 수정했었다. 그러나 불과 시행 1년 만인 2019년 교육부는 기존의 현장실습을 부활시키는 데 더해 현장실습 기간도 여름방학 이전부터 가능한 것으로 제도를 후퇴시켰다. 이에 현장실습 도중 자녀를 잃은 가족을 중심으로 강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그간 교육부와 고용노동부가 현장실습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교육현장에서는 이미 2014년부터 근거 법률도 없이, ‘일학습 병행제’라는 이름의 또 다른 현장실습이 진행되고 있었다. 일명 ‘산학일체형 도제학교’로서 해당 제도를 이용하면 6~9개월이 아니라 최대 2년까지 청소년을 노동자로 사용할 수 있었다. 취지는 과거 현장실습과 대동소이했으며, 방식도 기존과 다를 바 없었다. 2018년 전남에서 도제학교 전면 실태조사가 처음으로 시행되었는데, 결과는 역시나 였다. 그나마 도제방식의 일학습 병행제도는 시행에 앞서 학습근로계약서 작성(93%), 법적지위 안내(85%), 산재보상 받음 안내(87%) 등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기업에 나가서 하는 일은 여전히 청소(20.4%)와 허드렛일(12%), 기타(44%, 망치질, 철근 옮기기, 파지통 비우기, 볼트 정리, 포대 나름, 박스 옮기기, 박스조립, 상하차, 녹 닦기, 창고정리 등)였으며, 도제의 내용은 학교수업과는 조금만 관련이 있거나(41.6%) 학교수업과 전혀 관련이 없다(38.3%)로 학교와 실습현장은 분리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하다 다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비율이 65%에 달하고, 실제 다친 비율도 33.7%였다. 그럼에도 지금 회사에 채용될 예정은 27%에 그쳤으며, 도제반을 다시 선택하겠다는 응답은 46.8%에 불과했다. 주관식 응답에는 ‘휴게시간이 없다’, ‘반복작업만 한다’, ‘하루 종일 혹사’, ‘기술은 못 배움’, ‘바늘에 찔려도 대충 물티슈로 응급처지’, ‘퇴근시간 지켜주면 좋겠다’, ‘잡일만 시킨다’, ‘처음 약속된 공장이 아닌 다른 공장으로 보낸다’, ‘스트레스가 심해 정신상담도 받고 있다’, ‘회사가 부도났다’, ‘교육이 아니라 노동이다’, ‘담배꽁초 줍는 일은 안 시켰으면 좋겠다’는 놀라운 답변을 확인했다. 결국 일학습 병행제는 도제를 통해 전문인력을 키우겠다는 허울을 쓴 또 다른 현장실습이었다.

 

 

3. 변하지 않는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살펴본 바와 같이 청소년 노동은 어떠한 측면에서는 10년, 20년 혹은 그 이상으로 변함없이 열악하고 불안하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가장 먼저 좌절하는 것은 바로 청소년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청소년들도 실제 움직이기 시작했다. 10년 전에 청년유니온이 활동을 시작한 이래, 2015년에는 청소년유니온이 만들어졌고, 알바노조와 같이 청소년-청년을 넘어 임시직 노동이지만 적극적으로 권리를 찾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한편 청소년 노동인권교육도 10년 전에 비하면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청소년을 직접 교육하는 교사연수에서도 청소년 노동의 현실을 확인하고 청소년에게 학교에서 노동권을 가르쳐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각 지역별로는 청소년 노동을 보호하기 위해 센터를 설립하거나 지원하는 조례를 만드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이제는 청소년 노동을 넘어 청소년 고용사업주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청소년노동인권교육도 기존 근로기준법 중심의 교육을 벗어나 노동3권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전문계고 중심, 고등학교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중학교-초등학교 때부터 노동교육이 필요하다며 적극적인 내용과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어찌 보면 가장 더딘 움직임은 법률과 정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등이다. 아직도 청소년을 보호받는 존재로 상정하거나 공부하는 존재로 가두려는 이들과 달리, 청소년들은 이제 적극적으로 참정권을 논하며 직접 법률과 환경을 바꾸겠다고 나서고 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언론에 노동현실을 증언하고 있다. 2019년 뜨거웠던 촛불 광장에도 청소년은 당당하게 참여했고 함께 정권을 바꾸었다. 언제나 제 목소리를 내던 청소년을 ‘나이’라는 틀과 ‘학습’이라는 제한으로 가두려고 했던 것은 ‘꼰대’ 어른들과 정부, 법률이었다.

이미 수많은 청소년들은 기본적인 근로기준법과 산재법 대부분을 알고 있었다. 귀를 꽉 막은 사장과 고용노동부의 무시에 고통 받아도, 노동의 끈을 놓지 않고 떳떳하게 일하고 있었다. 단지 필요한 것은 지지하는 것, 뿐일지도 모르겠다. 청소년노동인권에 관심이 있다면, 꼰대라고 놀림 받고 치부되기 싫다면 먼저 청소년의 목소리를 들어라. 청소년을 변화시켜 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노동현실을 바꿀 동료로 대할 때, 아마 청소년 노동현실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노동현실 전체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1) 현재 표면적으로 30분 배달은 사라졌으나, 빠른 배송은 여전히 모든 배달업체가 바라는 최고의 요구사항이다.

2) 몇몇 조사에서는 근로계약서 미체결률이 50% 정도까지 줄어든 것으로 확인되어, 어쨌든 근로계약서 미작성 관행은 다소나마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성 후 근로계약서를 교부하지 않는 비율도 높아, 여전히 자신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하거나 교부받지 못하는 청소년 노동자가 절대적으로 많다.

3) 2011년 광주 기아자동차 뇌출혈 사고, 2012년 한라건설 작업선 전복 사망사고, 2014년 진천 CJ제일제당 공장 사망사고, 2014년 울산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금영 ETS 공장 지붕 붕괴 사망사고, 2016년 경기 성남 외식업체 토다이 사망사고, 2016년 서울 구의역 수리 하청업체 은성 PSD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2017년 전북 전주 엘지유플러스고객센터 사망사고, 2017년 제주 음료제조공장(제이크레이션) 사망사고, 2017년 안산공장 투신 자살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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