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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포커스

 

‘전 국민 고용보험’의 허와 실

 

장귀연 • 철폐연대 부설 노동권연구소장 , 윤애림 • 노동권연구소 연구위원

 

 

 

1.

 

코로나19발 경제 위기로 한국의 사회안전망이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지만, 그나마 5대보험 납입하는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은 사정이 낫다. 어쨌든 월급은 나오고, 설사 경제위기로 해고를 당하더라도 한동안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으니까. 졸지에 일거리가 없어진 특수고용, 프리랜서, 개인사업자, 자영노동자…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노동자이면서 노동자로 취급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졸지에 한 푼의 급여도 받지 못하고 빚내어 살아가야 할 판국이 되었다. 굳게 닫힌 학원과 스포츠 시설의 강사들, 방문자를 아예 사절해야 하는 고령자층을 돌보던 재가요양보호사들, 회식 금지로 손님이 끊긴 대리운전 기사들, 공연이며 행사가 모두 취소된 공연예술인들, 모든 나라가 문을 잠근 세상의 여행 가이드들… 벌이가 완전히 끊겨 버려 가장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인데 위기의 안전망이 되어줘야 할 사회보험의 대상자도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용보험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민주노총은 3월 10일 <대정부요구서>에서 ‘코로나 노동5법’을 즉각 국회에서 입법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고용보험법 개정이었다. 이어 4월 17일에는 코로나19 위기에 대한 원포인트 노사정협의를 제안하면서 모든 노동자 및 국민에게 고용보험 적용과 실업부조의 전면 도입을 주장하였다. 정부도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5월 들어서 여당과 고용노동부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 추진’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5월 10일에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3주년 대국민연설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를 단계적으로 진행하겠다”고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전 국민 고용보험. 제목만 보았을 땐 좋은 제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담론으로 얘기될 때 사회적 효과를 갖게 되고, 정책으로 수립될 때 현실적인 문제점을 발생시킨다. 이 부분들에 대해서 좀 더 들여다봐야 한다.

 

 

2.

 

우선 말해둬야 할 것은 코로나19로 인하여 갑자기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라는 담론이 부각되기 시작했으나 고용보험제도의 개편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준비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2017년부터 고용보험위원회에서 제도개선 T/F를 구성하였고, 노동계, 경영계, 공익, 정부 측을 대표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특히 특수고용,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예술인 등 사업자라기보다 단지 노동을 제공함으로써 대가를 받는 노동자임에도 고용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취업자들을 대상으로 고용보험을 확대하는 것이 우선과제였다. 이 논의의 결과로 도출된 안이 2018년 7월 31일 고용보험위원회에서 의결되었고, 같은 해 11월 한정애 의원 대표발의로 국회에 올라갔다. 그러나 일 년 반이 지나도록 처리하지 않고 있다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현재 고용보험제도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부랴부랴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얘기를 떠들기 시작한 것이다.

오히려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담론으로 이미 합의된 고용보험개편안을 희석시키는 효과마저 존재한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학계와 국책연구소 등의 연구자들이 전 국민이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제도들에 대해서 백가쟁명 식으로 앞다퉈 제안들을 내놓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제도안 자체를 내놓지는 않고 있지만, ‘전 국민’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자영업자를 비롯한 사업자들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상정하게 되고, 그 결과 재원은 조세 방식으로 충당하는 방안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노동을 이용하여 이익을 얻는 사업주의 책임은 사라지고,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세금을 부담하는 방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자영업자와 사업주들도 막대한 손해를 입고 소득이 감소했다. 이들도 사회안전망에 포함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고용보험이다. 즉 사업주에게 노동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사업주는 이들의 노동을 이용하여 이익을 얻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용보험 납부금의 절반은 사업주가 부담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전 국민’이라는 호명은 이러한 사업주의 책임을 삭제해버리고 고용보험의 부담을 납세자에게 전가하면서 ‘고통분담’의 논리와 비슷하게 만들어버린다.

 

고용보험을 둘러싼 사회적 담론 투쟁에서 ‘전 국민’이란 모호한 말로 전 국민 고통분담 논리로 나아가려는 시도는 경계해야 한다. 노동의 불안정화를 추진해 고용보험 등의 부담을 회피했던 자본과 이를 부추겼던 정책을 비판하면서, 고용보험제도 개편은 자본의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지게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노동을 사용하여 이익을 얻는 사업주, 그러므로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 사업주의 예시를 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2 정책포커스_01.JPG

 

[출처: 윤애림, “특수형태노무제공자 고용보험 적용의 쟁점”, 「노동법학」제70호, 2019, 309~301쪽]

 

 

3.

 

이미 고용보험위원회에서 의결하고 국회에 발의된 법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1년 반을 허비하다가,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난 5월 11일 20대 국회 막바지에 환경노동소위에서 오직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안만을 특례법으로 통과시켰다. 수십 배 더 숫자가 많은 특수고용, 플랫폼노동, 프리랜서 직종들의 고용보험 적용은 또 미뤄진 것이다.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예술인만을 위한 특례법안을 반대하며 전 국민 고용보험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라는 성명서를 즉각 발표하였다. 사실 이쯤 되면 문화예술노동연대의 말대로 ‘전 국민 고용보험’이란 수사로 오히려 눈을 돌리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특례 방식도 문제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2007년 산재보험에서 처음으로 특수고용을 특례 적용하였고 일부 직종을 지정하였다. 현재는 9개 직종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지속성과 비대체성, 전속성을 갖춘 경우만을 인정하고 있고, 임금노동자는 사업주가 산재보험료를 전액 납부하는 데 비해 특례로 삽입된 특수고용의 경우에는 사업주와 노동자가 절반씩 납부하게 하는 차별을 규정하고 있다. 여전히 사회보험은 고용관계를 맺은 임금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점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지속성과 비대체성, 전속성을 갖춰 실제로 임금노동자나 다름없이 한 사업장에 종속되어 있는 경우조차 특례로 끼워넣으면서 차별을 하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기업들이 노동자와 고용계약을 맺지 않고 특수고용으로 전환하는 것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산재보험에서 인정한 특수고용 9개 직종 내에서조차 동시에 여러 사업주를 위해 일하거나 단기로 이곳저곳을 떠도는 경우에는 적용을 받지 못한다.

고용계약을 맺은 임금근로자를 기준으로 한 사회보장은 노동을 제공하는 방식이 다양해진 지금 현실에 맞지 않을 뿐더러 자본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노동의 불안정화를 가속화하는 데 기여한다. 특례 방식으로 덕지덕지 붙여놓아봤자 빠져나갈 구멍만 잔뜩 만들어줄 뿐이다.

고용보험제도의 개편은 기본적으로 고용형태에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것으로, 고용을 했든 하지 아니하였든 노동을 이용해서 이익을 얻는 사업주는 보험료를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임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프리랜서, 플랫폼노동자 등은 고용계약을 맺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 사업장에 전속으로 일하지 않고 여러 사업장을 동시에 또는 단기간으로 일하면서 떠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으며, 또 노동시간이 정확히 계산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따라서 노동시간보다는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산정할 필요가 있고, 사업(장) 단위가 아니라 개인 단위로 피보험자를 관리하고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즉 여러 사업주를 위해 일하더라도 그 노동자 개인이 개별 사업(장)에서 일하고 버는 소득에 비례적으로 모든 사업주들은 보험료를 납부할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다.

2018년 한정애 의원이 대표발의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산재보험에서와 달리 전속성을 요구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의 보험료 납부 및 급여가 가능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문제점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무엇보다 원청이나 플랫폼, 프랜차이즈 본부 등의 기업들은 분명히 노동자의 노동을 이용하여 이윤을 얻지만 직접적으로 노동을 이용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험료 납부의 책임에서 제외되어 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노동을 이용하여 이익을 얻는 자본은 모두 노동자의 사회보장에 집합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또한 이처럼 여러 개의 일자리를 전전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부분실업 제도의 도입 또한 중요한 문제이다. 비임금노동자의 고용보험 급여에서는 기여조건이나 대기기간 등에서 임금노동자와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며, 직업능력개발사업이나 육아휴직급여 등도 적용받지 못한다. 이러한 지점들에 대한 개선 요구들을 해야 하고,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사회보장을 위해 싸워나가야 할 길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 국민’이라는 수사 속에 자본의 책임을 얼버무리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본이 노동을 통해서 이윤을 얻는다면 적어도 노동자의 안정적 삶을 위해 책임을 지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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